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결핍을 품는 유쾌한 상상…김애란 ‘달려라, 아비’

입력 2021.08.30 (06:47) 수정 2021.08.30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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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우리 시대를 빛낸 소설 작품들, 한 편씩 만나보는 시간입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작품은 두터운 독자층의 사랑을 받고 있는 김애란 작가의 대표 단편소설 <달려라, 아비>인데요.

가족을 버리고 삶에서 도망쳐버린 아버지가 어디선가 달리고 있을 거라 상상하는 어린 주인공의 이야기로, 독자와 평단은 물론 작가들까지 압도적인 지지를 보낸 작품입니다.

유동엽 기자가 소개합니다.

[리포트]

["아버지는 달리기를 하러 집을 나갔다. 나는 그렇게 믿기로 했다. 다만 집을 나갈 때 시계는 챙겨가지 않은 모양이라고."]

주인공이 태어나기 전날 집을 나가버린 아버지.

가족을 버리고 도망친 아버지가 분홍 바지를 입고 전 세계를 뛰어다닐 거라는 상상.

어린 주인공이 아버지의 부재를 받아들이는 방식입니다.

[김애란/소설가 : "중요한 건 결핍 자체가 아니라, 결핍을 대하는 주인공의 태도라고 생각해요. 그럴 때 인물이 농담이나 환상이나 이야기를 이용해서 자기 자신도 이해하고 바깥 세계도 이해해보려고..."]

주인공의 유쾌함은 어머니에게서 배운, 삶의 자산입니다.

["어머니는 농담으로 나를 키웠다. 어머니는 우울에 빠진 내 뒷덜미를, 재치의 두 손가락을 이용해 가뿐히 잡아올리곤 했다."]

택시기사인 어머니.

경제적으로도 넉넉하지 않고 여러 면에서 '없는 것', 결핍이 적지 않지만, 주인공 모녀는 농담을 통해 그들만의 삶을 묵묵히 꾸려나갑니다.

[김애란/소설가 : "농담은 제가 제 소설들에게 품위를 주는 방식 중 하나고요.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지만 삶이 그렇다는 걸 알면서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인물들의 모습에는 일말의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해요."]

삶의 불쾌함을 받아들이는 조금은 엉뚱한 방식.

스물둘에 등단한 이후 내놓는 작품마다 주목 받아온 김애란 특유의 화법입니다.

[윤지관/덕성여대 영문과 명예교수·문학평론가 : "젊은 세대들의 삶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어요. 본인도 경험했고...그런 현실을 그려내면서 작품을 썼기 때문에 풍속화로 치면 김홍도의 풍속화 같은 그런 느낌도 좀 주고 또 작가로 친다면 김유정 같은 그런 작가가 아닌가."]

그러나 그 유쾌한 삶은 편지로 날아온 아버지의 소식에 흐트러집니다.

미국에서 또 다른 결혼과 이혼을 거친 뒤 교통 사고로 숨졌음을 알리는 영어 편지.

어머니의 슬픈 얼굴에 놀란 주인공은, 영어를 모르는 어머니에게 편지에 없는 내용을 읽어줍니다.

["아버지가, 평생 미안해하며 살았대. 그리고 엄마, 그때 참 예뻤대."]

[김애란/소설가 : "어머니를 바라볼 때 약간 연민의 시선이 있는 건 분명하지만, 그건 동정이나 내려다보는 시선이 아니라 이해와 사랑이 바탕이 된 시선이고요. 그것도 가족 간의 사랑의 다른 방식이겠죠."]

이제 세상에 없는 상상 속 아버지에게 선글라스를 씌워주는 소설의 결말은, 주인공이 타인을, 그리고 세상을 이해하는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김애란/소설가 : "한번 그 사람이 되어보는, 늘 내 자리에서 생각하다가 한번 그 자리에서 아버지를 생각하고, 자기 이야기에 다른 이야기 하나를 보탠 거죠."]

KBS 뉴스 유동엽입니다.

촬영기자:유용규 송혜성/그래픽:김현수 김지혜 강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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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결핍을 품는 유쾌한 상상…김애란 ‘달려라, 아비’
    • 입력 2021-08-30 06:47:25
    • 수정2021-08-30 07:5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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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우리 시대를 빛낸 소설 작품들, 한 편씩 만나보는 시간입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작품은 두터운 독자층의 사랑을 받고 있는 김애란 작가의 대표 단편소설 <달려라, 아비>인데요.

가족을 버리고 삶에서 도망쳐버린 아버지가 어디선가 달리고 있을 거라 상상하는 어린 주인공의 이야기로, 독자와 평단은 물론 작가들까지 압도적인 지지를 보낸 작품입니다.

유동엽 기자가 소개합니다.

[리포트]

["아버지는 달리기를 하러 집을 나갔다. 나는 그렇게 믿기로 했다. 다만 집을 나갈 때 시계는 챙겨가지 않은 모양이라고."]

주인공이 태어나기 전날 집을 나가버린 아버지.

가족을 버리고 도망친 아버지가 분홍 바지를 입고 전 세계를 뛰어다닐 거라는 상상.

어린 주인공이 아버지의 부재를 받아들이는 방식입니다.

[김애란/소설가 : "중요한 건 결핍 자체가 아니라, 결핍을 대하는 주인공의 태도라고 생각해요. 그럴 때 인물이 농담이나 환상이나 이야기를 이용해서 자기 자신도 이해하고 바깥 세계도 이해해보려고..."]

주인공의 유쾌함은 어머니에게서 배운, 삶의 자산입니다.

["어머니는 농담으로 나를 키웠다. 어머니는 우울에 빠진 내 뒷덜미를, 재치의 두 손가락을 이용해 가뿐히 잡아올리곤 했다."]

택시기사인 어머니.

경제적으로도 넉넉하지 않고 여러 면에서 '없는 것', 결핍이 적지 않지만, 주인공 모녀는 농담을 통해 그들만의 삶을 묵묵히 꾸려나갑니다.

[김애란/소설가 : "농담은 제가 제 소설들에게 품위를 주는 방식 중 하나고요.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지만 삶이 그렇다는 걸 알면서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인물들의 모습에는 일말의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해요."]

삶의 불쾌함을 받아들이는 조금은 엉뚱한 방식.

스물둘에 등단한 이후 내놓는 작품마다 주목 받아온 김애란 특유의 화법입니다.

[윤지관/덕성여대 영문과 명예교수·문학평론가 : "젊은 세대들의 삶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어요. 본인도 경험했고...그런 현실을 그려내면서 작품을 썼기 때문에 풍속화로 치면 김홍도의 풍속화 같은 그런 느낌도 좀 주고 또 작가로 친다면 김유정 같은 그런 작가가 아닌가."]

그러나 그 유쾌한 삶은 편지로 날아온 아버지의 소식에 흐트러집니다.

미국에서 또 다른 결혼과 이혼을 거친 뒤 교통 사고로 숨졌음을 알리는 영어 편지.

어머니의 슬픈 얼굴에 놀란 주인공은, 영어를 모르는 어머니에게 편지에 없는 내용을 읽어줍니다.

["아버지가, 평생 미안해하며 살았대. 그리고 엄마, 그때 참 예뻤대."]

[김애란/소설가 : "어머니를 바라볼 때 약간 연민의 시선이 있는 건 분명하지만, 그건 동정이나 내려다보는 시선이 아니라 이해와 사랑이 바탕이 된 시선이고요. 그것도 가족 간의 사랑의 다른 방식이겠죠."]

이제 세상에 없는 상상 속 아버지에게 선글라스를 씌워주는 소설의 결말은, 주인공이 타인을, 그리고 세상을 이해하는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김애란/소설가 : "한번 그 사람이 되어보는, 늘 내 자리에서 생각하다가 한번 그 자리에서 아버지를 생각하고, 자기 이야기에 다른 이야기 하나를 보탠 거죠."]

KBS 뉴스 유동엽입니다.

촬영기자:유용규 송혜성/그래픽:김현수 김지혜 강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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