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인터뷰] 위안부 운동 30년…“여성인권평화재단 설립해야”

입력 2021.08.14 (21:17) 수정 2021.08.14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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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네 어제(13일) 저희가 9시뉴스에서 전해드린 영상 일부를 보셨습니다.

'내가 위안부 피해자다'라고 처음 증언한 분이죠, 고 김학순 할머니가 1991년 일본 도쿄에서 했던 증언 영상을 어제 처음으로 전해드렸습니다.

오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을 맞아 위안부 연구를 계속해온 전문가와 함께 몇 가지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강성현 교수가 스튜디오에 나와 있습니다.

어제 공개된 영상이 김학순 할머니가 국내에서 증언한 뒤 도쿄로 가서 증언을 또 했던 그 영상이지 않습니까.

이 영상을 보신 뒤 주목할 만한 부분이 있었습니까.

[답변]

91년 12월 9일 도쿄 증언 집회 영상인데요.

영상을 보면 원래 그 장소가 평소 100명 정도 들어가는 장소인데, 한 400명이 넘는 일본인 시민들이 꽉 차있는 상태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피해 생존자 김학순의 말을 듣는 사람들이 되게 복잡한 감정을 드러내는 장면들이었는데요. 그런 공감과 연대가 있었기에 ‘위안부’ 운동 30년이 시작될 수 있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앵커]

1991년 김학순 증언이 있고 나서 2년 뒤인 93년에 '고노 담화'가 있었잖아요.

일본군의 관여와 책임을 공식 인정하고 사죄한 것이었는데, 그런데 당시랑 일본 내 분위기를 비교해보면, 지금은 뭐랄까,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공감대나 에너지가 많이 줄어든 느낌도 주고 말이죠.

왜 이렇게 되었다고 보십니까.

[답변]

그러니까 고노 담화가 95년 8월에 무라야마 담화로 이어지면서 좋은 분위기로 가요.

그리고 일본 역사교과서 7종 모두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기술되면서 일본인 학생도 이 문제에 대해서 배우게 되는 계기들이 만들어지는데, 문제는 여기에서 97년 전후인데요. 백래시가 발생하는 거죠. 극우들이 들고 일어섰고요.

[앵커]

백래시라 하면 이제 반격이나 반발을 얘기하죠.

[답변]

그렇죠, 반동인데요. 그때 결성되는 단체가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랄지, 우리가 다 아는 ‘일본회의’ 같은 것이 만들어지거든요, 극우적인 움직임이었고요.

그 한가운데 오늘날 일본 역사부정주의자들의 면면이 이때 등장하게 됩니다.

[앵커]

강 교수께서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체계적인 심층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강조해 오셨는데 지금 많이 부족한 상황입니까.

[답변]

자료조사나 그에 바탕을 둔 연구들이 굉장히 빈약하다고 판단하고요.

기본적으로 규모도 파악이 안 되고 있고, 누가 피해자인지도, 우리가 알고 있는 238명 플러스 알파 이것은 정부가 조사한 피해 생존자들이 아니라 피해 생존자들이 신고한 숫자에요.

그런 의미에서 전문으로 연구하는 기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지금 논의되고 있는 여성인권평화재단이겠죠.

[앵커]

이와 관련해서 지금 국회 상임위에 관련 법안이 계류 중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여성인권평화 재단' 설립 관련이죠. 어떤 내용이고 왜 필요합니까.

[답변]

현재 정부 산하에 공공기관에서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연구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굉장히 흩어져 있죠. 그러다보니 이벤트적인 단기적인 용역 사업, 위탁 사업의 형태로 진행되고 있고 이것을 집중시킬 필요가 있고, 연구도 집중된 자료를 바탕으로 두텁게 이루어져야 하고, 사실 시민들도 이런 자료에, 혹은 콘텐츠화된 자료들에 접근 가능성이 쉬워야 하는 것이거든요.

우리는 일본 정부에 책임을 묻는 것을 떠나서 한국 정부와 한국 국회도 책임감있게 부디 이 문제들에 대한 의무를 다해주었으면 합니다.

[앵커]

네 여기서 정리를 하겠습니다. 강성현 성공회대 교수와 얘기 나눠봤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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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문가 인터뷰] 위안부 운동 30년…“여성인권평화재단 설립해야”
    • 입력 2021-08-14 21:17:44
    • 수정2021-08-14 22:0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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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네 어제(13일) 저희가 9시뉴스에서 전해드린 영상 일부를 보셨습니다.

'내가 위안부 피해자다'라고 처음 증언한 분이죠, 고 김학순 할머니가 1991년 일본 도쿄에서 했던 증언 영상을 어제 처음으로 전해드렸습니다.

오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을 맞아 위안부 연구를 계속해온 전문가와 함께 몇 가지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강성현 교수가 스튜디오에 나와 있습니다.

어제 공개된 영상이 김학순 할머니가 국내에서 증언한 뒤 도쿄로 가서 증언을 또 했던 그 영상이지 않습니까.

이 영상을 보신 뒤 주목할 만한 부분이 있었습니까.

[답변]

91년 12월 9일 도쿄 증언 집회 영상인데요.

영상을 보면 원래 그 장소가 평소 100명 정도 들어가는 장소인데, 한 400명이 넘는 일본인 시민들이 꽉 차있는 상태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피해 생존자 김학순의 말을 듣는 사람들이 되게 복잡한 감정을 드러내는 장면들이었는데요. 그런 공감과 연대가 있었기에 ‘위안부’ 운동 30년이 시작될 수 있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앵커]

1991년 김학순 증언이 있고 나서 2년 뒤인 93년에 '고노 담화'가 있었잖아요.

일본군의 관여와 책임을 공식 인정하고 사죄한 것이었는데, 그런데 당시랑 일본 내 분위기를 비교해보면, 지금은 뭐랄까,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공감대나 에너지가 많이 줄어든 느낌도 주고 말이죠.

왜 이렇게 되었다고 보십니까.

[답변]

그러니까 고노 담화가 95년 8월에 무라야마 담화로 이어지면서 좋은 분위기로 가요.

그리고 일본 역사교과서 7종 모두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기술되면서 일본인 학생도 이 문제에 대해서 배우게 되는 계기들이 만들어지는데, 문제는 여기에서 97년 전후인데요. 백래시가 발생하는 거죠. 극우들이 들고 일어섰고요.

[앵커]

백래시라 하면 이제 반격이나 반발을 얘기하죠.

[답변]

그렇죠, 반동인데요. 그때 결성되는 단체가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랄지, 우리가 다 아는 ‘일본회의’ 같은 것이 만들어지거든요, 극우적인 움직임이었고요.

그 한가운데 오늘날 일본 역사부정주의자들의 면면이 이때 등장하게 됩니다.

[앵커]

강 교수께서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체계적인 심층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강조해 오셨는데 지금 많이 부족한 상황입니까.

[답변]

자료조사나 그에 바탕을 둔 연구들이 굉장히 빈약하다고 판단하고요.

기본적으로 규모도 파악이 안 되고 있고, 누가 피해자인지도, 우리가 알고 있는 238명 플러스 알파 이것은 정부가 조사한 피해 생존자들이 아니라 피해 생존자들이 신고한 숫자에요.

그런 의미에서 전문으로 연구하는 기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지금 논의되고 있는 여성인권평화재단이겠죠.

[앵커]

이와 관련해서 지금 국회 상임위에 관련 법안이 계류 중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여성인권평화 재단' 설립 관련이죠. 어떤 내용이고 왜 필요합니까.

[답변]

현재 정부 산하에 공공기관에서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연구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굉장히 흩어져 있죠. 그러다보니 이벤트적인 단기적인 용역 사업, 위탁 사업의 형태로 진행되고 있고 이것을 집중시킬 필요가 있고, 연구도 집중된 자료를 바탕으로 두텁게 이루어져야 하고, 사실 시민들도 이런 자료에, 혹은 콘텐츠화된 자료들에 접근 가능성이 쉬워야 하는 것이거든요.

우리는 일본 정부에 책임을 묻는 것을 떠나서 한국 정부와 한국 국회도 책임감있게 부디 이 문제들에 대한 의무를 다해주었으면 합니다.

[앵커]

네 여기서 정리를 하겠습니다. 강성현 성공회대 교수와 얘기 나눠봤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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