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한 나무 백여그루 벌목 뒤 다시 숲 조성 ‘황당 행정’ 왜?

입력 2021.08.18 (16:08) 수정 2021.08.18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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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부산진구 당감동 경부선 일대 땅. 코레일이 선로 안전을 이유로 나무 전체를 베어버렸다.부산 부산진구 당감동 경부선 일대 땅. 코레일이 선로 안전을 이유로 나무 전체를 베어버렸다.

"다 베었어요. 그랬더니 사람들이 와서 이렇게 쓰레기 버리고…."
"은행나무 때문에 냄새가 나서, 관리 좀 하라고 했더니 다 베어버릴 줄은 몰랐죠."

■ 멀쩡한 나무 베어낸 자리…2억 들여 다시 숲 조성

부산 부산진구를 지나는 경부선 인근. 쇳소리를 내며 달리는 기차 옆에는 아파트 단지를 사이에 두고 빈 땅이 방치돼있습니다. 2,100㎡로 축구장 3분의 1 크기입니다. 철제 울타리 안에는 나무가 뿌리째 뽑혀 밑동만 남았습니다. 주민들이 버린 쓰레기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습니다.

원래 이곳에는 히말라야시다, 은행나무 등 20m가 넘는 아름드리 나무 100여 그루가 심겨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흔적조차 찾기 어렵습니다.

바로 앞 아파트에 방음벽이 있습니다. 하지만 숲이 있을 때와는 소음 차이도 클 수밖에 없습니다. 쓰레기와 기차 소음에 대한 민원이 들끓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담당 구청은 이곳에 다시 미세먼지 차단 숲을 새로 조성하기로 했습니다. 이 사업에는 예산 2억 원이 투입됩니다.

정리해볼까요? 멀쩡한 나무 백여 그루가 몽땅 베어졌습니다. 1년 반이 흘렀습니다. 나무가 베어진 자리에 다시 숲이 조성됩니다. '미세먼지 차단 숲'이라는 그럴싸한 사업명이 붙었습니다. 왜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베고 남은 나무 잔해와 쓰레기가 섞여 나뒹굴고 있다베고 남은 나무 잔해와 쓰레기가 섞여 나뒹굴고 있다

■ 코레일 "선로 안전 때문" …담당 구청 "협의조차 없었다"

담당 구청에 문의했더니, "철도 시설 인근이라 관리를 코레일이 맡아서 한다"고 답변했습니다. 코레일 측은 "나무 크기가 커지자 선로 안전을 위협했고, 철도안전법에 따라 나무를 베어냈다"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나무를 베어냈다는 사실, 구청은 전혀 몰랐습니다. 나무가 베어진 것은 지난 2019년. 차단 숲을 새로 조성하기로 한 건 올해 6월입니다. 1년 반이 넘도록 이같은 사실을 몰랐다는 겁니다.

알고 보니 코레일이 담당 구청과 아무 협의 없이 나무를 벤 겁니다.

해당 부지는 부산시 소유인데다 '녹지'입니다. 녹지의 경우 도시공원법에는 벌목 등의 행위를 할 경우 담당 구청의 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반할 경우 최대 3백만 원의 벌금까지 부과할 수 있습니다. 담당 구청도 "안전에 위협이 된다면 당연히 베어야 하지만 전체 나무를 다 베는 등의 행위는 막지 않았을 것"이라고 해명합니다.

도시공원법상 녹지의 경우 담당 구청의 허가를 받아야 벌목 등을 진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도시공원법상 녹지의 경우 담당 구청의 허가를 받아야 벌목 등을 진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 제각각 법 해석에 애꿎은 시민 세금만…담당 구청, 코레일 측 고발 검토

코레일측도 "협의가 없었던 건 사실"이라며 "다만 철도안전법상 열차안전운행을 저해하는 나무는 지속적으로 제거하고 있었다"며 맞서고 있습니다. 나무가 부산시 재산이라고 해도, 구청이 제시한 도시공원법에 철도보호지구 지정과 관련한 법을 따랐기 때문에 협의를 검토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서로 법 해석이 달라 벌어진 일입니다.

부산환경운동연합 민은주 사무처장은 "행정편의적으로 나무를 모두 베어버린 셈"이라고 비판했는데요. 더군다나 "나무를 베어낼 때 뿌리까지 드러나면 탄소배출량이 늘어나 환경에는 더 치명적"이라며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부산경남미래정책 안일규 사무처장도 엇박자 행정으로 벌어진 예산 낭비에 대해 "법적인 책임을 물어야 할 뿐만 아니라 재발 방지를 위해 구청과 코레일이 각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철도 안전을 위해 나무를 정비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지만, 협의 한 번 거치지 않는 바람에 애꿎은 시민 세금 2억 원이 다시 든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담당 구청은 새로 조성하는 미세먼지 차단 숲에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선로 인근에는 철제 울타리를 추가로 설치해 나무가 베어지는 일이 없게 하겠다는 입장입니다. 또 법령 해석을 거친 뒤 코레일 측을 수사기관에 고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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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멀쩡한 나무 백여그루 벌목 뒤 다시 숲 조성 ‘황당 행정’ 왜?
    • 입력 2021-08-18 16:08:30
    • 수정2021-08-18 16:09:09
    취재K
부산 부산진구 당감동 경부선 일대 땅. 코레일이 선로 안전을 이유로 나무 전체를 베어버렸다.
"다 베었어요. 그랬더니 사람들이 와서 이렇게 쓰레기 버리고…."
"은행나무 때문에 냄새가 나서, 관리 좀 하라고 했더니 다 베어버릴 줄은 몰랐죠."

■ 멀쩡한 나무 베어낸 자리…2억 들여 다시 숲 조성

부산 부산진구를 지나는 경부선 인근. 쇳소리를 내며 달리는 기차 옆에는 아파트 단지를 사이에 두고 빈 땅이 방치돼있습니다. 2,100㎡로 축구장 3분의 1 크기입니다. 철제 울타리 안에는 나무가 뿌리째 뽑혀 밑동만 남았습니다. 주민들이 버린 쓰레기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습니다.

원래 이곳에는 히말라야시다, 은행나무 등 20m가 넘는 아름드리 나무 100여 그루가 심겨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흔적조차 찾기 어렵습니다.

바로 앞 아파트에 방음벽이 있습니다. 하지만 숲이 있을 때와는 소음 차이도 클 수밖에 없습니다. 쓰레기와 기차 소음에 대한 민원이 들끓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담당 구청은 이곳에 다시 미세먼지 차단 숲을 새로 조성하기로 했습니다. 이 사업에는 예산 2억 원이 투입됩니다.

정리해볼까요? 멀쩡한 나무 백여 그루가 몽땅 베어졌습니다. 1년 반이 흘렀습니다. 나무가 베어진 자리에 다시 숲이 조성됩니다. '미세먼지 차단 숲'이라는 그럴싸한 사업명이 붙었습니다. 왜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베고 남은 나무 잔해와 쓰레기가 섞여 나뒹굴고 있다
■ 코레일 "선로 안전 때문" …담당 구청 "협의조차 없었다"

담당 구청에 문의했더니, "철도 시설 인근이라 관리를 코레일이 맡아서 한다"고 답변했습니다. 코레일 측은 "나무 크기가 커지자 선로 안전을 위협했고, 철도안전법에 따라 나무를 베어냈다"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나무를 베어냈다는 사실, 구청은 전혀 몰랐습니다. 나무가 베어진 것은 지난 2019년. 차단 숲을 새로 조성하기로 한 건 올해 6월입니다. 1년 반이 넘도록 이같은 사실을 몰랐다는 겁니다.

알고 보니 코레일이 담당 구청과 아무 협의 없이 나무를 벤 겁니다.

해당 부지는 부산시 소유인데다 '녹지'입니다. 녹지의 경우 도시공원법에는 벌목 등의 행위를 할 경우 담당 구청의 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반할 경우 최대 3백만 원의 벌금까지 부과할 수 있습니다. 담당 구청도 "안전에 위협이 된다면 당연히 베어야 하지만 전체 나무를 다 베는 등의 행위는 막지 않았을 것"이라고 해명합니다.

도시공원법상 녹지의 경우 담당 구청의 허가를 받아야 벌목 등을 진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 제각각 법 해석에 애꿎은 시민 세금만…담당 구청, 코레일 측 고발 검토

코레일측도 "협의가 없었던 건 사실"이라며 "다만 철도안전법상 열차안전운행을 저해하는 나무는 지속적으로 제거하고 있었다"며 맞서고 있습니다. 나무가 부산시 재산이라고 해도, 구청이 제시한 도시공원법에 철도보호지구 지정과 관련한 법을 따랐기 때문에 협의를 검토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서로 법 해석이 달라 벌어진 일입니다.

부산환경운동연합 민은주 사무처장은 "행정편의적으로 나무를 모두 베어버린 셈"이라고 비판했는데요. 더군다나 "나무를 베어낼 때 뿌리까지 드러나면 탄소배출량이 늘어나 환경에는 더 치명적"이라며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부산경남미래정책 안일규 사무처장도 엇박자 행정으로 벌어진 예산 낭비에 대해 "법적인 책임을 물어야 할 뿐만 아니라 재발 방지를 위해 구청과 코레일이 각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철도 안전을 위해 나무를 정비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지만, 협의 한 번 거치지 않는 바람에 애꿎은 시민 세금 2억 원이 다시 든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담당 구청은 새로 조성하는 미세먼지 차단 숲에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선로 인근에는 철제 울타리를 추가로 설치해 나무가 베어지는 일이 없게 하겠다는 입장입니다. 또 법령 해석을 거친 뒤 코레일 측을 수사기관에 고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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