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어쩌다 ‘악당’이 됐을까?…기후위기 ‘잃어버린 10년’

입력 2021.08.19 (06:17) 수정 2021.09.24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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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준비 부족이죠. 위원회를 미리 꾸렸다면 이런 시나리오는 나오지 않았겠죠?"

탄소중립위원회에 대한 환경·기후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한 말입니다. '탄소중립'이 불가능하다는 내용의 시나리오를 발표하고, 영국에서 더는 쓰지 않는 예전 자료를 가져와서 설명한 탄소중립위원회를 한편으론 이해한다는 의미였습니다.

내부 상황도 다르지 않습니다. 탄소중립위원회 위원들은 정부가 주는 제한적인 자료만을 보고 30년 후의 미래 모습을 그려야 했습니다. 그나마 주어진 시간도 두 달 남짓이었습니다. '탄소중립이 불가능하다'는 정부 측 시나리오 2개를 받고, 2050년 탄소 순 배출 제로(0)인 시나리오를 하나 더 만든 게 성과라면 성과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최초의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발표되자마자 '폐기하라!'는 비판에 직면해 있습니다.

[연관기사] ‘탄소중립 시나리오’ 흔들…“시민 기만 시나리오 폐기해야” (KBS 뉴스9 2021.8.14)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256287


■ 우리와 달라도 너무 다른 영국 '기후변화위원회'

우리나라 탄소중립위원회가 '벤치마킹'했다는 영국.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고 싶은 부분만 가져와 참고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정말 우리가 꼭 참고해야 할 '영국 모델'을 자세히 들여다 보겠습니다.

영국은 이미 탄소를 많이 줄였습니다. 2016년에 1990년 대비 탄소를 42% 감축했습니다. 올해는 2035년까지 탄소를 78%까지 줄이겠다는 목표를 내놨습니다. 우리나라의 2030년 탄소 감축 목표는 아직 2017년 대비 24.4%에 불과합니다.

이처럼 영국이 '탄소중립'에서 앞서 나갈 수 있었던 비결은 '기후변화위원회'였습니다.

영국은 2008년, 탄소 감축 목표를 정한 '기후변화법'을 세계 최초로 통과시켰습니다. 법을 만들면서 기후변화에 대한 전문 기관을 만들었는데, 그게 바로 영국 기후변화위원회(Committee on Climate Change)입니다.


영국 '기후변화위원회'는 법적으로 독립기구입니다. 그래서 정부 각 부처의 입김에서 자유롭습니다. 오히려 영국 정부가 기후변화위원회의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예산도 한 해 370만 유로 (약 50억 원), 전문 연구인력도 30명이나 배치돼 있습니다. 위원들도 정기적으로 출근합니다.

우리나라 탄소중립위원회는 어떨까요? 설립 근거는 '대통령 훈령'입니다. 정권이 바뀌면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전문 연구인력도 없어 정부 연구기관에서 주는 자료에 의지해야 합니다. 예산도 이전 국가기후환경회의에서 쓰다 남은 40억 원을 넘겨받아 사용하고 있습니다. 위원들은 회의가 있을 때만 나오는 '비상근'입니다.


■ '잃어버린 10년', '기후위기 선도국'→'기후 악당국'으로

우리는 그동안 한 게 없었을까요? 아닙니다.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2009년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녹색성장위원회'를 만들고, 그 다음해에는 관련 법인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도 제정했습니다. 기후위기 대응 선도국인 영국과 큰 차이가 없었던 거죠.

출발은 이렇게 야심 찼지만, 결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탄소감축을 정부 정책으로 내세웠던 이명박 정부는 2011년 대규모 정전 사태 이후 신규 석탄발전소 건설 계획을 세웠습니다. 올해 정부가 발표한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있는 '신규 석탄발전소 유지 방안'은 사실 10년 전 이명박 정부로부터 시작된 겁니다

'2020년까지 탄소를 약 5억 톤 규모로 줄이겠다.'던 이명박 정부의 목표는 박근혜 정부 때 슬그머니 2030년으로 미뤄졌습니다. 이명박 정부 때 대통령 직속이었던 '녹색성장위원회'는 박근혜 정부 들어서 국무총리 직속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탄소 배출은 계속 늘어 2018년 기준 7억 2천만 톤까지 치솟았습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지난 10년을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이명박 정부 당시 야심 차게 법과 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온실가스(탄소) 감축 목표를 박근혜 정부가 신경을 안 썼고 이행 점검에 소홀했죠. 초기에 잘했으면 성과가 있었을 텐데…."

결국, '탄소 감축'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탄소 배출은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국제 사회는 우리나라를 '기후 악당국'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 그럼에도 다시, '탄소중립'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탄소중립이 '결코 쉽지 않은 목표'이지만 우리의 책임을 다하겠다." 제76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2050 탄소중립'에 대한 의지도 분명했습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에서도 위원회 구성은 계속 늦어졌습니다. 탄소중립위원회가 출범한 건 지난 5월 29일. 대통령의 '탄소중립 선언' 이후 7개월 지나고서입니다. 그리고 두 달 만에 내 놓은 시나리오는 '신뢰성'을 두고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대로 포기해야 하는 걸까요?

박진희 / 동국대 다르마칼리지 교수
"영국 기후변화위원회 위상과 조직 구성 부분들을 벤치마킹해서, 현재 탄소중립위원회가 전담기구로서 위상을 갖출 수 있도로 법적·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요."

아닙니다. 탄소중립위원회에 대한 법과 제도 지원이 절실한 시점입니다. '탄소중립'이란 목표는 전 세계가 동참하고 있고, 또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늦었다고 포기할 수도, 그렇다고 돌아갈 수도 없는 이유입니다.

탄소중립이 더이상 '선택'이 아닌 '의무'인 더 중요한 이유는 또 있습니다. 바로 우리 '미래 세대'의 삶을 결정짓는 중차대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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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어쩌다 ‘악당’이 됐을까?…기후위기 ‘잃어버린 10년’
    • 입력 2021-08-19 06:17:31
    • 수정2021-09-24 16:37:52
    취재후·사건후

"정부의 준비 부족이죠. 위원회를 미리 꾸렸다면 이런 시나리오는 나오지 않았겠죠?"

탄소중립위원회에 대한 환경·기후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한 말입니다. '탄소중립'이 불가능하다는 내용의 시나리오를 발표하고, 영국에서 더는 쓰지 않는 예전 자료를 가져와서 설명한 탄소중립위원회를 한편으론 이해한다는 의미였습니다.

내부 상황도 다르지 않습니다. 탄소중립위원회 위원들은 정부가 주는 제한적인 자료만을 보고 30년 후의 미래 모습을 그려야 했습니다. 그나마 주어진 시간도 두 달 남짓이었습니다. '탄소중립이 불가능하다'는 정부 측 시나리오 2개를 받고, 2050년 탄소 순 배출 제로(0)인 시나리오를 하나 더 만든 게 성과라면 성과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최초의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발표되자마자 '폐기하라!'는 비판에 직면해 있습니다.

[연관기사] ‘탄소중립 시나리오’ 흔들…“시민 기만 시나리오 폐기해야” (KBS 뉴스9 2021.8.14)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256287


■ 우리와 달라도 너무 다른 영국 '기후변화위원회'

우리나라 탄소중립위원회가 '벤치마킹'했다는 영국.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고 싶은 부분만 가져와 참고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정말 우리가 꼭 참고해야 할 '영국 모델'을 자세히 들여다 보겠습니다.

영국은 이미 탄소를 많이 줄였습니다. 2016년에 1990년 대비 탄소를 42% 감축했습니다. 올해는 2035년까지 탄소를 78%까지 줄이겠다는 목표를 내놨습니다. 우리나라의 2030년 탄소 감축 목표는 아직 2017년 대비 24.4%에 불과합니다.

이처럼 영국이 '탄소중립'에서 앞서 나갈 수 있었던 비결은 '기후변화위원회'였습니다.

영국은 2008년, 탄소 감축 목표를 정한 '기후변화법'을 세계 최초로 통과시켰습니다. 법을 만들면서 기후변화에 대한 전문 기관을 만들었는데, 그게 바로 영국 기후변화위원회(Committee on Climate Change)입니다.


영국 '기후변화위원회'는 법적으로 독립기구입니다. 그래서 정부 각 부처의 입김에서 자유롭습니다. 오히려 영국 정부가 기후변화위원회의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예산도 한 해 370만 유로 (약 50억 원), 전문 연구인력도 30명이나 배치돼 있습니다. 위원들도 정기적으로 출근합니다.

우리나라 탄소중립위원회는 어떨까요? 설립 근거는 '대통령 훈령'입니다. 정권이 바뀌면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전문 연구인력도 없어 정부 연구기관에서 주는 자료에 의지해야 합니다. 예산도 이전 국가기후환경회의에서 쓰다 남은 40억 원을 넘겨받아 사용하고 있습니다. 위원들은 회의가 있을 때만 나오는 '비상근'입니다.


■ '잃어버린 10년', '기후위기 선도국'→'기후 악당국'으로

우리는 그동안 한 게 없었을까요? 아닙니다.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2009년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녹색성장위원회'를 만들고, 그 다음해에는 관련 법인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도 제정했습니다. 기후위기 대응 선도국인 영국과 큰 차이가 없었던 거죠.

출발은 이렇게 야심 찼지만, 결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탄소감축을 정부 정책으로 내세웠던 이명박 정부는 2011년 대규모 정전 사태 이후 신규 석탄발전소 건설 계획을 세웠습니다. 올해 정부가 발표한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있는 '신규 석탄발전소 유지 방안'은 사실 10년 전 이명박 정부로부터 시작된 겁니다

'2020년까지 탄소를 약 5억 톤 규모로 줄이겠다.'던 이명박 정부의 목표는 박근혜 정부 때 슬그머니 2030년으로 미뤄졌습니다. 이명박 정부 때 대통령 직속이었던 '녹색성장위원회'는 박근혜 정부 들어서 국무총리 직속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탄소 배출은 계속 늘어 2018년 기준 7억 2천만 톤까지 치솟았습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지난 10년을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이명박 정부 당시 야심 차게 법과 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온실가스(탄소) 감축 목표를 박근혜 정부가 신경을 안 썼고 이행 점검에 소홀했죠. 초기에 잘했으면 성과가 있었을 텐데…."

결국, '탄소 감축'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탄소 배출은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국제 사회는 우리나라를 '기후 악당국'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 그럼에도 다시, '탄소중립'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탄소중립이 '결코 쉽지 않은 목표'이지만 우리의 책임을 다하겠다." 제76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2050 탄소중립'에 대한 의지도 분명했습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에서도 위원회 구성은 계속 늦어졌습니다. 탄소중립위원회가 출범한 건 지난 5월 29일. 대통령의 '탄소중립 선언' 이후 7개월 지나고서입니다. 그리고 두 달 만에 내 놓은 시나리오는 '신뢰성'을 두고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대로 포기해야 하는 걸까요?

박진희 / 동국대 다르마칼리지 교수
"영국 기후변화위원회 위상과 조직 구성 부분들을 벤치마킹해서, 현재 탄소중립위원회가 전담기구로서 위상을 갖출 수 있도로 법적·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요."

아닙니다. 탄소중립위원회에 대한 법과 제도 지원이 절실한 시점입니다. '탄소중립'이란 목표는 전 세계가 동참하고 있고, 또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늦었다고 포기할 수도, 그렇다고 돌아갈 수도 없는 이유입니다.

탄소중립이 더이상 '선택'이 아닌 '의무'인 더 중요한 이유는 또 있습니다. 바로 우리 '미래 세대'의 삶을 결정짓는 중차대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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