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작전 중 ‘공개’로 돌변한 정부…‘여론’이 안전보다 우선?

입력 2021.08.30 (14:39)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 정부가 아프가니스탄으로 군 수송기를 보내 그 동안 우리 정부를 도와 일했던 아프간인과 그 가족 390명을 데려왔습니다.

당초 이 과정은 아프간인들의 안전과 원활한 작전 수행을 위해 비공개로 진행된 뒤, 우리나라에 도착할 시점쯤 공개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외교부가 지난 24일 아프간인들이 카불을 떠나기 전에 갑자기 군 수송기 파견 사실을 공개했는데, 이를 놓고 자칫하면 작전을 망칠 수도 있는 성급한 발표였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 아프간인 이송작전 중 돌연 언론에 '공개'

정부가 아프간인 이송을 추진한 것은 지난달부터입니다. 하지만 정부는 이송 작전이 추진되고 있다는 것을 공개하지 않았는데, 작전이 공개될 경우 탈레반이나 무장세력의 표적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부는 아프간인들의 안전이 확보된 뒤 발표하겠다며, 당초 아프간인들이 우리나라에 도착하는 시점에 이 내용을 발표할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외교부는 아프간인들이 우리나라에 도착하기 이틀 전인 지난 24일 저녁 7시쯤 돌연 이송 작전을 발표합니다. 아프간인들을 우리나라로 데려오기 위해 군 수송기 3대를 현지에 파견해 작전을 수행 중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당시 외교부 관계자는 "아프간인들이 우리나라에 도착한 뒤 이송 사실이 공개될 경우 상당한 충격이 있을 수 있어, 일부 미리 공개하기로 했다"며 도착 직후 갑자기 알려지면 이송 작전에 대한 반대 여론이 강해질 것을 우려했다는 뜻을 내비쳤습니다.

이 관계자는 특히 "아프간인들의 안전히 확보된 것으로 안다"고도 전했습니다.

외교부 최영삼 대변인도 지난 26일 브리핑에서 "정부는 이번 임무의 발표 시기와 관련해 이송 대상자들의 안전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면서, 그 이외에 여러 가지 외교적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아프간인들이 우리나라에 도착한 뒤 알려진 당시 작전 상황과 맞춰보면, 외교부의 발표 시점은 아프간인들의 안전보다는 다른 요인이 더 고려된 것으로 보입니다.


■ 작전 공개 시점에 '버스'는 탈레반에 발 묶여

이송 작전의 성패를 가를 최대 변수는 '아프간인들이 어떻게 카불 공항 안으로 들어올 것인가'였습니다.

탈레반의 카불 진입 이후 아프간에서 미군이 통제하고 있는 곳은 사실상 카불 공항뿐이었기 때문에, 우리 정부는 당초 다른 나라들처럼 카불 공항에 자력으로 진입한 아프간인들만 군 수송기로 이송할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계획에 따라 23일까지 카불 공항에 들어온 아프간인들은 불과 6가족 26명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정부는 카불 시내 몇곳에 집결지를 정하고, 그 곳으로 버스를 보내 집결지에 모인 아프간인들을 카불 공항으로 이송하기로 계획을 급하게 변경합니다.

버스가 공항 안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미군의 협조가 필요했는데, 현지 이송팀과 미군은 현지시간 24일 오후 3시반에 공항 게이트로 버스가 오면 통과시키기로 계획을 조율했습니다. 이 시간이 우리 시간으로는 24일 저녁 8시입니다.

외교부가 이송 작전을 우리 시간 24일 저녁 7시쯤 공개했으니, 계획대로 진행됐다고 해도 아프간인들이 카불 공항에 진입하기 한 시간 전에 이송 작전이 공개된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이송 작전이 현지에서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프간인들을 태운 버스는 공항 밖 검문소에서 탈레반에게 붙잡혀 15시간 가량 발이 묶였고, 하룻밤을 꼬박 새운 뒤 현지시간 25일 새벽 동틀 무렵에야 공항 안으로 진입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당시 탈레반은 여행증명서와 같은 서류가 미비하다는 등의 이유를 대며 버스를 검문소에 붙잡아뒀고, 버스에 탄 아프간인들은 탈레반에 의해 다시 돌려보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그 시간 동안 버스에서 내리지도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만약 우리 정부가 아프간인들을 탈출시키기 위한 작전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이 탈레반측에 흘러들어갔을 경우 탈출 작전 자체가 실패로 돌아갔을 수 있는 상황이었던 셈입니다.

이송 작전을 현지에서 지휘했던 김일응 주아프간 한국대사관 공사참사관도 지난 27일 화상 브리핑에서 탈레반이 자신과 아프간인들이 탑승한 버스를 막아서면서 "15시간 가량 버스 안에 갇혀 있어야했고, 그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외교부가 24일 저녁 이송 작전을 위해 군 수송기를 현지에 파견했다고 공개하면서 밤새 관련 기사가 쏟아졌는데, 그 사이 아프간인들을 태운 버스는 검문소에서 탈레반 측에 붙잡혀 있었던 것입니다.


■ 아프간인 이송에 '여론 우호적' 판단한 듯…'무리한 홍보' 논란 잇따라

이번 이송 작전은 외교부와 국방부, 법무부 등 관계 기관이 모인 정부합동TF를 통해 진행됐습니다.

이송 작전을 준비하면서 정부TF 내에서는 국민 여론이 2018년 예멘 난민 사태때처럼 흐르는 것을 상당히 우려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한 뒤 사태가 급변하면서, 국내에서도 우리 정부에 협조한 아프간인들을 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자, 정부TF 내에서도 이송 작전을 좀 더 적극적으로 알리자는 의견이 많아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법무부 장관과 차관이 무리한 언론플레이와 과잉 의전 논란에 휩싸인 것도, 아프간인들이 우리나라에 도착 시점에 공개하겠다던 발표 시점이 앞당겨진 것도 이 같은 판단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발표 시점을 갑자기 앞당긴 것은 정부가 자칫 관련자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상황을 자초할 수 있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입니다.

정부는 그동안 현지 이송팀과 아프간인들의 안전이 완전히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송 작전이 공개될 경우 작전 자체를 그르치고 관련된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거듭 설명해왔는데, 정부 스스로가 그 말을 뒤집은 셈이기 때문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아프간 작전 중 ‘공개’로 돌변한 정부…‘여론’이 안전보다 우선?
    • 입력 2021-08-30 14:39:40
    취재K
우리 정부가 아프가니스탄으로 군 수송기를 보내 그 동안 우리 정부를 도와 일했던 아프간인과 그 가족 390명을 데려왔습니다.

당초 이 과정은 아프간인들의 안전과 원활한 작전 수행을 위해 비공개로 진행된 뒤, 우리나라에 도착할 시점쯤 공개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외교부가 지난 24일 아프간인들이 카불을 떠나기 전에 갑자기 군 수송기 파견 사실을 공개했는데, 이를 놓고 자칫하면 작전을 망칠 수도 있는 성급한 발표였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 아프간인 이송작전 중 돌연 언론에 '공개'

정부가 아프간인 이송을 추진한 것은 지난달부터입니다. 하지만 정부는 이송 작전이 추진되고 있다는 것을 공개하지 않았는데, 작전이 공개될 경우 탈레반이나 무장세력의 표적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부는 아프간인들의 안전이 확보된 뒤 발표하겠다며, 당초 아프간인들이 우리나라에 도착하는 시점에 이 내용을 발표할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외교부는 아프간인들이 우리나라에 도착하기 이틀 전인 지난 24일 저녁 7시쯤 돌연 이송 작전을 발표합니다. 아프간인들을 우리나라로 데려오기 위해 군 수송기 3대를 현지에 파견해 작전을 수행 중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당시 외교부 관계자는 "아프간인들이 우리나라에 도착한 뒤 이송 사실이 공개될 경우 상당한 충격이 있을 수 있어, 일부 미리 공개하기로 했다"며 도착 직후 갑자기 알려지면 이송 작전에 대한 반대 여론이 강해질 것을 우려했다는 뜻을 내비쳤습니다.

이 관계자는 특히 "아프간인들의 안전히 확보된 것으로 안다"고도 전했습니다.

외교부 최영삼 대변인도 지난 26일 브리핑에서 "정부는 이번 임무의 발표 시기와 관련해 이송 대상자들의 안전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면서, 그 이외에 여러 가지 외교적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아프간인들이 우리나라에 도착한 뒤 알려진 당시 작전 상황과 맞춰보면, 외교부의 발표 시점은 아프간인들의 안전보다는 다른 요인이 더 고려된 것으로 보입니다.


■ 작전 공개 시점에 '버스'는 탈레반에 발 묶여

이송 작전의 성패를 가를 최대 변수는 '아프간인들이 어떻게 카불 공항 안으로 들어올 것인가'였습니다.

탈레반의 카불 진입 이후 아프간에서 미군이 통제하고 있는 곳은 사실상 카불 공항뿐이었기 때문에, 우리 정부는 당초 다른 나라들처럼 카불 공항에 자력으로 진입한 아프간인들만 군 수송기로 이송할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계획에 따라 23일까지 카불 공항에 들어온 아프간인들은 불과 6가족 26명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정부는 카불 시내 몇곳에 집결지를 정하고, 그 곳으로 버스를 보내 집결지에 모인 아프간인들을 카불 공항으로 이송하기로 계획을 급하게 변경합니다.

버스가 공항 안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미군의 협조가 필요했는데, 현지 이송팀과 미군은 현지시간 24일 오후 3시반에 공항 게이트로 버스가 오면 통과시키기로 계획을 조율했습니다. 이 시간이 우리 시간으로는 24일 저녁 8시입니다.

외교부가 이송 작전을 우리 시간 24일 저녁 7시쯤 공개했으니, 계획대로 진행됐다고 해도 아프간인들이 카불 공항에 진입하기 한 시간 전에 이송 작전이 공개된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이송 작전이 현지에서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프간인들을 태운 버스는 공항 밖 검문소에서 탈레반에게 붙잡혀 15시간 가량 발이 묶였고, 하룻밤을 꼬박 새운 뒤 현지시간 25일 새벽 동틀 무렵에야 공항 안으로 진입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당시 탈레반은 여행증명서와 같은 서류가 미비하다는 등의 이유를 대며 버스를 검문소에 붙잡아뒀고, 버스에 탄 아프간인들은 탈레반에 의해 다시 돌려보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그 시간 동안 버스에서 내리지도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만약 우리 정부가 아프간인들을 탈출시키기 위한 작전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이 탈레반측에 흘러들어갔을 경우 탈출 작전 자체가 실패로 돌아갔을 수 있는 상황이었던 셈입니다.

이송 작전을 현지에서 지휘했던 김일응 주아프간 한국대사관 공사참사관도 지난 27일 화상 브리핑에서 탈레반이 자신과 아프간인들이 탑승한 버스를 막아서면서 "15시간 가량 버스 안에 갇혀 있어야했고, 그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외교부가 24일 저녁 이송 작전을 위해 군 수송기를 현지에 파견했다고 공개하면서 밤새 관련 기사가 쏟아졌는데, 그 사이 아프간인들을 태운 버스는 검문소에서 탈레반 측에 붙잡혀 있었던 것입니다.


■ 아프간인 이송에 '여론 우호적' 판단한 듯…'무리한 홍보' 논란 잇따라

이번 이송 작전은 외교부와 국방부, 법무부 등 관계 기관이 모인 정부합동TF를 통해 진행됐습니다.

이송 작전을 준비하면서 정부TF 내에서는 국민 여론이 2018년 예멘 난민 사태때처럼 흐르는 것을 상당히 우려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한 뒤 사태가 급변하면서, 국내에서도 우리 정부에 협조한 아프간인들을 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자, 정부TF 내에서도 이송 작전을 좀 더 적극적으로 알리자는 의견이 많아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법무부 장관과 차관이 무리한 언론플레이와 과잉 의전 논란에 휩싸인 것도, 아프간인들이 우리나라에 도착 시점에 공개하겠다던 발표 시점이 앞당겨진 것도 이 같은 판단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발표 시점을 갑자기 앞당긴 것은 정부가 자칫 관련자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상황을 자초할 수 있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입니다.

정부는 그동안 현지 이송팀과 아프간인들의 안전이 완전히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송 작전이 공개될 경우 작전 자체를 그르치고 관련된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거듭 설명해왔는데, 정부 스스로가 그 말을 뒤집은 셈이기 때문입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