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불법사찰 피해’ 명진 스님 “국정원장 사과 평가…내 상처는 갖고 갈 업”

입력 2021.08.28 (10:32) 수정 2021.08.28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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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진 스님 (전 봉은사 주지/국정원 불법사찰 피해자)명진 스님 (전 봉은사 주지/국정원 불법사찰 피해자)

"국가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정원이 국가 정보를 위해서 수집하는 게 아니라 개인의 삶을 파탄시키기 위해서 작업을 했다는 것, 그 부분이 분노보다는 슬픈 생각이 더 들었어요." 전화기 너머 명진 스님의 목소리는 담담했습니다.

정보 공개 청구로 받아낸 문건. 불법사찰과 정치 공작 수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명진 스님 퇴출 작전에, 국정원 지휘 아래 보수언론, 보수단체, 조계종 종단까지 동원됐습니다.

서울 강남의 대형 사찰인 봉은사. 그 주지는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자리입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명진 스님은 4대강 사업에 반대하고, 정권에 쓴소리를 서슴지 않았습니다. 눈엣가시였을 터. 갑자기 신도들 사이에서 허위 사실이 퍼졌습니다. 숨겨둔 여자가 있다, 100억을 갖고 있다, 고급 외제차를 몰고다닌다… 하나하나가 승려에게 치명적인 누명이었습니다. "저를 좋아했던 사람들이 다 떠나게 되죠. 마음적으로도 그렇고 현실적으로도 분명히 힘들거든요 제가. "

국정원이 명진스님에 대해 작성한 문건 중 일부국정원이 명진스님에 대해 작성한 문건 중 일부

명진 스님은 결국 승적을 박탈당했습니다.

"50년을 제가 절집에서 살았잖아요. 승적이 없기 때문에 공식적으로는 '중'이 아니죠. 어느 절에 가도 다 백안시 하고, 조계종으로부터 '왕따'라는 표현이 맞을 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를 보는 것 자체를 꺼리죠."

박지원 국정원장이 2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국민사찰 종식 선언 및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박지원 국정원장이 2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국민사찰 종식 선언 및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27일 사과문을 발표했습니다. 과거 국정원의 불법사찰과 정치개입을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했습니다. 국민 앞에 머리도 숙였습니다.

사과문에는 단서가 하나 있었습니다. "지난 7월 24일, 국회는 여야 합의로 <국가정보기관의 불법 사찰성 정보공개 및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 결의안>을 통과시켰습니다. 특별 결의안은 국가정보원장에게 ‘국민사찰 종식을 선언하고 피해자와 피해단체에 사과할 것’을 주문했습니다."

국회가 시켜서 하는 사과라고, 굳이 첫머리에 밝히고 시작했지만, 사과는 사과입니다. 사과를 받아들일 수 있는지, 스님께 물었습니다.

"상처는 제가 갖고 가야 할 업으로 생각하지만, 고쳐질 수 있다면 고쳐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죽은 사람도 있고, 인생 자체가 완전히 파탄으로 간 분들도 있고. 저야 뭐 조계종에서 퇴출됐다고 해서 제가 죽는 것도 아니고 밥을 굶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런 분들 생각하면 그나마 뒤늦게라도 사과를 공식적으로 한 것에 대해서는 평가를 하고 싶습니다."

박지원 원장은 과거사 진상 규명에 적극 협조하겠다고도 했습니다. 불법사찰 문건은 국정원이 스스로 밝힌 규모가 20만 건에 이릅니다. 피해자였단 사실 조차 모르고 있을 피해자들이 수두룩할 터입니다. 그 시절 왜 그런 고초를 겪어야 했는지, 그게 자신의 잘못때문이 아니었다는 걸, 이제라도 알 수 있다면, 스님처럼 사과를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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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불법사찰 피해’ 명진 스님 “국정원장 사과 평가…내 상처는 갖고 갈 업”
    • 입력 2021-08-28 10:32:00
    • 수정2021-08-28 10:32:23
    취재후·사건후
명진 스님 (전 봉은사 주지/국정원 불법사찰 피해자)
"국가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정원이 국가 정보를 위해서 수집하는 게 아니라 개인의 삶을 파탄시키기 위해서 작업을 했다는 것, 그 부분이 분노보다는 슬픈 생각이 더 들었어요." 전화기 너머 명진 스님의 목소리는 담담했습니다.

정보 공개 청구로 받아낸 문건. 불법사찰과 정치 공작 수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명진 스님 퇴출 작전에, 국정원 지휘 아래 보수언론, 보수단체, 조계종 종단까지 동원됐습니다.

서울 강남의 대형 사찰인 봉은사. 그 주지는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자리입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명진 스님은 4대강 사업에 반대하고, 정권에 쓴소리를 서슴지 않았습니다. 눈엣가시였을 터. 갑자기 신도들 사이에서 허위 사실이 퍼졌습니다. 숨겨둔 여자가 있다, 100억을 갖고 있다, 고급 외제차를 몰고다닌다… 하나하나가 승려에게 치명적인 누명이었습니다. "저를 좋아했던 사람들이 다 떠나게 되죠. 마음적으로도 그렇고 현실적으로도 분명히 힘들거든요 제가. "

국정원이 명진스님에 대해 작성한 문건 중 일부
명진 스님은 결국 승적을 박탈당했습니다.

"50년을 제가 절집에서 살았잖아요. 승적이 없기 때문에 공식적으로는 '중'이 아니죠. 어느 절에 가도 다 백안시 하고, 조계종으로부터 '왕따'라는 표현이 맞을 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를 보는 것 자체를 꺼리죠."

박지원 국정원장이 2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국민사찰 종식 선언 및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27일 사과문을 발표했습니다. 과거 국정원의 불법사찰과 정치개입을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했습니다. 국민 앞에 머리도 숙였습니다.

사과문에는 단서가 하나 있었습니다. "지난 7월 24일, 국회는 여야 합의로 <국가정보기관의 불법 사찰성 정보공개 및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 결의안>을 통과시켰습니다. 특별 결의안은 국가정보원장에게 ‘국민사찰 종식을 선언하고 피해자와 피해단체에 사과할 것’을 주문했습니다."

국회가 시켜서 하는 사과라고, 굳이 첫머리에 밝히고 시작했지만, 사과는 사과입니다. 사과를 받아들일 수 있는지, 스님께 물었습니다.

"상처는 제가 갖고 가야 할 업으로 생각하지만, 고쳐질 수 있다면 고쳐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죽은 사람도 있고, 인생 자체가 완전히 파탄으로 간 분들도 있고. 저야 뭐 조계종에서 퇴출됐다고 해서 제가 죽는 것도 아니고 밥을 굶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런 분들 생각하면 그나마 뒤늦게라도 사과를 공식적으로 한 것에 대해서는 평가를 하고 싶습니다."

박지원 원장은 과거사 진상 규명에 적극 협조하겠다고도 했습니다. 불법사찰 문건은 국정원이 스스로 밝힌 규모가 20만 건에 이릅니다. 피해자였단 사실 조차 모르고 있을 피해자들이 수두룩할 터입니다. 그 시절 왜 그런 고초를 겪어야 했는지, 그게 자신의 잘못때문이 아니었다는 걸, 이제라도 알 수 있다면, 스님처럼 사과를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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