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 광복군훈련소가?…사진작가 김동우가 찍고 기록해야 했던 역사

입력 2021.08.18 (07:00) 수정 2021.08.18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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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중반의 사진 작가 김동우의 책은 인도에서 시작합니다. 해외 독립운동의 흔적을 발굴하고 기록하는 3년여 프로젝트의 시작점이 인도의 수도 뉴델리였기 때문입니다.

김동우 작가는 2017년 직장(신문기자 출신)을 다니면서 모아둔 돈으로 세계 일주를 하던 도중 인도 델리 레드 포트에서 우연히 역사적 사실을 듣게 됩니다.

그곳이 우리 광복군의 훈련지였다는 것. 한국사 시간에서 듣지 못했던 내용인데다, 주변 사람들도 대부분 이런 내용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나름의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인도에서 '우리 독립운동사를 새로 알게 되다니….'하고 놀라면서 임시정부에서 파견한 아홉 명의 광복군이 인도에서 영국군과 함께 일본에 맞서 싸웠던 역사적 사실을 각종 사료를 통해 파악하게 됐습니다.

이미 우리 정부에서도 파악하고 있는 부분이지만, 무슨 일인지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것을 발견하고 이걸 계속 탐사보도 하듯이 추적해봐야겠다는 결심을 했지요."


물론 여행과 취재, 촬영 경비 등은 온전히 사진작가의 부담이었지요. 추후에 각종 상금을 받기도 하고, 일부 후원금도 받았지만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그는 기자 생활할 때보다 다큐멘터리 사진과 기록작업에 시간을 넉넉히 잡고 전력을 쏟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었다고 말합니다.

독립기념관 등의 자료와 역사적 단초를 샅샅이 뒤져 주소 한 줄, 사진 한 장으로만 남아 있는 해외 독립운동사적지를 찾아다니기 시작했고, 대상 국가는 멕시코, 쿠바, 미국, 러시아, 네덜란드,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중국, 일본 등 10여 개 국으로 확대됐습니다.

그는 이 가운데 인도, 멕시코, 쿠바, 미국으로 간 한인들의 독립운동 이야기를 사진과 함께 정리해 '뭉우리돌의 바다' 란 책을 최근에 냈습니다.

"‘뭉우리돌’이란 단어는 좀 생소하실 텐데요. 발음으로 연상되는 것처럼 둥글둥글하게 생긴 큰 돌을 뜻하는 우리말입니다. 이것과 관련된 이야기는 김구의 '백범일지'에 나옵니다. 독립운동 정신을 상징하는 거로 나오지요.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된 김구에게 일본 순사는 '지주가 전답의 뭉우리돌을 골라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냐!'며 큰소리를 쳤다고 합니다. 그러자 김구는 이 말을 되받아치면서 '나는 죽어도 뭉우리돌 정신을 품고 죽겠고, 살아도 뭉우리돌의 책무를 다하리라'고 말했다는 일화입니다."



한지성, 김익주, 이근영, 이종오, 김세원, 임천택, 호근덕, 이윤상, 배경진, 김종림, 김형순, 장인환, 전명운, 황기환, 이우석….

이 책에 나오는 독립운동가의 이름인데 기자에게도 매우 생소했습니다. 솔직히 인도에서 2년 동안 특파원으로 근무했지만, 델리 한복판의 레드 포트가 광복군의 훈련지로 쓰인 것도 몰랐으니까요. 직접 만나 본 김 작가의 "역사는 기록할 때 역사가 될수 있지 않나"란 말이 뼈를 때린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저만의 심정이 아닐것 같습니다.

이처럼 학교 교육 등을 통해 배우지도, 들어보지도 못한, 교과서 밖에서 마주한 '뭉우리돌'의 역사를 접하고 기록하는 심정은 어떠했을까?

"중국에서는 독립운동가의 후손을 인터뷰하고 기록하다가 공안에게 7시간 정도 조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조사 과정이 육체적으로 힘들고 한 일은 없었는데 조사관을 기다리는 게 2시간, 일상적인 질문이 몇 시간 이렇게 걸리니까 2박 3일로 간 일정이 허비되는 것 같아 너무 아쉬웠습니다.

그런데 후손들은 저를 반겨주시고 밥도 챙겨주시면서 자신들의 조상, 아버지가 한 일을 잊지 않고 기억한다는 것에 고마움을 표현하곤 했습니다. 그런 덕분에 부족한 예산에도 끝까지 '완주'한다는 마음으로 기록 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책은 사진집이 아닙니다. 하지만, 김동우 작가가 책에 실린 사진에 들인 정성은 여타 사진집과 비교할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편입니다.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사진은 장노출을 응용해서 찍었습니다. 사진 배경으로 쓰인 장소에 10초 정도만 머물게 하고 바로 이동해달라고 부탁하는데 이렇게 하면, 상(像)이 2개(잔상 효과)가 되곤 합니다.

결국 시간은 정해진 것은 없지만, 그때그때 주변 조도에 따라서 적절한 노출값을 잡아내는 과정이 쉽지 않았습니다. 약간 인물이 흐릿하게 나오는데 우리가 잊지 말고 기억하고, 되새겨야 하는 '경계인들'이란 의미를 담아 찍은 것이지요."

김동우 작가와는 코로나19 수칙을 지키면서 만난 대면 인터뷰보다 보내준 사진 중에 몇 장을 고르고, 촬영 기법을 풀어쓰기위한 보완 과정이 유독 길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책에 실린 원본 사진을 "크롭이나 색보정 없이 원본으로 써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최근 다른 매체와 인터뷰를 한 뒤, 기사화되는 과정에 사진이 원래 의도와 달리 잘려나간 경험 때문이라면서 몇 차례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가족이 살던 집을 팔아서 취재와 촬영 경비를 충당했다는 내용은 너무 자주 인터뷰에서 나가니 부끄럽다고 말했습니다. 집을 판 뒤에는 어쩔수 없이 '처가살이'를 했다는 것.


결국, 김 작가의 사진은 한 장을 쓰더라도 원본대로 쓰기로 디자이너와 상의를 마쳤는데, 이번 책은 작가의 이런 고집과 열정, 타협하지 않는 원칙주의가 만든 기록물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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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도에 광복군훈련소가?…사진작가 김동우가 찍고 기록해야 했던 역사
    • 입력 2021-08-18 07:00:06
    • 수정2021-08-18 07:41:40
    취재K

40대 중반의 사진 작가 김동우의 책은 인도에서 시작합니다. 해외 독립운동의 흔적을 발굴하고 기록하는 3년여 프로젝트의 시작점이 인도의 수도 뉴델리였기 때문입니다.

김동우 작가는 2017년 직장(신문기자 출신)을 다니면서 모아둔 돈으로 세계 일주를 하던 도중 인도 델리 레드 포트에서 우연히 역사적 사실을 듣게 됩니다.

그곳이 우리 광복군의 훈련지였다는 것. 한국사 시간에서 듣지 못했던 내용인데다, 주변 사람들도 대부분 이런 내용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나름의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인도에서 '우리 독립운동사를 새로 알게 되다니….'하고 놀라면서 임시정부에서 파견한 아홉 명의 광복군이 인도에서 영국군과 함께 일본에 맞서 싸웠던 역사적 사실을 각종 사료를 통해 파악하게 됐습니다.

이미 우리 정부에서도 파악하고 있는 부분이지만, 무슨 일인지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것을 발견하고 이걸 계속 탐사보도 하듯이 추적해봐야겠다는 결심을 했지요."


물론 여행과 취재, 촬영 경비 등은 온전히 사진작가의 부담이었지요. 추후에 각종 상금을 받기도 하고, 일부 후원금도 받았지만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그는 기자 생활할 때보다 다큐멘터리 사진과 기록작업에 시간을 넉넉히 잡고 전력을 쏟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었다고 말합니다.

독립기념관 등의 자료와 역사적 단초를 샅샅이 뒤져 주소 한 줄, 사진 한 장으로만 남아 있는 해외 독립운동사적지를 찾아다니기 시작했고, 대상 국가는 멕시코, 쿠바, 미국, 러시아, 네덜란드,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중국, 일본 등 10여 개 국으로 확대됐습니다.

그는 이 가운데 인도, 멕시코, 쿠바, 미국으로 간 한인들의 독립운동 이야기를 사진과 함께 정리해 '뭉우리돌의 바다' 란 책을 최근에 냈습니다.

"‘뭉우리돌’이란 단어는 좀 생소하실 텐데요. 발음으로 연상되는 것처럼 둥글둥글하게 생긴 큰 돌을 뜻하는 우리말입니다. 이것과 관련된 이야기는 김구의 '백범일지'에 나옵니다. 독립운동 정신을 상징하는 거로 나오지요.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된 김구에게 일본 순사는 '지주가 전답의 뭉우리돌을 골라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냐!'며 큰소리를 쳤다고 합니다. 그러자 김구는 이 말을 되받아치면서 '나는 죽어도 뭉우리돌 정신을 품고 죽겠고, 살아도 뭉우리돌의 책무를 다하리라'고 말했다는 일화입니다."



한지성, 김익주, 이근영, 이종오, 김세원, 임천택, 호근덕, 이윤상, 배경진, 김종림, 김형순, 장인환, 전명운, 황기환, 이우석….

이 책에 나오는 독립운동가의 이름인데 기자에게도 매우 생소했습니다. 솔직히 인도에서 2년 동안 특파원으로 근무했지만, 델리 한복판의 레드 포트가 광복군의 훈련지로 쓰인 것도 몰랐으니까요. 직접 만나 본 김 작가의 "역사는 기록할 때 역사가 될수 있지 않나"란 말이 뼈를 때린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저만의 심정이 아닐것 같습니다.

이처럼 학교 교육 등을 통해 배우지도, 들어보지도 못한, 교과서 밖에서 마주한 '뭉우리돌'의 역사를 접하고 기록하는 심정은 어떠했을까?

"중국에서는 독립운동가의 후손을 인터뷰하고 기록하다가 공안에게 7시간 정도 조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조사 과정이 육체적으로 힘들고 한 일은 없었는데 조사관을 기다리는 게 2시간, 일상적인 질문이 몇 시간 이렇게 걸리니까 2박 3일로 간 일정이 허비되는 것 같아 너무 아쉬웠습니다.

그런데 후손들은 저를 반겨주시고 밥도 챙겨주시면서 자신들의 조상, 아버지가 한 일을 잊지 않고 기억한다는 것에 고마움을 표현하곤 했습니다. 그런 덕분에 부족한 예산에도 끝까지 '완주'한다는 마음으로 기록 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책은 사진집이 아닙니다. 하지만, 김동우 작가가 책에 실린 사진에 들인 정성은 여타 사진집과 비교할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편입니다.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사진은 장노출을 응용해서 찍었습니다. 사진 배경으로 쓰인 장소에 10초 정도만 머물게 하고 바로 이동해달라고 부탁하는데 이렇게 하면, 상(像)이 2개(잔상 효과)가 되곤 합니다.

결국 시간은 정해진 것은 없지만, 그때그때 주변 조도에 따라서 적절한 노출값을 잡아내는 과정이 쉽지 않았습니다. 약간 인물이 흐릿하게 나오는데 우리가 잊지 말고 기억하고, 되새겨야 하는 '경계인들'이란 의미를 담아 찍은 것이지요."

김동우 작가와는 코로나19 수칙을 지키면서 만난 대면 인터뷰보다 보내준 사진 중에 몇 장을 고르고, 촬영 기법을 풀어쓰기위한 보완 과정이 유독 길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책에 실린 원본 사진을 "크롭이나 색보정 없이 원본으로 써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최근 다른 매체와 인터뷰를 한 뒤, 기사화되는 과정에 사진이 원래 의도와 달리 잘려나간 경험 때문이라면서 몇 차례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가족이 살던 집을 팔아서 취재와 촬영 경비를 충당했다는 내용은 너무 자주 인터뷰에서 나가니 부끄럽다고 말했습니다. 집을 판 뒤에는 어쩔수 없이 '처가살이'를 했다는 것.


결국, 김 작가의 사진은 한 장을 쓰더라도 원본대로 쓰기로 디자이너와 상의를 마쳤는데, 이번 책은 작가의 이런 고집과 열정, 타협하지 않는 원칙주의가 만든 기록물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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