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올해가 가장 시원한 여름?”…‘재앙 시나리오’ 된 IPCC 보고서

입력 2021.08.14 (09:06) 수정 2021.08.14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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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美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 패러디▲ 美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 패러디

지구촌 곳곳이 폭염과 산불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더 이상 '기록적'이라는 말도 충격적이지 않습니다. 2015년 세계기상기구(WMO)가 경고한 것처럼 '뉴노멀'(new normal) 이 일상이 된 겁니다.

최근 기후위기를 '패러디'한 만화도 SNS에 등장했습니다.

미국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에서 바트 심슨이 이렇게 말합니다. "올해는 내 인생 최고로 더운 여름이야." 그림 왼쪽에는 화염으로 불타는 북미 서부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어서 나오는 대답이 압권입니다.

▲ 美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 패러디▲ 美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 패러디

아버지인 호머 심슨은 "올해는 너의 남은 인생에서 가장 시원한 여름이 될 거다."라고 일러줍니다. 앞으로 남은 여름이 지금보다 더 힘겨워질 거라는 암시입니다. 특히 바트 심슨 같은 '미래 세대'에게 말입니다.

■ IPCC 6차 보고서 '예고편' …"재앙 경고"

잇따르는 기상재해 속에 과연 우리의 기후가 어디까지 와있는지, 앞으로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나 되는지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문에 답을 주는 보고서가 나왔습니다. UN 산하 '정부 간 기후변화에 관한 협의체'(IPCC)의 6차 제1 실무그룹 보고서가 승인됐습니다.

6차 보고서의 첫 번째 '예고편' 격인데, 기후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과 예측이 담겨있습니다. 내년 초 기후변화의 영향과 취약성, 적응 등을 담은 제2, 제3 실무그룹의 보고서가 나온 뒤 내년 9월에 6차 종합 보고서가 발표될 예정입니다.

[연관기사] 10년 빨라진 기후재앙의 ‘마지노선’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252292

■ "'인간 영향'에 의한 온난화" 명시



이번 보고서에서 가장 주목할 게 있습니다. '인간 영향에 의한'이라는 문구입니다. '온난화는 명백한 사실'이라고 했던 5차 보고서에서 '인간 영향에 의한'이 추가됐습니다. 온난화의 책임 소재가 '인간'임을 명백히 한 겁니다.

아래 보고서 원문을 보면 아예 시작부터 이 부분을 더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대기와 해양, 토양의 온난화는 인간의 영향이 명백하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온난화 자체를 부정하거나 자연적인 기후변동일 뿐이라는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주장은 설 자리를 잃은 지 오래입니다. 과학의 진보로 온난화의 실체가 드러난 지금, 보고서에 담긴 미래 예측은 무시무시한 '재앙 시나리오'에 가깝습니다.

■ '410ppm의 공포'…' 200만 년' 동안 '전례' 없었던 이산화탄소 배출

이번 보고서에는 2019년 기준 전 지구 이산화탄소 농도는 410ppm을 돌파했다고 돼 있습니다. 2015년 '마의 벽'으로 불리던 400ppm을 넘어선 지 불과 4년만입니다. 매년 2ppm 넘게 상승한 건데 지금의 농도는 과거 200만 년 동안 한 번도 없었습니다.


200만 년 전이면 인류의 조상이 처음 등장한 시기와 거의 비슷합니다. 그러니까 인류 역사상 처음이라는 뜻인데 정말일까요?

빙하나 해저 퇴적물 등 과거 단서를 기반으로 80만 년 전까지 기후를 복원한 아래 그림을 보겠습니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늘었다 줄었다 하면서 주기적으로 간빙기와 빙기가 반복됐는데요. 산업화 이전 최고 농도는 약 32만 년 전의 300ppm이었습니다.


이번 보고서는 예측의 범위를 더욱 확장시켰습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훨씬 이전의 고기후를 재현한 결과 410ppm이라는 농도는 과거 200만 년간 전례 없는 일이었습니다.

최근 10년간 지구의 평균 기온은 산업화 이전보다 1.09도 올랐습니다. 이대로 온실가스 배출이 이어지면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기온 상승은 올해부터 2040년 안에 실현될 수 있다고 IPCC는 내다봤습니다. 그 시점이 2018년 예상(2030~2052년)보다 10년 당겨졌습니다.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 1.5도 넘게 올라가면 "올해가 가장 시원한 여름"이라는 말처럼 50년 빈도의 극한 폭염은 산업화 이전보다 8.6배 증가할 전망입니다.

■ 기후변화의 과학적 규명, 명확해진 메시지

IPCC는 1988년 UN 산하 국제 협의체로 설립됐습니다. 1990년 지구의 기후변화를 규명한 1차 보고서가 나왔고 2년 뒤인 1992년 유엔기후변화협약이 채택됐습니다. 이를 계기로 온실가스의 배출량을 줄여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는데요.


1995년 2차 보고서 이후에는 교토의정서(1997년)가 채택돼 구체적인 온실가스 감축안이 마련됐습니다. 또 가장 최근인 5차 보고서(2014년)는 2015년 파리협정 채택을 이끌어내는 등 IPCC 보고서가 나올 때마다 그 파급력은 어마어마했습니다.

5~8년마다 세상에 공개되는 IPCC 보고서를 보면 시간을 거듭할수록 그 메시지가 명확해졌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IPCC 3차 보고서(2001년) : 지난 50년 동안 관측된 대부분의 온난화는 '인간 활동'에 기인한 것이라는 새롭고 유력한 증거가 있다.

-IPCC 4차 보고서(2007년) : 20세기 중반 이후 지구 평균기온 상승의 대부분은 인위적인 온실가스의 농도 증가에 의해 발생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온난화가 인간 활동에서 기인했다는 증거가 있다'에서 '인간 영향이 명백하다'로, 이제 그 가능성은 99% 이상 높아졌고 불확실성은 줄었습니다. 이번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전 세계 과학자들만 1,000명에 달하고 참고한 논문만 14,000여 편에 이릅니다.

■ IPPC의 경고…"지금 즉시 행동하지 않으면 '재앙' 불가피"

마지막으로 '심슨 가족' 에피소드를 한 번 더 보겠습니다. 앞의 패러디와 달리 2005년에 실제 방송된 내용인데요. 학생들이 스프링필드 빙하를 보러 갔는데, 빙하는 모두 녹고 전단지에만 존재합니다. 리사는 "지구 온난화 때문이 틀림없어. 빙하는 자연의 자명종 같은 거야"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지구 온난화에 대한 연방정부의 견해는, 그런 건(온난화)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야."라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IPCC 보고서가 나온 지 올해로 30년이 넘었습니다. 그동안 기후변화에 대한 이 같은 회의적이거나 부정적인 시각과 싸우느라 모두의 행동이 늦어졌는지 모릅니다.

2015년 파리협정 이후 전 세계가 탄소 중립을 외치는 와중에도 이산화탄소 농도는 우상향 중입니다. 온돌방에 불을 빼도 그 열기가 한동안 지속 되는 것과 비슷합니다.

IPCC의 경고는 그래서 더 두렵습니다. 온난화의 실체가 100%에 가깝게 입증된 만큼 '지구'라는 집에 불 때는 것을 즉시 멈춰야 하지 않을까요. 이미 '기후재앙'의 시간이 시작됐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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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올해가 가장 시원한 여름?”…‘재앙 시나리오’ 된 IPCC 보고서
    • 입력 2021-08-14 09:06:42
    • 수정2021-08-14 09:06:50
    취재후·사건후
▲ 美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 패러디
지구촌 곳곳이 폭염과 산불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더 이상 '기록적'이라는 말도 충격적이지 않습니다. 2015년 세계기상기구(WMO)가 경고한 것처럼 '뉴노멀'(new normal) 이 일상이 된 겁니다.

최근 기후위기를 '패러디'한 만화도 SNS에 등장했습니다.

미국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에서 바트 심슨이 이렇게 말합니다. "올해는 내 인생 최고로 더운 여름이야." 그림 왼쪽에는 화염으로 불타는 북미 서부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어서 나오는 대답이 압권입니다.

▲ 美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 패러디
아버지인 호머 심슨은 "올해는 너의 남은 인생에서 가장 시원한 여름이 될 거다."라고 일러줍니다. 앞으로 남은 여름이 지금보다 더 힘겨워질 거라는 암시입니다. 특히 바트 심슨 같은 '미래 세대'에게 말입니다.

■ IPCC 6차 보고서 '예고편' …"재앙 경고"

잇따르는 기상재해 속에 과연 우리의 기후가 어디까지 와있는지, 앞으로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나 되는지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문에 답을 주는 보고서가 나왔습니다. UN 산하 '정부 간 기후변화에 관한 협의체'(IPCC)의 6차 제1 실무그룹 보고서가 승인됐습니다.

6차 보고서의 첫 번째 '예고편' 격인데, 기후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과 예측이 담겨있습니다. 내년 초 기후변화의 영향과 취약성, 적응 등을 담은 제2, 제3 실무그룹의 보고서가 나온 뒤 내년 9월에 6차 종합 보고서가 발표될 예정입니다.

[연관기사] 10년 빨라진 기후재앙의 ‘마지노선’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252292

■ "'인간 영향'에 의한 온난화" 명시



이번 보고서에서 가장 주목할 게 있습니다. '인간 영향에 의한'이라는 문구입니다. '온난화는 명백한 사실'이라고 했던 5차 보고서에서 '인간 영향에 의한'이 추가됐습니다. 온난화의 책임 소재가 '인간'임을 명백히 한 겁니다.

아래 보고서 원문을 보면 아예 시작부터 이 부분을 더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대기와 해양, 토양의 온난화는 인간의 영향이 명백하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온난화 자체를 부정하거나 자연적인 기후변동일 뿐이라는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주장은 설 자리를 잃은 지 오래입니다. 과학의 진보로 온난화의 실체가 드러난 지금, 보고서에 담긴 미래 예측은 무시무시한 '재앙 시나리오'에 가깝습니다.

■ '410ppm의 공포'…' 200만 년' 동안 '전례' 없었던 이산화탄소 배출

이번 보고서에는 2019년 기준 전 지구 이산화탄소 농도는 410ppm을 돌파했다고 돼 있습니다. 2015년 '마의 벽'으로 불리던 400ppm을 넘어선 지 불과 4년만입니다. 매년 2ppm 넘게 상승한 건데 지금의 농도는 과거 200만 년 동안 한 번도 없었습니다.


200만 년 전이면 인류의 조상이 처음 등장한 시기와 거의 비슷합니다. 그러니까 인류 역사상 처음이라는 뜻인데 정말일까요?

빙하나 해저 퇴적물 등 과거 단서를 기반으로 80만 년 전까지 기후를 복원한 아래 그림을 보겠습니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늘었다 줄었다 하면서 주기적으로 간빙기와 빙기가 반복됐는데요. 산업화 이전 최고 농도는 약 32만 년 전의 300ppm이었습니다.


이번 보고서는 예측의 범위를 더욱 확장시켰습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훨씬 이전의 고기후를 재현한 결과 410ppm이라는 농도는 과거 200만 년간 전례 없는 일이었습니다.

최근 10년간 지구의 평균 기온은 산업화 이전보다 1.09도 올랐습니다. 이대로 온실가스 배출이 이어지면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기온 상승은 올해부터 2040년 안에 실현될 수 있다고 IPCC는 내다봤습니다. 그 시점이 2018년 예상(2030~2052년)보다 10년 당겨졌습니다.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 1.5도 넘게 올라가면 "올해가 가장 시원한 여름"이라는 말처럼 50년 빈도의 극한 폭염은 산업화 이전보다 8.6배 증가할 전망입니다.

■ 기후변화의 과학적 규명, 명확해진 메시지

IPCC는 1988년 UN 산하 국제 협의체로 설립됐습니다. 1990년 지구의 기후변화를 규명한 1차 보고서가 나왔고 2년 뒤인 1992년 유엔기후변화협약이 채택됐습니다. 이를 계기로 온실가스의 배출량을 줄여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는데요.


1995년 2차 보고서 이후에는 교토의정서(1997년)가 채택돼 구체적인 온실가스 감축안이 마련됐습니다. 또 가장 최근인 5차 보고서(2014년)는 2015년 파리협정 채택을 이끌어내는 등 IPCC 보고서가 나올 때마다 그 파급력은 어마어마했습니다.

5~8년마다 세상에 공개되는 IPCC 보고서를 보면 시간을 거듭할수록 그 메시지가 명확해졌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IPCC 3차 보고서(2001년) : 지난 50년 동안 관측된 대부분의 온난화는 '인간 활동'에 기인한 것이라는 새롭고 유력한 증거가 있다.

-IPCC 4차 보고서(2007년) : 20세기 중반 이후 지구 평균기온 상승의 대부분은 인위적인 온실가스의 농도 증가에 의해 발생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온난화가 인간 활동에서 기인했다는 증거가 있다'에서 '인간 영향이 명백하다'로, 이제 그 가능성은 99% 이상 높아졌고 불확실성은 줄었습니다. 이번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전 세계 과학자들만 1,000명에 달하고 참고한 논문만 14,000여 편에 이릅니다.

■ IPPC의 경고…"지금 즉시 행동하지 않으면 '재앙' 불가피"

마지막으로 '심슨 가족' 에피소드를 한 번 더 보겠습니다. 앞의 패러디와 달리 2005년에 실제 방송된 내용인데요. 학생들이 스프링필드 빙하를 보러 갔는데, 빙하는 모두 녹고 전단지에만 존재합니다. 리사는 "지구 온난화 때문이 틀림없어. 빙하는 자연의 자명종 같은 거야"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지구 온난화에 대한 연방정부의 견해는, 그런 건(온난화)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야."라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IPCC 보고서가 나온 지 올해로 30년이 넘었습니다. 그동안 기후변화에 대한 이 같은 회의적이거나 부정적인 시각과 싸우느라 모두의 행동이 늦어졌는지 모릅니다.

2015년 파리협정 이후 전 세계가 탄소 중립을 외치는 와중에도 이산화탄소 농도는 우상향 중입니다. 온돌방에 불을 빼도 그 열기가 한동안 지속 되는 것과 비슷합니다.

IPCC의 경고는 그래서 더 두렵습니다. 온난화의 실체가 100%에 가깝게 입증된 만큼 '지구'라는 집에 불 때는 것을 즉시 멈춰야 하지 않을까요. 이미 '기후재앙'의 시간이 시작됐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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