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청소노동자, 왜 ‘직장 내 괴롭힘’일까?…“‘라떼는’ 안 됩니다”

입력 2021.07.3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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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6월) 서울대학교에서 청소노동자 이 모 씨가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사인은 심근경색. 하지만 유족과 노동조합 측은 지난달 초 관리자가 새롭게 온 뒤로, 이 씨가 많은 업무량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고용노동부가 조사에 나섰고, 어제(30일) "직장 내 괴롭힘 사실이 있었다"고 결과를 밝혔습니다.

■ "시험, 청소 업무와 관계 없어…근거 없이 복장 간섭"

고용부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한 건 크게 두 가지입니다. 관리자가 노동자들에게 필기 시험을 보게 한 것과 회의 때 복장을 점검한 것입니다.

특히 많은 공분을 샀던 건 이 필기시험이었습니다. 문항에 각 건물의 준공연도를 묻고, 조직 명칭을 한자나 영문으로 쓰라는 등 내용이 들어가 있었기 때문인데요.

고용부도 이 점을 문제 삼았습니다. 고용부는 "문항에 청소 업무와 관계가 없는 내용이 상당수 포함돼 있었다"며 "시험 내용이 외국인과 학부모 응대에 필요한 소양이란 행위자 주장에 대해서도 사전 교육 없는 필기시험이 교육 수단으로는 적절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또 관리자는 시험 도중 화면을 띄웠는데, 거기엔 "점수는 근무 성적 평정에 적극적으로 반영할 계획"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청소 노동자들에겐 근무 평정 제도라는 게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관리자가 임의로 성적을 반영한다고 했다는 것이죠. 또 사전에 시험을 본다는 예고를 하지 않았던 점도 고려됐습니다.

또 하나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된 복장 점검. 이건 왜 직장 내 괴롭힘일까요? 사실 직장에서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옷을 단정하게 입고 오라'는 정도의 지시는 할 수 있지 않냐고 의문을 품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노조 관계자는 "노동자들이 형편이 넉넉하지 않음에도 최대한 깔끔한 옷을 골라 입고 갔는데도 (관리자가) 지적을 한 적이 있다"고 전했습니다.

그리고 고용부 조사 결과, 관리자가 회의 도중 일부 노동자들 복장에 대해 박수를 치고, 복장에 대해 '통과' 여부를 말하는 등 노동자들이 모멸감을 느끼게 한 점 등이 판단 과정에서 중요하게 고려됐습니다.

고용부 관계자는 "그런 것들은 일하는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직장 내 괴롭힘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습니다.


■ '직장 내 괴롭힘' 뭔가요?…"'라떼는~' 하지 마세요"

직장에서 동료를 괴롭히면 안 된다, 이른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사실 별도로 규정된 법이 아니라 근로기준법에 있는 조항 일부입니다. 이걸 보면 직장 내 괴롭힘이 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근로기준법 제76조의2(직장 내 괴롭힘의 금지)
사용자 또는 근로자는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ㆍ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이하 “직장 내 괴롭힘”이라 한다)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그러니까 앞서 본 복장 점검을 예로 들면, 직장 상사가 옷에 대해 지적을 함으로써 모멸감을 느끼게 해 근무 환경이 나빠졌다고 판단됐기 때문에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된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하게 봐야할 건 '모멸감'입니다. 도대체 직장 내 괴롭힘이 뭔지, 반대로 직장 내 괴롭힘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더니 고용부 관계자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부하 직원이 일을 못 하면 상사가 화가 날 수 있죠. 하지만 그게 인격적으로 모멸감을 주는 것까지 가면 안 됩니다."

상사가 부하 직원을 잘 가르치면서 타이르면 제일 좋겠지만, 설사 혼을 내더라도 모욕적인 말을 하는 등 선을 넘어선 안 된다는 거죠.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특히 신체적인 문제를 거론하거나, 학력을 들먹이면 직장 내 괴롭힘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강조했습니다. 예컨대 "어느 학교를 나왔냐" 등의 발언입니다.

그렇다고 노동자가 모멸감을 느끼거나 기분이 나쁘다고 해서 무조건 직장 내 괴롭힘이 되는 건 아닙니다. 물론 당사자의 의견도 중요하지만, 제3자, 그러니까 사회적인 통념상 선을 넘으면 안 된다는 설명입니다. 이번 서울대 청소노동자 사건에서 사회적으로 가장 많은 분노를 일으켰던 필기 시험과 복장 점검만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되고, 청소 점검 등은 인정되지 않은 점을 보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인식입니다. KBS와 통화한 고용부 관계자는 '성희롱'을 예로 들었습니다. 이 관계자는 "외모에 대한 평가, 예컨대 '예쁘다'도 예전엔 칭찬이었지만 최근엔 성희롱으로 여겨지는 경우도 있지 않느냐"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사회의 인식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판단도 시대 상황에 맞게 변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라떼는' 이런 걸 하면 안 돼요. 예전엔 전혀 문제가 없었는데 지금은 문제 상황이 발생할 수 있고. 결국 시대적 상황을 반영할 수밖에 없습니다. 동료들을 어떻게 끌고 가야 할지, 어떻게 같이 갈지 고민해야 합니다."


숨진 청소노동자 이 모 씨의 남편 이홍구 씨도 취재진을 만나 강조한 내용입니다. 이 씨는 "회사에 이득이 된다 하더라도 직원들이 충분히 적응할 시간을 주는 관리자가 좋은 관리자라고 생각한다"며 관리자들이 교육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호소했습니다.

고용부는 서울대에 재발 방지책과 개선 방안을 제출하라고 지시한 데 더해, 전체 노동자에 대한 직장 내 괴롭힘 특별 예방 교육 계획을 세우고 시행하라고도 했습니다.

서울대학교는 "오늘 행정 지도사항을 공문으로 받았다"며 "세밀히 검토한 뒤, 지도사항을 빠짐없이 이행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개선 방안은 이르면 다음 주쯤 마련될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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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대 청소노동자, 왜 ‘직장 내 괴롭힘’일까?…“‘라떼는’ 안 됩니다”
    • 입력 2021-07-31 08:00:23
    취재K

지난달(6월) 서울대학교에서 청소노동자 이 모 씨가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사인은 심근경색. 하지만 유족과 노동조합 측은 지난달 초 관리자가 새롭게 온 뒤로, 이 씨가 많은 업무량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고용노동부가 조사에 나섰고, 어제(30일) "직장 내 괴롭힘 사실이 있었다"고 결과를 밝혔습니다.

■ "시험, 청소 업무와 관계 없어…근거 없이 복장 간섭"

고용부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한 건 크게 두 가지입니다. 관리자가 노동자들에게 필기 시험을 보게 한 것과 회의 때 복장을 점검한 것입니다.

특히 많은 공분을 샀던 건 이 필기시험이었습니다. 문항에 각 건물의 준공연도를 묻고, 조직 명칭을 한자나 영문으로 쓰라는 등 내용이 들어가 있었기 때문인데요.

고용부도 이 점을 문제 삼았습니다. 고용부는 "문항에 청소 업무와 관계가 없는 내용이 상당수 포함돼 있었다"며 "시험 내용이 외국인과 학부모 응대에 필요한 소양이란 행위자 주장에 대해서도 사전 교육 없는 필기시험이 교육 수단으로는 적절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또 관리자는 시험 도중 화면을 띄웠는데, 거기엔 "점수는 근무 성적 평정에 적극적으로 반영할 계획"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청소 노동자들에겐 근무 평정 제도라는 게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관리자가 임의로 성적을 반영한다고 했다는 것이죠. 또 사전에 시험을 본다는 예고를 하지 않았던 점도 고려됐습니다.

또 하나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된 복장 점검. 이건 왜 직장 내 괴롭힘일까요? 사실 직장에서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옷을 단정하게 입고 오라'는 정도의 지시는 할 수 있지 않냐고 의문을 품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노조 관계자는 "노동자들이 형편이 넉넉하지 않음에도 최대한 깔끔한 옷을 골라 입고 갔는데도 (관리자가) 지적을 한 적이 있다"고 전했습니다.

그리고 고용부 조사 결과, 관리자가 회의 도중 일부 노동자들 복장에 대해 박수를 치고, 복장에 대해 '통과' 여부를 말하는 등 노동자들이 모멸감을 느끼게 한 점 등이 판단 과정에서 중요하게 고려됐습니다.

고용부 관계자는 "그런 것들은 일하는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직장 내 괴롭힘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습니다.


■ '직장 내 괴롭힘' 뭔가요?…"'라떼는~' 하지 마세요"

직장에서 동료를 괴롭히면 안 된다, 이른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사실 별도로 규정된 법이 아니라 근로기준법에 있는 조항 일부입니다. 이걸 보면 직장 내 괴롭힘이 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근로기준법 제76조의2(직장 내 괴롭힘의 금지)
사용자 또는 근로자는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ㆍ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이하 “직장 내 괴롭힘”이라 한다)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그러니까 앞서 본 복장 점검을 예로 들면, 직장 상사가 옷에 대해 지적을 함으로써 모멸감을 느끼게 해 근무 환경이 나빠졌다고 판단됐기 때문에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된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하게 봐야할 건 '모멸감'입니다. 도대체 직장 내 괴롭힘이 뭔지, 반대로 직장 내 괴롭힘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더니 고용부 관계자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부하 직원이 일을 못 하면 상사가 화가 날 수 있죠. 하지만 그게 인격적으로 모멸감을 주는 것까지 가면 안 됩니다."

상사가 부하 직원을 잘 가르치면서 타이르면 제일 좋겠지만, 설사 혼을 내더라도 모욕적인 말을 하는 등 선을 넘어선 안 된다는 거죠.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특히 신체적인 문제를 거론하거나, 학력을 들먹이면 직장 내 괴롭힘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강조했습니다. 예컨대 "어느 학교를 나왔냐" 등의 발언입니다.

그렇다고 노동자가 모멸감을 느끼거나 기분이 나쁘다고 해서 무조건 직장 내 괴롭힘이 되는 건 아닙니다. 물론 당사자의 의견도 중요하지만, 제3자, 그러니까 사회적인 통념상 선을 넘으면 안 된다는 설명입니다. 이번 서울대 청소노동자 사건에서 사회적으로 가장 많은 분노를 일으켰던 필기 시험과 복장 점검만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되고, 청소 점검 등은 인정되지 않은 점을 보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인식입니다. KBS와 통화한 고용부 관계자는 '성희롱'을 예로 들었습니다. 이 관계자는 "외모에 대한 평가, 예컨대 '예쁘다'도 예전엔 칭찬이었지만 최근엔 성희롱으로 여겨지는 경우도 있지 않느냐"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사회의 인식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판단도 시대 상황에 맞게 변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라떼는' 이런 걸 하면 안 돼요. 예전엔 전혀 문제가 없었는데 지금은 문제 상황이 발생할 수 있고. 결국 시대적 상황을 반영할 수밖에 없습니다. 동료들을 어떻게 끌고 가야 할지, 어떻게 같이 갈지 고민해야 합니다."


숨진 청소노동자 이 모 씨의 남편 이홍구 씨도 취재진을 만나 강조한 내용입니다. 이 씨는 "회사에 이득이 된다 하더라도 직원들이 충분히 적응할 시간을 주는 관리자가 좋은 관리자라고 생각한다"며 관리자들이 교육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호소했습니다.

고용부는 서울대에 재발 방지책과 개선 방안을 제출하라고 지시한 데 더해, 전체 노동자에 대한 직장 내 괴롭힘 특별 예방 교육 계획을 세우고 시행하라고도 했습니다.

서울대학교는 "오늘 행정 지도사항을 공문으로 받았다"며 "세밀히 검토한 뒤, 지도사항을 빠짐없이 이행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개선 방안은 이르면 다음 주쯤 마련될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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