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 체험 고글’ 쓰고 밤바다에…“바로 앞도 안보여요”

입력 2021.08.04 (18:15) 수정 2021.08.04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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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해운대해수욕장은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입수를 금지하고 있다.부산 해운대해수욕장은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입수를 금지하고 있다.

연일 불볕더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럴 때면 물가를 찾아서 전국의 해수욕장과 계곡 주변이 붐비기 마련이죠.

2일 밤 취재진이 찾은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이 그랬습니다. 한낮의 더위를 피해 나온 피서객들은 해가 저문 뒤에도 해변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죠. 그 틈을 해운대구 단속반이 누비고 있었습니다.

단속반은 피서객들이 마스크는 제대로 착용하고 있는지, 음주나 취식은 하지 않는지를 살펴보고 필요할 경우 과태료도 부과합니다. 여기에 빼놓지 않아야 할 게 있으니 바로 야간 입수를 막는 겁니다. 해운대해수욕장은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는 해수욕을 할 수 없기 때문이죠.

안전을 위한 조치인데, 최근 해운대해수욕장을 찾았던 중학생 2명이 새벽 시간 물놀이를 하다 숨진 안타까운 사고 뒤 통제가 더욱 강화됐습니다.


■ 답답한 구조대원들 "실종자 수색 중에도 한쪽에선 물놀이"

지난 2일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에서 단속반이 방역수칙 준수와 야간 입수금지를 위한 순찰을 벌이고 있다.지난 2일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에서 단속반이 방역수칙 준수와 야간 입수금지를 위한 순찰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단속반은 피서객들을 통제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고 토로했습니다. 특히 술을 마신 피서객들 때문에 그렇다고 합니다. 단속에 나선 최근원 주무관은 “술에 취한 분들은 기분도 좋고 하다 보니 물 밖으로 나와 달라고 해도 말을 들어주지를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해수욕장에서 사고에 대비해 밤샘 근무를 하는 119구조대원들 역시 어려움이 크다고 했는데요.

부산소방재난본부 김강윤 팀장은 “중학생 실종 신고 직후 119대원들이 수색 작업을 하고 있을 때도 한쪽에서는 물놀이하러 들어오는 피서객들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술을 마시고 하는 수영은 얼마나 위험한 걸까요.


■ '음주 체험 고글' 쓰고 밤바다로

취재진은 음주 수영을 ‘체험’해보기 위해 부산소방재난본부 특수구조단과 함께 밤바다로 나섰습니다. 술 대신 음주 체험 고글을 준비해봤는데요.

이 고글을 쓰면 눈앞이 일렁거려 마치 술을 마신 상태에서 세상을 바라본 것처럼 느끼게 해줍니다.

음주 상태에서 하는 수영은 자칫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위험한 행동이다. 최근 5년간 전국에서 발생한 물놀이 사망사고의 17%가 음주로 인한 것이다.음주 상태에서 하는 수영은 자칫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위험한 행동이다. 최근 5년간 전국에서 발생한 물놀이 사망사고의 17%가 음주로 인한 것이다.

음주체험고글을 쓴 채 들어선 밤바다에서 느낀 첫 감정은 두려움이었습니다. 몇 년간 배웠던 수영 실력을 뽐내보겠다는 오만은 저절로 겸손해졌고, 어디가 육지인지 어디가 바다인지조차 구별하기 힘들 정도가 됐습니다.

그렇다고 이걸 수영 실력의 문제로만 보기는 어려울 듯 했습니다. 기자의 뒤를 이어 부산소방재난본부 특수구조단 송우영 소방교가 음주체험고글을 썼습니다. 참고로 송 소방교는 특수부대를 나왔으며 수영 실력도 수준급입니다.

“어? 뭐야”

그런 송 소방교가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수영 실력이 좋다고 하더라도 시야가 극도로 좁아지는 상황은 당혹감을 주기 충분한듯했습니다. 바로 앞에서 기자가 손가락을 펴 보이며 물어도 송 소방교는 “안 보여요”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습니다.

만약 실제 술을 마신 상태였다면 판단력도 흐려지고, 몸도 가누기 어려운 상태였을 겁니다.

훈련을 지켜본 김정기 부산소방재난본부 특수구조단 소방장은 "음주 후 입수 시에는 시야가 좁고 행동성이 둔화돼서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지적했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면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최근 5년간 전국에서 발생한 물놀이 사망 사고 중 17%가 음주로 인한 사고입니다.

특히 밤에 사고가 나면 구조마저 어렵습니다. 김 소방장은 ”야간 신고시에는 신고에서 현장 도착까지 5분에서 10분 이상 소요되고 골든타임을 놓쳐 사망에 이를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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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주 체험 고글’ 쓰고 밤바다에…“바로 앞도 안보여요”
    • 입력 2021-08-04 18:15:20
    • 수정2021-08-04 18:29:43
    취재K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은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입수를 금지하고 있다.
연일 불볕더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럴 때면 물가를 찾아서 전국의 해수욕장과 계곡 주변이 붐비기 마련이죠.

2일 밤 취재진이 찾은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이 그랬습니다. 한낮의 더위를 피해 나온 피서객들은 해가 저문 뒤에도 해변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죠. 그 틈을 해운대구 단속반이 누비고 있었습니다.

단속반은 피서객들이 마스크는 제대로 착용하고 있는지, 음주나 취식은 하지 않는지를 살펴보고 필요할 경우 과태료도 부과합니다. 여기에 빼놓지 않아야 할 게 있으니 바로 야간 입수를 막는 겁니다. 해운대해수욕장은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는 해수욕을 할 수 없기 때문이죠.

안전을 위한 조치인데, 최근 해운대해수욕장을 찾았던 중학생 2명이 새벽 시간 물놀이를 하다 숨진 안타까운 사고 뒤 통제가 더욱 강화됐습니다.


■ 답답한 구조대원들 "실종자 수색 중에도 한쪽에선 물놀이"

지난 2일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에서 단속반이 방역수칙 준수와 야간 입수금지를 위한 순찰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단속반은 피서객들을 통제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고 토로했습니다. 특히 술을 마신 피서객들 때문에 그렇다고 합니다. 단속에 나선 최근원 주무관은 “술에 취한 분들은 기분도 좋고 하다 보니 물 밖으로 나와 달라고 해도 말을 들어주지를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해수욕장에서 사고에 대비해 밤샘 근무를 하는 119구조대원들 역시 어려움이 크다고 했는데요.

부산소방재난본부 김강윤 팀장은 “중학생 실종 신고 직후 119대원들이 수색 작업을 하고 있을 때도 한쪽에서는 물놀이하러 들어오는 피서객들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술을 마시고 하는 수영은 얼마나 위험한 걸까요.


■ '음주 체험 고글' 쓰고 밤바다로

취재진은 음주 수영을 ‘체험’해보기 위해 부산소방재난본부 특수구조단과 함께 밤바다로 나섰습니다. 술 대신 음주 체험 고글을 준비해봤는데요.

이 고글을 쓰면 눈앞이 일렁거려 마치 술을 마신 상태에서 세상을 바라본 것처럼 느끼게 해줍니다.

음주 상태에서 하는 수영은 자칫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위험한 행동이다. 최근 5년간 전국에서 발생한 물놀이 사망사고의 17%가 음주로 인한 것이다.
음주체험고글을 쓴 채 들어선 밤바다에서 느낀 첫 감정은 두려움이었습니다. 몇 년간 배웠던 수영 실력을 뽐내보겠다는 오만은 저절로 겸손해졌고, 어디가 육지인지 어디가 바다인지조차 구별하기 힘들 정도가 됐습니다.

그렇다고 이걸 수영 실력의 문제로만 보기는 어려울 듯 했습니다. 기자의 뒤를 이어 부산소방재난본부 특수구조단 송우영 소방교가 음주체험고글을 썼습니다. 참고로 송 소방교는 특수부대를 나왔으며 수영 실력도 수준급입니다.

“어? 뭐야”

그런 송 소방교가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수영 실력이 좋다고 하더라도 시야가 극도로 좁아지는 상황은 당혹감을 주기 충분한듯했습니다. 바로 앞에서 기자가 손가락을 펴 보이며 물어도 송 소방교는 “안 보여요”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습니다.

만약 실제 술을 마신 상태였다면 판단력도 흐려지고, 몸도 가누기 어려운 상태였을 겁니다.

훈련을 지켜본 김정기 부산소방재난본부 특수구조단 소방장은 "음주 후 입수 시에는 시야가 좁고 행동성이 둔화돼서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지적했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면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최근 5년간 전국에서 발생한 물놀이 사망 사고 중 17%가 음주로 인한 사고입니다.

특히 밤에 사고가 나면 구조마저 어렵습니다. 김 소방장은 ”야간 신고시에는 신고에서 현장 도착까지 5분에서 10분 이상 소요되고 골든타임을 놓쳐 사망에 이를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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