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성 속 전쟁 같은 탈출”…대사는 양복도 못 챙겼다

입력 2021.08.19 (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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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호 주아프가니스탄대사가 18일 카타르 도하에서 화상 인터뷰를 통해 서울에 있는 취재진에게 대사관 철수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외교부 제공]최태호 주아프가니스탄대사가 18일 카타르 도하에서 화상 인터뷰를 통해 서울에 있는 취재진에게 대사관 철수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외교부 제공]

■ "양해를 구합니다"…양복도 못 챙겨온 대사

반소매 셔츠 차림으로 어제(18일) 오후 기자들과의 화상 인터뷰에 응한 최태호 주 아프가니스탄 대사는 카불을 빠져나올 때 양복 한 벌도 못 챙길 정도로 긴박했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양해를 구하자면 옷을 간편한 복장을 입고 있는데요. 양복을 카불에서 미처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지금 헬기를 타려면 저희가 가져가야 하는 가방이 30x30x20cm로 아주 작아서 아주 필수적 물품만 가지고 오느라 양복을 못 챙겼습니다."

최 대사는 탈레반이 이토록 빨리 카불을 장악할 줄 알지 못했다며 현지에서의 숨가빴던 대피 상황을 취재진에 전했습니다.


■ "대사관 20분 거리에 탈레반"…다급한 탈출 공지

최 대사가 위기를 감지한 건 현지시간 15일 오전 11시 30분. 외교부 본부와 화상회의를 막 마친 최 대사는 탈레반 부대가 대사관에서 차량으로 20분 떨어진 곳까지 진입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화상회의를 본부하고 개최하고 있었던 상황인데, 회의 말미쯤 대사관 경비하는 경비업체로부터 탈레반 부대가 대사관에서 차량으로 20분 정도 떨어진 장소까지 진입해왔다는 보고를 먼저 받았습니다."

곧 이어 우방국 대사관으로부터 우리 측에 '바로 탈출하라'는 긴급 공지가 전달됐습니다. 이후 평소 친하게 지낸 우방국 대사 서너 명과 전화 통화를 했는데, "정말 급한 상황이니 빨리 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난 뒤 대사관 폐쇄와 직원 철수를 결심했습니다.


■ 공관원들의 1차 탈출…교민 1명은 잔류

대사관은 잠정 폐쇄됐고, 직원들의 1차 철수가 시작됐습니다. 매뉴얼대로 대사관 내 주요 문서 등을 파기하고 잠금 장치를 한 뒤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우방국 대사관으로 이동했습니다. 이후 공항까지는 우방국의 헬기로 이동했다고 합니다.

이날 오후 5시쯤 최 대사를 포함한 공관원 3명을 제외한 직원들은 1차 출국 수속을 완료했습니다. 최 대사 등은 인근에서 사업장 운영을 이유로 잔류를 희망한 우리 교민 지원을 위해 일단 현지에 남기로 했습니다.

이 과정에 공습경보가 울리면서 대사관 직원들은 공항 대합실에 1시간 정도 대피해 있었고, 경보가 멈추고 나서야 비행기는 이륙에 성공했습니다.

현지시간 지난 16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미군 C-17 수송기가 이륙을 위해 활주로를 따라 이동하자 탑승하지 못한 아프간 시민 수백 명이 수송기를 따라 내달리고 있다. [사진=AP 연합뉴스]현지시간 지난 16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미군 C-17 수송기가 이륙을 위해 활주로를 따라 이동하자 탑승하지 못한 아프간 시민 수백 명이 수송기를 따라 내달리고 있다. [사진=AP 연합뉴스]

■ 공항 곳곳서 총성…"전쟁이었다"

15일 저녁부터 상황은 더 악화됐다고 합니다. 특히 공항이 아수라장이었습니다.

각국 대사관 직원들이 대피를 위해 밀려온 데다, 탈레반을 피하려는 아프간인들은 활주로를 점거하고 필사적으로 항공기에 매달리기까지 했습니다. 아프간인 중엔 총기를 소지한 이들도 있어 총성도 들렸습니다.

최 대사는 당시 상황을 '전쟁'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아프간 군중이 다 모여서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 이분들은 또 총기도 소지하고 있어서 15일 저녁부터 계속 총소리도 들리고…흔히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전쟁과 같은 그런 비슷한 상황이라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지난 15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미군 C-17 수송기가 국외로 탈출하는 주민들을 가득 태운 채 카타르로 향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연합뉴스]지난 15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미군 C-17 수송기가 국외로 탈출하는 주민들을 가득 태운 채 카타르로 향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 군수송기 바닥에 오밀조밀…마지막 1인의 카불 탈출

상황이 급변하자 마지막 교민 한 명은 카불을 빠져나오는 쪽으로 마음을 바꿨습니다.

"저 포함 몇몇 직원만 남아 설득 작업하러 온 것 보고 마음이 변하신 것 같아요. 나도 철수하겠다. 대사관 분들께 미안하다고…"

이후 16일에 출발하는 미군 수송기에 해당 교민과 최 대사 등 공관원 3명의 자리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활주로는 아프간 군중에 막혔던 상황. 다음날 새벽 미군이 상황을 정리한 뒤에야 이륙할 수 있었습니다. 예정된 시각보다 12시간이나 흐른 뒤였습니다. 수송기엔 미국인, 제3국인, 아프간인들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아주 큰 수송기이고요. 자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그냥 바닥에… 거의 우리 옛날에 배 타듯이 다 오밀조밀 모여앉아서 그렇게 타는 비행기였고요. 탑승자 대부분은 미국 사람들이었습니다. 우선순위가 미국인한테 있어서. 그 외에 저와 같은 제3국인, 아프간인도 일부 있었습니다."

지난 17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 마련된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의 기자회견장에 탈레반기가 설치되고 있다. [사진=AP 연합뉴스]지난 17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 마련된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의 기자회견장에 탈레반기가 설치되고 있다. [사진=AP 연합뉴스]

■ 외교부 "한-아프간 협력사업은 모두 중단"

외교부는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탈레반에 의해 사실상 사라지면서 당분간 아프간과의 협력사업을 추진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최 대사는 "아프간 정부와 협력하다가 (긴급히) 소개하면서 모든 게 중단됐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아프간 정부와 협력은 대부분 유엔개발계획(UNDP) 등 국제기구, 우방국 신탁기금을 통해 공동으로 이뤄지며, 지난 3월 미군 철수 발표 이후 신규사업 진행을 보류해 소개로 인해 협력사업이 큰 타격을 받지는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당분간 주 아프간 대사관의 업무는 주 카타르 대사관에서 임시 수행됩니다. 최 대사는 "대사관은 현지 상황을 파악하고 향후 탈레반의 정권 수립 동향이 어떻게 되는지 국제사회 대처를 파악하면서 국제사회 공동 대응에 참여하고자 한다"고 밝혔습니다.

현지 교민과 대사관 직원들의 탈출작전을 무사히 마친 최 대사는 탈출이 워낙 긴박하게 이뤄졌던 탓에 가족들과 아직 전화 통화도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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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총성 속 전쟁 같은 탈출”…대사는 양복도 못 챙겼다
    • 입력 2021-08-19 06: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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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호 주아프가니스탄대사가 18일 카타르 도하에서 화상 인터뷰를 통해 서울에 있는 취재진에게 대사관 철수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외교부 제공]
■ "양해를 구합니다"…양복도 못 챙겨온 대사

반소매 셔츠 차림으로 어제(18일) 오후 기자들과의 화상 인터뷰에 응한 최태호 주 아프가니스탄 대사는 카불을 빠져나올 때 양복 한 벌도 못 챙길 정도로 긴박했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양해를 구하자면 옷을 간편한 복장을 입고 있는데요. 양복을 카불에서 미처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지금 헬기를 타려면 저희가 가져가야 하는 가방이 30x30x20cm로 아주 작아서 아주 필수적 물품만 가지고 오느라 양복을 못 챙겼습니다."

최 대사는 탈레반이 이토록 빨리 카불을 장악할 줄 알지 못했다며 현지에서의 숨가빴던 대피 상황을 취재진에 전했습니다.


■ "대사관 20분 거리에 탈레반"…다급한 탈출 공지

최 대사가 위기를 감지한 건 현지시간 15일 오전 11시 30분. 외교부 본부와 화상회의를 막 마친 최 대사는 탈레반 부대가 대사관에서 차량으로 20분 떨어진 곳까지 진입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화상회의를 본부하고 개최하고 있었던 상황인데, 회의 말미쯤 대사관 경비하는 경비업체로부터 탈레반 부대가 대사관에서 차량으로 20분 정도 떨어진 장소까지 진입해왔다는 보고를 먼저 받았습니다."

곧 이어 우방국 대사관으로부터 우리 측에 '바로 탈출하라'는 긴급 공지가 전달됐습니다. 이후 평소 친하게 지낸 우방국 대사 서너 명과 전화 통화를 했는데, "정말 급한 상황이니 빨리 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난 뒤 대사관 폐쇄와 직원 철수를 결심했습니다.


■ 공관원들의 1차 탈출…교민 1명은 잔류

대사관은 잠정 폐쇄됐고, 직원들의 1차 철수가 시작됐습니다. 매뉴얼대로 대사관 내 주요 문서 등을 파기하고 잠금 장치를 한 뒤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우방국 대사관으로 이동했습니다. 이후 공항까지는 우방국의 헬기로 이동했다고 합니다.

이날 오후 5시쯤 최 대사를 포함한 공관원 3명을 제외한 직원들은 1차 출국 수속을 완료했습니다. 최 대사 등은 인근에서 사업장 운영을 이유로 잔류를 희망한 우리 교민 지원을 위해 일단 현지에 남기로 했습니다.

이 과정에 공습경보가 울리면서 대사관 직원들은 공항 대합실에 1시간 정도 대피해 있었고, 경보가 멈추고 나서야 비행기는 이륙에 성공했습니다.

현지시간 지난 16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미군 C-17 수송기가 이륙을 위해 활주로를 따라 이동하자 탑승하지 못한 아프간 시민 수백 명이 수송기를 따라 내달리고 있다. [사진=AP 연합뉴스]
■ 공항 곳곳서 총성…"전쟁이었다"

15일 저녁부터 상황은 더 악화됐다고 합니다. 특히 공항이 아수라장이었습니다.

각국 대사관 직원들이 대피를 위해 밀려온 데다, 탈레반을 피하려는 아프간인들은 활주로를 점거하고 필사적으로 항공기에 매달리기까지 했습니다. 아프간인 중엔 총기를 소지한 이들도 있어 총성도 들렸습니다.

최 대사는 당시 상황을 '전쟁'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아프간 군중이 다 모여서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 이분들은 또 총기도 소지하고 있어서 15일 저녁부터 계속 총소리도 들리고…흔히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전쟁과 같은 그런 비슷한 상황이라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지난 15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미군 C-17 수송기가 국외로 탈출하는 주민들을 가득 태운 채 카타르로 향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 군수송기 바닥에 오밀조밀…마지막 1인의 카불 탈출

상황이 급변하자 마지막 교민 한 명은 카불을 빠져나오는 쪽으로 마음을 바꿨습니다.

"저 포함 몇몇 직원만 남아 설득 작업하러 온 것 보고 마음이 변하신 것 같아요. 나도 철수하겠다. 대사관 분들께 미안하다고…"

이후 16일에 출발하는 미군 수송기에 해당 교민과 최 대사 등 공관원 3명의 자리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활주로는 아프간 군중에 막혔던 상황. 다음날 새벽 미군이 상황을 정리한 뒤에야 이륙할 수 있었습니다. 예정된 시각보다 12시간이나 흐른 뒤였습니다. 수송기엔 미국인, 제3국인, 아프간인들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아주 큰 수송기이고요. 자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그냥 바닥에… 거의 우리 옛날에 배 타듯이 다 오밀조밀 모여앉아서 그렇게 타는 비행기였고요. 탑승자 대부분은 미국 사람들이었습니다. 우선순위가 미국인한테 있어서. 그 외에 저와 같은 제3국인, 아프간인도 일부 있었습니다."

지난 17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 마련된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의 기자회견장에 탈레반기가 설치되고 있다. [사진=AP 연합뉴스]
■ 외교부 "한-아프간 협력사업은 모두 중단"

외교부는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탈레반에 의해 사실상 사라지면서 당분간 아프간과의 협력사업을 추진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최 대사는 "아프간 정부와 협력하다가 (긴급히) 소개하면서 모든 게 중단됐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아프간 정부와 협력은 대부분 유엔개발계획(UNDP) 등 국제기구, 우방국 신탁기금을 통해 공동으로 이뤄지며, 지난 3월 미군 철수 발표 이후 신규사업 진행을 보류해 소개로 인해 협력사업이 큰 타격을 받지는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당분간 주 아프간 대사관의 업무는 주 카타르 대사관에서 임시 수행됩니다. 최 대사는 "대사관은 현지 상황을 파악하고 향후 탈레반의 정권 수립 동향이 어떻게 되는지 국제사회 대처를 파악하면서 국제사회 공동 대응에 참여하고자 한다"고 밝혔습니다.

현지 교민과 대사관 직원들의 탈출작전을 무사히 마친 최 대사는 탈출이 워낙 긴박하게 이뤄졌던 탓에 가족들과 아직 전화 통화도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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