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혼란의 아프간, 탈출 80%가 여성·아동…“얼굴 드러냈다고 때려”

입력 2021.08.14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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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카불의 한 공원 모습입니다.

공원에는 여기저기 돗자리와 텐트가 빼곡하게 들어서 있습니다.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을 피해 집을 버리고 피란길에 오른 아프간인들입니다.

이들은 마지막 남은 안전한 피난처로 여겨지고 있는 수도 카불로 몰리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카불 시내 공원과 거리 곳곳마다 텐트가 늘어나고 있으며 대부분은 이곳에서 여러 날째 노숙 중입니다.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한 공원에서 머물고 있는 피란민들 (REUTERS)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한 공원에서 머물고 있는 피란민들 (REUTERS)

■ "난민 320만 명 "..."역대 최대 민간인 사상자 나올 수도"

유엔난민기구(UNHCR)는 5월 말 이후 피란에 나선 아프간인이 25만여 명이라고 추산했습니다. 올해로 기간을 넓혀 보면 모두 40만 명에 달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들을 포함한 아프간 내 난민은 모두 320만 명으로 파악됩니다.

샤비아 만투 유엔난민기구 대변인은 적대행위가 급증하면서 엄청난 인명피해가 나고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그러면서 "유엔이 기록을 시작한 이래 연간 가장 많은 민간인 사상자를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부모를 따라 피란길에 오른 아프간 아이들(REUTERS, EPA)부모를 따라 피란길에 오른 아프간 아이들(REUTERS, EPA)

■ 피란민 80%가 여성과 아동…"노출 샌들 신었다고 매 맞아"

유엔난민기구는 피란민의 80%가 여성 또는 아동이라고 밝혔습니다.

피난길에 오른 많은 아프간 여성들은 다시 탈레반의 지배를 받을까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지난 2001년 미국이 탈레반 정권을 붕괴시키기 전까지 아프간을 지배했던 탈레반은 당시 반(反)인권적인 통치로 악명높았는데, 특히 여성에 대해서는 가혹하고 억압적이었습니다.

AP와 인터뷰를 한 학교 교사 출신의 한 여성은 "남자 없이는 외출할 수 없었고, 심지어 시장에 갈 수도 없었다"며 "남편을 잃은 젊은 여성들은 어떻게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겠냐"고 반문했습니다.

또 다른 여성은 "노출 있는 샌들을 신었다는 이유만으로 매를 맞았다"고도 말했습니다.

여성 인권 운동가인 자르미나 카카르는 "아이스크림을 사러 나갔던 어머니가 얼굴을 드러냈다는 이유로 매를 맞는 모습을 어릴 때 봤다"며 "탈레반이 집권하면 암흑의 시대로 돌아갈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탈레반은 당시 10세 이상의 소녀는 교육받는 것을 금지하고, 공개 처형을 실시하기도 했습니다.

■ 탈레반 파죽지세…카불 턱밑까지 빠르게 접근

대부분의 아프간인이 카불을 마지막 피난처로 여기며 몸을 피하고 있지만, 상황은 악화되고 있습니다.

탈레반은 아프간 전체 34개 주도 가운데 18곳을 점령했다고 외신들은 전하고 있으며, 특히 카불에서 남쪽으로 불과 50km밖에 안 떨어진 로가르주의 주도 풀리알람도 장악했습니다.

이에 앞서 아프간 2, 3대 도시인 칸다하르와 헤라트 등도 줄줄이 점령했습니다.

북부 최대도시 마자르-이-샤리프에 대한 총공세도 시작했는데, 이렇게 되면 수도 카불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모든 대도시는 탈레반의 수중으로 들어갑니다.

지난 8월 6일 남서부 님로즈주 주도 자란지를 시작으로 일주일 만에 전체 절반 이상이 함락됐으며, 북부와 서부, 남부 주요 도시 대부분을 탈레반이 완전히 장악한 셈입니다.

아프가니스탄 내 탈레반 점령 지역과 분쟁 지역(출처/Long War Journal)아프가니스탄 내 탈레반 점령 지역과 분쟁 지역(출처/Long War Journal)

■ 서방국은 자국민 철수 '탈출 플랜' …미국, 영국 등 병력 투입

탈레반의 거침없는 공세에 미국과 캐나다 등 서방국가들은 자국민 안전 확보를 위한 비상 대책 마련에 들어갔습니다. 사실상 탈출 플랜입니다.

미국은 4천 2백 명에 달하는 아프간 주재 대사관 직원 수를 줄이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를 위해 카불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 병력 3천 명을 임시로 주둔시킬 계획입니다. 또 쿠웨이트에 만일에 대비한 지원군도 배치하기로 했습니다.

캐나다도 대사관 철수를 위해 특수부대를 파병한다고 밝혔습니다. 영국도 자국민 귀국을 지원하기 위해 병력 6백여 명을 파병할 예정입니다.

로이터 통신은 네덜란드 정부와 덴마크, 노르웨이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고 전했습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나토)는 8월 13일 동맹국 대사 긴급회의를 소집한 뒤 성명을 냈습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성명에서 "민간인 공격과 표적 살해, 심각한 인권 유린 보고를 포함해 탈레반의 공격으로 인한 높은 수준의 폭력에 대해 깊이 우려한다"고 밝혔습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우려를 나타내며 탈레반을 상대로 "지금은 공격을 중단시킬 시점"으로 협상을 시작할 때"라고 강조했습니다.

AP통신은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탈레반의 공세 중단을 요구하는 성명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습니다.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은 8월 14일 TV 연설을 통해 "지난 20년의 성과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군대와 치안 병력을 재동원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설명이나 사태를 책임지겠다는 발언 등은 없어 "모호한 연설"이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아프간 정부가 속수무책으로 밀려나는 가운데, 탈레반의 공세는 더욱 거세지면서 아프간 정세는 더 혼란 속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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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8-14 21:43:54
    특파원 리포트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한 공원 모습입니다.

공원에는 여기저기 돗자리와 텐트가 빼곡하게 들어서 있습니다.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을 피해 집을 버리고 피란길에 오른 아프간인들입니다.

이들은 마지막 남은 안전한 피난처로 여겨지고 있는 수도 카불로 몰리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카불 시내 공원과 거리 곳곳마다 텐트가 늘어나고 있으며 대부분은 이곳에서 여러 날째 노숙 중입니다.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한 공원에서 머물고 있는 피란민들 (REUTERS)
■ "난민 320만 명 "..."역대 최대 민간인 사상자 나올 수도"

유엔난민기구(UNHCR)는 5월 말 이후 피란에 나선 아프간인이 25만여 명이라고 추산했습니다. 올해로 기간을 넓혀 보면 모두 40만 명에 달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들을 포함한 아프간 내 난민은 모두 320만 명으로 파악됩니다.

샤비아 만투 유엔난민기구 대변인은 적대행위가 급증하면서 엄청난 인명피해가 나고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그러면서 "유엔이 기록을 시작한 이래 연간 가장 많은 민간인 사상자를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부모를 따라 피란길에 오른 아프간 아이들(REUTERS, EPA)
■ 피란민 80%가 여성과 아동…"노출 샌들 신었다고 매 맞아"

유엔난민기구는 피란민의 80%가 여성 또는 아동이라고 밝혔습니다.

피난길에 오른 많은 아프간 여성들은 다시 탈레반의 지배를 받을까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지난 2001년 미국이 탈레반 정권을 붕괴시키기 전까지 아프간을 지배했던 탈레반은 당시 반(反)인권적인 통치로 악명높았는데, 특히 여성에 대해서는 가혹하고 억압적이었습니다.

AP와 인터뷰를 한 학교 교사 출신의 한 여성은 "남자 없이는 외출할 수 없었고, 심지어 시장에 갈 수도 없었다"며 "남편을 잃은 젊은 여성들은 어떻게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겠냐"고 반문했습니다.

또 다른 여성은 "노출 있는 샌들을 신었다는 이유만으로 매를 맞았다"고도 말했습니다.

여성 인권 운동가인 자르미나 카카르는 "아이스크림을 사러 나갔던 어머니가 얼굴을 드러냈다는 이유로 매를 맞는 모습을 어릴 때 봤다"며 "탈레반이 집권하면 암흑의 시대로 돌아갈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탈레반은 당시 10세 이상의 소녀는 교육받는 것을 금지하고, 공개 처형을 실시하기도 했습니다.

■ 탈레반 파죽지세…카불 턱밑까지 빠르게 접근

대부분의 아프간인이 카불을 마지막 피난처로 여기며 몸을 피하고 있지만, 상황은 악화되고 있습니다.

탈레반은 아프간 전체 34개 주도 가운데 18곳을 점령했다고 외신들은 전하고 있으며, 특히 카불에서 남쪽으로 불과 50km밖에 안 떨어진 로가르주의 주도 풀리알람도 장악했습니다.

이에 앞서 아프간 2, 3대 도시인 칸다하르와 헤라트 등도 줄줄이 점령했습니다.

북부 최대도시 마자르-이-샤리프에 대한 총공세도 시작했는데, 이렇게 되면 수도 카불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모든 대도시는 탈레반의 수중으로 들어갑니다.

지난 8월 6일 남서부 님로즈주 주도 자란지를 시작으로 일주일 만에 전체 절반 이상이 함락됐으며, 북부와 서부, 남부 주요 도시 대부분을 탈레반이 완전히 장악한 셈입니다.

아프가니스탄 내 탈레반 점령 지역과 분쟁 지역(출처/Long War Journal)
■ 서방국은 자국민 철수 '탈출 플랜' …미국, 영국 등 병력 투입

탈레반의 거침없는 공세에 미국과 캐나다 등 서방국가들은 자국민 안전 확보를 위한 비상 대책 마련에 들어갔습니다. 사실상 탈출 플랜입니다.

미국은 4천 2백 명에 달하는 아프간 주재 대사관 직원 수를 줄이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를 위해 카불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 병력 3천 명을 임시로 주둔시킬 계획입니다. 또 쿠웨이트에 만일에 대비한 지원군도 배치하기로 했습니다.

캐나다도 대사관 철수를 위해 특수부대를 파병한다고 밝혔습니다. 영국도 자국민 귀국을 지원하기 위해 병력 6백여 명을 파병할 예정입니다.

로이터 통신은 네덜란드 정부와 덴마크, 노르웨이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고 전했습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나토)는 8월 13일 동맹국 대사 긴급회의를 소집한 뒤 성명을 냈습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성명에서 "민간인 공격과 표적 살해, 심각한 인권 유린 보고를 포함해 탈레반의 공격으로 인한 높은 수준의 폭력에 대해 깊이 우려한다"고 밝혔습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우려를 나타내며 탈레반을 상대로 "지금은 공격을 중단시킬 시점"으로 협상을 시작할 때"라고 강조했습니다.

AP통신은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탈레반의 공세 중단을 요구하는 성명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습니다.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은 8월 14일 TV 연설을 통해 "지난 20년의 성과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군대와 치안 병력을 재동원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설명이나 사태를 책임지겠다는 발언 등은 없어 "모호한 연설"이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아프간 정부가 속수무책으로 밀려나는 가운데, 탈레반의 공세는 더욱 거세지면서 아프간 정세는 더 혼란 속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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