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소수 민족 탈출 러시…그들은 왜 탈레반의 ‘인종 청소’ 대상이 됐나?

입력 2021.08.3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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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내 시아파 소수민족인 하자라족. 이들은 몽골인의 후손으로 동양인의 외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탈레반이 20년 만에 아프가니스탄 정권을 다시 잡자, 탈레반의 과거 집권 시절 '인종 청소' 대상으로 삼았던 하자라족 수천 명이 고향을 떠나 파키스탄으로 탈출하고 있습니다.

■ 국경 넘어 파키스탄으로 향하는 하자라족

30일 영국 가디언 등에 따르면 이달 15일 아프간 정부가 탈레반에 정권 이양을 선언한 뒤 하자라족 약 1만 명이 국경을 넘어 파키스탄 퀘타시 등으로 도망쳤습니다.

이들은 이민 브로커에게 1인당 한국 돈 8만 원~56만 원을 주고 가까스로 국경을 넘었습니다.

탈레반이 국경으로 향하는 주요 길목에 검문소를 세우고, 파키스탄 이민 당국이 무역상이나 여행허가증을 가진 사람만 국경을 통과시켜주지만, 이민브로커는 뇌물을 주는 등의 방법으로 국경을 넘게 해주고 있습니다.

수니파 극단주의 '탈레반' VS 시아파 '하자라족'

아프간인 중에서도 하자라족이 대규모로 탈출하는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하자라족은 칭기즈칸이 1221년 서부 바미얀을 침공한 이래 아프간 땅에 정착한 몽골인들의 후손으로 동양인의 생김새를 가졌습니다.

아프간 하자라족 아이들 자료사진.아프간 하자라족 아이들 자료사진.

아프가니스탄은 파슈툰족(42%)과 타지크(27%), 하자라(9%), 우즈베크(9%) 등 여러 종족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이 가운데 아프간 중부 산지에 사는 하자라족은 시아파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이들은 카불과 헤라트 사이의 산지인 하자리스트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탈레반은 파슈툰족이 주축인데, 과거 통치기(1996~2001년)대 하자라족을 대규모로 학살하고 고향에서 내쫓았습니다. 게다가 파슈툰족은 이슬람 수니파인데, 하자라족은 시아파입니다.

수니파 극단주의 탈레반 정권과 시아파 하자라족은 견원지간이었고, 탈레반의 하자라족 탄압은 민간인 대량학살로 이어졌습니다.

자카르타 칼리데레스 난민촌의 아프간 어린이들 대부분은 하자라족이다.자카르타 칼리데레스 난민촌의 아프간 어린이들 대부분은 하자라족이다.

현재 아프간 하자라족이 이동하고 있는 파키스탄 남서부 발로치스탄주의 주도 퀘타는 ‘하자라의 무덤’이라 불렸던 곳인데요. 하자라족 출신 사진가로 퀘타에서 태어난 바랏 알리 바뚜는 이곳을 떠나고자 난민 보트에 올랐던 2012년 8월 당시, 하자라족을 대상으로 삼은 자살 공격이 시장이든, 등굣길이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발생했다고 회상합니다.

1998년 8월 8일 마자레 샤리프에서 일어난 민간인 8,000명 학살이 대표적입니다. 바로 전년도에 하자라 군벌조직에 의해 탈레반 병사 약 3,000명이 숨진 사건에 대한 보복이었습니다.

2001년 탈레반 정권 붕괴 후 상황이 바뀌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반군으로 대열을 가다듬은 탈레반 2기는 ‘외세축출’이나 ‘민족해방’ 같은 명분을 내세워 아프간의 많은 종족을 포용하는 노선을 취하기도 했는데요.

그러나 탈레반은 2001년 1월 바미안 주의 한 마을에서 하자라족 300여 명을 집단 학살하는 등 많은 이들을 살해했고, 하자라족 종교지도자들을 투옥했으며 여성들을 납치해갔습니다.

대부분 하자라족은 빈곤과 천대 속에 살아가야 했으며 하찮은 직업에 종사해야만 했습니다. 수만 명이 집에서 쫓겨나 산속에서 살았으며 당시에도 국경을 넘어 탈출한 이들이 많아 지금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아프간 난민 가운데 대다수가 하자라족입니다.

탈레반은 정권을 빼앗긴 동안에도 수시로 하자라족을 상대로 테러와 납치를 저질렀습니다.

탈레반, 하자라족 지도자 석상 무차별 파괴

탈레반 지도부는 재집권 후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정부' 구성을 약속했지만, 이미 하자라족을 위협하는 행동이 이어졌습니다.

탈레반이 바미안 주에 있던 하자라족 지도자 압둘 알리 마자리의 석상을 파괴했다는 사진이 이달 18일 SNS에 퍼졌습니다. 정확한 파괴 시점을 알려지지 않았지만, 바미안 주 등 중부 지역은 탈레반에 거의 마지막에 점령당한 지역이라 촬영 시점은 최근으로 추정됩니다.

탈레반이 파괴한 하자라족 지도자 압둘 알리 마자리 석상. (좌) 파괴 전-(우) 파괴 후 모습.탈레반이 파괴한 하자라족 지도자 압둘 알리 마자리 석상. (좌) 파괴 전-(우) 파괴 후 모습.

마자리는 1995년 당시 한창 세력을 확장하던 탈레반에 맞서 싸우다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후 그를 기리는 동상이 고향에 세워졌지만, 탈레반이 이를 부순 것입니다.

게다가 탈레반이 농촌 지역부터 장악하던 지난 7월 문다라크 마을에서 탈레반이 하자라족 9명을 살해했다고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가 밝혔습니다.

하자라족 남성 6명은 총살됐고 3명은 고문받아 숨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과거 박해의 악몽이 되살아난 하자라족은 더는 아프간에 살 수 없다며 탈출 대열에 합류하게 된 것입니다.

하자라족 모하메드 샤리프 타마시는 "부모님이 아이들에게 돈을 주며 가능한 한 빨리 국경을 넘으라고 지시했다"며, 지난 목요일 두 동생과 함께 아프간 국경을 넘어 파키스탄 퀘타에 도착했습니다.

퀘타에 도착한 또 다른 하자라족 여성 굴랄라이 하이데리는 "국경을 넘기 위해 보석을 팔았다"며 "두 번이나 파키스탄 입국 거절을 당했지만 지금 임신 중이고, 아프간에서 도저히 살 수 없다고 빌었다"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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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프간 소수 민족 탈출 러시…그들은 왜 탈레반의 ‘인종 청소’ 대상이 됐나?
    • 입력 2021-08-31 07:00:42
    취재K

아프간 내 시아파 소수민족인 하자라족. 이들은 몽골인의 후손으로 동양인의 외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탈레반이 20년 만에 아프가니스탄 정권을 다시 잡자, 탈레반의 과거 집권 시절 '인종 청소' 대상으로 삼았던 하자라족 수천 명이 고향을 떠나 파키스탄으로 탈출하고 있습니다.

■ 국경 넘어 파키스탄으로 향하는 하자라족

30일 영국 가디언 등에 따르면 이달 15일 아프간 정부가 탈레반에 정권 이양을 선언한 뒤 하자라족 약 1만 명이 국경을 넘어 파키스탄 퀘타시 등으로 도망쳤습니다.

이들은 이민 브로커에게 1인당 한국 돈 8만 원~56만 원을 주고 가까스로 국경을 넘었습니다.

탈레반이 국경으로 향하는 주요 길목에 검문소를 세우고, 파키스탄 이민 당국이 무역상이나 여행허가증을 가진 사람만 국경을 통과시켜주지만, 이민브로커는 뇌물을 주는 등의 방법으로 국경을 넘게 해주고 있습니다.

수니파 극단주의 '탈레반' VS 시아파 '하자라족'

아프간인 중에서도 하자라족이 대규모로 탈출하는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하자라족은 칭기즈칸이 1221년 서부 바미얀을 침공한 이래 아프간 땅에 정착한 몽골인들의 후손으로 동양인의 생김새를 가졌습니다.

아프간 하자라족 아이들 자료사진.
아프가니스탄은 파슈툰족(42%)과 타지크(27%), 하자라(9%), 우즈베크(9%) 등 여러 종족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이 가운데 아프간 중부 산지에 사는 하자라족은 시아파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이들은 카불과 헤라트 사이의 산지인 하자리스트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탈레반은 파슈툰족이 주축인데, 과거 통치기(1996~2001년)대 하자라족을 대규모로 학살하고 고향에서 내쫓았습니다. 게다가 파슈툰족은 이슬람 수니파인데, 하자라족은 시아파입니다.

수니파 극단주의 탈레반 정권과 시아파 하자라족은 견원지간이었고, 탈레반의 하자라족 탄압은 민간인 대량학살로 이어졌습니다.

자카르타 칼리데레스 난민촌의 아프간 어린이들 대부분은 하자라족이다.
현재 아프간 하자라족이 이동하고 있는 파키스탄 남서부 발로치스탄주의 주도 퀘타는 ‘하자라의 무덤’이라 불렸던 곳인데요. 하자라족 출신 사진가로 퀘타에서 태어난 바랏 알리 바뚜는 이곳을 떠나고자 난민 보트에 올랐던 2012년 8월 당시, 하자라족을 대상으로 삼은 자살 공격이 시장이든, 등굣길이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발생했다고 회상합니다.

1998년 8월 8일 마자레 샤리프에서 일어난 민간인 8,000명 학살이 대표적입니다. 바로 전년도에 하자라 군벌조직에 의해 탈레반 병사 약 3,000명이 숨진 사건에 대한 보복이었습니다.

2001년 탈레반 정권 붕괴 후 상황이 바뀌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반군으로 대열을 가다듬은 탈레반 2기는 ‘외세축출’이나 ‘민족해방’ 같은 명분을 내세워 아프간의 많은 종족을 포용하는 노선을 취하기도 했는데요.

그러나 탈레반은 2001년 1월 바미안 주의 한 마을에서 하자라족 300여 명을 집단 학살하는 등 많은 이들을 살해했고, 하자라족 종교지도자들을 투옥했으며 여성들을 납치해갔습니다.

대부분 하자라족은 빈곤과 천대 속에 살아가야 했으며 하찮은 직업에 종사해야만 했습니다. 수만 명이 집에서 쫓겨나 산속에서 살았으며 당시에도 국경을 넘어 탈출한 이들이 많아 지금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아프간 난민 가운데 대다수가 하자라족입니다.

탈레반은 정권을 빼앗긴 동안에도 수시로 하자라족을 상대로 테러와 납치를 저질렀습니다.

탈레반, 하자라족 지도자 석상 무차별 파괴

탈레반 지도부는 재집권 후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정부' 구성을 약속했지만, 이미 하자라족을 위협하는 행동이 이어졌습니다.

탈레반이 바미안 주에 있던 하자라족 지도자 압둘 알리 마자리의 석상을 파괴했다는 사진이 이달 18일 SNS에 퍼졌습니다. 정확한 파괴 시점을 알려지지 않았지만, 바미안 주 등 중부 지역은 탈레반에 거의 마지막에 점령당한 지역이라 촬영 시점은 최근으로 추정됩니다.

탈레반이 파괴한 하자라족 지도자 압둘 알리 마자리 석상. (좌) 파괴 전-(우) 파괴 후 모습.
마자리는 1995년 당시 한창 세력을 확장하던 탈레반에 맞서 싸우다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후 그를 기리는 동상이 고향에 세워졌지만, 탈레반이 이를 부순 것입니다.

게다가 탈레반이 농촌 지역부터 장악하던 지난 7월 문다라크 마을에서 탈레반이 하자라족 9명을 살해했다고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가 밝혔습니다.

하자라족 남성 6명은 총살됐고 3명은 고문받아 숨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과거 박해의 악몽이 되살아난 하자라족은 더는 아프간에 살 수 없다며 탈출 대열에 합류하게 된 것입니다.

하자라족 모하메드 샤리프 타마시는 "부모님이 아이들에게 돈을 주며 가능한 한 빨리 국경을 넘으라고 지시했다"며, 지난 목요일 두 동생과 함께 아프간 국경을 넘어 파키스탄 퀘타에 도착했습니다.

퀘타에 도착한 또 다른 하자라족 여성 굴랄라이 하이데리는 "국경을 넘기 위해 보석을 팔았다"며 "두 번이나 파키스탄 입국 거절을 당했지만 지금 임신 중이고, 아프간에서 도저히 살 수 없다고 빌었다"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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