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만의 헌재 결정…“조선인 전범 피해자 정부 보상 의무 없어”

입력 2021.09.01 (07:00) 수정 2021.09.01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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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일본군으로 끌려갔다가 전쟁 범죄자가 된 ‘조선인 전범 피해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일본에 의해 연합군 포로들을 감시하는 포로감시원으로 강제동원됐는데요.

동남 아시아 국가들에 위치한 연합군 포로수용소에서 근무하다가 전쟁이 끝난 후, 연합국의 국제전범재판에 의해 비씨(B·C)급 전범으로 처벌받았습니다.

이들 피해자와 유족들은 "‘조선인 전범 피해자’ 문제를 정부가 해결하지 않은 것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는데, 헌법재판소는 어제(31일)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요?


■ B·C급 전범 피해자들은 누구?

한국인 B·C 전범에 관한 역사적 배경은 이렇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 군부는 대규모로 발생한 연합군 포로들을 수용·관리하기 위해 한국인을 포로감시원으로 강제 모집했습니다. 한국인 포로감시원은 하급 군무원으로 일하면서 상관인 일본군의 명령에 따라 연합군 포로들을 감시·통제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연합군의 승리로 끝나갈 무렵 연합국 정상들에 의한 패전국인 독일과 일본 전범(戰犯)의 처리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는데요.

한국인 포로감시원들도 연합군 포로들을 학대했다는 이유로 연합국에서 실시된 국제전범재판에 회부되어 '전범'으로 인정돼 사형 또는 유기징역 등의 처벌을 받았습니다.

1955년 4월 1일, 일본 형무소를 출소한 한국인 B·C급 전범들은 ‘동진회’라는 모임을 결성했습니다. 이때부터 이들은 일본 정부를 상대로 ‘기본적 인권과 생활권 확보’ 및 자신들이 입은 피해에 대한 국가보상 등을 받아내기 위한 지속적인 투쟁을 벌였습니다.


■ 1965년 한일 양국은 청구권 협정 체결했지만...

당시 동진회는 일본 정부로부터 다소의 지원을 받아내기도 했지만,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이 체결된 이후에는 더 이상의 보상책임을 부정하는 일본 정부의 완강한 태도로 인하여 별다른 성과를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한일 양국이 1965년 정한 한일 청구권 협정한일 양국이 1965년 정한 한일 청구권 협정

한국 정부는 2004년 3월 5일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 등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했습니다. 이에 따라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피해’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를 진행했는데요.

그 결과 한국인 B·C급 전범들을 ‘강제동원의 피해자 또는 희생자’로 인정했고 이들 중 일부에게는 유족으로서 위로금을 지급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한국인 B·C급 전범들에 대한 피해 보상 문제'는 일본이 책임을 지고 주도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2010년부터는 외교적 경로를 통해 일본이 주도적으로 한국인 B·C급 전범들 보상에 관한 입법 등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했습니다.


■ "위안부 피해자 문제와 달라" 전범 피해자들의 기본권 침해하지 않으므로 '각하'


이 사건 심판의 대상은, 한일 양국이 1965년 정한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라 해결하지 않고 있는 정부가 전범 피해자들의 기본권을 침해하는지 여부입니다.

B·C급 전범 피해자들과 유족 측이 일본에 요구하는 것은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조약 제172호) 제2조 제1항과 제3조에 근거한 것입니다. 이 협정 3조는 협정의 해석과 실시에 관한 분쟁이 있으면 외교 등으로 해결하도록 규정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헌법 재판소는 이 사건 심판과 관련해 재판관 5(각하)대4(위헌) 의견으로 각하 결정을 내렸습니다.

헌재는 “우리나라는 개인이 저지른 침략범죄, 반인도적 범죄, 전쟁범죄 등에 대하여 국제전범재판을 통해 처벌해야 한다는 국제 관습법에 관한 조약을 국회 동의를 거쳐 적극적으로 수용했고, ‘국제형사재판소 관할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일제에 의해 포로 감시원으로 강제 동원돼 일본군의 명령에 따라 연합군 포로들을 감시하다가 국제전범재판소에 회부돼 처벌받은 안타까운 역사적 사실은 인정되지만, 국제전범재판소 판결은 국제법적으로 유효하고 국내 국가기관은 이를 존중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헌재는 또 "국제 전범재판소 판결에 따른 처벌로 생긴 B·C급 전범의 피해 보상 문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나 원폭 피해자 등이 갖는 일제의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따른 배상 청구권 문제와 동일한 범주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어제 헌재의 결정은 동진회 회원들과 유족들이 헌법소원을 제기한 지 7년 만에 내려진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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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년 만의 헌재 결정…“조선인 전범 피해자 정부 보상 의무 없어”
    • 입력 2021-09-01 07:00:19
    • 수정2021-09-01 09:54:49
    취재K

일제강점기에 일본군으로 끌려갔다가 전쟁 범죄자가 된 ‘조선인 전범 피해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일본에 의해 연합군 포로들을 감시하는 포로감시원으로 강제동원됐는데요.

동남 아시아 국가들에 위치한 연합군 포로수용소에서 근무하다가 전쟁이 끝난 후, 연합국의 국제전범재판에 의해 비씨(B·C)급 전범으로 처벌받았습니다.

이들 피해자와 유족들은 "‘조선인 전범 피해자’ 문제를 정부가 해결하지 않은 것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는데, 헌법재판소는 어제(31일)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요?


■ B·C급 전범 피해자들은 누구?

한국인 B·C 전범에 관한 역사적 배경은 이렇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 군부는 대규모로 발생한 연합군 포로들을 수용·관리하기 위해 한국인을 포로감시원으로 강제 모집했습니다. 한국인 포로감시원은 하급 군무원으로 일하면서 상관인 일본군의 명령에 따라 연합군 포로들을 감시·통제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연합군의 승리로 끝나갈 무렵 연합국 정상들에 의한 패전국인 독일과 일본 전범(戰犯)의 처리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는데요.

한국인 포로감시원들도 연합군 포로들을 학대했다는 이유로 연합국에서 실시된 국제전범재판에 회부되어 '전범'으로 인정돼 사형 또는 유기징역 등의 처벌을 받았습니다.

1955년 4월 1일, 일본 형무소를 출소한 한국인 B·C급 전범들은 ‘동진회’라는 모임을 결성했습니다. 이때부터 이들은 일본 정부를 상대로 ‘기본적 인권과 생활권 확보’ 및 자신들이 입은 피해에 대한 국가보상 등을 받아내기 위한 지속적인 투쟁을 벌였습니다.


■ 1965년 한일 양국은 청구권 협정 체결했지만...

당시 동진회는 일본 정부로부터 다소의 지원을 받아내기도 했지만,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이 체결된 이후에는 더 이상의 보상책임을 부정하는 일본 정부의 완강한 태도로 인하여 별다른 성과를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한일 양국이 1965년 정한 한일 청구권 협정
한국 정부는 2004년 3월 5일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 등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했습니다. 이에 따라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피해’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를 진행했는데요.

그 결과 한국인 B·C급 전범들을 ‘강제동원의 피해자 또는 희생자’로 인정했고 이들 중 일부에게는 유족으로서 위로금을 지급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한국인 B·C급 전범들에 대한 피해 보상 문제'는 일본이 책임을 지고 주도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2010년부터는 외교적 경로를 통해 일본이 주도적으로 한국인 B·C급 전범들 보상에 관한 입법 등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했습니다.


■ "위안부 피해자 문제와 달라" 전범 피해자들의 기본권 침해하지 않으므로 '각하'


이 사건 심판의 대상은, 한일 양국이 1965년 정한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라 해결하지 않고 있는 정부가 전범 피해자들의 기본권을 침해하는지 여부입니다.

B·C급 전범 피해자들과 유족 측이 일본에 요구하는 것은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조약 제172호) 제2조 제1항과 제3조에 근거한 것입니다. 이 협정 3조는 협정의 해석과 실시에 관한 분쟁이 있으면 외교 등으로 해결하도록 규정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헌법 재판소는 이 사건 심판과 관련해 재판관 5(각하)대4(위헌) 의견으로 각하 결정을 내렸습니다.

헌재는 “우리나라는 개인이 저지른 침략범죄, 반인도적 범죄, 전쟁범죄 등에 대하여 국제전범재판을 통해 처벌해야 한다는 국제 관습법에 관한 조약을 국회 동의를 거쳐 적극적으로 수용했고, ‘국제형사재판소 관할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일제에 의해 포로 감시원으로 강제 동원돼 일본군의 명령에 따라 연합군 포로들을 감시하다가 국제전범재판소에 회부돼 처벌받은 안타까운 역사적 사실은 인정되지만, 국제전범재판소 판결은 국제법적으로 유효하고 국내 국가기관은 이를 존중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헌재는 또 "국제 전범재판소 판결에 따른 처벌로 생긴 B·C급 전범의 피해 보상 문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나 원폭 피해자 등이 갖는 일제의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따른 배상 청구권 문제와 동일한 범주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어제 헌재의 결정은 동진회 회원들과 유족들이 헌법소원을 제기한 지 7년 만에 내려진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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