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1명도 간신히 낳지 않을까?”…결혼 앞둔 예비 부부들의 좌절

입력 2021.08.26 (10:29) 수정 2021.08.26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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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결혼을 앞둔 20대 여성이 피켓을 들고 트럭 앞에 섰다. 트럭에 설치된 전광판에는 '웨딩홀 면적과 여건 고려 없이 무조건 49인? 일괄적인 결혼식 지침 수정하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이 여성은 최근 만들어진 '전국신혼부부연합회' 소속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 3·4단계에서는 결혼식장에는 최대 49명까지만 모일 수 있는 방역 수칙에 반대하는 예비 부부들이 단체를 만들어 트럭 시위 등을 하고 있다.

이들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 중 하나인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매일 같이 좌절감을 맛본다.

결혼식에 49명만 초대하려면 신랑 측과 신부 측에서 각각 24명 정도씩만 부를 수 있다. 가족·친척들만 간신히 가능한 숫자이고, 대가족인 경우 가족 중에서도 일부만 참석할 수 있다.

예비 부부들은 이런 방역 수칙이 다른 분야와 비교했을 때 불공평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술관이나 박물관 등은 시설면적 기준으로 인원 수를 제한하고 있는데, 결혼식장은 면적에 상관없이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형 마트나 백화점 같은 곳에선 수백 명이 모이고 식사도 하는데 결혼식장에선 그럴 수 없다는 점도 예비 부부들은 이해할 수 없다.

또, 방역 수칙에 대응하는 결혼식장의 태도도 예비 부부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 보통 결혼식장을 예약할 때 식사 보증 인원을 적게는 100명대에서 많게는 300명대 이상까지로 정하는데, 결혼식장이 이 인원을 아예 조정해주지 않거나 일부만 조정해주는 것이다.

결혼식을 연기하려면 위약금을 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위약금을 받지 말라는 등의 권고를 내놨지만, 현장에서는 잘 작동하지 않는다.

다음 달 초 결혼을 앞둔 한 예비 부부는 식장을 예약할 때 식사 보증 인원을 250명으로 했다. 식대는 1인당 4만 원씩 총 1,000만 원이었다.

'결혼식장 인원 49명 제한' 수칙이 적용되자 결혼식장에서는 식대는 무조건 550만 원이라고 안내했다. 1인당 식대를 10만 원 넘게 내고 음식 대접을 하라는 얘기다. 식사하지 않고 가는 사람들의 답례품 중에는 와인도 있는데, 한 병에 8,000원짜리라는 소문도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결혼식을 잡아놨다가 미루거나 아예 내년 이후에나 생각하겠다는 예비 부부들이 늘고 있다. 코로나19로 경제 상황이 안 좋아지면서 결혼을 미루는 사람들도 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올해 상반기 결혼 건수는 96,265건으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13,012건(11.9%) 감소했다.


결혼 건수는 결혼을 많이 하는 연령대인 30대 인구의 감소로 2012년 이후부터 줄고 있는데 2019년에는 전년 대비 7.2% 줄었던 게 지난해에는 10.7%, 올해는 상반기까지 12% 가까이 줄면서 감소 폭이 커졌다. 코로나19에 따른 이른바 '혼인 절벽'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미치는 영향이다. 우리나라는 출산 대부분이 결혼 이후에 이뤄지기 때문에 결혼이 줄면 출산도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출생아 가운데 97.5%는 결혼한 부부 사이에서 태어났다.


실제 예비 부부들의 생각은 어떨지 예비 신부 3명을 취재해봤는데, 모두 코로나19 때문에 결혼에 차질을 빚으면서 자녀 계획도 바뀌었거나 바뀔 것 같다고 말했다.

20대 예비 신부
"제가 20대 후반이기 때문에 30대가 되면 아이를 낳고 싶었어요. 그래서 한두 명 정도 낳을 계획이었는데, 지금 신랑과 저 모두 좀 많이 지쳐있는 상태고요. 제 주변에도 결혼을 미루면서 노산 걱정을 하시는 분들이 매우 많습니다."

30대 예비 신부
"임신해서 결혼을 준비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저 포함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혼인을 한 상태에서 자녀 계획을 할 거예요. 한국의 정서상으로도 그렇고요. 만약에 결혼식을 미룬다면 자녀 계획도 같이 미뤄질 것 같습니다. 그러면 사실 (아이가) 잘 생길지 이런 것도 걱정되고, 그러다 보면 딩크족으로 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결혼을 미룬 30대 예비 신부
"저는 30대 중반으로 가고 있고, 남편은 40대로 가고 있는데 노산이라든지 이런 거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좀 걱정이 되긴 해요. '여건이 되면 두 명을 낳아야지'라는 생각이었는데 이제 앞으로 결혼식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하다 보니까 저도 나이가 30대 중반을 넘어가면 노산 축에 속하기 때문에 한 명도 간신히 낳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되더라고요."

지난해 기준으로 첫째아 출산 시 평균 결혼 기간은 2.3년이다. 보통 결혼 후 2~3년 이후 아이를 낳는다는 얘긴데, 지금 생긴 '결혼 절벽'이 2~3년 후에는 출산율을 낮출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예비 부부들은 계속 결혼식장 방역 수칙을 바꿔 달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방역 당국은 그럴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지난 20일 브리핑에서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 반장은 "결혼식은 식사 등이 함께 동반되면서 장시간 밀폐된 실내에서 있게 된다"며 "방역적으로는 좀 위험도가 큰 여건인 점을 감안해야 하는 부분들이 있어서 이 부분들을 완화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을 양해해달라"고 말했다.

전국신혼부부연합회는 앞으로 요구 사항을 적은 대형 버스를 활용하는 방식 등으로 항의를 이어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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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1명도 간신히 낳지 않을까?”…결혼 앞둔 예비 부부들의 좌절
    • 입력 2021-08-26 10:29:28
    • 수정2021-08-26 10:29:59
    취재후·사건후

지난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결혼을 앞둔 20대 여성이 피켓을 들고 트럭 앞에 섰다. 트럭에 설치된 전광판에는 '웨딩홀 면적과 여건 고려 없이 무조건 49인? 일괄적인 결혼식 지침 수정하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이 여성은 최근 만들어진 '전국신혼부부연합회' 소속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 3·4단계에서는 결혼식장에는 최대 49명까지만 모일 수 있는 방역 수칙에 반대하는 예비 부부들이 단체를 만들어 트럭 시위 등을 하고 있다.

이들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 중 하나인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매일 같이 좌절감을 맛본다.

결혼식에 49명만 초대하려면 신랑 측과 신부 측에서 각각 24명 정도씩만 부를 수 있다. 가족·친척들만 간신히 가능한 숫자이고, 대가족인 경우 가족 중에서도 일부만 참석할 수 있다.

예비 부부들은 이런 방역 수칙이 다른 분야와 비교했을 때 불공평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술관이나 박물관 등은 시설면적 기준으로 인원 수를 제한하고 있는데, 결혼식장은 면적에 상관없이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형 마트나 백화점 같은 곳에선 수백 명이 모이고 식사도 하는데 결혼식장에선 그럴 수 없다는 점도 예비 부부들은 이해할 수 없다.

또, 방역 수칙에 대응하는 결혼식장의 태도도 예비 부부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 보통 결혼식장을 예약할 때 식사 보증 인원을 적게는 100명대에서 많게는 300명대 이상까지로 정하는데, 결혼식장이 이 인원을 아예 조정해주지 않거나 일부만 조정해주는 것이다.

결혼식을 연기하려면 위약금을 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위약금을 받지 말라는 등의 권고를 내놨지만, 현장에서는 잘 작동하지 않는다.

다음 달 초 결혼을 앞둔 한 예비 부부는 식장을 예약할 때 식사 보증 인원을 250명으로 했다. 식대는 1인당 4만 원씩 총 1,000만 원이었다.

'결혼식장 인원 49명 제한' 수칙이 적용되자 결혼식장에서는 식대는 무조건 550만 원이라고 안내했다. 1인당 식대를 10만 원 넘게 내고 음식 대접을 하라는 얘기다. 식사하지 않고 가는 사람들의 답례품 중에는 와인도 있는데, 한 병에 8,000원짜리라는 소문도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결혼식을 잡아놨다가 미루거나 아예 내년 이후에나 생각하겠다는 예비 부부들이 늘고 있다. 코로나19로 경제 상황이 안 좋아지면서 결혼을 미루는 사람들도 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올해 상반기 결혼 건수는 96,265건으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13,012건(11.9%) 감소했다.


결혼 건수는 결혼을 많이 하는 연령대인 30대 인구의 감소로 2012년 이후부터 줄고 있는데 2019년에는 전년 대비 7.2% 줄었던 게 지난해에는 10.7%, 올해는 상반기까지 12% 가까이 줄면서 감소 폭이 커졌다. 코로나19에 따른 이른바 '혼인 절벽'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미치는 영향이다. 우리나라는 출산 대부분이 결혼 이후에 이뤄지기 때문에 결혼이 줄면 출산도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출생아 가운데 97.5%는 결혼한 부부 사이에서 태어났다.


실제 예비 부부들의 생각은 어떨지 예비 신부 3명을 취재해봤는데, 모두 코로나19 때문에 결혼에 차질을 빚으면서 자녀 계획도 바뀌었거나 바뀔 것 같다고 말했다.

20대 예비 신부
"제가 20대 후반이기 때문에 30대가 되면 아이를 낳고 싶었어요. 그래서 한두 명 정도 낳을 계획이었는데, 지금 신랑과 저 모두 좀 많이 지쳐있는 상태고요. 제 주변에도 결혼을 미루면서 노산 걱정을 하시는 분들이 매우 많습니다."

30대 예비 신부
"임신해서 결혼을 준비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저 포함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혼인을 한 상태에서 자녀 계획을 할 거예요. 한국의 정서상으로도 그렇고요. 만약에 결혼식을 미룬다면 자녀 계획도 같이 미뤄질 것 같습니다. 그러면 사실 (아이가) 잘 생길지 이런 것도 걱정되고, 그러다 보면 딩크족으로 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결혼을 미룬 30대 예비 신부
"저는 30대 중반으로 가고 있고, 남편은 40대로 가고 있는데 노산이라든지 이런 거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좀 걱정이 되긴 해요. '여건이 되면 두 명을 낳아야지'라는 생각이었는데 이제 앞으로 결혼식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하다 보니까 저도 나이가 30대 중반을 넘어가면 노산 축에 속하기 때문에 한 명도 간신히 낳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되더라고요."

지난해 기준으로 첫째아 출산 시 평균 결혼 기간은 2.3년이다. 보통 결혼 후 2~3년 이후 아이를 낳는다는 얘긴데, 지금 생긴 '결혼 절벽'이 2~3년 후에는 출산율을 낮출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예비 부부들은 계속 결혼식장 방역 수칙을 바꿔 달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방역 당국은 그럴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지난 20일 브리핑에서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 반장은 "결혼식은 식사 등이 함께 동반되면서 장시간 밀폐된 실내에서 있게 된다"며 "방역적으로는 좀 위험도가 큰 여건인 점을 감안해야 하는 부분들이 있어서 이 부분들을 완화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을 양해해달라"고 말했다.

전국신혼부부연합회는 앞으로 요구 사항을 적은 대형 버스를 활용하는 방식 등으로 항의를 이어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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