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정부 코로나19로 ‘집세 못 낸 세입자’ 손 들어줬지만…결국 소송까지

입력 2021.08.07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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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퇴거 유예 조치를 요구하는 시위 현장지난해 8월, 퇴거 유예 조치를 요구하는 시위 현장

'집세 못 낸 세입자를 쫓아낼 수 없다' 지난해 9월 미국에 도입된 퇴거 유예 조치입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집세를 못 낸 세입자들이 쫓겨나 코로나19에 노출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 이 조치를 도입했습니다. 당초 6월 30일 만료 예정이던 이 조치는 7월 31일까지로 한 달 연장됐습니다.

당장 거리로 나앉게 된 세입자들에겐 조치 연장이 간절했습니다. 하지만 집주인들의 사정은 달랐습니다. 전국의 밀린 집세가 570억 달러(한화 약 63조 2천억 원)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올 정도로 연체가 심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연방대법원은 세입자들에게 절망적인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지난달, 구체적인 의회 승인이 없다면 퇴거 유예 조치를 다시 연장해서는 안 된다고 결정한 겁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조치 종료 직전 하원에 연장을 요청했지만, 공화당 반대로 무산됐습니다.

집세가 밀린 것으로 추정되는 650만 가구의 1,500만 명이 거리로 나앉게 된 겁니다.


■ '세입자 구하기' 나선 행정부…"10월 3일까지 퇴거 유예"

바이든 행정부는 우선 세입자를 살리기로 했습니다.

미 언론은 CDC가 코로나19 감염률이 높은 카운티에서의 임차인 퇴거를 금지하는 새로운 유예 조치를 발표했다고 3일(현지시간) 보도했습니다. 새 유예 조치는 오는 10월 3일까지 60일간 지속됩니다.

직전의 퇴거 유예 조치가 전국적인 조치였다면 새로 시행될 지침은 코로나19가 확산하는 지역에 한정해 세입자를 쫓아낼 수 없게 했습니다.

연방대법원이 기존 퇴거 유예 조치를 연장하려면 의회 승인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결정한 점을 고려해 적용 지역을 달리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의회에서 법안 처리가 무산된 상황에서 행정부가 이 같은 조치를 발표할 권한이 없다는 지적도 제기됐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세입자들이 퇴거 위기에 처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결정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최소한 소송이 이뤄질 때쯤엔 아마도 집세가 밀리고 돈이 없는 이들에게 450억 달러를 줄 수 있는 시간을 좀 벌어 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법적 문제가 생기더라도 일단 시간을 벌어 임차인을 보호하겠다는 뜻입니다.

1조 9천억 달러(한화 약 2천165조 원)의 코로나19 부양안 예산 중 임대료 지원용 연방 예산 465억 달러(한화 약 53조 5천억 원)가 아직 현장에 제대로 분배되지 않아 새 유예 조치 기간에 이를 집행하면 숨통이 트일 수 있다는 복안인 셈입니다.

7월 30일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퇴거 항의 시위7월 30일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퇴거 항의 시위

■ 美 집주인들 "임대 소득 줄어 생계 위협"…즉각 반발하며 소송 돌입

바이든 행정부의 새 조치에 집주인들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등 미 언론들은 앨리배마주와 조지아주의 전미부동산중개인협회(NAR) 지부가 4일(현지시간) 워싱턴DC 연방지방법원에 퇴거 유예 조치 연장을 취소해달라는 취지의 긴급신청을 제기했다고 보도했습니다. 폴리티코는 NAR이 집주인들을 대표하는 단체라고 설명했습니다.

NAR은 퇴거 유예 조치를 연장하려면 의회의 승인이 필요하다는 연방대법원의 앞선 판결 취지를 관철해달라는 신청을 제기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NAR은 이번 신청을 워싱턴DC 연방지방법원 데브리 프리드리히 판사에게 제기했는데 그는 지난 5월 퇴거 유예 조치를 취소해달라는 NAR의 요청을 받아들였습니다. 프리드리히 판사는 당시 판결문에서 지방자치단체의 방역조치가 미흡하다고 판단돼야 CDC가 나설 수 있다면서 전국적 퇴거 유예 조치는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당시 판결은 집행되지 않았는데, 법무부가 항소하며 집행 정지를 신청하자 프리드리히 판사가 이를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NAR 측은 임대인 절반가량이 영세사업자라며, 이들은 임대 소득이 없으면 생활비를 내거나 자산을 유지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프린스턴대 퇴거 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6개 주 31개 도시에서 지난해 3월 15일 이후 45만 1,000여 건의 퇴거 요구 소송이 제기됐습니다. 코로나19발 경제 위기 속에서 집세를 둘러싼 세입자와 집주인의 갈등은 확산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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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정부 코로나19로 ‘집세 못 낸 세입자’ 손 들어줬지만…결국 소송까지
    • 입력 2021-08-07 08:01:09
    취재K
지난해 8월, 퇴거 유예 조치를 요구하는 시위 현장
'집세 못 낸 세입자를 쫓아낼 수 없다' 지난해 9월 미국에 도입된 퇴거 유예 조치입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집세를 못 낸 세입자들이 쫓겨나 코로나19에 노출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 이 조치를 도입했습니다. 당초 6월 30일 만료 예정이던 이 조치는 7월 31일까지로 한 달 연장됐습니다.

당장 거리로 나앉게 된 세입자들에겐 조치 연장이 간절했습니다. 하지만 집주인들의 사정은 달랐습니다. 전국의 밀린 집세가 570억 달러(한화 약 63조 2천억 원)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올 정도로 연체가 심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연방대법원은 세입자들에게 절망적인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지난달, 구체적인 의회 승인이 없다면 퇴거 유예 조치를 다시 연장해서는 안 된다고 결정한 겁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조치 종료 직전 하원에 연장을 요청했지만, 공화당 반대로 무산됐습니다.

집세가 밀린 것으로 추정되는 650만 가구의 1,500만 명이 거리로 나앉게 된 겁니다.


■ '세입자 구하기' 나선 행정부…"10월 3일까지 퇴거 유예"

바이든 행정부는 우선 세입자를 살리기로 했습니다.

미 언론은 CDC가 코로나19 감염률이 높은 카운티에서의 임차인 퇴거를 금지하는 새로운 유예 조치를 발표했다고 3일(현지시간) 보도했습니다. 새 유예 조치는 오는 10월 3일까지 60일간 지속됩니다.

직전의 퇴거 유예 조치가 전국적인 조치였다면 새로 시행될 지침은 코로나19가 확산하는 지역에 한정해 세입자를 쫓아낼 수 없게 했습니다.

연방대법원이 기존 퇴거 유예 조치를 연장하려면 의회 승인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결정한 점을 고려해 적용 지역을 달리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의회에서 법안 처리가 무산된 상황에서 행정부가 이 같은 조치를 발표할 권한이 없다는 지적도 제기됐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세입자들이 퇴거 위기에 처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결정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최소한 소송이 이뤄질 때쯤엔 아마도 집세가 밀리고 돈이 없는 이들에게 450억 달러를 줄 수 있는 시간을 좀 벌어 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법적 문제가 생기더라도 일단 시간을 벌어 임차인을 보호하겠다는 뜻입니다.

1조 9천억 달러(한화 약 2천165조 원)의 코로나19 부양안 예산 중 임대료 지원용 연방 예산 465억 달러(한화 약 53조 5천억 원)가 아직 현장에 제대로 분배되지 않아 새 유예 조치 기간에 이를 집행하면 숨통이 트일 수 있다는 복안인 셈입니다.

7월 30일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퇴거 항의 시위
■ 美 집주인들 "임대 소득 줄어 생계 위협"…즉각 반발하며 소송 돌입

바이든 행정부의 새 조치에 집주인들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등 미 언론들은 앨리배마주와 조지아주의 전미부동산중개인협회(NAR) 지부가 4일(현지시간) 워싱턴DC 연방지방법원에 퇴거 유예 조치 연장을 취소해달라는 취지의 긴급신청을 제기했다고 보도했습니다. 폴리티코는 NAR이 집주인들을 대표하는 단체라고 설명했습니다.

NAR은 퇴거 유예 조치를 연장하려면 의회의 승인이 필요하다는 연방대법원의 앞선 판결 취지를 관철해달라는 신청을 제기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NAR은 이번 신청을 워싱턴DC 연방지방법원 데브리 프리드리히 판사에게 제기했는데 그는 지난 5월 퇴거 유예 조치를 취소해달라는 NAR의 요청을 받아들였습니다. 프리드리히 판사는 당시 판결문에서 지방자치단체의 방역조치가 미흡하다고 판단돼야 CDC가 나설 수 있다면서 전국적 퇴거 유예 조치는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당시 판결은 집행되지 않았는데, 법무부가 항소하며 집행 정지를 신청하자 프리드리히 판사가 이를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NAR 측은 임대인 절반가량이 영세사업자라며, 이들은 임대 소득이 없으면 생활비를 내거나 자산을 유지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프린스턴대 퇴거 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6개 주 31개 도시에서 지난해 3월 15일 이후 45만 1,000여 건의 퇴거 요구 소송이 제기됐습니다. 코로나19발 경제 위기 속에서 집세를 둘러싼 세입자와 집주인의 갈등은 확산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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