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조 양학선 ‘9년의 준비가 4초에 끝났다’
입력 2021.09.02 (15:14)
수정 2021.09.02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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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훈련 공개 행사 2020.11.10 (출처 : 연합뉴스)
■ 9년의 준비가 4초에 끝났다.
한국 체조 역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수확했던 양학선(29. 수원시청)은 2020도쿄올림픽 기계체조 도마에서 결승에 진출하지 못했다. 2012 런던올림픽 금메달 이후 9년 만에 나선 양학선의 두 번째 올림픽이 그렇게 끝났다. 9년의 준비 과정이 단 4초에 마침표를 찍었다.
예선전을 마치고 대표팀 은퇴까지 마음먹었던 양학선은 현재 다음 달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 출전을 앞두고 '올림픽 같은 모드'로 훈련에 집중하고 있다.
오는 7일 진천선수촌 입촌을 앞두고 소속팀 수원시청에서 훈련 중인 양학선은 KBS와의 비대면 인터뷰에서 '대표팀 끝'이라고 생각했던 도쿄올림픽에서의 소감과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세계선수권대회에 대한 각오를 밝혔다.
■ '꿈이었으면….' 했던 도쿄올림픽
2012년 첫 올림픽에서 금메달 수확 뒤 양학선은 지금까지도 세계 정상급 선수로 평가받아왔다. 자신의 이름을 딴 세계 유일의 기술, '양학선'은 다른 선수들이 쉽게 구사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도쿄올림픽에서 결승 진출 실패라는 결과는 누구보다 양학선에게 충격이었다.
대기 순위 1번. 결승 출전자 중에서 기권자가 나오면 출전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처음 겪은 '대기 타는' 기분에 대해 양학선은 "정말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처음 겪는 일이라서 뭐라 표현을 못 하겠더라고요. 그냥 내일 다시 시합 뛰면 좋겠다. 이게 꿈이었으면…. 했죠."
"예선 마치고 이틀 정도는 코로나 19와 부상 등의 이유로 결선 출전자 중에 1명은 기권자가 있을 거로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극적으로 출전할 수도 있겠다. 생각했죠. 그런데 아니었어요."
도마 결승이 펼쳐지던 때, 양학선은 경기장 무대가 아닌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봤다. 후배 신재환의 금메달 획득에 기쁘면서도 자신에 대한 책망이 쏟아졌다고 말했다.
"저 자신에게 정말 크게 실망했죠. 은퇴해야 하나."
"민폐 같았죠. 물론 제가 가진 기술과 기량이 검증된 부분이어서 그것 때문에 협회에서 조건부 발탁을 해주셨는데 그 경우는 제가 대회에서 뭔가 성과를 내야 틀린 결정이 아닐 텐데.. 올림픽에서 성과를 못 냈으니까 다른 선수들의 올림픽 출전을 막은 거 아닌가, 후배들 기회를 뺏는 거 아닌가 자책했죠."
2020도쿄올림픽 기계체조 도마 예선(출처 : 연합뉴스)
■ 도마까지 단 '세 걸음'…갑자기 멈춰선 몸,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올림픽에서 양학선이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 데에는 부상 트라우마가 있다.
2012 런던대회 이후 주요 대회 직전 햄스트링(허벅지 뒤쪽 근육)과 아킬레스건 부상 등으로 출전이 좌절됐던 경험이 있는 양학선은 대회를 앞두고 혹시 일어날지 모르는 부상에 대한 걱정이 마음 한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햄스트링 부상 반복에 오죽하면 '햄'도 먹기 싫다고 말할 정도.
도쿄올림픽에서 세계적인 스타, 미국 여자 기계체조 대표 시몬 바일스가 정신적 압박감을 이유로 주요 종목 출전을 포기한 것처럼 올림픽이란 무대가 주는 상상 못 할 부담감 때문이었을까?
여기에 대해 양학선은 바일스의 경우와 다르다고 답했다.
"부담감이라는 건 말 그대로 부담, 압박감인데 저는 트라우마였어요. 그러니까 미묘하게 다른데 바일스 선수는 부담감으로 아예 경기를 못 뛰었잖아요. 도마는 출발 지점에서 도마까지 25m 거리를 뛰어 도마를 짚고 공중 연기를 하는 건데 저는 출발할 때는 문제가 없었어요. 처음 출발부터 도마까지 힘껏 달리는 질주를 잘하다가 도마를 짚기 직전 딱 세 걸음, 거기서부터 갑자기 못 뛰겠는 거에요."
"도마까지 불과 세 걸음인데 도약 직전에 갑자기 속도가 확 떨어지면서 주저앉게 됐어요. 무슨 만화에서처럼 갑자기 잘 달리는 저를 뒤에서 누군가 잡아당기는 것처럼, 멈춰 세우는 것처럼 갑자기 발이 안 떨어졌죠."
"올림픽 직전까지도 그 트라우마를 없애려고 별별 노력을 다 해봤거든요. 정신과 상담도 하고 이미지 트레이닝도 하고 체력 훈련도 더 열심히 하고. 그런데 어렵더라고요. 정신이 몸을 막는 것인지, 몸이 정신을 막는 것인지…."
■ 끝이라는 심정으로 호기롭게 뛰는 중
양학선은 이 트라우마라는 것과 끝장 승부를 선언했다. 올림픽 이후 주어진 짧은 일주일의 휴식기에도 병원에 다니고 체력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여기서 뛰면 끝, 부상 걱정하지 않고 지금 뛰는 순간에 집중하며 호기롭게 막 뛰고 있다"고 양학선은 말했다. 올림픽 이후 첫 훈련에선 부상 우려와 기술 실패 걱정 때문에 무섭기도 했지만 이젠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기술에 대한 자신감이 있어서 완성도를 높일 근력 강화와 체력 훈련에 집중했고 기술이 점점 잘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 세계 정상급 선수들과 다시 한 번 '승부'
대한체조협회는 지난달 30일, 경기력 향상위원회를 열어 논의 끝에 다음 달 18일부터 24일까지 일본 기타큐슈에서 열리는 기계체조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할 선수를 선발했다. 베테랑 양학선을 비롯해 도쿄올림픽에서 도마 금메달을 수확한 신재환도 이름을 올렸다. 여자 도마 동메달리스트 여서정도 출전한다.
양학선은 2011년 세계선수권대회와 2013년 대회에서 도마 정상에 오른 바 있다. 이번 대회는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양학선은 이번 세계선수권이 선수로서 양학선의 가능성을 점검받는 대회라고 말했다. 도쿄올림픽에 나오지 못했던 정상급 선수들도 대거 출전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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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년의 준비가 4초에 끝났다.
한국 체조 역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수확했던 양학선(29. 수원시청)은 2020도쿄올림픽 기계체조 도마에서 결승에 진출하지 못했다. 2012 런던올림픽 금메달 이후 9년 만에 나선 양학선의 두 번째 올림픽이 그렇게 끝났다. 9년의 준비 과정이 단 4초에 마침표를 찍었다.
예선전을 마치고 대표팀 은퇴까지 마음먹었던 양학선은 현재 다음 달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 출전을 앞두고 '올림픽 같은 모드'로 훈련에 집중하고 있다.
오는 7일 진천선수촌 입촌을 앞두고 소속팀 수원시청에서 훈련 중인 양학선은 KBS와의 비대면 인터뷰에서 '대표팀 끝'이라고 생각했던 도쿄올림픽에서의 소감과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세계선수권대회에 대한 각오를 밝혔다.
■ '꿈이었으면….' 했던 도쿄올림픽
2012년 첫 올림픽에서 금메달 수확 뒤 양학선은 지금까지도 세계 정상급 선수로 평가받아왔다. 자신의 이름을 딴 세계 유일의 기술, '양학선'은 다른 선수들이 쉽게 구사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도쿄올림픽에서 결승 진출 실패라는 결과는 누구보다 양학선에게 충격이었다.
대기 순위 1번. 결승 출전자 중에서 기권자가 나오면 출전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처음 겪은 '대기 타는' 기분에 대해 양학선은 "정말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처음 겪는 일이라서 뭐라 표현을 못 하겠더라고요. 그냥 내일 다시 시합 뛰면 좋겠다. 이게 꿈이었으면…. 했죠."
"예선 마치고 이틀 정도는 코로나 19와 부상 등의 이유로 결선 출전자 중에 1명은 기권자가 있을 거로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극적으로 출전할 수도 있겠다. 생각했죠. 그런데 아니었어요."
도마 결승이 펼쳐지던 때, 양학선은 경기장 무대가 아닌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봤다. 후배 신재환의 금메달 획득에 기쁘면서도 자신에 대한 책망이 쏟아졌다고 말했다.
"저 자신에게 정말 크게 실망했죠. 은퇴해야 하나."
"민폐 같았죠. 물론 제가 가진 기술과 기량이 검증된 부분이어서 그것 때문에 협회에서 조건부 발탁을 해주셨는데 그 경우는 제가 대회에서 뭔가 성과를 내야 틀린 결정이 아닐 텐데.. 올림픽에서 성과를 못 냈으니까 다른 선수들의 올림픽 출전을 막은 거 아닌가, 후배들 기회를 뺏는 거 아닌가 자책했죠."
■ 도마까지 단 '세 걸음'…갑자기 멈춰선 몸,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올림픽에서 양학선이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 데에는 부상 트라우마가 있다.
2012 런던대회 이후 주요 대회 직전 햄스트링(허벅지 뒤쪽 근육)과 아킬레스건 부상 등으로 출전이 좌절됐던 경험이 있는 양학선은 대회를 앞두고 혹시 일어날지 모르는 부상에 대한 걱정이 마음 한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햄스트링 부상 반복에 오죽하면 '햄'도 먹기 싫다고 말할 정도.
도쿄올림픽에서 세계적인 스타, 미국 여자 기계체조 대표 시몬 바일스가 정신적 압박감을 이유로 주요 종목 출전을 포기한 것처럼 올림픽이란 무대가 주는 상상 못 할 부담감 때문이었을까?
여기에 대해 양학선은 바일스의 경우와 다르다고 답했다.
"부담감이라는 건 말 그대로 부담, 압박감인데 저는 트라우마였어요. 그러니까 미묘하게 다른데 바일스 선수는 부담감으로 아예 경기를 못 뛰었잖아요. 도마는 출발 지점에서 도마까지 25m 거리를 뛰어 도마를 짚고 공중 연기를 하는 건데 저는 출발할 때는 문제가 없었어요. 처음 출발부터 도마까지 힘껏 달리는 질주를 잘하다가 도마를 짚기 직전 딱 세 걸음, 거기서부터 갑자기 못 뛰겠는 거에요."
"도마까지 불과 세 걸음인데 도약 직전에 갑자기 속도가 확 떨어지면서 주저앉게 됐어요. 무슨 만화에서처럼 갑자기 잘 달리는 저를 뒤에서 누군가 잡아당기는 것처럼, 멈춰 세우는 것처럼 갑자기 발이 안 떨어졌죠."
"올림픽 직전까지도 그 트라우마를 없애려고 별별 노력을 다 해봤거든요. 정신과 상담도 하고 이미지 트레이닝도 하고 체력 훈련도 더 열심히 하고. 그런데 어렵더라고요. 정신이 몸을 막는 것인지, 몸이 정신을 막는 것인지…."
■ 끝이라는 심정으로 호기롭게 뛰는 중
양학선은 이 트라우마라는 것과 끝장 승부를 선언했다. 올림픽 이후 주어진 짧은 일주일의 휴식기에도 병원에 다니고 체력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여기서 뛰면 끝, 부상 걱정하지 않고 지금 뛰는 순간에 집중하며 호기롭게 막 뛰고 있다"고 양학선은 말했다. 올림픽 이후 첫 훈련에선 부상 우려와 기술 실패 걱정 때문에 무섭기도 했지만 이젠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기술에 대한 자신감이 있어서 완성도를 높일 근력 강화와 체력 훈련에 집중했고 기술이 점점 잘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 세계 정상급 선수들과 다시 한 번 '승부'
대한체조협회는 지난달 30일, 경기력 향상위원회를 열어 논의 끝에 다음 달 18일부터 24일까지 일본 기타큐슈에서 열리는 기계체조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할 선수를 선발했다. 베테랑 양학선을 비롯해 도쿄올림픽에서 도마 금메달을 수확한 신재환도 이름을 올렸다. 여자 도마 동메달리스트 여서정도 출전한다.
양학선은 2011년 세계선수권대회와 2013년 대회에서 도마 정상에 오른 바 있다. 이번 대회는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양학선은 이번 세계선수권이 선수로서 양학선의 가능성을 점검받는 대회라고 말했다. 도쿄올림픽에 나오지 못했던 정상급 선수들도 대거 출전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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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미 기자 jju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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