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번째 부동산 대책? 이번엔 ‘한국은행의 시간’

입력 2021.08.28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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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로벌 금리 인상의 첨단에 선 한국은행 "금리 인상 여건이 성숙했다"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을 미국의 CNBC 방송은 '선진국 가운데 가장 빠르게 금리 인상으로 나아갔다'고 표현했다. 한국은행이 맨 앞줄에 섰단 이야기다.

선봉대가 된 이유, 한은은 세 가지를 댔다.

하나, 올해 성장세가 견조하다. 4.0%대의 성장이 예상된다. 수출이 좋고 비대면 소비가 좋아서 '대면 서비스 자영업' 부문의 부진을 만회한다. 둘, 백신 접종률이 높아지면 4분기에 대면 서비스도 좋아질 것이다. 셋, 물가가 2.1% 오를 것이다. 오름폭이 커졌다.

따라서 금리를 인상한다.

하지만 이는 부족한 설명이다. 다른 선진국들 다 마찬가지이고 백신 접종률과 물가는 대부분 우리보다 높다. 미국 연준을 비롯한 다른 선진국 중앙은행들은 물가 목표제의 이름까지 '평균 물가 목표제 Average Inflation Targeting'으로 바꾸는 중이다.

평균물가목표제는 통상의 물가목표인 2%를 훨씬 뛰어넘는 4~5%대의 물가 상승률이라 할지라도, 당분간은 성장 회복을 위해 감당하겠다는 정책 의지를 내포하고 있다. 미국이 그렇다.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는 '중앙은행의 변신'이 지금 일어나는 중이다.

이렇게 상황이 비슷한 다른 나라의 중앙은행들은 인내하고 있는데 우리만 먼저 나선 이유... 이 진짜 이유는 따로 있고, 모두가 알고 있듯 '집값 급등'이다.

■ '금융불균형'이라고 쓰고 '집값 급등'이라고 읽는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이 이유를 설명하는 한은의 방식이다. 이주열 총재는 '집값 급등'을 너무 자주 언급하는 대신 '금융불균형'이라는 언어를 주로 사용한다.

금융불균형이란, 경제 활력을 견인하겠다며 한 금리 인하가 국민경제 전반의 여건을 개선하는 대신 일부 자산시장의 거품을 키우는 현상을 의미한다. 실물경제는 적게 개선되고, 자산 거품은 많이 일어나니 불균형이다.

다른 한편, 이 과정에서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불어난 '가계부채' 역시 금융 불균형의 또 다른 모습이다.


이런 식으로 '집값 급등'을 '금융 불균형'이라고 '번역'하는 이유, 한은의 설립목적, 금과옥조인 '독립성' 때문이다.


한은의 설립목적 첫 줄은 물가 안정이다. 중앙은행인 한은을 정부 부처의 하나가 아니라 '독립기관'으로 따로 떼어놓은 이유는 '물가'다.

왜냐면 정치 권력이 움직이는 행정부는 '물가 안정' 보다는 '성장'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경기가 과열되더라도 성장이 일어나 유권자들의 지갑이 두툼해지면 기꺼이 이 길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물가를 관리할, 정치적 입김에서 자유로운 기관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한은은 그래서 '독립성'을 목숨처럼 여긴다.

그런 한은이 '금리 인상'이라는 칼을 다른 정부 부처처럼 '부동산 안정 대책'의 하나로 내놓을 수는 없다. 독립성을 부여한 설립근거에 맞는 명분이 필요하다. 그 명분이 찾아낸 단어가 '금융 불균형'이다.

'금융'은 한은 설립 목적의 첫째 줄은 아니지만(첫 줄은 당연히 물가다) 최소한 두 번째 줄에는 등장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효율적인 통화신용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통해 물가안정을 도모함으로써 나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합니다. 또한 이 과정에서 금융안정에도 유의하여야 합니다.
<한국은행 설립목적 첫머리(한은 홈페이지)>

■ 그만큼 다급하다...올 해 집값 상승률은 차원이 다르다

하나의 통계로 모든 상황을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때로 통계는 상황을 압축적으로 설명한다. 딱 한 가지 집값 통계만 봐야 한다면 2010년 이후 월별 집값 상승 통계 추이가 적당하다.


장기적으로 안정세를 유지하던 집값은 2017년(기준점, 100)을 전후로 서울에서 먼저 튀어 오르기 시작했다. 가파른 상승세는 이후 2019년까지 수도권이나 전국을 압도한다.

변화가 일어난 건 코로나 대책으로 초저금리 금융정책이 나온 뒤인 2020년부터다. 비교적 덜 가파르던 수도권 집값 상승 속도가 서울보다 빨라지기 시작했다. 지난 2020년 연말에는 서울을 추월했고, 올해 들어서는 그 속도가 더 빨라지기 시작했다.

코로나 대책이 서울 집값에 차별적으로 영향을 미치던 '유동성 잔치'를 수도권까지 확산시킨 것이다.

이 그래프에서 주목할 부분은 기울기(가파르기)다. 3~4년 전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한 집값 오름세가 수그러들기는 커녕 점점 더 가팔라지고 있다.

올해 들어 이 추세는 더 확산했다. 전국단위 상승세가 수도권과 동조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전국 주요 도시의 집값이 과거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수준으로 치솟고 있다.

중앙은행이 나서야만 했던 이유는 이 그래프 안에 있다.

■ 한은의 참전에 환호하는 장관들…"패닉바잉을 멈추라"

집값 안정 목적이 맨 앞에 있는 한은의 금리 인상에 일단 정부 부처 수장들은 환영의 말을 쏟아냈다.

홍남기 부총리도, 노형욱 국토부 장관도, 좀 전까지 금통위원이었던 고승범 금융위원장 후보자도 이구동성이다. 심지어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사견이라면서도) 한번으론 부족하다는 취지의 '과감한, 어찌 보면 월권이고 독립성 침해에도 해당되는 주문'까지 내놨다.


이 환영은 단순한 환영이 아니다. 의도가 담겨 있다. 과녁을 겨누고 쏜 화살과도 같다. 바로 주택시장 참여자들에 먹혀들었으면 하는 바람이 담긴 화살이다.

단순한 환영의 말이 '화살'이 될 수 있는 이유, 경제는 심리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말하면 지금은 2030의 패닉바잉을 멈추게 해야 한다. '집값이 더 오를 것'이라는 두려움을 풀어주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이들이 집값 매수 대열에서 이탈해야 한다. 대규모 공급계획도, 사전청약 발표도, 대출 규제도 모두 같은 과녁을 향해있다.


■ '집값 전쟁', 이제는 '한국은행의 시간'

25번에 걸쳐 나온 정부 대책은 결론적으로 실패했다. '시장을 왜곡시키기만 했다'는 혹평만 들었다. 오히려 '정부 말을 들으면 벼락 거지가 된다'는 불신을 조장하며 '패닉바잉'을 일으켰단 비판도 듣는다.

이 같은 25번의 실패 뒤에 나온 이번 한은의 금리 인상을 일부에선 '26번째 부동산 대책'이라고 부른다.

이주열 총재 역시 당장은 '독립성'보다는 집값 안정에 무게를 두고 있다. 금리 인상 발표 직후 이 총재는 "차입비용이 높아지고, 위험 선호 성향을 낮춰 주택가격 오름세를 둔화시킬 것"을 기대했고 그러면서 '이제 시작'이라며 추가 금리 인상까지 예고했다.


이번 대책은 효과가 있을 것인가, 그리고 한국은행의 독립성이라는 '금과옥조' 역시 무사할 것인가.

(인포그래픽: 권세라, 김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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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번째 부동산 대책? 이번엔 ‘한국은행의 시간’
    • 입력 2021-08-28 08:06:42
    취재K

■ 글로벌 금리 인상의 첨단에 선 한국은행 "금리 인상 여건이 성숙했다"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을 미국의 CNBC 방송은 '선진국 가운데 가장 빠르게 금리 인상으로 나아갔다'고 표현했다. 한국은행이 맨 앞줄에 섰단 이야기다.

선봉대가 된 이유, 한은은 세 가지를 댔다.

하나, 올해 성장세가 견조하다. 4.0%대의 성장이 예상된다. 수출이 좋고 비대면 소비가 좋아서 '대면 서비스 자영업' 부문의 부진을 만회한다. 둘, 백신 접종률이 높아지면 4분기에 대면 서비스도 좋아질 것이다. 셋, 물가가 2.1% 오를 것이다. 오름폭이 커졌다.

따라서 금리를 인상한다.

하지만 이는 부족한 설명이다. 다른 선진국들 다 마찬가지이고 백신 접종률과 물가는 대부분 우리보다 높다. 미국 연준을 비롯한 다른 선진국 중앙은행들은 물가 목표제의 이름까지 '평균 물가 목표제 Average Inflation Targeting'으로 바꾸는 중이다.

평균물가목표제는 통상의 물가목표인 2%를 훨씬 뛰어넘는 4~5%대의 물가 상승률이라 할지라도, 당분간은 성장 회복을 위해 감당하겠다는 정책 의지를 내포하고 있다. 미국이 그렇다.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는 '중앙은행의 변신'이 지금 일어나는 중이다.

이렇게 상황이 비슷한 다른 나라의 중앙은행들은 인내하고 있는데 우리만 먼저 나선 이유... 이 진짜 이유는 따로 있고, 모두가 알고 있듯 '집값 급등'이다.

■ '금융불균형'이라고 쓰고 '집값 급등'이라고 읽는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이 이유를 설명하는 한은의 방식이다. 이주열 총재는 '집값 급등'을 너무 자주 언급하는 대신 '금융불균형'이라는 언어를 주로 사용한다.

금융불균형이란, 경제 활력을 견인하겠다며 한 금리 인하가 국민경제 전반의 여건을 개선하는 대신 일부 자산시장의 거품을 키우는 현상을 의미한다. 실물경제는 적게 개선되고, 자산 거품은 많이 일어나니 불균형이다.

다른 한편, 이 과정에서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불어난 '가계부채' 역시 금융 불균형의 또 다른 모습이다.


이런 식으로 '집값 급등'을 '금융 불균형'이라고 '번역'하는 이유, 한은의 설립목적, 금과옥조인 '독립성' 때문이다.


한은의 설립목적 첫 줄은 물가 안정이다. 중앙은행인 한은을 정부 부처의 하나가 아니라 '독립기관'으로 따로 떼어놓은 이유는 '물가'다.

왜냐면 정치 권력이 움직이는 행정부는 '물가 안정' 보다는 '성장'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경기가 과열되더라도 성장이 일어나 유권자들의 지갑이 두툼해지면 기꺼이 이 길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물가를 관리할, 정치적 입김에서 자유로운 기관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한은은 그래서 '독립성'을 목숨처럼 여긴다.

그런 한은이 '금리 인상'이라는 칼을 다른 정부 부처처럼 '부동산 안정 대책'의 하나로 내놓을 수는 없다. 독립성을 부여한 설립근거에 맞는 명분이 필요하다. 그 명분이 찾아낸 단어가 '금융 불균형'이다.

'금융'은 한은 설립 목적의 첫째 줄은 아니지만(첫 줄은 당연히 물가다) 최소한 두 번째 줄에는 등장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효율적인 통화신용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통해 물가안정을 도모함으로써 나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합니다. 또한 이 과정에서 금융안정에도 유의하여야 합니다.
<한국은행 설립목적 첫머리(한은 홈페이지)>

■ 그만큼 다급하다...올 해 집값 상승률은 차원이 다르다

하나의 통계로 모든 상황을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때로 통계는 상황을 압축적으로 설명한다. 딱 한 가지 집값 통계만 봐야 한다면 2010년 이후 월별 집값 상승 통계 추이가 적당하다.


장기적으로 안정세를 유지하던 집값은 2017년(기준점, 100)을 전후로 서울에서 먼저 튀어 오르기 시작했다. 가파른 상승세는 이후 2019년까지 수도권이나 전국을 압도한다.

변화가 일어난 건 코로나 대책으로 초저금리 금융정책이 나온 뒤인 2020년부터다. 비교적 덜 가파르던 수도권 집값 상승 속도가 서울보다 빨라지기 시작했다. 지난 2020년 연말에는 서울을 추월했고, 올해 들어서는 그 속도가 더 빨라지기 시작했다.

코로나 대책이 서울 집값에 차별적으로 영향을 미치던 '유동성 잔치'를 수도권까지 확산시킨 것이다.

이 그래프에서 주목할 부분은 기울기(가파르기)다. 3~4년 전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한 집값 오름세가 수그러들기는 커녕 점점 더 가팔라지고 있다.

올해 들어 이 추세는 더 확산했다. 전국단위 상승세가 수도권과 동조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전국 주요 도시의 집값이 과거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수준으로 치솟고 있다.

중앙은행이 나서야만 했던 이유는 이 그래프 안에 있다.

■ 한은의 참전에 환호하는 장관들…"패닉바잉을 멈추라"

집값 안정 목적이 맨 앞에 있는 한은의 금리 인상에 일단 정부 부처 수장들은 환영의 말을 쏟아냈다.

홍남기 부총리도, 노형욱 국토부 장관도, 좀 전까지 금통위원이었던 고승범 금융위원장 후보자도 이구동성이다. 심지어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사견이라면서도) 한번으론 부족하다는 취지의 '과감한, 어찌 보면 월권이고 독립성 침해에도 해당되는 주문'까지 내놨다.


이 환영은 단순한 환영이 아니다. 의도가 담겨 있다. 과녁을 겨누고 쏜 화살과도 같다. 바로 주택시장 참여자들에 먹혀들었으면 하는 바람이 담긴 화살이다.

단순한 환영의 말이 '화살'이 될 수 있는 이유, 경제는 심리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말하면 지금은 2030의 패닉바잉을 멈추게 해야 한다. '집값이 더 오를 것'이라는 두려움을 풀어주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이들이 집값 매수 대열에서 이탈해야 한다. 대규모 공급계획도, 사전청약 발표도, 대출 규제도 모두 같은 과녁을 향해있다.


■ '집값 전쟁', 이제는 '한국은행의 시간'

25번에 걸쳐 나온 정부 대책은 결론적으로 실패했다. '시장을 왜곡시키기만 했다'는 혹평만 들었다. 오히려 '정부 말을 들으면 벼락 거지가 된다'는 불신을 조장하며 '패닉바잉'을 일으켰단 비판도 듣는다.

이 같은 25번의 실패 뒤에 나온 이번 한은의 금리 인상을 일부에선 '26번째 부동산 대책'이라고 부른다.

이주열 총재 역시 당장은 '독립성'보다는 집값 안정에 무게를 두고 있다. 금리 인상 발표 직후 이 총재는 "차입비용이 높아지고, 위험 선호 성향을 낮춰 주택가격 오름세를 둔화시킬 것"을 기대했고 그러면서 '이제 시작'이라며 추가 금리 인상까지 예고했다.


이번 대책은 효과가 있을 것인가, 그리고 한국은행의 독립성이라는 '금과옥조' 역시 무사할 것인가.

(인포그래픽: 권세라, 김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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