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유색인종이 주인공 된 베를린 올림픽, 테러가 주인공 된 뮌헨 올림픽

입력 2021.08.07 (12:39) 수정 2021.08.07 (12:44)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1936년 올림픽이 열렸던 베를린 올림픽 주경기장(올림피아슈타디온 베를린). 지금은 분데스리가 헤르타 베를린의 홈 경기장으로 사용되고 있다.1936년 올림픽이 열렸던 베를린 올림픽 주경기장(올림피아슈타디온 베를린). 지금은 분데스리가 헤르타 베를린의 홈 경기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 아리안 민족의 우수성을 증명하라-1936년 베를린 올림픽
베를린 올림픽은 나치 독일이 유치한 대회가 아니었습니다. 1930년 바이마르 공화국이 유치에 성공했죠. 1차 대전 패전국이었던 독일이 국제사회로 다시 나갈 수 있는 발판으로 올림픽을 활용하려 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1933년 아돌프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당이 집권하게 됐고, 독일은 전체주의의 길을 가게 됩니다. 처음에 올림픽을 반대했던 것으로 알려진 히틀러는 올림픽을 정치적 선전의 장으로 활용하기로 마음먹습니다. 위대한 아리안족의 영광을 드날리는 대회 말입니다.

나치는 독일의 모든 스포츠 선수들을 '순수 혈통 아리아인'으로 채웁니다. 특히 유대인을 철저히 배제했습니다. 많은 국가들이 나치 독일에 우려를 나타내며 참가 여부를 고민했지만, 정치와 스포츠는 별개라는 주장이 힘을 얻어 올림픽 최대 규모인 46개국 3,738명의 선수가 참여해 1936년 8월 1일부터 17일까지 열렸습니다.

아리아 민족의 영광을 드날릴 무대는 갖춰졌고, 결과도 그랬습니다. 독일은 금메달 33개와 은메달 26개, 동메달 30개로 총 89개의 메달을 획득해 처음이자 마지막인 종합 순위 1위를 달성했습니다.

올림픽 3년 뒤인 1939년, 나치 독일은 폴란드를 침공하고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됐습니다.

독일이 유치한 첫 번째 올림픽은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동계 올림픽이었습니다. 베를린 올림픽이 열리기 직전 1936년 2월 6일~16일까지 열렸습니다. 역시 히틀러가 개회 선언을 했던 나치의 선전장이었습니다. 참고로 독일은 같은 해에 동계 올림픽과 하계 올림픽을 개최한 유일한 나라입니다.

■육상 4관왕 '흑인' 제시 오언스, '올림픽의 꽃' 마라톤 우승 손기정
히틀러와 나치에게 베를린 올림픽은 성공적인 대회였을 겁니다. 독일 국민들에게 '아리아 민족은 우수하다'는 자부심을 심어줬고, 이를 통한 독재의 기반을 충실히 다졌습니다. 역대 최고의 정치적 프로파간다였던 대회였던 셈입니다.

그런 올림픽이지만 그들에게 '옥에 티'로 여겨질 두 장면이 있습니다.

바로 흑인인 미국 대표 제시 오언스가 육상 4관왕에 오른 것과 '올림픽의 꽃' 마라톤에서 손기정이 우승한 사건이었습니다.

제시 오언스는 100m, 200m, 400m 계주, 넓이뛰기에서 금메달을 차지했습니다. 육상 4관왕은 이후 1984년 LA 올림픽에서야 칼 루이스에 의해 다시 세워집니다. 그만큼 대기록인 거죠.

손기정은 2시간 29분 19초라는 올림픽 기록을 세우며 아시아인 최초의 마라톤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손기정 이후 1992년 황영조가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손기정과 같은 날(8월 9일) 마라톤 금메달을 차지합니다. 아시아인으로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을 따낸 사람은 이 두 사람뿐입니다.

각설하고 아리아인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판을 깔아 놓은 베를린 올림픽에서 제시 오언스와 손기정, 두 유색 인종 청년이 주인공이 됐습니다. 지금도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나치 올림픽이라는 것, 그 다음이 제시 오언스(우리나라 사람에겐 손기정)일 정도입니다.
1972년 제20회 하계 뮌헨 올림픽 당시 이스라엘 선수촌을 습격한 테러범.1972년 제20회 하계 뮌헨 올림픽 당시 이스라엘 선수촌을 습격한 테러범.

■피로 얼룩진 축제 뮌헨 올림픽
36년 만에 올림픽을 개최한 독일(서독). 장소는 서독 제1의 도시 뮌헨이었습니다. 나치 독일의 선전장이었던 베를린 올림픽의 수치를 씻고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달라진 독일을 보여주기 위한 대회였습니다. 이 대회에서 미국 수영 선수 마크 스피츠는 최초의 7관왕(이 기록은 마이클 펠프스가 36년만인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8관왕에 오르면서 깨집니다.)에 오르는 등 대회 자체만으로도 기억할만합니다. 하지만 세계인은 이 대회를 피에 물든 테러로 기억합니다.

1972년 8월 26일 개막한 뮌헨 올림픽이 종반으로 치닫던 9월 5일. 올림픽 선수촌의 이스라엘 선수단 숙소에 괴한 8명이 침입합니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검은 9월단' 소속의 테러리스트였습니다.

이스라엘 선수 2명을 사살한 이들은 9명을 인질로 잡고 이스라엘이 억류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포로 석방을 요구했습니다. 이때부터 경기가 중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전 세계에 인질극이 생중계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총리는 '철의 여인'으로 불리던 골다 메이어. 테러범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고 발표했고 협상은 결렬됐습니다.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줄 기미가 보이지 않자 테러범들은 뮌헨을 안전하게 빠져나가기 위해 서독 정부와 협상을 벌입니다. 이집트로 행선지를 정한 이들은 9명의 인질을 잡고 헬기를 타고 인근 군 공항으로 갑니다. 그곳에서 서독 정부가 준비한 비행기로 이집트로 가겠다는 것.

서독 경찰은 테러범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척 작전을 세웠습니다. 경찰이 비행기에 승무원으로 위장해 탑승하고 있다가 외부 저격수와 함께 테러리스트를 제압해 인질을 구출하는 것. 그런데 이 과정에서 대테러진압 경험이 없던 독일 군경이 사격 신호를 오인한 사격을 했고, 테러범들은 인질들이 타고 있던 헬기에 수류탄을 던졌습니다. 그 결과 인질 9명 전원과 경찰 1명, 테러범 8명 중 5명이 사망하는 최악의 비극이 빚어졌습니다.

이 비극 후 뮌헨 올림픽은 34시간 동안 중단됐고, 서독과 IOC의 의지로 다시 진행됐습니다. 올림픽 사상 최초로 올림픽기가 조기로 계양된 대회로 기록됐습니다.

이 사건 이후 이스라엘 첩보 조직 모사드는 수년간 테러 관련자들을 찾아 암살합니다. 이 작전의 이름은 '신의 분노'라고 이름 붙여졌고, 2005년 스티븐 스필버그에 의해 영화화되기도 했습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도쿄 올림픽이 이제 곧 폐막합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속에 우여곡절을 겪으며 열렸던 이번 대회는 우리에게 어떤 올림픽으로 기억될까요?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특파원 리포트] 유색인종이 주인공 된 베를린 올림픽, 테러가 주인공 된 뮌헨 올림픽
    • 입력 2021-08-07 12:39:53
    • 수정2021-08-07 12:44:08
    특파원 리포트
1936년 올림픽이 열렸던 베를린 올림픽 주경기장(올림피아슈타디온 베를린). 지금은 분데스리가 헤르타 베를린의 홈 경기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 아리안 민족의 우수성을 증명하라-1936년 베를린 올림픽
베를린 올림픽은 나치 독일이 유치한 대회가 아니었습니다. 1930년 바이마르 공화국이 유치에 성공했죠. 1차 대전 패전국이었던 독일이 국제사회로 다시 나갈 수 있는 발판으로 올림픽을 활용하려 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1933년 아돌프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당이 집권하게 됐고, 독일은 전체주의의 길을 가게 됩니다. 처음에 올림픽을 반대했던 것으로 알려진 히틀러는 올림픽을 정치적 선전의 장으로 활용하기로 마음먹습니다. 위대한 아리안족의 영광을 드날리는 대회 말입니다.

나치는 독일의 모든 스포츠 선수들을 '순수 혈통 아리아인'으로 채웁니다. 특히 유대인을 철저히 배제했습니다. 많은 국가들이 나치 독일에 우려를 나타내며 참가 여부를 고민했지만, 정치와 스포츠는 별개라는 주장이 힘을 얻어 올림픽 최대 규모인 46개국 3,738명의 선수가 참여해 1936년 8월 1일부터 17일까지 열렸습니다.

아리아 민족의 영광을 드날릴 무대는 갖춰졌고, 결과도 그랬습니다. 독일은 금메달 33개와 은메달 26개, 동메달 30개로 총 89개의 메달을 획득해 처음이자 마지막인 종합 순위 1위를 달성했습니다.

올림픽 3년 뒤인 1939년, 나치 독일은 폴란드를 침공하고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됐습니다.

독일이 유치한 첫 번째 올림픽은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동계 올림픽이었습니다. 베를린 올림픽이 열리기 직전 1936년 2월 6일~16일까지 열렸습니다. 역시 히틀러가 개회 선언을 했던 나치의 선전장이었습니다. 참고로 독일은 같은 해에 동계 올림픽과 하계 올림픽을 개최한 유일한 나라입니다.

■육상 4관왕 '흑인' 제시 오언스, '올림픽의 꽃' 마라톤 우승 손기정
히틀러와 나치에게 베를린 올림픽은 성공적인 대회였을 겁니다. 독일 국민들에게 '아리아 민족은 우수하다'는 자부심을 심어줬고, 이를 통한 독재의 기반을 충실히 다졌습니다. 역대 최고의 정치적 프로파간다였던 대회였던 셈입니다.

그런 올림픽이지만 그들에게 '옥에 티'로 여겨질 두 장면이 있습니다.

바로 흑인인 미국 대표 제시 오언스가 육상 4관왕에 오른 것과 '올림픽의 꽃' 마라톤에서 손기정이 우승한 사건이었습니다.

제시 오언스는 100m, 200m, 400m 계주, 넓이뛰기에서 금메달을 차지했습니다. 육상 4관왕은 이후 1984년 LA 올림픽에서야 칼 루이스에 의해 다시 세워집니다. 그만큼 대기록인 거죠.

손기정은 2시간 29분 19초라는 올림픽 기록을 세우며 아시아인 최초의 마라톤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손기정 이후 1992년 황영조가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손기정과 같은 날(8월 9일) 마라톤 금메달을 차지합니다. 아시아인으로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을 따낸 사람은 이 두 사람뿐입니다.

각설하고 아리아인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판을 깔아 놓은 베를린 올림픽에서 제시 오언스와 손기정, 두 유색 인종 청년이 주인공이 됐습니다. 지금도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나치 올림픽이라는 것, 그 다음이 제시 오언스(우리나라 사람에겐 손기정)일 정도입니다.
1972년 제20회 하계 뮌헨 올림픽 당시 이스라엘 선수촌을 습격한 테러범.
■피로 얼룩진 축제 뮌헨 올림픽
36년 만에 올림픽을 개최한 독일(서독). 장소는 서독 제1의 도시 뮌헨이었습니다. 나치 독일의 선전장이었던 베를린 올림픽의 수치를 씻고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달라진 독일을 보여주기 위한 대회였습니다. 이 대회에서 미국 수영 선수 마크 스피츠는 최초의 7관왕(이 기록은 마이클 펠프스가 36년만인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8관왕에 오르면서 깨집니다.)에 오르는 등 대회 자체만으로도 기억할만합니다. 하지만 세계인은 이 대회를 피에 물든 테러로 기억합니다.

1972년 8월 26일 개막한 뮌헨 올림픽이 종반으로 치닫던 9월 5일. 올림픽 선수촌의 이스라엘 선수단 숙소에 괴한 8명이 침입합니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검은 9월단' 소속의 테러리스트였습니다.

이스라엘 선수 2명을 사살한 이들은 9명을 인질로 잡고 이스라엘이 억류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포로 석방을 요구했습니다. 이때부터 경기가 중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전 세계에 인질극이 생중계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총리는 '철의 여인'으로 불리던 골다 메이어. 테러범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고 발표했고 협상은 결렬됐습니다.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줄 기미가 보이지 않자 테러범들은 뮌헨을 안전하게 빠져나가기 위해 서독 정부와 협상을 벌입니다. 이집트로 행선지를 정한 이들은 9명의 인질을 잡고 헬기를 타고 인근 군 공항으로 갑니다. 그곳에서 서독 정부가 준비한 비행기로 이집트로 가겠다는 것.

서독 경찰은 테러범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척 작전을 세웠습니다. 경찰이 비행기에 승무원으로 위장해 탑승하고 있다가 외부 저격수와 함께 테러리스트를 제압해 인질을 구출하는 것. 그런데 이 과정에서 대테러진압 경험이 없던 독일 군경이 사격 신호를 오인한 사격을 했고, 테러범들은 인질들이 타고 있던 헬기에 수류탄을 던졌습니다. 그 결과 인질 9명 전원과 경찰 1명, 테러범 8명 중 5명이 사망하는 최악의 비극이 빚어졌습니다.

이 비극 후 뮌헨 올림픽은 34시간 동안 중단됐고, 서독과 IOC의 의지로 다시 진행됐습니다. 올림픽 사상 최초로 올림픽기가 조기로 계양된 대회로 기록됐습니다.

이 사건 이후 이스라엘 첩보 조직 모사드는 수년간 테러 관련자들을 찾아 암살합니다. 이 작전의 이름은 '신의 분노'라고 이름 붙여졌고, 2005년 스티븐 스필버그에 의해 영화화되기도 했습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도쿄 올림픽이 이제 곧 폐막합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속에 우여곡절을 겪으며 열렸던 이번 대회는 우리에게 어떤 올림픽으로 기억될까요?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