남북 통신선 복원, 그 다음은?…북핵 전문가들에게 듣다

입력 2021.07.29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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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인한 북한의 '완전 봉쇄' 이후 뚝 끊긴 것처럼 보였던 남북관계가 통신연락선 복원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달라진 분위기 속에, 오늘(29일)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에서는 북핵 문제 전문가들이 '북핵과 한반도평화-2021년과 그 이후: 대안의 모색'을 주제로 화상 세미나를 열었습니다.

북한이 통신연락선 복원에 응한 이유는 뭔지, 한반도 정세에 어렵게 찾아온 변화의 계기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가능성과 한계는 무엇인지 등을 놓고 2시간 동안 열띤 토의가 진행됐습니다.

① 남북통신연락선 복원의 함의는?

세미나 참석자 중 통신연락선 복원을 가장 긍정적으로 언급한 건, 한국 측 북핵수석대표인 노규덕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었습니다.

노 본부장은 "한·미는 북한과의 대화 재개 방안을 포함해 북핵문제 해결의 실질적 진전을 위한 다양한 방안에 대해 각급에서 심도있는 협의를 계속 이어나가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7월 27일 발표된 남북간 통신연락선 복원은 긍정적인 진전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남북의 이번 합의가 한반도평화프로세스의 실질적 진전을 위한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노 본부장은 "통신연락선 복원이 남북관계와 북·미관계 간에 선순환 구조를 복원하고, 북·미 대화를 재개하는 데에도 기여할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를 위해 한국 정부는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지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고, 미국 측과도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북핵 문제에 대한 한·미의 공조관계가 매우 잘 이뤄지고 있다면서, 대외적으로 비쳐진 한·미의 긴밀한 공조가 이번 통신선 복원에 일부분 기여한 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대응책을 고민하고 있을 북한이, 미 행정부와 긴밀히 협력하는 것으로 보이는 남측에 접근할 필요성을 인식한 것 아니냐는 분석으로 보입니다.

노규덕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오른쪽)이 29일 진행된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국제문제회의 화상 세미나에서 발언하고 있다. (출처: 세미나 화면 캡처)노규덕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오른쪽)이 29일 진행된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국제문제회의 화상 세미나에서 발언하고 있다. (출처: 세미나 화면 캡처)

남북 통신연락선 복원에 나선 북한의 외교적 셈법에 대한 평가도 나왔습니다.

고유환 통일연구원장은 "북한은 핵보유국의 자신감을 반영해 정세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며 대외관계를 공세적으로 풀어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힌 적이 있다"면서 "그 연장선상에서의 첫 조치가 7월 27일에 있었던 남북 연락통신선 복원"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북한은 군량미를 풀어서라도 인민생활 문제를 해결해야 할 정도로 내부사정이 매우 심각해 정세관리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북한이 높아진 전략적 지위를 활용해 유리한 외부적 환경을 주동적으로 마련해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는 점을 비추어볼 때, 북·미 대화의 가능성은 상당히 높을 것으로 전망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상현 세종연구소장도 북한이 표명한 '선대선·강대강 원칙'과 '대화에도 대결에도 모두 준비 원칙'을 상기하며, 통신선 복원은 "북한이 대결보다는 대화를 조금 더 기다린다는 제스처가 아닌가 생각한다"라고 분석했습니다.

통신연락선 복원 전후로 드러난 현 정부의 외교적 접근법에 대한 비판적 분석 역시 뒤따랐습니다.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지낸 위성락 전 주러시아 대사는 "우리 쪽 접근(approach)을 보면 최근 연락 채널 재개에서도 보듯, 너무 작은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고 너무 작은 성과에 집착하는 것 같은 불안감을 준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현 정부는) 냉정하게 비핵화와 평화라는 본질에 초점을 두고 접근하려는 것 같은 인상은 주지 않고, 작은 이벤트, 성취라도 자꾸 내고 이걸 가지고 자기충족적으로 설명하려 한다"면서 "그렇게 접근해서는 (북핵 문제에 있어) 바이든 행정부를 견인해내고 단기간 내에 성과를 내기가 쉬울지 약간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위 전 대사는 그러면서 "현 정부는 임기 말에 있고, 우선 이벤트를 시작해 나중에 실질적 진전을 기해보자고 접근하기에는 시간이 많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② 북미·남북관계, 어디서 어떻게?

오늘 세미나에서 전문가들은 북한을 협상장으로 끌어오기 위해 한국과 미국이 취할 수 있는 전략을 구체적으로 제안했습니다.

위성락 전 대사는 "북한을 협상장에 끌어내려면 바이든 행정부가 뭔가 선제적 행보를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가능한 방안으로는 외교적 의전 차원의 예(courtesy)를 발휘해 북한의 '인정결핍증'을 만족시켜줄 수 있는 조치, 또는 식량과 비료, 의료 분야의 인도적 지원을 활용하는 방안을 언급했습니다. 다만 바이든 행정부의 태도가 소극적이기 때문에 이를 설득해내는 게 우리 정부의 과제라고 지적했습니다.

또 미·중 관계 악화가 한반도와 북핵 문제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면서, "미국은 북핵 문제에 있어 중국의 지정학적 이해(interests)보다도 핵 비확산이라는 명분에 좀더 충실하도록 유도하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바이든 행정부가 자주 언급하는 '대중 협력·경쟁·대결' 중, 북핵 문제는 '협력' 영역에 속하도록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설명입니다. 이를 통해 중국이 북·미 협상의 재개를 위한 중간 역할을 하도록 권유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위성락 전 주러시아 대사(오른쪽)가 29일 진행된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국제문제회의 화상 세미나에서 발언하고 있다. (출처: 세미나 화면 캡처)위성락 전 주러시아 대사(오른쪽)가 29일 진행된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국제문제회의 화상 세미나에서 발언하고 있다. (출처: 세미나 화면 캡처)

이상현 소장 역시 "미국은 북한이 움직일 수 있도록 선제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북핵 협상에 있어 북한에 먼저 인센티브를 제공할 수 없다는 바이든 행정부의 원칙은 명확해 보입니다. 하지만 이 소장은 "인센티브는 반드시 제재 해제나 물질적 인센티브를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뉘앙스가 있다"면서 "친근하고 우호적인 제스처만으로도 북한과의 대화에 대한 일종의 인센티브가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미국은 북한을 적대시하지 않는다' '무력 침공을 준비하지 않는다'는 식의 제스처가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선택지라고 봤습니다.

이 소장은 또 "북·미 대화 재개를 위한 가장 쉬운 출발점은 하노이에서 정확히 멈췄던 '영변 플러스 알파, 제재 일부 해제'를 어떻게 구체적으로 교환할 수 있는 공식을 만드는가다"라며 이에 착안할 경우 북·미 대화 재개는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북·미 협상에서 한국이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한 아이디어도 논의됐습니다.

위성락 전 대사는 북한이 핵 협상을 주로 미국과 하려는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기 때문에, 한·미간 신뢰를 구축해 미국과의 공동된 대응 입장을 조율해 나가는 것이 한국이 입지를 확보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대처라고 말했습니다.

위 전 대사는 "이런 전제하에 한국이 북·미 간 대화촉진자 역할도 하고, 미·중이 한반도 비핵화에 협조하도록 중간 역할도 하고, 북·미 협상이 비핵, 평화의 정상궤도를 이탈해 한국의 국익이 손상되는 일이 없도록 감시하는 역할도 해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또 한국이 북한에 식량과 비료 등을 인도적 지원하는 것도 바람직하다며, 남북 대화를 열고 북·미 대화를 촉진하려는 노력을 마다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도 "남북관계를 치고 나가 미국을 견인하는 일은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 궤적을 감안해볼 때 쉽지 않아 보인다"면서 "지금으로서는 외적 여건과 우리의 운신 공간, 주어진 시간을 면밀히 교량하며 움직일 때"라고 말했습니다.

이상현 소장도 현 정부의 얼마 남지 않은 임기가 한국으로서는 큰 구조적 제약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이 소장은 "정부가 지금 과감한 정책을 펼 시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면서 "지금 우리 정부가 할 것은 과속의 유혹을 경계하고 지난 4년 간의 남북관계 성과를 잘 정리해 한반도평화프로세스를 어떻게 잘 이행할 것인지 차기 정부에게 넘겨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남북관계를 불가역적으로 진전시키면 미국도 따라오지 않을까라는 게 이번 정부의 생각이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북한도 만만치 않은 변수였다"면서 한국 정부의 역할에는 제한이 따를 수밖에 없음을 언급했습니다.

북핵 대표인 노규덕 본부장은 " 대화 재개를 위한 기본적 요건은 한반도 상황의 안정적인 관리"라면서 "한·미가 이미 협력 의사를 표명한 바 있는 인도적 지원과 협력 등은 모두의 이익에 부합하며, 대화 여건 조성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정부로서는 미·중 관계 동향을 주시하면서 북핵문제와 관련된 주변국들 간의 협력을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가는 노력을 계속 경주해 나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영선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가 29일 진행된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국제문제회의 화상 세미나에서 사회를 맡아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출처: 세미나 화면 캡처)하영선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가 29일 진행된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국제문제회의 화상 세미나에서 사회를 맡아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출처: 세미나 화면 캡처)

③ 바이든 대북정책 키워드, 'calibrated'의 의미?

바이든 행정부의 새 대북정책 검토 결과를 어떻게 평가할지도 세미나의 주된 주제였습니다. 미 국무부는 이번 대북정책을 설명하며 "calibrated, practical approach"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있는데요. 특히 'calibrated'라는 단어의 의미에 대한 토론이 있었습니다.

사회를 맡은 하영선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은 "미국이 calibrated라는 그동안 잘 쓰지 않았던 단어를 굳이 왜 붙였을까라는 건 조심스런 검토가 필요하다"면서 "주관적으로 번역하면 '잘 조율된'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할 텐데, 그렇게 될 경우 굉장히 복잡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며 운을 띄웠습니다.

위성락 전 대사는 중요한 함의를 지닌 단어는 아닐 거라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위 전 대사는 "calibrated라는 용어를 보고 흥미로운 용어라고 생각한 적이 몇 번 있다"면서 "그러면서도 동시에 심오한 함의가 있다는 생각보다는, 결국 이건 내용에 새로운 게 없다는 것을 방증하는 게 아니냐. 말이 너무 추상적이고 근사하긴 한데 유의미(meaningful)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습니다.

위 전 대사는 이 단어를 2019년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북·미 협상과 관련해 언급한 "굿 이너프 딜'(good enough deal·충분히 괜찮은 거래)"이라는 표현에 비유하며, "말은 근사한데 뭔가를 덮으려는(cover) 것 같은 인상을 준다. 딱 정해진(pointed) 컨셉이라는 생각이 안 드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상현 세종연구소장은 다른 관점의 해석을 내놨습니다. 미국이 calibrated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북핵 문제 해결에 있어 한국에 "일종의 브레이크를 달아준 것"이라는 견해입니다.

이 소장은 "한미정상회담의 내용을 보면 미국은 (북핵 문제에서) 한국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주도권(initiative)를 인정해줬고, 정부는 거기에 방점을 두고 있다"면서 "'한국 정부가 남북관계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주도권을 쥐고 하지만, 그것이 뭐든 할 수 있는 프리패스는 아니다' '한미간 긴밀히 조율하자. 한국이 너무 앞서가서도, 미국이 너무 뒤처져서도 안된다' 여기에 아마 (미국이 말하는 calibrated의) 숨은 의미가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화상 세미나는 국립외교원 유튜브 계정(https://www.youtube.com/user/KNDALIVE)에서 이르면 8월 5일부터 다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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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 통신선 복원, 그 다음은?…북핵 전문가들에게 듣다
    • 입력 2021-07-29 17:37:58
    취재K

코로나19로 인한 북한의 '완전 봉쇄' 이후 뚝 끊긴 것처럼 보였던 남북관계가 통신연락선 복원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달라진 분위기 속에, 오늘(29일)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에서는 북핵 문제 전문가들이 '북핵과 한반도평화-2021년과 그 이후: 대안의 모색'을 주제로 화상 세미나를 열었습니다.

북한이 통신연락선 복원에 응한 이유는 뭔지, 한반도 정세에 어렵게 찾아온 변화의 계기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가능성과 한계는 무엇인지 등을 놓고 2시간 동안 열띤 토의가 진행됐습니다.

① 남북통신연락선 복원의 함의는?

세미나 참석자 중 통신연락선 복원을 가장 긍정적으로 언급한 건, 한국 측 북핵수석대표인 노규덕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었습니다.

노 본부장은 "한·미는 북한과의 대화 재개 방안을 포함해 북핵문제 해결의 실질적 진전을 위한 다양한 방안에 대해 각급에서 심도있는 협의를 계속 이어나가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7월 27일 발표된 남북간 통신연락선 복원은 긍정적인 진전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남북의 이번 합의가 한반도평화프로세스의 실질적 진전을 위한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노 본부장은 "통신연락선 복원이 남북관계와 북·미관계 간에 선순환 구조를 복원하고, 북·미 대화를 재개하는 데에도 기여할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를 위해 한국 정부는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지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고, 미국 측과도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북핵 문제에 대한 한·미의 공조관계가 매우 잘 이뤄지고 있다면서, 대외적으로 비쳐진 한·미의 긴밀한 공조가 이번 통신선 복원에 일부분 기여한 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대응책을 고민하고 있을 북한이, 미 행정부와 긴밀히 협력하는 것으로 보이는 남측에 접근할 필요성을 인식한 것 아니냐는 분석으로 보입니다.

노규덕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오른쪽)이 29일 진행된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국제문제회의 화상 세미나에서 발언하고 있다. (출처: 세미나 화면 캡처)
남북 통신연락선 복원에 나선 북한의 외교적 셈법에 대한 평가도 나왔습니다.

고유환 통일연구원장은 "북한은 핵보유국의 자신감을 반영해 정세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며 대외관계를 공세적으로 풀어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힌 적이 있다"면서 "그 연장선상에서의 첫 조치가 7월 27일에 있었던 남북 연락통신선 복원"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북한은 군량미를 풀어서라도 인민생활 문제를 해결해야 할 정도로 내부사정이 매우 심각해 정세관리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북한이 높아진 전략적 지위를 활용해 유리한 외부적 환경을 주동적으로 마련해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는 점을 비추어볼 때, 북·미 대화의 가능성은 상당히 높을 것으로 전망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상현 세종연구소장도 북한이 표명한 '선대선·강대강 원칙'과 '대화에도 대결에도 모두 준비 원칙'을 상기하며, 통신선 복원은 "북한이 대결보다는 대화를 조금 더 기다린다는 제스처가 아닌가 생각한다"라고 분석했습니다.

통신연락선 복원 전후로 드러난 현 정부의 외교적 접근법에 대한 비판적 분석 역시 뒤따랐습니다.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지낸 위성락 전 주러시아 대사는 "우리 쪽 접근(approach)을 보면 최근 연락 채널 재개에서도 보듯, 너무 작은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고 너무 작은 성과에 집착하는 것 같은 불안감을 준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현 정부는) 냉정하게 비핵화와 평화라는 본질에 초점을 두고 접근하려는 것 같은 인상은 주지 않고, 작은 이벤트, 성취라도 자꾸 내고 이걸 가지고 자기충족적으로 설명하려 한다"면서 "그렇게 접근해서는 (북핵 문제에 있어) 바이든 행정부를 견인해내고 단기간 내에 성과를 내기가 쉬울지 약간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위 전 대사는 그러면서 "현 정부는 임기 말에 있고, 우선 이벤트를 시작해 나중에 실질적 진전을 기해보자고 접근하기에는 시간이 많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② 북미·남북관계, 어디서 어떻게?

오늘 세미나에서 전문가들은 북한을 협상장으로 끌어오기 위해 한국과 미국이 취할 수 있는 전략을 구체적으로 제안했습니다.

위성락 전 대사는 "북한을 협상장에 끌어내려면 바이든 행정부가 뭔가 선제적 행보를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가능한 방안으로는 외교적 의전 차원의 예(courtesy)를 발휘해 북한의 '인정결핍증'을 만족시켜줄 수 있는 조치, 또는 식량과 비료, 의료 분야의 인도적 지원을 활용하는 방안을 언급했습니다. 다만 바이든 행정부의 태도가 소극적이기 때문에 이를 설득해내는 게 우리 정부의 과제라고 지적했습니다.

또 미·중 관계 악화가 한반도와 북핵 문제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면서, "미국은 북핵 문제에 있어 중국의 지정학적 이해(interests)보다도 핵 비확산이라는 명분에 좀더 충실하도록 유도하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바이든 행정부가 자주 언급하는 '대중 협력·경쟁·대결' 중, 북핵 문제는 '협력' 영역에 속하도록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설명입니다. 이를 통해 중국이 북·미 협상의 재개를 위한 중간 역할을 하도록 권유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위성락 전 주러시아 대사(오른쪽)가 29일 진행된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국제문제회의 화상 세미나에서 발언하고 있다. (출처: 세미나 화면 캡처)
이상현 소장 역시 "미국은 북한이 움직일 수 있도록 선제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북핵 협상에 있어 북한에 먼저 인센티브를 제공할 수 없다는 바이든 행정부의 원칙은 명확해 보입니다. 하지만 이 소장은 "인센티브는 반드시 제재 해제나 물질적 인센티브를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뉘앙스가 있다"면서 "친근하고 우호적인 제스처만으로도 북한과의 대화에 대한 일종의 인센티브가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미국은 북한을 적대시하지 않는다' '무력 침공을 준비하지 않는다'는 식의 제스처가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선택지라고 봤습니다.

이 소장은 또 "북·미 대화 재개를 위한 가장 쉬운 출발점은 하노이에서 정확히 멈췄던 '영변 플러스 알파, 제재 일부 해제'를 어떻게 구체적으로 교환할 수 있는 공식을 만드는가다"라며 이에 착안할 경우 북·미 대화 재개는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북·미 협상에서 한국이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한 아이디어도 논의됐습니다.

위성락 전 대사는 북한이 핵 협상을 주로 미국과 하려는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기 때문에, 한·미간 신뢰를 구축해 미국과의 공동된 대응 입장을 조율해 나가는 것이 한국이 입지를 확보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대처라고 말했습니다.

위 전 대사는 "이런 전제하에 한국이 북·미 간 대화촉진자 역할도 하고, 미·중이 한반도 비핵화에 협조하도록 중간 역할도 하고, 북·미 협상이 비핵, 평화의 정상궤도를 이탈해 한국의 국익이 손상되는 일이 없도록 감시하는 역할도 해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또 한국이 북한에 식량과 비료 등을 인도적 지원하는 것도 바람직하다며, 남북 대화를 열고 북·미 대화를 촉진하려는 노력을 마다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도 "남북관계를 치고 나가 미국을 견인하는 일은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 궤적을 감안해볼 때 쉽지 않아 보인다"면서 "지금으로서는 외적 여건과 우리의 운신 공간, 주어진 시간을 면밀히 교량하며 움직일 때"라고 말했습니다.

이상현 소장도 현 정부의 얼마 남지 않은 임기가 한국으로서는 큰 구조적 제약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이 소장은 "정부가 지금 과감한 정책을 펼 시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면서 "지금 우리 정부가 할 것은 과속의 유혹을 경계하고 지난 4년 간의 남북관계 성과를 잘 정리해 한반도평화프로세스를 어떻게 잘 이행할 것인지 차기 정부에게 넘겨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남북관계를 불가역적으로 진전시키면 미국도 따라오지 않을까라는 게 이번 정부의 생각이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북한도 만만치 않은 변수였다"면서 한국 정부의 역할에는 제한이 따를 수밖에 없음을 언급했습니다.

북핵 대표인 노규덕 본부장은 " 대화 재개를 위한 기본적 요건은 한반도 상황의 안정적인 관리"라면서 "한·미가 이미 협력 의사를 표명한 바 있는 인도적 지원과 협력 등은 모두의 이익에 부합하며, 대화 여건 조성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정부로서는 미·중 관계 동향을 주시하면서 북핵문제와 관련된 주변국들 간의 협력을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가는 노력을 계속 경주해 나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영선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가 29일 진행된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국제문제회의 화상 세미나에서 사회를 맡아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출처: 세미나 화면 캡처)
③ 바이든 대북정책 키워드, 'calibrated'의 의미?

바이든 행정부의 새 대북정책 검토 결과를 어떻게 평가할지도 세미나의 주된 주제였습니다. 미 국무부는 이번 대북정책을 설명하며 "calibrated, practical approach"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있는데요. 특히 'calibrated'라는 단어의 의미에 대한 토론이 있었습니다.

사회를 맡은 하영선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은 "미국이 calibrated라는 그동안 잘 쓰지 않았던 단어를 굳이 왜 붙였을까라는 건 조심스런 검토가 필요하다"면서 "주관적으로 번역하면 '잘 조율된'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할 텐데, 그렇게 될 경우 굉장히 복잡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며 운을 띄웠습니다.

위성락 전 대사는 중요한 함의를 지닌 단어는 아닐 거라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위 전 대사는 "calibrated라는 용어를 보고 흥미로운 용어라고 생각한 적이 몇 번 있다"면서 "그러면서도 동시에 심오한 함의가 있다는 생각보다는, 결국 이건 내용에 새로운 게 없다는 것을 방증하는 게 아니냐. 말이 너무 추상적이고 근사하긴 한데 유의미(meaningful)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습니다.

위 전 대사는 이 단어를 2019년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북·미 협상과 관련해 언급한 "굿 이너프 딜'(good enough deal·충분히 괜찮은 거래)"이라는 표현에 비유하며, "말은 근사한데 뭔가를 덮으려는(cover) 것 같은 인상을 준다. 딱 정해진(pointed) 컨셉이라는 생각이 안 드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상현 세종연구소장은 다른 관점의 해석을 내놨습니다. 미국이 calibrated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북핵 문제 해결에 있어 한국에 "일종의 브레이크를 달아준 것"이라는 견해입니다.

이 소장은 "한미정상회담의 내용을 보면 미국은 (북핵 문제에서) 한국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주도권(initiative)를 인정해줬고, 정부는 거기에 방점을 두고 있다"면서 "'한국 정부가 남북관계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주도권을 쥐고 하지만, 그것이 뭐든 할 수 있는 프리패스는 아니다' '한미간 긴밀히 조율하자. 한국이 너무 앞서가서도, 미국이 너무 뒤처져서도 안된다' 여기에 아마 (미국이 말하는 calibrated의) 숨은 의미가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화상 세미나는 국립외교원 유튜브 계정(https://www.youtube.com/user/KNDALIVE)에서 이르면 8월 5일부터 다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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