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불구속 성공보수 18억 원”…대법원이 ‘무효’래도 여전한 관행

입력 2021.08.06 (16:39) 수정 2021.08.06 (16:39)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변호사들이 형사 사건을 맡았을 때 의뢰인의 불구속이나 승소 등을 조건으로 착수금 이외에 더 받는 돈이 있습니다. 이른바 '성공보수'입니다.

6년 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형사사건의 성공보수는 무효'라고 판결했지만 현장의 관행은 여전합니다. 전직 판·검사라는 이유로 보다 높은 성공보수를 받기도 하고, 이로 인한 법적 다툼 등도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 '불구속 대가'로 성공보수 18억 원…구속 뒤 분쟁

한 검사 출신 변호사가 의뢰인에게 불구속을 조건으로 거액의 수임료를 받았는데, 의뢰인이 구속되면서 수임료 가운데 성공보수 부분을 돌려달라는 분쟁이 벌어졌습니다.

의뢰인은 코스닥 상장사의 간부였던 이 모 씨로, 2019년 횡령과 주가조작 혐의 등으로 검찰 수사 선상에 오르자 대검 중수부 출신 A 변호사를 선임했습니다.

이 씨는 2019년 9월 착수금 2억 원에 성공보수 18억 원을 구두로 약정했고, 이후 착수금 2억 2천만 원을 비롯해 모두 14억 7천만 원을 건넸다고 주장합니다.

A 변호사에게 건너갔다는 성공보수 12억 5천만 원 가운데 10억 원은 계좌이체 방식으로, 1억 원은 소개한 지인을 통해 현금으로, 나머지 1억 5천만 원은 수표로 건넸다는 것이 이 씨 측 설명입니다.

하지만 돈이 건너가고 반년여 뒤 이 씨는 구속됐습니다.

이 씨 측은 불구속을 조건으로 준 성공보수를 돌려달라고 요구했지만 A 변호사는 이를 거부했고, 지난 2월 A 변호사를 찾아간 이 씨의 또 다른 지인에게 '약정서'를 한 장 보여줬습니다.

2019년 10월에 작성됐다는 약정서에는 '그해 12월까지 불구속 수사를 받으면 18억 원을 추가로 준다'는 내용과 함께 이 씨의 도장도 찍혀 있었습니다.

두 달 불구속으로 성공보수 18억 원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인데, A 변호사 측은 "성공보수 조건을 충족해 돈을 돌려줄 필요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 '약정서 날조 의혹' 놓고 엇갈린 주장…변호사 단체는 '조사위' 회부

이 씨는 "약정서에 도장을 찍지 않았고 계약서를 직접 받아본 적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또 "2개월 불구속에 18억 원이라는 거액을 건네는 사람이 어딨겠느냐"며 "A 변호사 측이 상식에서 벗어난 주장을 하고 있다"는 입장입니다.

이에 A 변호사 측은 이 씨의 문제 제기가 억울하다고 말합니다. "2개월 불구속에 성공보수 18억 원을 주겠다는 내용은 이 씨 측이 먼저 요청했다"는 겁니다.

또 실제로 받은 돈은 10억 원에 불과해 성공보수를 다 받지도 못한 데다, 당시 구두로 합의된 내용을 약정서로만 옮긴 것이라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입니다. 약정서에 찍힌 이 씨의 도장은 법무법인 사무실에서 새겨서 찍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지난 3월 이 씨는 A 변호사에 대한 진정을 서울지방변호사회에 넣었습니다.

두 달 뒤인 지난 5월, 서울변회 예비조사위원회는 양측의 주장을 검토한 뒤 A 변호사를 조사위원회에 회부하기로 했습니다.

" A 변호사가 계약서를 임의로 작성하고, 이런 사실에 대해 의뢰인에게 고지해서 알리거나 교부해 추가로 확인받은 사실이 없는 점은 변호사법 등을 위반했다고 봐야 한다"는 까닭에서입니다.

다만 "양측이 낸 자료만으로는 성공보수 조건 내용을 알 수 없어, 성공보수금 반환 여부는 판단하기 어렵다"고 덧붙였습니다.

이 씨는 성공보수금을 돌려달라는 취지의 민사 소송도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한 상태입니다.

다음 달 28일 첫 재판을 앞두고 있는데요. 향후 서울변회 조사위원회의 활동과 민사 재판 결과 등에 따라 이 사건의 진실은 가려질 것으로 보입니다.

■ 대법 "형사 성공보수 무효"…암암리에 이어지는 관행

2015년 7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형사 사건의 성공보수는 무효'라며 변호사들이 성공보수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판결했습니다.

국가형벌권의 실현인 형사 재판의 결과를 임의적으로 성공이나 실패로 판단해 돈을 받는 건, 변호사의 공공성과 윤리성에 맞지 않다는 판단에서였습니다.

김선일 당시 대법원 공보관은 "이번 판결에는 사법 불신을 초래하는 '전관예우'와 '연고주의'를 근절시키고자 하는 대법원의 강력한 의지가 담겼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현실은 어떨까요?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관행은 여전하다고 말합니다.

이 변호사는 "성공보수 약정을 하더라도 대한변호사협회에서 징계도 하지 않을뿐더러, 실제 징계 사유도 아니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의뢰인이 약속한 성공보수를 주지 않을 때 소송을 걸 수 없는 것일 뿐, 받는다고 해도 법적인 문제는 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이진국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형사 성공보수를 법적으로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 교수는 "대법원이 무효라고 판결한 이후에도 암암리에 다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이러다 보니 의뢰인이 변호사에게 '부당한 로비'를 기대하는 등 법률 시장에 왜곡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6년 전 대법원은 "성공보수를 수수하는 변호사의 행위 자체가 사회적 타당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게 일반 국민의 법의식"이라며 "많은 국민이 잘못됐다 지적한다면 이제라도 바로잡는 게 옳다"고 밝혔습니다.

그럼에도 이어지는 관행과 그에 따른 논란,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취재후] “불구속 성공보수 18억 원”…대법원이 ‘무효’래도 여전한 관행
    • 입력 2021-08-06 16:39:31
    • 수정2021-08-06 16:39:36
    취재후·사건후

변호사들이 형사 사건을 맡았을 때 의뢰인의 불구속이나 승소 등을 조건으로 착수금 이외에 더 받는 돈이 있습니다. 이른바 '성공보수'입니다.

6년 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형사사건의 성공보수는 무효'라고 판결했지만 현장의 관행은 여전합니다. 전직 판·검사라는 이유로 보다 높은 성공보수를 받기도 하고, 이로 인한 법적 다툼 등도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 '불구속 대가'로 성공보수 18억 원…구속 뒤 분쟁

한 검사 출신 변호사가 의뢰인에게 불구속을 조건으로 거액의 수임료를 받았는데, 의뢰인이 구속되면서 수임료 가운데 성공보수 부분을 돌려달라는 분쟁이 벌어졌습니다.

의뢰인은 코스닥 상장사의 간부였던 이 모 씨로, 2019년 횡령과 주가조작 혐의 등으로 검찰 수사 선상에 오르자 대검 중수부 출신 A 변호사를 선임했습니다.

이 씨는 2019년 9월 착수금 2억 원에 성공보수 18억 원을 구두로 약정했고, 이후 착수금 2억 2천만 원을 비롯해 모두 14억 7천만 원을 건넸다고 주장합니다.

A 변호사에게 건너갔다는 성공보수 12억 5천만 원 가운데 10억 원은 계좌이체 방식으로, 1억 원은 소개한 지인을 통해 현금으로, 나머지 1억 5천만 원은 수표로 건넸다는 것이 이 씨 측 설명입니다.

하지만 돈이 건너가고 반년여 뒤 이 씨는 구속됐습니다.

이 씨 측은 불구속을 조건으로 준 성공보수를 돌려달라고 요구했지만 A 변호사는 이를 거부했고, 지난 2월 A 변호사를 찾아간 이 씨의 또 다른 지인에게 '약정서'를 한 장 보여줬습니다.

2019년 10월에 작성됐다는 약정서에는 '그해 12월까지 불구속 수사를 받으면 18억 원을 추가로 준다'는 내용과 함께 이 씨의 도장도 찍혀 있었습니다.

두 달 불구속으로 성공보수 18억 원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인데, A 변호사 측은 "성공보수 조건을 충족해 돈을 돌려줄 필요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 '약정서 날조 의혹' 놓고 엇갈린 주장…변호사 단체는 '조사위' 회부

이 씨는 "약정서에 도장을 찍지 않았고 계약서를 직접 받아본 적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또 "2개월 불구속에 18억 원이라는 거액을 건네는 사람이 어딨겠느냐"며 "A 변호사 측이 상식에서 벗어난 주장을 하고 있다"는 입장입니다.

이에 A 변호사 측은 이 씨의 문제 제기가 억울하다고 말합니다. "2개월 불구속에 성공보수 18억 원을 주겠다는 내용은 이 씨 측이 먼저 요청했다"는 겁니다.

또 실제로 받은 돈은 10억 원에 불과해 성공보수를 다 받지도 못한 데다, 당시 구두로 합의된 내용을 약정서로만 옮긴 것이라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입니다. 약정서에 찍힌 이 씨의 도장은 법무법인 사무실에서 새겨서 찍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지난 3월 이 씨는 A 변호사에 대한 진정을 서울지방변호사회에 넣었습니다.

두 달 뒤인 지난 5월, 서울변회 예비조사위원회는 양측의 주장을 검토한 뒤 A 변호사를 조사위원회에 회부하기로 했습니다.

" A 변호사가 계약서를 임의로 작성하고, 이런 사실에 대해 의뢰인에게 고지해서 알리거나 교부해 추가로 확인받은 사실이 없는 점은 변호사법 등을 위반했다고 봐야 한다"는 까닭에서입니다.

다만 "양측이 낸 자료만으로는 성공보수 조건 내용을 알 수 없어, 성공보수금 반환 여부는 판단하기 어렵다"고 덧붙였습니다.

이 씨는 성공보수금을 돌려달라는 취지의 민사 소송도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한 상태입니다.

다음 달 28일 첫 재판을 앞두고 있는데요. 향후 서울변회 조사위원회의 활동과 민사 재판 결과 등에 따라 이 사건의 진실은 가려질 것으로 보입니다.

■ 대법 "형사 성공보수 무효"…암암리에 이어지는 관행

2015년 7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형사 사건의 성공보수는 무효'라며 변호사들이 성공보수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판결했습니다.

국가형벌권의 실현인 형사 재판의 결과를 임의적으로 성공이나 실패로 판단해 돈을 받는 건, 변호사의 공공성과 윤리성에 맞지 않다는 판단에서였습니다.

김선일 당시 대법원 공보관은 "이번 판결에는 사법 불신을 초래하는 '전관예우'와 '연고주의'를 근절시키고자 하는 대법원의 강력한 의지가 담겼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현실은 어떨까요?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관행은 여전하다고 말합니다.

이 변호사는 "성공보수 약정을 하더라도 대한변호사협회에서 징계도 하지 않을뿐더러, 실제 징계 사유도 아니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의뢰인이 약속한 성공보수를 주지 않을 때 소송을 걸 수 없는 것일 뿐, 받는다고 해도 법적인 문제는 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이진국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형사 성공보수를 법적으로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 교수는 "대법원이 무효라고 판결한 이후에도 암암리에 다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이러다 보니 의뢰인이 변호사에게 '부당한 로비'를 기대하는 등 법률 시장에 왜곡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6년 전 대법원은 "성공보수를 수수하는 변호사의 행위 자체가 사회적 타당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게 일반 국민의 법의식"이라며 "많은 국민이 잘못됐다 지적한다면 이제라도 바로잡는 게 옳다"고 밝혔습니다.

그럼에도 이어지는 관행과 그에 따른 논란,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