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의 강물’ ‘별’ ‘앞으로 앞으로’ 작곡가 이수인 선생을 기리며

입력 2021.08.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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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슈베르트라고 불린 우리나라의 동요·가곡 작곡가 이수인 선생이 어제 고향인 경남 의령에서 영면에 들었다. 향년 82세.

소프라노 조수미는 이수인 선생의 부고 소식을 접하고 자신의 SNS에 이런 글을 남겼다.

"초등학교 4학년때였어요. 본선에 나가 6학년 언니에게 최우수상을 내주고 울먹거리고 있던 꼬마 조수미에게 심사위원이셨던 이수인 선생님께서 오셔서 '아주 잘 했는데 왜 울고 있니? 원래 큰 상은 언니들에게 양보하는 거야.'"하시며 어깨를 토닥토닥해주셨던 인자하신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중략) 선생님과의 소중한 만남과 은혜,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이수인 선생은 KBS 합창단원으로 활동하던 꼬마 조수미의 어머니에게 '춤', '피아노', '노래' 세 가지 모두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조수미를 '성악가'로 키우라고 조언한 결정적 멘토이기도 하다.

그런 특별한 인연을 추억하듯 이수인 선생의 빈소에는 소프라노 조수미의 화환이 큼지막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내 맘의 강물-
"수많은 날은 떠나갔어도 내 맘의 강물 끝없이 흐르네. 그날 그땐 지금은 없어도 내 맘의 강물 끝없이 흐르네. 새파란 하늘 저 멀리 구름은 두둥실 떠나고, 비바람 모진 된서리 지나간 자욱마다 맘 아파도...알알이 맺힌 고운 진주알 아롱아롱 더욱 빛나네. 그날 그땐 지금은 없어도 내맘의 강물 끝없이 흐르네."


'내 맘의 강물', '별', '고향의 노래' 등 150곡이 넘는 가곡과 '둥글게 둥글게', '앞으로', '방울꽃', '아빠의 얼굴', '목장의 노래' 등 500곡이 넘는 동요를 만들고 가사를 붙인 이수인 선생. 그런 선생이 계시지 않았다면 그만큼 우리 애창 가곡과 동요도 메말랐을 것이다.

이수인 선생은 한국 최초로 어머니 합창단을 만들었고, 이후 KBS어린이합창단 지휘자로 시작해 단장을 거쳐 동요작곡가단체인 파랑새창작동요회도 설립했다. 이처럼 한국 동요 문화 발전에 기여한 고인은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에는 서울 마포구 성산동 자택에서 동호인을 모아 매달 한 차례 '성산살롱음악회'를 열며 가곡 부흥에 힘을 쏟았다.

지난 2012년 나온 <작곡가 이수인의 삶과 음악>이라는 책에 선생은 이렇게 인사말을 남겼다.

"음악이 좋아 걸어온 길, 돌아보면 숱한 사연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가로수 그늘 짙은 포장길보다 울퉁불퉁한 돌부리가 더러는 발에 채이고 걸음 걸음 뽀얀 흙먼지 이는 비포장 황톳길. 부와 명예는 거리가 멀었고 그럴 듯한 직위 하나 없이 살아온 탓에 흔한 명함 한번 새겨 돌려 본 적 없지만, 호젓이 걷는 오솔길은 산새들 지키는 방울꽃이 곱게 피고 나래 푸른 기러기 고향 가는 길엔 길동무 되어 언제라도 만나면 반가운 벗들과 동행했다. 마음은 아직 29세 가슴은 뜨거운데 어느새 팔십이라는 숫자가 눈 앞에서 어른거린다. 끝없이 흐르네. 내 맘의 강물은... - 2012년 10월 어느날, 작곡가 이수인"

우리 음악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기고서도 자신의 공(功)을 드러내기를 한사코 마다했던 고 이수인 선생... 그 분의 생전 바람은 무엇이었을까?

"우리 같은 세대 사람들을 생각하면 음악은 오래 가야 되고 우리 역사와 더불어 발전해가야 되고, 우리 인간의 음악 발전은 마찬가지로 인간의 모든 생활과 마음도 발전해가야지 너무 순간적인 쾌락이라든가 그런 것 위주로 흐르는 경향이 많이 있기 때문에 그런 점은 우리가 반성하고 고쳐나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에게 그저 무언가 주고 싶어서 하다 보니 동요를 많이 작곡하게 되었다는 이수인 선생. 젊은 시절 피아노가 없어서 머릿속으로 음을 하나하나 상상하면서 작곡했다는 그가 염원한 것은, 그의 노래 '앞으로 앞으로'의 노랫말처럼 그보다 젊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고인은 떠났지만 그의 음악은 우리 곁에 남아 있을 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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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맘의 강물’ ‘별’ ‘앞으로 앞으로’ 작곡가 이수인 선생을 기리며
    • 입력 2021-08-26 09:00:32
    취재K
동양의 슈베르트라고 불린 우리나라의 동요·가곡 작곡가 이수인 선생이 어제 고향인 경남 의령에서 영면에 들었다. 향년 82세.

소프라노 조수미는 이수인 선생의 부고 소식을 접하고 자신의 SNS에 이런 글을 남겼다.

"초등학교 4학년때였어요. 본선에 나가 6학년 언니에게 최우수상을 내주고 울먹거리고 있던 꼬마 조수미에게 심사위원이셨던 이수인 선생님께서 오셔서 '아주 잘 했는데 왜 울고 있니? 원래 큰 상은 언니들에게 양보하는 거야.'"하시며 어깨를 토닥토닥해주셨던 인자하신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중략) 선생님과의 소중한 만남과 은혜,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이수인 선생은 KBS 합창단원으로 활동하던 꼬마 조수미의 어머니에게 '춤', '피아노', '노래' 세 가지 모두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조수미를 '성악가'로 키우라고 조언한 결정적 멘토이기도 하다.

그런 특별한 인연을 추억하듯 이수인 선생의 빈소에는 소프라노 조수미의 화환이 큼지막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내 맘의 강물-
"수많은 날은 떠나갔어도 내 맘의 강물 끝없이 흐르네. 그날 그땐 지금은 없어도 내 맘의 강물 끝없이 흐르네. 새파란 하늘 저 멀리 구름은 두둥실 떠나고, 비바람 모진 된서리 지나간 자욱마다 맘 아파도...알알이 맺힌 고운 진주알 아롱아롱 더욱 빛나네. 그날 그땐 지금은 없어도 내맘의 강물 끝없이 흐르네."


'내 맘의 강물', '별', '고향의 노래' 등 150곡이 넘는 가곡과 '둥글게 둥글게', '앞으로', '방울꽃', '아빠의 얼굴', '목장의 노래' 등 500곡이 넘는 동요를 만들고 가사를 붙인 이수인 선생. 그런 선생이 계시지 않았다면 그만큼 우리 애창 가곡과 동요도 메말랐을 것이다.

이수인 선생은 한국 최초로 어머니 합창단을 만들었고, 이후 KBS어린이합창단 지휘자로 시작해 단장을 거쳐 동요작곡가단체인 파랑새창작동요회도 설립했다. 이처럼 한국 동요 문화 발전에 기여한 고인은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에는 서울 마포구 성산동 자택에서 동호인을 모아 매달 한 차례 '성산살롱음악회'를 열며 가곡 부흥에 힘을 쏟았다.

지난 2012년 나온 <작곡가 이수인의 삶과 음악>이라는 책에 선생은 이렇게 인사말을 남겼다.

"음악이 좋아 걸어온 길, 돌아보면 숱한 사연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가로수 그늘 짙은 포장길보다 울퉁불퉁한 돌부리가 더러는 발에 채이고 걸음 걸음 뽀얀 흙먼지 이는 비포장 황톳길. 부와 명예는 거리가 멀었고 그럴 듯한 직위 하나 없이 살아온 탓에 흔한 명함 한번 새겨 돌려 본 적 없지만, 호젓이 걷는 오솔길은 산새들 지키는 방울꽃이 곱게 피고 나래 푸른 기러기 고향 가는 길엔 길동무 되어 언제라도 만나면 반가운 벗들과 동행했다. 마음은 아직 29세 가슴은 뜨거운데 어느새 팔십이라는 숫자가 눈 앞에서 어른거린다. 끝없이 흐르네. 내 맘의 강물은... - 2012년 10월 어느날, 작곡가 이수인"

우리 음악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기고서도 자신의 공(功)을 드러내기를 한사코 마다했던 고 이수인 선생... 그 분의 생전 바람은 무엇이었을까?

"우리 같은 세대 사람들을 생각하면 음악은 오래 가야 되고 우리 역사와 더불어 발전해가야 되고, 우리 인간의 음악 발전은 마찬가지로 인간의 모든 생활과 마음도 발전해가야지 너무 순간적인 쾌락이라든가 그런 것 위주로 흐르는 경향이 많이 있기 때문에 그런 점은 우리가 반성하고 고쳐나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에게 그저 무언가 주고 싶어서 하다 보니 동요를 많이 작곡하게 되었다는 이수인 선생. 젊은 시절 피아노가 없어서 머릿속으로 음을 하나하나 상상하면서 작곡했다는 그가 염원한 것은, 그의 노래 '앞으로 앞으로'의 노랫말처럼 그보다 젊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고인은 떠났지만 그의 음악은 우리 곁에 남아 있을 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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