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이 노래는 안돼!”…중국 통제 어디까지?

입력 2021.08.16 (07:00)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타이완의 가수 리쯔가 부른 '그들'이라는 곡입니다.

"그들은 오른쪽을 가리켜요. 그들은 왼쪽을 가리켜요. 너와 나, 생각이 없으면 안돼요.
눈 감으면 막 지내고 눈 뜨면 대충 살아요. 우리의 생활은 얼마나 아름다운가요?"
(타이완 가수 리쯔의 '그들'이라는 곡 중에서)

이 곡은 중국에서 지난 2015년 금지곡으로 지정되면서 노래방에서도 부를 수 없게 됐습니다.

금지된 이유가 발표된 적은 없지만, 사회 현실을 은유적으로 비판한 가사 때문이라는 추측이 난무했습니다.

타이완 가수 리쯔가 ‘그들’이라는 노래는 부르는 모습 (출처: 유튜브)타이완 가수 리쯔가 ‘그들’이라는 노래는 부르는 모습 (출처: 유튜브)

실제 당시 중국의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는 "심각한 문제가 있는 콘텐츠"로 '자살 일기', '학교 가기 싫어' 등의 노래를 함께 언급했습니다. 대략 어떤 노래들이 문제가 됐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 문화관광부가 요즘도 이 같은 노래가 노래방에서 불려진다며 다시 칼을 빼 들었습니다.

'노래방 음악 내용 관리 잠정 규정'이라는 새로운 틀입니다.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을 강화하고 가무 오락 산업의 질적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이를 위해 이른바 '해로운 내용'의 노래들은 금지곡으로 지정됩니다. 당장 오는 10월 1일부터는 금지곡을 노래방에서 부를 수 없습니다.

■'해로운 노래' 중국의 기준은?

우리도 노래 가사를 심의합니다. 여성가족부 산하 청소년보호위원회가 청소년들에게 유해한지 아닌지를 판가름하는데요.

욕설과 비속어, 특정 대상 비하 등의 표현은 당연히 심의를 통과하지 못합니다.

곡이 청소년 유해 매체물로 결정되면 가사를 수정하지 않는 이상, 방송과 공연에 제한을 받습니다.

하지만 19세 미만이 아니라면 인증을 하고 곡을 다운로드하거나 음반을 살 수 있습니다.

중국 문화관광부가 홈페이지에 게시한 ‘노래방 음악 내용 관리 잠정 규정’ (중국 문화관광부 홈페이지 갈무리)중국 문화관광부가 홈페이지에 게시한 ‘노래방 음악 내용 관리 잠정 규정’ (중국 문화관광부 홈페이지 갈무리)

중국 문화관광부가 밝힌 기준에도 음란, 도박, 폭력, 마약 등 범죄 행위를 조장하거나 범죄를 선동하는 행위를 포함하는 내용은 안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우리와 기준이 언뜻 비슷해 보입니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앞으로 "국가의 통일, 주권, 영토 보전을 해치거나 민족의 단결을 훼손하는 내용"의 노래도 '해로운 노래'가 됩니다.

"국가 안보를 위태롭게 하거나 국가의 명예와 이익을 해치는 행위"의 내용이 있어도 금지됩니다.

한 쇼핑몰에 1인 노래방이 설치돼 있다. (출처:웨이보)한 쇼핑몰에 1인 노래방이 설치돼 있다. (출처:웨이보)

청소년, 성인 가릴 것 없이 이런 금지곡들은 노래방에서 부를 수 없게 됩니다. 최근 쇼핑몰에 늘고 있는 1인 노래방도 대상입니다.

전문 검열팀이 새로 생기고 노래방은 '해로운 노래'를 서비스 목록에서 지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팬클럽도 단속…대체 왜 이렇게까지?

중국의 이런 움직임은 올해 100주년을 맞은 중국공산당의 방향성과 관련 있다는 분석이 가장 유력합니다.

시진핑 주석은 내년 3연임이 가능하게 되는 당 대회를 앞두고 있습니다. 연임에 성공할 경우 신중국 건국 이래 역대 최장기간 집권하게 됩니다. 지도부들에게는 중요한 시기입니다.

지난 7월 1일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식에서 시진핑 주석이 연설하고 있다. (연합=AP)지난 7월 1일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식에서 시진핑 주석이 연설하고 있다. (연합=AP)

현 체제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부정적인' 여론 형성을 경계하는 것이 각 분야 '옥죄기'가 최근 더 이어지는 이유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중국 정부는 지난 6월부터는 아이돌 팬클럽과 기획사, 관련한 SNS에 대한 단속도 진행 중입니다.

이미 15만여 건 정도의 '부정적인 유해정보'를 삭제했고 4,000여 개 위반 계정을 없앴습니다. 문제라고 판단한 팬 참여 토론 방 1,300여 개도 폐쇄했습니다.

온라인 팬클럽이 팬들끼리 의견을 주고받으며 인터넷 여론 형성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는 판단에서입니다.

"(중국 당국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공격과 검열의 확대는 반대 목소리를 담아내는 방법들에 대해 중국공산당의 계속되는 신경과민을 보여주는 신호입니다." (안젤리 다트 프리덤하우스
선임 연구원)

미국 인권감시단체 프리덤하우스의 안젤리 다트 선임 연구원은 홍콩 매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중국공산당 100주년 기념식이 있고 나서 당국이 금지곡 목록을 만들기로 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못 박았습니다.

다트 선임 연구원은 '블랙리스트(금지곡 명단) 만들기'는 중국 정부가 연예산업 전반에 걸쳐 방대한 통제 체계를 넓히려는 시도의 하나이자 '반대 목소리'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공산당을 중심에 놓은 전통적인 문화를 홍보하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2006년 영화, 2018년 힙합에 이어 2021년 지금은 팬클럽과 인터넷 예능 프로그램, 노래가 검열의 대상이 됐습니다.

규제와 단속의 범위는 넓어지고 강도는 세집니다.

중국 당국은 이런 일련의 '통제'를 '사회 통합 정책'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특파원 리포트] “이 노래는 안돼!”…중국 통제 어디까지?
    • 입력 2021-08-16 07:00:14
    특파원 리포트

타이완의 가수 리쯔가 부른 '그들'이라는 곡입니다.

"그들은 오른쪽을 가리켜요. 그들은 왼쪽을 가리켜요. 너와 나, 생각이 없으면 안돼요.
눈 감으면 막 지내고 눈 뜨면 대충 살아요. 우리의 생활은 얼마나 아름다운가요?"
(타이완 가수 리쯔의 '그들'이라는 곡 중에서)

이 곡은 중국에서 지난 2015년 금지곡으로 지정되면서 노래방에서도 부를 수 없게 됐습니다.

금지된 이유가 발표된 적은 없지만, 사회 현실을 은유적으로 비판한 가사 때문이라는 추측이 난무했습니다.

타이완 가수 리쯔가 ‘그들’이라는 노래는 부르는 모습 (출처: 유튜브)
실제 당시 중국의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는 "심각한 문제가 있는 콘텐츠"로 '자살 일기', '학교 가기 싫어' 등의 노래를 함께 언급했습니다. 대략 어떤 노래들이 문제가 됐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 문화관광부가 요즘도 이 같은 노래가 노래방에서 불려진다며 다시 칼을 빼 들었습니다.

'노래방 음악 내용 관리 잠정 규정'이라는 새로운 틀입니다.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을 강화하고 가무 오락 산업의 질적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이를 위해 이른바 '해로운 내용'의 노래들은 금지곡으로 지정됩니다. 당장 오는 10월 1일부터는 금지곡을 노래방에서 부를 수 없습니다.

■'해로운 노래' 중국의 기준은?

우리도 노래 가사를 심의합니다. 여성가족부 산하 청소년보호위원회가 청소년들에게 유해한지 아닌지를 판가름하는데요.

욕설과 비속어, 특정 대상 비하 등의 표현은 당연히 심의를 통과하지 못합니다.

곡이 청소년 유해 매체물로 결정되면 가사를 수정하지 않는 이상, 방송과 공연에 제한을 받습니다.

하지만 19세 미만이 아니라면 인증을 하고 곡을 다운로드하거나 음반을 살 수 있습니다.

중국 문화관광부가 홈페이지에 게시한 ‘노래방 음악 내용 관리 잠정 규정’ (중국 문화관광부 홈페이지 갈무리)
중국 문화관광부가 밝힌 기준에도 음란, 도박, 폭력, 마약 등 범죄 행위를 조장하거나 범죄를 선동하는 행위를 포함하는 내용은 안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우리와 기준이 언뜻 비슷해 보입니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앞으로 "국가의 통일, 주권, 영토 보전을 해치거나 민족의 단결을 훼손하는 내용"의 노래도 '해로운 노래'가 됩니다.

"국가 안보를 위태롭게 하거나 국가의 명예와 이익을 해치는 행위"의 내용이 있어도 금지됩니다.

한 쇼핑몰에 1인 노래방이 설치돼 있다. (출처:웨이보)
청소년, 성인 가릴 것 없이 이런 금지곡들은 노래방에서 부를 수 없게 됩니다. 최근 쇼핑몰에 늘고 있는 1인 노래방도 대상입니다.

전문 검열팀이 새로 생기고 노래방은 '해로운 노래'를 서비스 목록에서 지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팬클럽도 단속…대체 왜 이렇게까지?

중국의 이런 움직임은 올해 100주년을 맞은 중국공산당의 방향성과 관련 있다는 분석이 가장 유력합니다.

시진핑 주석은 내년 3연임이 가능하게 되는 당 대회를 앞두고 있습니다. 연임에 성공할 경우 신중국 건국 이래 역대 최장기간 집권하게 됩니다. 지도부들에게는 중요한 시기입니다.

지난 7월 1일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식에서 시진핑 주석이 연설하고 있다. (연합=AP)
현 체제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부정적인' 여론 형성을 경계하는 것이 각 분야 '옥죄기'가 최근 더 이어지는 이유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중국 정부는 지난 6월부터는 아이돌 팬클럽과 기획사, 관련한 SNS에 대한 단속도 진행 중입니다.

이미 15만여 건 정도의 '부정적인 유해정보'를 삭제했고 4,000여 개 위반 계정을 없앴습니다. 문제라고 판단한 팬 참여 토론 방 1,300여 개도 폐쇄했습니다.

온라인 팬클럽이 팬들끼리 의견을 주고받으며 인터넷 여론 형성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는 판단에서입니다.

"(중국 당국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공격과 검열의 확대는 반대 목소리를 담아내는 방법들에 대해 중국공산당의 계속되는 신경과민을 보여주는 신호입니다." (안젤리 다트 프리덤하우스
선임 연구원)

미국 인권감시단체 프리덤하우스의 안젤리 다트 선임 연구원은 홍콩 매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중국공산당 100주년 기념식이 있고 나서 당국이 금지곡 목록을 만들기로 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못 박았습니다.

다트 선임 연구원은 '블랙리스트(금지곡 명단) 만들기'는 중국 정부가 연예산업 전반에 걸쳐 방대한 통제 체계를 넓히려는 시도의 하나이자 '반대 목소리'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공산당을 중심에 놓은 전통적인 문화를 홍보하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2006년 영화, 2018년 힙합에 이어 2021년 지금은 팬클럽과 인터넷 예능 프로그램, 노래가 검열의 대상이 됐습니다.

규제와 단속의 범위는 넓어지고 강도는 세집니다.

중국 당국은 이런 일련의 '통제'를 '사회 통합 정책'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