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농도 0.124%’ 나온 운전자 ‘무죄’…왜?

입력 2021.08.0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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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8년 부산 해운대구에서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숨진 윤창호 씨, 많은 분이 기억하실 겁니다.

사고 이후 음주 운전자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인 윤창호법이 마련됐고 음주운전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대전에서 술을 마시고 음주운전을 한 뒤 적발돼 혈중알코올농도가 면허취소 수준을 훨씬 넘게 측정된 한 남성에게 최근 1심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 접촉사고 뒤 음주측정...혈중알코올농도 면허취소 수준인 0.124%

지난해 3월 대전시 유성구에서 50대 박 모 씨가 저녁 7시쯤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인근 식당까지 100m가량 자신의 승용차를 운전했습니다.

그런데 식당 주차장에서 박 씨는 주차돼 있던 다른 차량과 접촉사고를 냈습니다. 그 뒤 박 씨는 '자신이 주차된 차를 긁은 것 같다'며 스스로 112에 신고를 했습니다.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 박 씨에게 술 냄새가 났고 차 안에서 일부 비어 있는 술병이 발견되자 음주측정을 했는데, 혈중알코올농도가 무려 0.124%나 나왔습니다.

면허취소 수준인 0.08%를 훌쩍 넘는 수치였습니다. 박 씨에 대해 경찰은 당연히 음주운전 혐의로 입건했고 검찰 역시 재판에 넘겼습니다.


■ "접촉사고 뒤에 차에 있던 술 추가로 마셔....만취 운전 아냐"

박 씨 차 안에서 일부 비어 있는 술병이 발견됐는데 박 씨는 법정에서 차 안에 있던 술을 한 잔이 되지 않을 양 정도만 마신 상태에서 운전했을 뿐이고 운전 이후에 추가로 술을 마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니까 인근 식당으로 차를 몰고 가기 전 차 안에 있던 술을 조금 마셨고 식당에서 접촉사고를 낸 뒤 자신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이 음주측정을 하기 전까지, 그 사이에 차에 있던 술을 추가로 더 마셨다는 겁니다.

따라서 공소사실처럼 혈중알코올농도 0.124%의 만취 상태에서 차를 몬 것은 아니라는 주장을 폈습니다.


■ 1심 법원, "스스로 경찰에 신고한 점 등 박 씨 주장 배제할 수 없어"

재판부는 이런 박 씨의 주장을 받아들였습니다. 구체적으로 1심 법원이 무죄로 판단한 근거는 3가지입니다.

먼저 박 씨가 앞서 2007년과 2017년 두 차례나 음주운전으로 형사처벌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접촉사고를 냈다며 경찰에 신고한 것을 쉽게 납득할 수 없다고 봤습니다.

출동한 경찰관이 사고 경위를 조사하면서 음주측정을 할 것이 예상되는데 만취 상태로 운전했다면 스스로 신고할 리가 없다는 겁니다.

두 번째는 박 씨 차 안에 어느 정도 비어 있는 술병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박 씨 주장대로 운전을 마친 뒤에 술을 마셨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출동한 경찰관이 박 씨가 경찰이 출동한 뒤에 차 안에 있기도 했었다고 진술했는데 이 점 역시 박 씨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정황으로 봤습니다.


■ "운전 당시 혈중알코올농도 0.033%"...무죄 선고

여기에 재판부는 조사된 내용을 근거로 경찰이 운전 이후 측정한 수치 대신 박 씨가 운전할 당시의 혈중알코올농도를 계산했습니다.

박 씨는 식당에 주차한 뒤 소주잔 3잔 정도의 술을 추가로 마신 것으로 조사됐는데요.

경찰이 측정한 수치인 0.124%에서 박 씨가 운전 이후 마셨다는 3잔 정도의 수치인 0.091%를 빼면 운전 당시의 수치는 0.033%였던 것으로 산정했습니다.

음주운전으로 처벌을 받는 수치가 면허정지 수준인 0.03%부터인데 재판부는 이런 계산법이 정밀한 것은 아니므로 박 씨처럼 0.003%, 아주 근소하게 초과한 경우 범행으로 인정하는 데에 신중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따라 박 씨가 면허 정지 수준인 0.03%를 넘긴 상태에서 운전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 측정 당시 혈중알코올농도 상승기 주장한 남성은 항소심도 유죄

박 씨의 경우 '운이 좋았다'고 해야 될까요?

이번 사건과 상반된 결과가 나온 사건도 있었습니다.

지난해 8월 면허취소 수준으로 술을 마신 뒤 운전하다 적발돼 1심에서 징역 1년이 선고된 60대 남성이 음주 측정 당시 혈중알코올농도가 상승기에 있었다며 항소를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항소심 법원은 상승기라고 하더라도 적발 당시 이 남성의 언행과 비틀거림, 경찰관 진술 등을 종합해보면 처벌기준치를 초과한다는 점을 증명할 수 있다며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박 씨 사건도 검찰이 항소해 2심으로 가게 됐는데, 최종 재판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주목됩니다.

어찌 됐든 음주운전은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생명까지 빼앗을 수 있는 중대한 범죄인 만큼 결코 해서는 안 된다는 점 꼭 명심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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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코올농도 0.124%’ 나온 운전자 ‘무죄’…왜?
    • 입력 2021-08-03 07:00:25
    취재K

지난 2018년 부산 해운대구에서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숨진 윤창호 씨, 많은 분이 기억하실 겁니다.

사고 이후 음주 운전자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인 윤창호법이 마련됐고 음주운전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대전에서 술을 마시고 음주운전을 한 뒤 적발돼 혈중알코올농도가 면허취소 수준을 훨씬 넘게 측정된 한 남성에게 최근 1심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 접촉사고 뒤 음주측정...혈중알코올농도 면허취소 수준인 0.124%

지난해 3월 대전시 유성구에서 50대 박 모 씨가 저녁 7시쯤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인근 식당까지 100m가량 자신의 승용차를 운전했습니다.

그런데 식당 주차장에서 박 씨는 주차돼 있던 다른 차량과 접촉사고를 냈습니다. 그 뒤 박 씨는 '자신이 주차된 차를 긁은 것 같다'며 스스로 112에 신고를 했습니다.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 박 씨에게 술 냄새가 났고 차 안에서 일부 비어 있는 술병이 발견되자 음주측정을 했는데, 혈중알코올농도가 무려 0.124%나 나왔습니다.

면허취소 수준인 0.08%를 훌쩍 넘는 수치였습니다. 박 씨에 대해 경찰은 당연히 음주운전 혐의로 입건했고 검찰 역시 재판에 넘겼습니다.


■ "접촉사고 뒤에 차에 있던 술 추가로 마셔....만취 운전 아냐"

박 씨 차 안에서 일부 비어 있는 술병이 발견됐는데 박 씨는 법정에서 차 안에 있던 술을 한 잔이 되지 않을 양 정도만 마신 상태에서 운전했을 뿐이고 운전 이후에 추가로 술을 마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니까 인근 식당으로 차를 몰고 가기 전 차 안에 있던 술을 조금 마셨고 식당에서 접촉사고를 낸 뒤 자신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이 음주측정을 하기 전까지, 그 사이에 차에 있던 술을 추가로 더 마셨다는 겁니다.

따라서 공소사실처럼 혈중알코올농도 0.124%의 만취 상태에서 차를 몬 것은 아니라는 주장을 폈습니다.


■ 1심 법원, "스스로 경찰에 신고한 점 등 박 씨 주장 배제할 수 없어"

재판부는 이런 박 씨의 주장을 받아들였습니다. 구체적으로 1심 법원이 무죄로 판단한 근거는 3가지입니다.

먼저 박 씨가 앞서 2007년과 2017년 두 차례나 음주운전으로 형사처벌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접촉사고를 냈다며 경찰에 신고한 것을 쉽게 납득할 수 없다고 봤습니다.

출동한 경찰관이 사고 경위를 조사하면서 음주측정을 할 것이 예상되는데 만취 상태로 운전했다면 스스로 신고할 리가 없다는 겁니다.

두 번째는 박 씨 차 안에 어느 정도 비어 있는 술병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박 씨 주장대로 운전을 마친 뒤에 술을 마셨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출동한 경찰관이 박 씨가 경찰이 출동한 뒤에 차 안에 있기도 했었다고 진술했는데 이 점 역시 박 씨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정황으로 봤습니다.


■ "운전 당시 혈중알코올농도 0.033%"...무죄 선고

여기에 재판부는 조사된 내용을 근거로 경찰이 운전 이후 측정한 수치 대신 박 씨가 운전할 당시의 혈중알코올농도를 계산했습니다.

박 씨는 식당에 주차한 뒤 소주잔 3잔 정도의 술을 추가로 마신 것으로 조사됐는데요.

경찰이 측정한 수치인 0.124%에서 박 씨가 운전 이후 마셨다는 3잔 정도의 수치인 0.091%를 빼면 운전 당시의 수치는 0.033%였던 것으로 산정했습니다.

음주운전으로 처벌을 받는 수치가 면허정지 수준인 0.03%부터인데 재판부는 이런 계산법이 정밀한 것은 아니므로 박 씨처럼 0.003%, 아주 근소하게 초과한 경우 범행으로 인정하는 데에 신중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따라 박 씨가 면허 정지 수준인 0.03%를 넘긴 상태에서 운전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 측정 당시 혈중알코올농도 상승기 주장한 남성은 항소심도 유죄

박 씨의 경우 '운이 좋았다'고 해야 될까요?

이번 사건과 상반된 결과가 나온 사건도 있었습니다.

지난해 8월 면허취소 수준으로 술을 마신 뒤 운전하다 적발돼 1심에서 징역 1년이 선고된 60대 남성이 음주 측정 당시 혈중알코올농도가 상승기에 있었다며 항소를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항소심 법원은 상승기라고 하더라도 적발 당시 이 남성의 언행과 비틀거림, 경찰관 진술 등을 종합해보면 처벌기준치를 초과한다는 점을 증명할 수 있다며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박 씨 사건도 검찰이 항소해 2심으로 가게 됐는데, 최종 재판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주목됩니다.

어찌 됐든 음주운전은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생명까지 빼앗을 수 있는 중대한 범죄인 만큼 결코 해서는 안 된다는 점 꼭 명심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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