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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마트가 있나? 냉장고가 2∼3개씩 나와요”
입력 2021.08.16 (09:01) 취재K

'또 냉장고?'

인천시가 운영하는 85톤급 해양환경정화선 '씨클린(Sea Clean)호' 작업 현장을 취재하며, 또 한 번 냉장고를 만났습니다. 앞서 몇 차례 해양 쓰레기 관련 현장 취재를 했는데 그때마다 냉장고는 단골 품목이었습니다. 씨클린호 승선원 한 분은 그러더군요. "바다에 ㅇㅇ마트(전자제품 판매점)가 있는 것도 아닌데, 한 달에 2~3개씩은 나와요." 냉장고는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씨클린호’가 수거한 냉장고 / 인천 무인도인 구지도에 버려져 있던 냉장고‘씨클린호’가 수거한 냉장고 / 인천 무인도인 구지도에 버려져 있던 냉장고

■ 냉장고는 왜 자꾸 바다에서 나올까? "누군가 버렸기 때문"

해양 쓰레기 중 출처를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것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한강 공원 표지판'과 '북한 라면' 등이죠. 화물선에서 유실된 것으로 추정되는 목재들은 간혹 찾으러 오기도 한답니다. 마치 유실물 센터에서 찾아가는 것처럼요. 그런데 대부분의 쓰레기는 그저 떠내려올 뿐, 그 여정의 시작을 알 수 없습니다. 냉장고 역시 어선에 실려 있다가 녹슬고 파손돼 버려졌을 수도 있고, 육지의 쓰레기장 등에서 쓸려 내려왔을 수도 있죠. 분명한 건 '누군가 버렸다'는 사실 뿐입니다.

‘씨클린호’ 부유 해양쓰레기 수거 작업. 수거된 200m 길이의 대형 밧줄과 폐타이어 등이 보인다.‘씨클린호’ 부유 해양쓰레기 수거 작업. 수거된 200m 길이의 대형 밧줄과 폐타이어 등이 보인다.

■ 해양 쓰레기 수거는 '과학'…"우리는 해양 쓰레기 사냥꾼"

'씨클린호'는 사연이야 어떻든 바다로 흘러든 쓰레기를 찾아 항해합니다. 그렇다고 하염없이 인천 앞바다를 떠도는 건 아닙니다. 해양 쓰레기 수거는 '과학'입니다. 먼저 물때를 잘 살펴야 합니다. 조수표와 바람 방향을 참고합니다. 한 달에 사리(밀물이 가장 높은 때)가 두 번, 조금(조수가 가장 낮은 때)이 두 번인데 사리 때는 섬 가장자리에 둘려 있던 쓰레기가 물이 빠지면서 바다로 쓸려 나옵니다. 그때가 해양 쓰레기 수거의 적기죠.

수거 장소도 잘 포착해야 합니다. 바다는 육지와 달라서 쓰레기가 계속 조류를 타고 이동합니다. 그래서 쓰레기가 잘 모여드는 길목을 찾아야 하는데요. 바닷물의 흐름을 파악해 해수면을 자세히 보면 조류와 조류가 부딪히면서 만들어지는 하얀 거품의 긴 띠가 보입니다. 이곳이 바로 그 길목, 쓰레기 정거장인 셈입니다. 씨클린호는 이렇게 해양쓰레기를 만나기 가장 좋은 시간과 장소를 찾아다니는 배입니다. 그래서 승선원들은 스스로 '해양 쓰레기 사냥꾼, 해양 쓰레기 헌터'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조류가 부딪혀 만들어지는 거품 띠. 주변으로 해양 쓰레기가 떠 있다.조류가 부딪혀 만들어지는 거품 띠. 주변으로 해양 쓰레기가 떠 있다.

폐어구와 천막, 나무 등이 엉켜 있는 해양쓰레기폐어구와 천막, 나무 등이 엉켜 있는 해양쓰레기

"수거한 쓰레기는 톤백(대형 마대 자루, 가득 채우면 1톤 정도가 들어간다고 해서 톤백이라고 부름)에 차곡차곡 담습니다. 저희 배에는 톤백이 12개까지 실리는데, 항상 출항할 때 '오늘 만선하자!'라고 얘기해요. 저희가 열심히 수거하면 그만큼 인천 앞바다가 깨끗해지는 것이니까요"
(심상훈 씨클린호 항해장)


■ 해양 사고의 11%가 '부유 쓰레기 감김'으로 인해 발생

해양 쓰레기는 생태계에도 영향을 주지만 선박 안전과도 직결됩니다. 중앙해양안전심판원 통계를 보면 지난 5년 동안 발생한 1만 3천여 건의 선박 사고 가운데 11% 정도가 해양 부유 쓰레기 감김으로 인해 발생했습니다. '기관 손상'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사고였습니다.

■ '씨클린호'의 극한 작업, 무인도 쓰레기 수거…"체중 3~4kg씩 줄어"

'씨클린호'는 부유 해양 쓰레기 수거를 주요 업무로 하지만, 다른 일도 합니다. 해양 오염 방제 작업과 필요 시 구조 활동에도 동원되고, 해양 연구 작업에도 참여합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가장 고된 일은 '무인도 쓰레기 수거 작업'입니다.
인천 무인도 상공경도. 해변 동굴에도 스티로폼 쓰레기가 가득 쌓여있다.인천 무인도 상공경도. 해변 동굴에도 스티로폼 쓰레기가 가득 쌓여있다.

무인도 작업을 한 번 다녀오면 보통 3~4톤의 쓰레기를 수거해 처리합니다. 승선원들은 체중이 3~4kg씩 준다고 하네요. 그만큼 고된 일입니다. 그래도 이 일을 하는 이유, 승선원들이 자체 기록 목적으로 직접 찍은 작업 영상을 보니 알 수 있겠더군요.

"해변 한 번 보십시오. 깨끗해졌죠?…정말 속이 후련합니다. 미세플라스틱이 발생할 수 있는 원인을 제거했습니다. 힘들지만 사명감을 가지고 일을 했습니다."


■ 일회용 종이컵·플라스틱 생수병 없는 '씨클린호'

'씨클린호' 선내 휴게실에는 일회용 종이컵이 없습니다. 승선원들은 모두 개인 텀블러를 씁니다. 플라스틱 병에 담겨 있는 생수도 거의 소비하지 않습니다. 무인도 작업 등을 위해 꼭 필요할 때는 비닐 라벨이 없는 생수를 가끔 구입해 마신다고 하네요. 해양 쓰레기는 완전히 없앨 수 없습니다. 하지만 줄일 수는 있을 겁니다. 그것은 수거를 많이 해서 가능할 수도 있지만, 쓰레기를 만들지 않아서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 씨클린호가 하고 있는 것처럼요.
  • “바다에 ○○마트가 있나? 냉장고가 2∼3개씩 나와요”
    • 입력 2021-08-16 09:01:09
    취재K

'또 냉장고?'

인천시가 운영하는 85톤급 해양환경정화선 '씨클린(Sea Clean)호' 작업 현장을 취재하며, 또 한 번 냉장고를 만났습니다. 앞서 몇 차례 해양 쓰레기 관련 현장 취재를 했는데 그때마다 냉장고는 단골 품목이었습니다. 씨클린호 승선원 한 분은 그러더군요. "바다에 ㅇㅇ마트(전자제품 판매점)가 있는 것도 아닌데, 한 달에 2~3개씩은 나와요." 냉장고는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씨클린호’가 수거한 냉장고 / 인천 무인도인 구지도에 버려져 있던 냉장고‘씨클린호’가 수거한 냉장고 / 인천 무인도인 구지도에 버려져 있던 냉장고

■ 냉장고는 왜 자꾸 바다에서 나올까? "누군가 버렸기 때문"

해양 쓰레기 중 출처를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것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한강 공원 표지판'과 '북한 라면' 등이죠. 화물선에서 유실된 것으로 추정되는 목재들은 간혹 찾으러 오기도 한답니다. 마치 유실물 센터에서 찾아가는 것처럼요. 그런데 대부분의 쓰레기는 그저 떠내려올 뿐, 그 여정의 시작을 알 수 없습니다. 냉장고 역시 어선에 실려 있다가 녹슬고 파손돼 버려졌을 수도 있고, 육지의 쓰레기장 등에서 쓸려 내려왔을 수도 있죠. 분명한 건 '누군가 버렸다'는 사실 뿐입니다.

‘씨클린호’ 부유 해양쓰레기 수거 작업. 수거된 200m 길이의 대형 밧줄과 폐타이어 등이 보인다.‘씨클린호’ 부유 해양쓰레기 수거 작업. 수거된 200m 길이의 대형 밧줄과 폐타이어 등이 보인다.

■ 해양 쓰레기 수거는 '과학'…"우리는 해양 쓰레기 사냥꾼"

'씨클린호'는 사연이야 어떻든 바다로 흘러든 쓰레기를 찾아 항해합니다. 그렇다고 하염없이 인천 앞바다를 떠도는 건 아닙니다. 해양 쓰레기 수거는 '과학'입니다. 먼저 물때를 잘 살펴야 합니다. 조수표와 바람 방향을 참고합니다. 한 달에 사리(밀물이 가장 높은 때)가 두 번, 조금(조수가 가장 낮은 때)이 두 번인데 사리 때는 섬 가장자리에 둘려 있던 쓰레기가 물이 빠지면서 바다로 쓸려 나옵니다. 그때가 해양 쓰레기 수거의 적기죠.

수거 장소도 잘 포착해야 합니다. 바다는 육지와 달라서 쓰레기가 계속 조류를 타고 이동합니다. 그래서 쓰레기가 잘 모여드는 길목을 찾아야 하는데요. 바닷물의 흐름을 파악해 해수면을 자세히 보면 조류와 조류가 부딪히면서 만들어지는 하얀 거품의 긴 띠가 보입니다. 이곳이 바로 그 길목, 쓰레기 정거장인 셈입니다. 씨클린호는 이렇게 해양쓰레기를 만나기 가장 좋은 시간과 장소를 찾아다니는 배입니다. 그래서 승선원들은 스스로 '해양 쓰레기 사냥꾼, 해양 쓰레기 헌터'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조류가 부딪혀 만들어지는 거품 띠. 주변으로 해양 쓰레기가 떠 있다.조류가 부딪혀 만들어지는 거품 띠. 주변으로 해양 쓰레기가 떠 있다.

폐어구와 천막, 나무 등이 엉켜 있는 해양쓰레기폐어구와 천막, 나무 등이 엉켜 있는 해양쓰레기

"수거한 쓰레기는 톤백(대형 마대 자루, 가득 채우면 1톤 정도가 들어간다고 해서 톤백이라고 부름)에 차곡차곡 담습니다. 저희 배에는 톤백이 12개까지 실리는데, 항상 출항할 때 '오늘 만선하자!'라고 얘기해요. 저희가 열심히 수거하면 그만큼 인천 앞바다가 깨끗해지는 것이니까요"
(심상훈 씨클린호 항해장)


■ 해양 사고의 11%가 '부유 쓰레기 감김'으로 인해 발생

해양 쓰레기는 생태계에도 영향을 주지만 선박 안전과도 직결됩니다. 중앙해양안전심판원 통계를 보면 지난 5년 동안 발생한 1만 3천여 건의 선박 사고 가운데 11% 정도가 해양 부유 쓰레기 감김으로 인해 발생했습니다. '기관 손상'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사고였습니다.

■ '씨클린호'의 극한 작업, 무인도 쓰레기 수거…"체중 3~4kg씩 줄어"

'씨클린호'는 부유 해양 쓰레기 수거를 주요 업무로 하지만, 다른 일도 합니다. 해양 오염 방제 작업과 필요 시 구조 활동에도 동원되고, 해양 연구 작업에도 참여합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가장 고된 일은 '무인도 쓰레기 수거 작업'입니다.
인천 무인도 상공경도. 해변 동굴에도 스티로폼 쓰레기가 가득 쌓여있다.인천 무인도 상공경도. 해변 동굴에도 스티로폼 쓰레기가 가득 쌓여있다.

무인도 작업을 한 번 다녀오면 보통 3~4톤의 쓰레기를 수거해 처리합니다. 승선원들은 체중이 3~4kg씩 준다고 하네요. 그만큼 고된 일입니다. 그래도 이 일을 하는 이유, 승선원들이 자체 기록 목적으로 직접 찍은 작업 영상을 보니 알 수 있겠더군요.

"해변 한 번 보십시오. 깨끗해졌죠?…정말 속이 후련합니다. 미세플라스틱이 발생할 수 있는 원인을 제거했습니다. 힘들지만 사명감을 가지고 일을 했습니다."


■ 일회용 종이컵·플라스틱 생수병 없는 '씨클린호'

'씨클린호' 선내 휴게실에는 일회용 종이컵이 없습니다. 승선원들은 모두 개인 텀블러를 씁니다. 플라스틱 병에 담겨 있는 생수도 거의 소비하지 않습니다. 무인도 작업 등을 위해 꼭 필요할 때는 비닐 라벨이 없는 생수를 가끔 구입해 마신다고 하네요. 해양 쓰레기는 완전히 없앨 수 없습니다. 하지만 줄일 수는 있을 겁니다. 그것은 수거를 많이 해서 가능할 수도 있지만, 쓰레기를 만들지 않아서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 씨클린호가 하고 있는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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