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장 입구 막았다가 ‘재물손괴’ 기소…법원 판단은?

입력 2021.08.13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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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리 뺏겼다고 차량 앞뒤로 장애물 설치…대법 "재물손괴 해당"

2018년 7월 서울 노원구의 한 공터. 배 모 씨는 평소 자신이 굴삭기를 주차하던 자리에 누군가 승용차를 대놓은 걸 발견했습니다. 자기 자리를 뺏겼다고 생각한 배 씨는 차량 앞뒤로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과 커다란 굴삭기 부품을 바짝 붙여놓은 채 자리를 떴습니다.

승용차 주인은 경찰까지 불렀지만 차를 빼낼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했고, 배 씨가 스스로 장애물을 치우기 전까지 18시간 동안 차를 쓸 수 없었습니다.

배 씨는 재물손괴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재물손괴죄는 다른 사람의 재물, 문서 또는 전자기록 등 특수매체기록을 손괴하거나 은닉 또는 기타의 방법으로 그 효용을 해치는 것을 뜻합니다.

대법원은 지난 5월 배 씨에게 벌금 5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습니다.

장애물을 바짝 붙여 놓은 행위로 장시간 차량을 운행할 수 없게 됐고, 이는 차량 본래의 효용을 해친 것이어서 재물손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 주차장 입구 차로 막았다면 재물손괴?

그렇다면 주차장 입구를 막아버려 차량을 못 쓰게 한 경우도 재물손괴가 될 수 있을까요?

2018년 8월 김 모 씨는 서울 서초구의 한 빌라 주차장 입구를 자신의 승용차로 가로막았습니다.

이 빌라에 살던 A씨와 채무 관계가 있었는데, 자신을 만나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른바 '보복 주차'를 한 겁니다. 이후에도 김 씨는 두 차례 더 주차장 입구에 차를 세웠습니다.

주차 일지
1차 : 2018년 8월 24일 21시 30분 ~ 8월 27일 10시 00분 (60시간 30분)
2차 : 2018년 9월 18일 9시 40분 ~ 9월 19일 9시 40분(24시간)
3차 : 2018년 9월 19일 10시 00분 ~ 2018년 9월 19일 20시 00분(10시간)

주차 시간을 모두 더하면 94시간 30분에 달했는데요. 해당 시간만큼 A씨는 주차된 자신의 차량을 쓸 수 없었습니다.

검찰은 김 씨가 자신의 차량을 이용해 A씨의 차량을 이동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차량의 효용을 해쳤다고 판단했고, 김 씨를 2019년 2월 재물손괴 혐의로 재판에 넘겼습니다.

1심은 공소사실을 유죄로 보고 김 씨에게 벌금 200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반면, 2심은 재물손괴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1심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주차장 입구를 막아 차량을 쓸 순 없었지만, A씨 차량의 기능이 저하되거나 가치가 하락하지 않아 효용을 해쳤다고 보긴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2심 판결문 일부

"피고인이 자신의 차량으로 주차장 입구를 여러 번 가로막아 피해자가 상당한 시간 동안 피해자 차량을 주차장 밖으로 운행할 수 없게 되었으나, 이로써 피해자 차량 자체의 기능이 저하되거나 가치가 하락하였다고 볼 수 없을뿐더러, 피해자 차량에 대하여 직접적인 유형력이 행사되거나 물리적인 변경이 발생한 것도 아니다."

재판부는 김 씨의 차량이 치워질 경우 A씨가 즉시 별다른 비용이나 특별한 노력을 없이 차량을 운행할 수 있는 점에서, 이 사건은 차주의 동의를 받지 않은 이중주차 사례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습니다.

범죄는 보호법익의 침해 정도에 따라 현실적인 침해가 존재해야 성립하는 침해범과 법익 침해가 없어도 그 위험 때문에 성립하는 위험범으로 나눌 수 있는데요.

재판부는 이러한 행위를 재물손괴로 처벌한다면, 침해범인 재물손괴죄를 위험범인 업무방해죄나 일반교통방해죄와 동일하게 취급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도 지적했습니다.

2심 판결문 일부

"공소사실과 같은 행위를 재물손괴죄로 법률을 적용한다면, 만약 피해자가 당분간은 자신의 차량을 주차장 밖으로 운행할 생각이 없었다거나 처음부터 주차장 입구가 가로막힌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 경우에도 여전히 재물손괴죄가 성립하는 것인지 의문이 있을 수 있고,

이는 자칫 피해자의 운행 업무를 보호법익으로 삼는 업무방해죄와의 경계가 모호해지거나, 법익 보호의 정도에 있어 침해범인 재물손괴죄를 위험범인 업무방해죄 또는 일반교통방해죄와 동일하게 취급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대법원도 지난달 이같은 2심 판단에 문제가 없다며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했습니다.


■ 똑같이 차량 통행 막았는데 엇갈린 유·무죄…이유는?

차량 앞뒤로 장애물을 세운 행위와 주차장 입구를 막은 행위.

차량의 통행 자체를 막았고, 재물손괴로 기소됐다는 점에선 비슷하다 볼 수 있지만 유·무죄가 갈린 이유는 결국 효용을 해쳤는지 여부입니다.

대법원 판례는 "효용을 해한다는 경우에 대해, 그 재물을 본래의 사용 목적에 제공할 수 없게 하는 상태로 만드는 것을 말하며, 일시적으로 그 재물을 이용할 수 없거나 구체적 역할을 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드는 것도 포함한다"고 정의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떠한 행위가 재물의 효용을 해하는 것인지는, "재물 본래의 용도와 기능, 재물에 가해진 행위와 그 결과가 재물의 본래적 용도와 기능에 미치는 영향, 원상회복의 난이도와 비용, 그 행위의 목적과 상황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하여 사회통념에 따라 판단한다"고 돼 있습니다.

위의 두 사례를 보면, 법원은 '사회 통념상' 장애물을 세워 옴짝달싹 못 하게 한 것과 입구에 차를 세워 주차장 밖을 나가지 못하게 한 것에는 차이가 있다고 판단한 겁니다.

정재호/KBS 자문 변호사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유형력의 행사인 거 같아요. 사회 통념상 허용되는 범위냐 아니냐. 판결문에 공개적으로 언급은 안 했지만 판결의 전체적인 흐름으로 봐서는 차로 막는 거 정도는 재물손괴는 아니라고 보는 거고, 콘크리트 구조물 같은 경우는 사회 통념상 과도했다고 보는 거죠. 손괴·은닉에 준하는 유형력의 행사가 있었다고 보는 거죠.

'보복 주차'의 경우 재물손괴죄 성립 여부와는 별개로 다른 죄로 처벌받을 수도 있습니다.

고의를 갖고 보복 주차로 다른 사람의 업무를 방해하거나, 불특정 다수의 차량 진행을 막았다면 업무방해죄나 일반교통 방해죄가 적용될 수 있습니다.

실제 지난 2015년 다른 사람 차 앞에 주차하고 10시간 동안 차를 빼주지 않은 차주에게 업무 방해죄로 벌금 60만 원이 내려졌고, 2018년에는 자신의 차량에 주차 스티커를 붙였다며 아파트 주차장 입구를 7시간 동안 막은 차주에게 일반교통방해죄 등으로 집행유예가 선고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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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차장 입구 막았다가 ‘재물손괴’ 기소…법원 판단은?
    • 입력 2021-08-13 14:07:09
    취재K

■ 자리 뺏겼다고 차량 앞뒤로 장애물 설치…대법 "재물손괴 해당"

2018년 7월 서울 노원구의 한 공터. 배 모 씨는 평소 자신이 굴삭기를 주차하던 자리에 누군가 승용차를 대놓은 걸 발견했습니다. 자기 자리를 뺏겼다고 생각한 배 씨는 차량 앞뒤로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과 커다란 굴삭기 부품을 바짝 붙여놓은 채 자리를 떴습니다.

승용차 주인은 경찰까지 불렀지만 차를 빼낼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했고, 배 씨가 스스로 장애물을 치우기 전까지 18시간 동안 차를 쓸 수 없었습니다.

배 씨는 재물손괴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재물손괴죄는 다른 사람의 재물, 문서 또는 전자기록 등 특수매체기록을 손괴하거나 은닉 또는 기타의 방법으로 그 효용을 해치는 것을 뜻합니다.

대법원은 지난 5월 배 씨에게 벌금 5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습니다.

장애물을 바짝 붙여 놓은 행위로 장시간 차량을 운행할 수 없게 됐고, 이는 차량 본래의 효용을 해친 것이어서 재물손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 주차장 입구 차로 막았다면 재물손괴?

그렇다면 주차장 입구를 막아버려 차량을 못 쓰게 한 경우도 재물손괴가 될 수 있을까요?

2018년 8월 김 모 씨는 서울 서초구의 한 빌라 주차장 입구를 자신의 승용차로 가로막았습니다.

이 빌라에 살던 A씨와 채무 관계가 있었는데, 자신을 만나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른바 '보복 주차'를 한 겁니다. 이후에도 김 씨는 두 차례 더 주차장 입구에 차를 세웠습니다.

주차 일지
1차 : 2018년 8월 24일 21시 30분 ~ 8월 27일 10시 00분 (60시간 30분)
2차 : 2018년 9월 18일 9시 40분 ~ 9월 19일 9시 40분(24시간)
3차 : 2018년 9월 19일 10시 00분 ~ 2018년 9월 19일 20시 00분(10시간)

주차 시간을 모두 더하면 94시간 30분에 달했는데요. 해당 시간만큼 A씨는 주차된 자신의 차량을 쓸 수 없었습니다.

검찰은 김 씨가 자신의 차량을 이용해 A씨의 차량을 이동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차량의 효용을 해쳤다고 판단했고, 김 씨를 2019년 2월 재물손괴 혐의로 재판에 넘겼습니다.

1심은 공소사실을 유죄로 보고 김 씨에게 벌금 200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반면, 2심은 재물손괴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1심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주차장 입구를 막아 차량을 쓸 순 없었지만, A씨 차량의 기능이 저하되거나 가치가 하락하지 않아 효용을 해쳤다고 보긴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2심 판결문 일부

"피고인이 자신의 차량으로 주차장 입구를 여러 번 가로막아 피해자가 상당한 시간 동안 피해자 차량을 주차장 밖으로 운행할 수 없게 되었으나, 이로써 피해자 차량 자체의 기능이 저하되거나 가치가 하락하였다고 볼 수 없을뿐더러, 피해자 차량에 대하여 직접적인 유형력이 행사되거나 물리적인 변경이 발생한 것도 아니다."

재판부는 김 씨의 차량이 치워질 경우 A씨가 즉시 별다른 비용이나 특별한 노력을 없이 차량을 운행할 수 있는 점에서, 이 사건은 차주의 동의를 받지 않은 이중주차 사례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습니다.

범죄는 보호법익의 침해 정도에 따라 현실적인 침해가 존재해야 성립하는 침해범과 법익 침해가 없어도 그 위험 때문에 성립하는 위험범으로 나눌 수 있는데요.

재판부는 이러한 행위를 재물손괴로 처벌한다면, 침해범인 재물손괴죄를 위험범인 업무방해죄나 일반교통방해죄와 동일하게 취급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도 지적했습니다.

2심 판결문 일부

"공소사실과 같은 행위를 재물손괴죄로 법률을 적용한다면, 만약 피해자가 당분간은 자신의 차량을 주차장 밖으로 운행할 생각이 없었다거나 처음부터 주차장 입구가 가로막힌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 경우에도 여전히 재물손괴죄가 성립하는 것인지 의문이 있을 수 있고,

이는 자칫 피해자의 운행 업무를 보호법익으로 삼는 업무방해죄와의 경계가 모호해지거나, 법익 보호의 정도에 있어 침해범인 재물손괴죄를 위험범인 업무방해죄 또는 일반교통방해죄와 동일하게 취급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대법원도 지난달 이같은 2심 판단에 문제가 없다며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했습니다.


■ 똑같이 차량 통행 막았는데 엇갈린 유·무죄…이유는?

차량 앞뒤로 장애물을 세운 행위와 주차장 입구를 막은 행위.

차량의 통행 자체를 막았고, 재물손괴로 기소됐다는 점에선 비슷하다 볼 수 있지만 유·무죄가 갈린 이유는 결국 효용을 해쳤는지 여부입니다.

대법원 판례는 "효용을 해한다는 경우에 대해, 그 재물을 본래의 사용 목적에 제공할 수 없게 하는 상태로 만드는 것을 말하며, 일시적으로 그 재물을 이용할 수 없거나 구체적 역할을 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드는 것도 포함한다"고 정의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떠한 행위가 재물의 효용을 해하는 것인지는, "재물 본래의 용도와 기능, 재물에 가해진 행위와 그 결과가 재물의 본래적 용도와 기능에 미치는 영향, 원상회복의 난이도와 비용, 그 행위의 목적과 상황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하여 사회통념에 따라 판단한다"고 돼 있습니다.

위의 두 사례를 보면, 법원은 '사회 통념상' 장애물을 세워 옴짝달싹 못 하게 한 것과 입구에 차를 세워 주차장 밖을 나가지 못하게 한 것에는 차이가 있다고 판단한 겁니다.

정재호/KBS 자문 변호사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유형력의 행사인 거 같아요. 사회 통념상 허용되는 범위냐 아니냐. 판결문에 공개적으로 언급은 안 했지만 판결의 전체적인 흐름으로 봐서는 차로 막는 거 정도는 재물손괴는 아니라고 보는 거고, 콘크리트 구조물 같은 경우는 사회 통념상 과도했다고 보는 거죠. 손괴·은닉에 준하는 유형력의 행사가 있었다고 보는 거죠.

'보복 주차'의 경우 재물손괴죄 성립 여부와는 별개로 다른 죄로 처벌받을 수도 있습니다.

고의를 갖고 보복 주차로 다른 사람의 업무를 방해하거나, 불특정 다수의 차량 진행을 막았다면 업무방해죄나 일반교통 방해죄가 적용될 수 있습니다.

실제 지난 2015년 다른 사람 차 앞에 주차하고 10시간 동안 차를 빼주지 않은 차주에게 업무 방해죄로 벌금 60만 원이 내려졌고, 2018년에는 자신의 차량에 주차 스티커를 붙였다며 아파트 주차장 입구를 7시간 동안 막은 차주에게 일반교통방해죄 등으로 집행유예가 선고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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