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력은 제외’라고? 언론중재법 따져봤습니다

입력 2021.08.24 (15:58) 수정 2021.08.24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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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벌적 손해배상제 등을 핵심으로 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오늘(2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심의를 앞두고 있습니다.

언론단체와 국민의힘, 정의당 등 야당의 반대가 계속되자 민주당은 당 지도부가 앞다퉈 언론중재법 통과의 당위성을 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언론중재법의 '팩트'를 알려주겠다는 민주당의 설명에도 정작 사실관계가 다른 부분이 잇따라 확인되고 있습니다.

■ '현직' 고위 공무원만 예외...전직 대통령, 공무원 가족, 법인은?


민주당 송영길 대표가 어제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언론중재법 관련 팩트체크라며 정치경제권력 모두 손해배상 청구 대상에서 제외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는 일부만 사실입니다.

민주당의 개정안을 보면 정치권력 중 징벌적 손해배상제에서 예외로 정해놓은 것은 1급 이상 현직 고위공무원, 국회의원 등 선출직 공무원입니다.

현직만 예외이므로, 이 법이 통과된다면 이명박 전 대통령이나 박근혜 전 대통령 등 전직 대통령, 5.18 관련 재판을 받고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 최순실 씨 등 공무원이 아닌 비선실세 등은 언론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내년 4월 퇴임 이후라면 역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

공무원 본인만 예외이기 때문에 공무원 본인이 아닌 가족 등에 대한 보도도 징벌적 손해배상제 적용 대상이 됩니다.

최근 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소속 국회의원들의 부동산 투기와 관련해서 엄정하게 대응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특히 민주당의 경우 국회의원 본인이 아닌 가족이 투기했을 경우에도 똑같이 대응한다는 방침을 천명했습니다.

하지만 언론중재법에서는 이 방침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면 공무원이 본인이 아닌 가족의 이름으로 부동산 투기 등 비리를 저질렀을 경우, 이에 대한 비판 보도를 한다면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염두에 둘 수밖에 없습니다.

개인만 예외이기 때문에, 개인이 소속된 법인이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악용할 수도 있습니다.

언론이 특정 자치단체장의 비리를 보도했을 경우, 자치단체장 개인이 아닌 자치단체가 대신 나서서 언론에 소송을 거는 경우가 지금도 종종 있습니다. 이 법이 그대로 통과된다면 이 같은 자치단체 명의의 소송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언론사 입장에는 소송이 들어오는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정치권력에 대한 보도가 위축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송영길 대표는 "권력자의 마음에 들지 않는 기사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우려도 가짜 뉴스"라며 '인터넷 기사열람권'도 삭제했다강조했습니다.

하지만 민주당의 언론중재법 어디에도 '인터넷 기사열람권'이란 단어는 없습니다.

아마 '열람차단청구권 표시 의무'의 오기로 보이는데, 정작 시민사회단체와 언론계에서 사실상 '기사 삭제 효과'를 불러 올 수 있다며 대표적 독소조항으로 꼽고 있는 '열람차단청구권'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 찬성하는 시민단체·학자들도 굉장히 많다? ...대다수는 "사회적 합의 필요"

"그러나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찬성하는 시민단체 찬성하는 학자들 찬성하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이 있고 국민의 대다수가 찬성하고 있습니다."
(민주당 김용민 의원,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오늘 아침, 민주당 미디어특위 위원장인 김용민 의원이 라디오에서 한 말입니다.

김 의원은 그러면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찬성하는 시민단체로 '민주언론시민연합', '민변', '언론인권센터'를 콕 집어서 얘기했습니다.

하지만 이들 시민단체들은 단순히 '찬성'이라는 김 의원의 말로는 포함하기 어려운 다양한 견해를 밝히고 있습니다.

'민언련'은 현재 언론중재법에 대해서 시민피해구제라는 취지는 살리지도 못하면서 언론의 비판적 역할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면서 전면 수정하라는 논평을 발표했습니다.

민변 역시 언론피해 구제라는 대의에 동의하지만, '열람차단청구권', '고의중과실 추정 조항'은 삭제돼야 한다면서 사회적 합의를 통해 법안을 논의하자고 주장했습니다.
지금 같은 민주당 주도의 강행 처리에는 반대하는 겁니다.

언론인권센터는 언론 보도 피해 시민들의 권익을 옹호하는 단체로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찬성한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인권센터 역시 현재 개정안의 기준은 미흡하다며 보완을 요구했고, 허위조작 보도의 개념도 불분명하다며, 고의중과실 추정 조항의 삭제를 요구했습니다.

지금의 법안은 더 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 "심각한 후유증 야기...실익보다 부작용이 더 커"


군부 독재 정권 시절 자유언론 투쟁에 나섰던 원로 언론인들도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자유언론실천재단은 어제 기자회견을 열고 '강행처리 중단하고 사회적 합의 나서라'라는 제목의 기자회견문을 발표했습니다.

회견문을 통해 "언론피해의 심각성과 피해자 구제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면서도 "이 법안을 그대로 통과시키는 것은 심각한 후유증을 야기할 것임은 명약관화하다"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그러면서 "시민사회와 학계, 언론 현업단체 등이 공동으로 참여해 사회적 합의를 이뤄낼 국회 내 특별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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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권력은 제외’라고? 언론중재법 따져봤습니다
    • 입력 2021-08-24 15:58:09
    • 수정2021-08-24 17:37:50
    취재K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을 핵심으로 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오늘(2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심의를 앞두고 있습니다.

언론단체와 국민의힘, 정의당 등 야당의 반대가 계속되자 민주당은 당 지도부가 앞다퉈 언론중재법 통과의 당위성을 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언론중재법의 '팩트'를 알려주겠다는 민주당의 설명에도 정작 사실관계가 다른 부분이 잇따라 확인되고 있습니다.

■ '현직' 고위 공무원만 예외...전직 대통령, 공무원 가족, 법인은?


민주당 송영길 대표가 어제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언론중재법 관련 팩트체크라며 정치경제권력 모두 손해배상 청구 대상에서 제외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는 일부만 사실입니다.

민주당의 개정안을 보면 정치권력 중 징벌적 손해배상제에서 예외로 정해놓은 것은 1급 이상 현직 고위공무원, 국회의원 등 선출직 공무원입니다.

현직만 예외이므로, 이 법이 통과된다면 이명박 전 대통령이나 박근혜 전 대통령 등 전직 대통령, 5.18 관련 재판을 받고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 최순실 씨 등 공무원이 아닌 비선실세 등은 언론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내년 4월 퇴임 이후라면 역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

공무원 본인만 예외이기 때문에 공무원 본인이 아닌 가족 등에 대한 보도도 징벌적 손해배상제 적용 대상이 됩니다.

최근 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소속 국회의원들의 부동산 투기와 관련해서 엄정하게 대응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특히 민주당의 경우 국회의원 본인이 아닌 가족이 투기했을 경우에도 똑같이 대응한다는 방침을 천명했습니다.

하지만 언론중재법에서는 이 방침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면 공무원이 본인이 아닌 가족의 이름으로 부동산 투기 등 비리를 저질렀을 경우, 이에 대한 비판 보도를 한다면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염두에 둘 수밖에 없습니다.

개인만 예외이기 때문에, 개인이 소속된 법인이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악용할 수도 있습니다.

언론이 특정 자치단체장의 비리를 보도했을 경우, 자치단체장 개인이 아닌 자치단체가 대신 나서서 언론에 소송을 거는 경우가 지금도 종종 있습니다. 이 법이 그대로 통과된다면 이 같은 자치단체 명의의 소송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언론사 입장에는 소송이 들어오는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정치권력에 대한 보도가 위축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송영길 대표는 "권력자의 마음에 들지 않는 기사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우려도 가짜 뉴스"라며 '인터넷 기사열람권'도 삭제했다강조했습니다.

하지만 민주당의 언론중재법 어디에도 '인터넷 기사열람권'이란 단어는 없습니다.

아마 '열람차단청구권 표시 의무'의 오기로 보이는데, 정작 시민사회단체와 언론계에서 사실상 '기사 삭제 효과'를 불러 올 수 있다며 대표적 독소조항으로 꼽고 있는 '열람차단청구권'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 찬성하는 시민단체·학자들도 굉장히 많다? ...대다수는 "사회적 합의 필요"

"그러나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찬성하는 시민단체 찬성하는 학자들 찬성하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이 있고 국민의 대다수가 찬성하고 있습니다."
(민주당 김용민 의원,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오늘 아침, 민주당 미디어특위 위원장인 김용민 의원이 라디오에서 한 말입니다.

김 의원은 그러면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찬성하는 시민단체로 '민주언론시민연합', '민변', '언론인권센터'를 콕 집어서 얘기했습니다.

하지만 이들 시민단체들은 단순히 '찬성'이라는 김 의원의 말로는 포함하기 어려운 다양한 견해를 밝히고 있습니다.

'민언련'은 현재 언론중재법에 대해서 시민피해구제라는 취지는 살리지도 못하면서 언론의 비판적 역할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면서 전면 수정하라는 논평을 발표했습니다.

민변 역시 언론피해 구제라는 대의에 동의하지만, '열람차단청구권', '고의중과실 추정 조항'은 삭제돼야 한다면서 사회적 합의를 통해 법안을 논의하자고 주장했습니다.
지금 같은 민주당 주도의 강행 처리에는 반대하는 겁니다.

언론인권센터는 언론 보도 피해 시민들의 권익을 옹호하는 단체로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찬성한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인권센터 역시 현재 개정안의 기준은 미흡하다며 보완을 요구했고, 허위조작 보도의 개념도 불분명하다며, 고의중과실 추정 조항의 삭제를 요구했습니다.

지금의 법안은 더 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 "심각한 후유증 야기...실익보다 부작용이 더 커"


군부 독재 정권 시절 자유언론 투쟁에 나섰던 원로 언론인들도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자유언론실천재단은 어제 기자회견을 열고 '강행처리 중단하고 사회적 합의 나서라'라는 제목의 기자회견문을 발표했습니다.

회견문을 통해 "언론피해의 심각성과 피해자 구제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면서도 "이 법안을 그대로 통과시키는 것은 심각한 후유증을 야기할 것임은 명약관화하다"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그러면서 "시민사회와 학계, 언론 현업단체 등이 공동으로 참여해 사회적 합의를 이뤄낼 국회 내 특별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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