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이란, ‘강경보수’ 대통령 취임…중동 정세 어디로

입력 2021.08.08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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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새로운 대통령 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시가 8월 5일 공식 취임하고 4년 임기를 시작했습니다.

전통모자인 터번을 쓰고 이슬람 경전 쿠란에 손을 얹고 취임 선서를 한 라이시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국제 사회의 이란 제재 해제를 가장 먼저 요구했습니다. 이를 위한 어떤 외교 계획도 지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또 이란 경제 개선도 약속했습니다.

취임식에는 전세계 75개국 115명의 사절단이 참석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이 자리했습니다.

이란은 미국의 강도 높은 제재로 인해 몇년 동안 경제난을 겪어 왔으며 여기에다 코로나19 상황까지 겹치면서 국민들의 생활고는 가중되고 있습니다.

라이시 이란 대통령 처벌 촉구 시위(지난 8월 2일, 미국 워싱턴)라이시 이란 대통령 처벌 촉구 시위(지난 8월 2일, 미국 워싱턴)

■ '강경 보수' 라이시 …'가혹하고 잔인한 인물'로 묘사

미국은 취임식 이후 라이시 대통령에게 핵합의 복원 협상에 하루 빨리 복귀하라고 촉구했습니다.

하지만 변수는 라이시 대통령이 반미 성향을 가진 강경 보수로 분류되는 인물이라는 점입니다.

대표적인 '보수'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 지도자의 최측근이기도 합니다. 전임 하산 로하니 대통령이 서방에 우호적이었다는 점과 비교하면 대조적입니다.

라이시 대통령은 성직자 겸 사법부 수장 출신으로 공안검사와 대법원장을 거쳤는데, 서방 언론들은 반체제 인사 처형을 주도한 가혹하고 잔인한 인물로 묘사합니다.

1988년 이란-이라크 전쟁 이후 5천여 명에 달하는 반체제 인사 숙청을 이끈 '죽음의 위원회' 구성원이었으며, 2009년 반정부 시위인 '녹색 운동'을 유혈 진압하는데도 앞장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때문에 지난 2019년 도널드 트럼프 당시 행정부는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조치' 등을 이유로 라이시를 제재 명단에 올렸습니다.

라이시 대통령은 지난 6월 대통령 당선 이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대미 비난 발언을 쏟아낸 바 있으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는 만날 의향이 없다고도 밝힌 바 있습니다.

■ 핵합의(JCPOA)는 어디로

현재로선 이란이 핵합의에서 어떤 태도를 취할지, 어떤 방식으로 접근할 지는 여전히 미지수입니다. 다만 미국 등 서방 국가 입장에서는 협상이 더 까다로워질 수 밖에 없습니다.

라이시 대통령은 특히 중동 지역 문제에 대해서는 외국의 간섭을 끝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 온 만큼 향후 '이란 핵합의(JCPOA, 포괄적 공동행동계획)'에서 강경 노선을 택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라이시 대통령은 "먼저 합의를 깬 미국을 믿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란이 지난 4월초부터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 러시아와 중국, 프랑스, 영국, 독일 등과 만나 벌여 온 핵합의 복원 협상을 벌였고, 미국과도 간접적으로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7월초부터 중단됐습니다.

이란은 지난 2015년 미국과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등 유엔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 그리고 독일 등 6개국과 핵합의(JCPOA)를 체결했습니다. 이란의 핵활동을 제한하는 대신 서방은 이란 제재를 해제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는 지난 2018년 핵합의 탈퇴를 선언하고 대(對)이란 제재를 복원했고, 이에 이란도 핵합의 이상의 핵활동으로 대응해왔습니다.

최근 들어선 서방국가들과 사우디아라비아 등 걸프국들은 2015년 핵합의에 더해 이란의 무장세력 지원, 탄도미사일 문제 등을 추가로 협상하길 원하지만 이란은 기존 핵합의 이외의 추가 협상은 불가하다고 맞서고 있습니다.

미국과의 관계에서도 바이든 행정부는 이란이 먼저 핵합의를 준수해야 제재 철회가 가능하다는 기존 입장을 유지하고 있으며,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이란 핵합의 복원을 위한 협상을 무한정 계속할 수는 없다"고 압박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란은 제재 해제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문 닫은 이란의 은행문 닫은 이란의 은행

■ 이란 국민, 끝없는 생활고…물 부족으로 반정부 시위까지

이같은 상황이 오래 지속되면서 이란의 경제 상황은 점점 최악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제재가 길어지면서 이란의 리알화 가치는 폭락했으며, 곧바로 40%가 넘는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국민들의 불만은 계속 높아지고 있습니다.

여기다 최근 기후변화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섭씨 50도가 넘는 폭염과 50년 만의 최악의 가뭄도 이어지고 있는데, 이는 결국 물부족으로 인한 단수 사태로 이어졌습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살인적인 더위 속에서 단수가 이어지자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고, 경찰이 시위대에 발포하면서 주민이 총에 맞아 숨지고 또 경찰도 총에 맞는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코로나19 상황도 좋지 않습니다. 연일 4만 명에 가까운 하루 신규 확진자가 나오면서 사상 최고치를 넘어서고 있고, 백신 접종률은 이제 막 15%를 넘었습니다.

이란 방역 당국은 수도 테헤란을 포함해 285개 도시를 '적색경보' 지역으로 지정하고 지역 간 이동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라이시 대통령은 취임사를 통해 경제 발전과 민생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7월 29일 드론 공격을 받은 이스라엘 유조선 머서 스트리트호7월 29일 드론 공격을 받은 이스라엘 유조선 머서 스트리트호

■ 잇단 선박 공격·나포 배후에도 이란이?

앞으로 주변 중동 국가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 나갈지도 관심사입니다.

라이시 대통령은 취임하면서 중동 국가와의 관계 강화 등을 핵심 기조로 내세웠습니다.

라이시 대통령은 "이란의 힘이 역내 평화와 안보를 조성하고 있다"며 협력을 위해 지역 내 모든 국가에 손을 뻗겠다고 밝혔습니다. 또 "억압과 범죄가 있는 세계 어디에서든 우리는 억압받는 자들의 편에 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최근 중동 해역에서는 민간 선박들이 잇따라 공격 받거나 나포되는 일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7월 29일에는 이스라엘 해운사가 운용하는 유조선 머서 스트리트호가 드론 공격을 받아 2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미국과 주요 7개국(G7)은 이번 공격의 배후로 이란을 지목했습니다.

G7은 "모든 증거가 분명이 이란을 지목한다. 이 공격에 정당성은 없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란의 행위와 무장세력 지지는 국제 평화와 안보를 위협한다"며 "이란이 UN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부합하지 않는 모든 활동을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습니다.

또 지난 8월 3일에도 오만해에서 파나마 국적 유조선이 무장 세력에게 나포됐다 풀려나는 일이 발생했는데, 이 사건에서도 무장한 이란인이 배에 올라 탔다는 증언이 나오면서 이란이 배후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입니다.

이란은 이같은 의혹을 즉각 반박하면서, "이란의 새 대통령이 취임하는 시기에 만들어진 시나리오"라고 주장했습니다.

외신들은 이란 제재 해제와 물부족 사태 해결 등이 라이시 신임 이란 대통령의 첫 번째 시험대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특히 경제난을 해결하기 위한 제재 해제가 현 상황에서 쉽지 않아보이는 만큼, 서방국가와의 줄다리기에서 라이시 대통령이 어떤 모습을 보여줄 지가 관심사 입니다.
한동안 중동 지역의 긴장 국면은 계속 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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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8-08 16:12:53
    특파원 리포트

이란의 새로운 대통령 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시가 8월 5일 공식 취임하고 4년 임기를 시작했습니다.

전통모자인 터번을 쓰고 이슬람 경전 쿠란에 손을 얹고 취임 선서를 한 라이시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국제 사회의 이란 제재 해제를 가장 먼저 요구했습니다. 이를 위한 어떤 외교 계획도 지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또 이란 경제 개선도 약속했습니다.

취임식에는 전세계 75개국 115명의 사절단이 참석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이 자리했습니다.

이란은 미국의 강도 높은 제재로 인해 몇년 동안 경제난을 겪어 왔으며 여기에다 코로나19 상황까지 겹치면서 국민들의 생활고는 가중되고 있습니다.

라이시 이란 대통령 처벌 촉구 시위(지난 8월 2일, 미국 워싱턴)
■ '강경 보수' 라이시 …'가혹하고 잔인한 인물'로 묘사

미국은 취임식 이후 라이시 대통령에게 핵합의 복원 협상에 하루 빨리 복귀하라고 촉구했습니다.

하지만 변수는 라이시 대통령이 반미 성향을 가진 강경 보수로 분류되는 인물이라는 점입니다.

대표적인 '보수'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 지도자의 최측근이기도 합니다. 전임 하산 로하니 대통령이 서방에 우호적이었다는 점과 비교하면 대조적입니다.

라이시 대통령은 성직자 겸 사법부 수장 출신으로 공안검사와 대법원장을 거쳤는데, 서방 언론들은 반체제 인사 처형을 주도한 가혹하고 잔인한 인물로 묘사합니다.

1988년 이란-이라크 전쟁 이후 5천여 명에 달하는 반체제 인사 숙청을 이끈 '죽음의 위원회' 구성원이었으며, 2009년 반정부 시위인 '녹색 운동'을 유혈 진압하는데도 앞장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때문에 지난 2019년 도널드 트럼프 당시 행정부는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조치' 등을 이유로 라이시를 제재 명단에 올렸습니다.

라이시 대통령은 지난 6월 대통령 당선 이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대미 비난 발언을 쏟아낸 바 있으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는 만날 의향이 없다고도 밝힌 바 있습니다.

■ 핵합의(JCPOA)는 어디로

현재로선 이란이 핵합의에서 어떤 태도를 취할지, 어떤 방식으로 접근할 지는 여전히 미지수입니다. 다만 미국 등 서방 국가 입장에서는 협상이 더 까다로워질 수 밖에 없습니다.

라이시 대통령은 특히 중동 지역 문제에 대해서는 외국의 간섭을 끝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 온 만큼 향후 '이란 핵합의(JCPOA, 포괄적 공동행동계획)'에서 강경 노선을 택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라이시 대통령은 "먼저 합의를 깬 미국을 믿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란이 지난 4월초부터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 러시아와 중국, 프랑스, 영국, 독일 등과 만나 벌여 온 핵합의 복원 협상을 벌였고, 미국과도 간접적으로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7월초부터 중단됐습니다.

이란은 지난 2015년 미국과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등 유엔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 그리고 독일 등 6개국과 핵합의(JCPOA)를 체결했습니다. 이란의 핵활동을 제한하는 대신 서방은 이란 제재를 해제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는 지난 2018년 핵합의 탈퇴를 선언하고 대(對)이란 제재를 복원했고, 이에 이란도 핵합의 이상의 핵활동으로 대응해왔습니다.

최근 들어선 서방국가들과 사우디아라비아 등 걸프국들은 2015년 핵합의에 더해 이란의 무장세력 지원, 탄도미사일 문제 등을 추가로 협상하길 원하지만 이란은 기존 핵합의 이외의 추가 협상은 불가하다고 맞서고 있습니다.

미국과의 관계에서도 바이든 행정부는 이란이 먼저 핵합의를 준수해야 제재 철회가 가능하다는 기존 입장을 유지하고 있으며,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이란 핵합의 복원을 위한 협상을 무한정 계속할 수는 없다"고 압박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란은 제재 해제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문 닫은 이란의 은행
■ 이란 국민, 끝없는 생활고…물 부족으로 반정부 시위까지

이같은 상황이 오래 지속되면서 이란의 경제 상황은 점점 최악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제재가 길어지면서 이란의 리알화 가치는 폭락했으며, 곧바로 40%가 넘는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국민들의 불만은 계속 높아지고 있습니다.

여기다 최근 기후변화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섭씨 50도가 넘는 폭염과 50년 만의 최악의 가뭄도 이어지고 있는데, 이는 결국 물부족으로 인한 단수 사태로 이어졌습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살인적인 더위 속에서 단수가 이어지자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고, 경찰이 시위대에 발포하면서 주민이 총에 맞아 숨지고 또 경찰도 총에 맞는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코로나19 상황도 좋지 않습니다. 연일 4만 명에 가까운 하루 신규 확진자가 나오면서 사상 최고치를 넘어서고 있고, 백신 접종률은 이제 막 15%를 넘었습니다.

이란 방역 당국은 수도 테헤란을 포함해 285개 도시를 '적색경보' 지역으로 지정하고 지역 간 이동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라이시 대통령은 취임사를 통해 경제 발전과 민생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7월 29일 드론 공격을 받은 이스라엘 유조선 머서 스트리트호
■ 잇단 선박 공격·나포 배후에도 이란이?

앞으로 주변 중동 국가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 나갈지도 관심사입니다.

라이시 대통령은 취임하면서 중동 국가와의 관계 강화 등을 핵심 기조로 내세웠습니다.

라이시 대통령은 "이란의 힘이 역내 평화와 안보를 조성하고 있다"며 협력을 위해 지역 내 모든 국가에 손을 뻗겠다고 밝혔습니다. 또 "억압과 범죄가 있는 세계 어디에서든 우리는 억압받는 자들의 편에 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최근 중동 해역에서는 민간 선박들이 잇따라 공격 받거나 나포되는 일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7월 29일에는 이스라엘 해운사가 운용하는 유조선 머서 스트리트호가 드론 공격을 받아 2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미국과 주요 7개국(G7)은 이번 공격의 배후로 이란을 지목했습니다.

G7은 "모든 증거가 분명이 이란을 지목한다. 이 공격에 정당성은 없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란의 행위와 무장세력 지지는 국제 평화와 안보를 위협한다"며 "이란이 UN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부합하지 않는 모든 활동을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습니다.

또 지난 8월 3일에도 오만해에서 파나마 국적 유조선이 무장 세력에게 나포됐다 풀려나는 일이 발생했는데, 이 사건에서도 무장한 이란인이 배에 올라 탔다는 증언이 나오면서 이란이 배후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입니다.

이란은 이같은 의혹을 즉각 반박하면서, "이란의 새 대통령이 취임하는 시기에 만들어진 시나리오"라고 주장했습니다.

외신들은 이란 제재 해제와 물부족 사태 해결 등이 라이시 신임 이란 대통령의 첫 번째 시험대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특히 경제난을 해결하기 위한 제재 해제가 현 상황에서 쉽지 않아보이는 만큼, 서방국가와의 줄다리기에서 라이시 대통령이 어떤 모습을 보여줄 지가 관심사 입니다.
한동안 중동 지역의 긴장 국면은 계속 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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