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흉물 ‘빈집’ 이행강제금으로 해결될까?

입력 2021.08.20 (09:47)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부산의 빈집 밀집 지역부산의 빈집 밀집 지역

지역마다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어김없이 빈집들이 있습니다.

빈집은 관리의 손길이 닿지 않아 위생에 나쁩니다. 일대가 우범 지역으로 전락하기도 합니다. 낡은 빈집이 무너지는 등 안전 사고 위험도 큽니다. 도시로 떠난 사람들이 남기고 간 빈집, 지방의 인구 유출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잘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합니다.

■ 사놓고 방치한 낡은 빈집…결국 무너져 인근 주민 대피

제2의 도시, 부산은 '빈집 문제'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합니다.

부산의 한 시장 뒷골목을 찾았습니다.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은 것 같은 집들이 줄지어 들어서 있습니다. 우체통에는 오래돼 삭은 우편물이 한가득 쌓여 있습니다. 깨진 채 방치된 창문 탓에 주변은 더욱 을씨년스럽습니다.

골목길을 따라 조금 더 들어가 봅니다. 건물 사이로 철거 중인 건물 한 채가 보였습니다. 울타리를 쳐 사람들의 접근을 막고 있었는데요. 알고 보니 낡은 빈집 한 채가 지난달 일부 무너져 구청이 철거 중이었습니다.

철거 중인 빈집에 울타리를 쳐 놓은 모습철거 중인 빈집에 울타리를 쳐 놓은 모습

당시 붕괴된 건물이 기울어지면서 뒷집 주민까지 임시로 대피했습니다.

취재진은 집에 물건을 가지러 온 피해 주민을 우연히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해당 주민은 피해 보상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앞집 주인을 수소문했다가 황당한 얘기를 들었습니다. 집 주인이 자신이 집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겁니다. 재개발을 염두에 두고 집을 사놓고 오랜 세월 그대로 방치한 겁니다.

■ 부산 빈집 30%는 낡아서 못 쓰는 3·4등급…철거도 어려워

이곳을 포함해 부산에는 지난해 기준 5,069채의 빈집이 있습니다. 서울과 인천, 대전, 광주 등 지난해 빈집 실태를 조사한 지방자치단체 중 가장 많았습니다.

다음으로 빈집이 많은 인천이 3,976여 채였던 것과 비교하면 부산에 빈집이 얼마나 많은지 짐작이 가실 텐데요.


부산지역 빈집 가운데 1,479채, 즉 전체의 30%가량은 앞선 사례처럼 안전 문제로 더는 주거 공간으로 사용할 수 없는 3·4등급의 빈집입니다.

부산시는 1·2등급 빈집의 경우 예산을 들여 정비한 뒤 주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재사용하는 사업을 해왔는데요.

문제는 3·4등급 빈집입니다. 오래되고 낡아 더이상 손 쓸 수 없어 철거 말고는 뾰족한 대책이 없기 때문이죠.

방치된 빈집 내부 모습방치된 빈집 내부 모습

지자체가 철거 비용을 일부 지원해도
집주인에게 철거 동의를 받는 건 쉽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다녀가지 않은 집주인을 찾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인데다 집주인을 찾아도 나머지 철거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하면 꺼리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자치단체 직권으로 빈집을 철거할 수도 있지만 안전사고나 범죄 발생 우려가 큰 경우 등 아주 제한적인 상황에서만 가능합니다. 게다가 철거 이후 재산권 분쟁이 벌어질 우려도 있고 예산도 걸림돌입니다.

■ 위험한 빈집 방치하는 주인에게 '이행강제금'…경제적 약자 우려도

국토교통부가 빈집을 주인 스스로 관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안을 내놨습니다. 바로 자치단체의 안전 조치나 철거 명령을 따르지 않는 빈집 주인에게 이행 강제금을 물리는 건데요.

이런 내용을 담은 '빈집과 소규모 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이 개정돼 오는 10월 중순부터 시행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행 강제금은 건축물 시가 표준액을 기준으로 '안전 조치 명령'을 따르지 않은 경우 시가 표준액 절반의 40%, '철거 명령'을 따르지 않은 경우 80%를 부과합니다.

또, 이행 강제금을 한 번만 내면 끝나는 게 아니라 조치가 이뤄질 때까지 1년에 2차례 해마다 부과할 수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빈집을 일부러 방치하는 게 아니라 관리할 여력이 없는 사람들도 분명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정주철 부산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재개발만 바라보면서 빈집을 방치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정책이 어느 정도 유효하지만, 정말로 경제적 능력이 부족한 경우에는 정부가 보조해 주는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오랫동안 주변 미관을 해치고 안전사고 우려까지 낳으며 사회 문제로 떠오른 빈집, 이번 조치로 달라질 수 있을까요?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도심 흉물 ‘빈집’ 이행강제금으로 해결될까?
    • 입력 2021-08-20 09:47:08
    취재K
부산의 빈집 밀집 지역
지역마다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어김없이 빈집들이 있습니다.

빈집은 관리의 손길이 닿지 않아 위생에 나쁩니다. 일대가 우범 지역으로 전락하기도 합니다. 낡은 빈집이 무너지는 등 안전 사고 위험도 큽니다. 도시로 떠난 사람들이 남기고 간 빈집, 지방의 인구 유출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잘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합니다.

■ 사놓고 방치한 낡은 빈집…결국 무너져 인근 주민 대피

제2의 도시, 부산은 '빈집 문제'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합니다.

부산의 한 시장 뒷골목을 찾았습니다.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은 것 같은 집들이 줄지어 들어서 있습니다. 우체통에는 오래돼 삭은 우편물이 한가득 쌓여 있습니다. 깨진 채 방치된 창문 탓에 주변은 더욱 을씨년스럽습니다.

골목길을 따라 조금 더 들어가 봅니다. 건물 사이로 철거 중인 건물 한 채가 보였습니다. 울타리를 쳐 사람들의 접근을 막고 있었는데요. 알고 보니 낡은 빈집 한 채가 지난달 일부 무너져 구청이 철거 중이었습니다.

철거 중인 빈집에 울타리를 쳐 놓은 모습
당시 붕괴된 건물이 기울어지면서 뒷집 주민까지 임시로 대피했습니다.

취재진은 집에 물건을 가지러 온 피해 주민을 우연히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해당 주민은 피해 보상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앞집 주인을 수소문했다가 황당한 얘기를 들었습니다. 집 주인이 자신이 집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겁니다. 재개발을 염두에 두고 집을 사놓고 오랜 세월 그대로 방치한 겁니다.

■ 부산 빈집 30%는 낡아서 못 쓰는 3·4등급…철거도 어려워

이곳을 포함해 부산에는 지난해 기준 5,069채의 빈집이 있습니다. 서울과 인천, 대전, 광주 등 지난해 빈집 실태를 조사한 지방자치단체 중 가장 많았습니다.

다음으로 빈집이 많은 인천이 3,976여 채였던 것과 비교하면 부산에 빈집이 얼마나 많은지 짐작이 가실 텐데요.


부산지역 빈집 가운데 1,479채, 즉 전체의 30%가량은 앞선 사례처럼 안전 문제로 더는 주거 공간으로 사용할 수 없는 3·4등급의 빈집입니다.

부산시는 1·2등급 빈집의 경우 예산을 들여 정비한 뒤 주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재사용하는 사업을 해왔는데요.

문제는 3·4등급 빈집입니다. 오래되고 낡아 더이상 손 쓸 수 없어 철거 말고는 뾰족한 대책이 없기 때문이죠.

방치된 빈집 내부 모습
지자체가 철거 비용을 일부 지원해도
집주인에게 철거 동의를 받는 건 쉽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다녀가지 않은 집주인을 찾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인데다 집주인을 찾아도 나머지 철거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하면 꺼리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자치단체 직권으로 빈집을 철거할 수도 있지만 안전사고나 범죄 발생 우려가 큰 경우 등 아주 제한적인 상황에서만 가능합니다. 게다가 철거 이후 재산권 분쟁이 벌어질 우려도 있고 예산도 걸림돌입니다.

■ 위험한 빈집 방치하는 주인에게 '이행강제금'…경제적 약자 우려도

국토교통부가 빈집을 주인 스스로 관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안을 내놨습니다. 바로 자치단체의 안전 조치나 철거 명령을 따르지 않는 빈집 주인에게 이행 강제금을 물리는 건데요.

이런 내용을 담은 '빈집과 소규모 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이 개정돼 오는 10월 중순부터 시행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행 강제금은 건축물 시가 표준액을 기준으로 '안전 조치 명령'을 따르지 않은 경우 시가 표준액 절반의 40%, '철거 명령'을 따르지 않은 경우 80%를 부과합니다.

또, 이행 강제금을 한 번만 내면 끝나는 게 아니라 조치가 이뤄질 때까지 1년에 2차례 해마다 부과할 수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빈집을 일부러 방치하는 게 아니라 관리할 여력이 없는 사람들도 분명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정주철 부산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재개발만 바라보면서 빈집을 방치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정책이 어느 정도 유효하지만, 정말로 경제적 능력이 부족한 경우에는 정부가 보조해 주는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오랫동안 주변 미관을 해치고 안전사고 우려까지 낳으며 사회 문제로 떠오른 빈집, 이번 조치로 달라질 수 있을까요?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