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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아내가 전한 마지막 말 “여보 고마워, 감사해”
입력 2021.09.03 (06:07) 수정 2021.09.03 (09:16) 취재후·사건후
김태종 씨(왼쪽)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고 박영숙 씨(오른쪽)김태종 씨(왼쪽)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고 박영숙 씨(오른쪽)

"아빠(남편), 고마웠어…고마워, 감사해!"

"지난해 8월 1일, 입원할 때 아내가 말했어요. 말은 못 하지만 저는 입 모양 보고 알았죠. 마치 자기가 세상 떠날 것을 아는 듯이…."

김태종 씨는 고개를 떨구고,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아내와 가족이 겪은 피해를 몇 년 동안 말해왔지만, 아내가 떠나기 전 상황을 기억하는 건 김 씨에게 아직 힘든 일입니다.

김 씨의 아내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였습니다. 아내가 숨을 못 쉬겠다며 처음 병원에 실려 간 건 13년 전.

지난해, 김 씨의 아내 박영숙씨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내는 더이상 세상에 없지만, 김 씨는 오늘도 노란 겉옷을 입고 다시 거리로 나섭니다. 노란 옷에는 '살인기업 처벌하라!'라는 빛바랜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 사망 후 인정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김태종 씨는 2008년 7월, 부인 박영숙 씨가 갑자기 숨을 쉬기 어렵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병원에서 '폐가 51% 망가졌다.'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충격적인 진단을 받은 지 하루. 아내는 대학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갔고, 심정지 상태까지 갔습니다.

아내의 병세는 급속히 악화 됐고, 날이 갈수록 위독해졌습니다. 그리고 아내의 병이 김 씨 손으로 샀던 '가습기살균제' 때문이라는 것을 안 건 그로부터 3년이 지난 뒤였습니다.


아내는 13년 동안 21번 병원 입원을 했고, 16번을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야 했습니다. 결국, 아내는 목에 튜브를 연결해 인공호흡기에 의지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숨지기 3년 4개월 전의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박영숙 씨는 공식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아내가 어릴 때 앓았던 결핵이 피해를 인정할 수 없는 이유였습니다. 길고 고통스런 싸움이 시작된 건 그때부터였습니다. 그리고 12년. 지난해 9월 아내는 공식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지 꼭 한 달 뒤였습니다.

김태종 /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유가족
"집사람이 어려서 결핵을 앓은 적이 있어요. 하지만 여태까지 아이 둘도 잘 낳고, 교회 성가대 소프라노 파트에 집사람이 가운데에 섰거든요. 갑자기 숨이 안 쉬어진다면서 병원에 데려달라는 게 이해가 안 됐어요."

"(1~4단계 분류 중) 3단계(가능성 작음)에 속한 게 집사람이예요. 몇 사람 안 돼요. 원인 규명을 다 해본 건 아니지만, 기저질환이 있던 사람들을 3단계로 뺀 거예요. 기저질환이 있던 사람에게 독극물이 들어가면 치명상인데 (아내를) 뺀 거예요."

"2017년 특별구제 계정에선 정식 피해자가 아니었어요. 어정쩡한 상황이었어요. 피해자가 아니었는데 병원비, 간병비를 준 거죠. 웃기는 거죠."

[연관 기사] ‘가습기 참사’ 10년째 같은 외침…“배상·국가 책임 분명히 하라” (2021.8.30 KBS 뉴스 9)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267969

■ '피해자'는 있지만, '책임'은 없는 가습기살균제 참사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특별법이 만들어지고 두 차례 개정을 거치면서, 피해자 인정 범위가 넓어졌습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습니다. 유독물질을 청소제품으로 만들고 판매한 회사는 배상이나 보상은커녕, 아직 사과조차 하지 않은 곳이 더 많습니다.

올해 8월 기준, 정부가 인정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4,120명입니다. 이중 기업의 배상과 보상을 받은 사람은 700명 정도에 불과합니다. 정부가 인정한 피해자 100명 중 17명만이 기업으로부터 피해 보상을 받은 셈입니다.

김태종 씨 같은 피해자와 가족들을 더 절망케 한 법원의 판단이 지난 1월 나왔습니다.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 기업에 대해 무죄가 선고된 것입니다. 이 판결 때문에 피해자들에 대한 기업의 배상은 더 어려워졌습니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기업의 소극적인 태도가 가장 큰 문제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최예용 /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
"여전히 기업들은 자신들의 피해자를 찾아내는 일을 전혀 하지 않고 있습니다. 4,100명이 넘는 피해자를 확인했음에도, 정부가 인정한 피해자조차 자신들이 배상과 보상을 하지 않는 무책임하고 파렴치한 행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최소한 정부가 인정한 4,100여 명의 피해자들에 대해서 기업이 배·보상을 해야 할 것입니다."


■ "내 몸이 증거다" 참사 10년 만에 만들어진 '조정기구'

가습기 살균제 참사 10년. 최근 정부는 관련 기업들과 피해자 사이의 조정기구 출범을 선언했습니다. 특별법으로 만들어졌던 기존의 피해구제위원회와는 별도의 기구입니다.

이 조정기구는 앞으로 피해자와 기업 간의 논의를 통해 합의 절차를 도출하게 됩니다. 환경부는 현재 김이수 전 헌법재판관을 이 조정기구의 위원장으로 추천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습니다. 참여 기업 수입니다. 2017년 정부가 1,250억 원의 피해구제분담금을 부과한 18개 기업 가운데 조정위원회에 참가한 곳은 6곳에 불과합니다.

환경부에 따르면, 분담금을 낸 18곳 가운데 영세기업 1곳은 폐업했습니다. 분담금을 냈지만, 조정위원회에 참가하지 않은 기업들 가운데 GS리테일과 LG생활건강 등 대기업도 이 조정기구에 불참했습니다.

■ 10년 만의 '조정기구', 정부와 기업의 '눈치 게임'

피해자들이 답답해하지만, 정부와 기업은 서로 눈치를 보는 모습입니다.

한정애 환경부 장관은 피해자와 배상과 보상 협의에 나서지 않는 기업에 대해 "(기업) 접촉은 필요하다면 할 생각이다. 조정위원회가 공식화되는 시점에 기업들이 (참여) 논의를 시작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밝혔습니다. 환경부도 이번 조정위원회는 사적 조정이라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접촉할 수 없었다는 입장입니다.

이번에는 KBS가 해당 기업에 직접 입장을 물었습니다. 그런데 돌아온 답이 의외입니다.

GS리테일"실무 부서에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연락이 온 게 없다. 연락이 오면 참여 여부를 검토하겠다."라고 밝혔습니다. LG생활건강"사적 조정기구가 어떻게 구성되고 운영될 것인지 검토한 후에 내부 논의를 거쳐 판단하겠다."라고 답변했습니다.

유독물질로 만들어진 가습기살균제 피해가 시작된 지 27년, 정부 조사로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세상에 드러난 지는 10년이 됐습니다. 너무 긴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 누군가는 가족을 잃었고, 또 누군가는 돌이킬 수 없는 장애를 가졌습니다.

그 피해에 대한 당연하고도 합당한 '배상'과 '보상'에 대한 논의는 이제야 시작됐습니다. 앞으로 얼마의 더 시간이 지나야 이 참사의 끝을 얘기할 수 있을까요?
  • [취재후] 아내가 전한 마지막 말 “여보 고마워, 감사해”
    • 입력 2021-09-03 06:07:19
    • 수정2021-09-03 09:16:25
    취재후·사건후
김태종 씨(왼쪽)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고 박영숙 씨(오른쪽)김태종 씨(왼쪽)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고 박영숙 씨(오른쪽)

"아빠(남편), 고마웠어…고마워, 감사해!"

"지난해 8월 1일, 입원할 때 아내가 말했어요. 말은 못 하지만 저는 입 모양 보고 알았죠. 마치 자기가 세상 떠날 것을 아는 듯이…."

김태종 씨는 고개를 떨구고,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아내와 가족이 겪은 피해를 몇 년 동안 말해왔지만, 아내가 떠나기 전 상황을 기억하는 건 김 씨에게 아직 힘든 일입니다.

김 씨의 아내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였습니다. 아내가 숨을 못 쉬겠다며 처음 병원에 실려 간 건 13년 전.

지난해, 김 씨의 아내 박영숙씨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내는 더이상 세상에 없지만, 김 씨는 오늘도 노란 겉옷을 입고 다시 거리로 나섭니다. 노란 옷에는 '살인기업 처벌하라!'라는 빛바랜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 사망 후 인정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김태종 씨는 2008년 7월, 부인 박영숙 씨가 갑자기 숨을 쉬기 어렵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병원에서 '폐가 51% 망가졌다.'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충격적인 진단을 받은 지 하루. 아내는 대학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갔고, 심정지 상태까지 갔습니다.

아내의 병세는 급속히 악화 됐고, 날이 갈수록 위독해졌습니다. 그리고 아내의 병이 김 씨 손으로 샀던 '가습기살균제' 때문이라는 것을 안 건 그로부터 3년이 지난 뒤였습니다.


아내는 13년 동안 21번 병원 입원을 했고, 16번을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야 했습니다. 결국, 아내는 목에 튜브를 연결해 인공호흡기에 의지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숨지기 3년 4개월 전의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박영숙 씨는 공식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아내가 어릴 때 앓았던 결핵이 피해를 인정할 수 없는 이유였습니다. 길고 고통스런 싸움이 시작된 건 그때부터였습니다. 그리고 12년. 지난해 9월 아내는 공식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지 꼭 한 달 뒤였습니다.

김태종 /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유가족
"집사람이 어려서 결핵을 앓은 적이 있어요. 하지만 여태까지 아이 둘도 잘 낳고, 교회 성가대 소프라노 파트에 집사람이 가운데에 섰거든요. 갑자기 숨이 안 쉬어진다면서 병원에 데려달라는 게 이해가 안 됐어요."

"(1~4단계 분류 중) 3단계(가능성 작음)에 속한 게 집사람이예요. 몇 사람 안 돼요. 원인 규명을 다 해본 건 아니지만, 기저질환이 있던 사람들을 3단계로 뺀 거예요. 기저질환이 있던 사람에게 독극물이 들어가면 치명상인데 (아내를) 뺀 거예요."

"2017년 특별구제 계정에선 정식 피해자가 아니었어요. 어정쩡한 상황이었어요. 피해자가 아니었는데 병원비, 간병비를 준 거죠. 웃기는 거죠."

[연관 기사] ‘가습기 참사’ 10년째 같은 외침…“배상·국가 책임 분명히 하라” (2021.8.30 KBS 뉴스 9)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267969

■ '피해자'는 있지만, '책임'은 없는 가습기살균제 참사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특별법이 만들어지고 두 차례 개정을 거치면서, 피해자 인정 범위가 넓어졌습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습니다. 유독물질을 청소제품으로 만들고 판매한 회사는 배상이나 보상은커녕, 아직 사과조차 하지 않은 곳이 더 많습니다.

올해 8월 기준, 정부가 인정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4,120명입니다. 이중 기업의 배상과 보상을 받은 사람은 700명 정도에 불과합니다. 정부가 인정한 피해자 100명 중 17명만이 기업으로부터 피해 보상을 받은 셈입니다.

김태종 씨 같은 피해자와 가족들을 더 절망케 한 법원의 판단이 지난 1월 나왔습니다.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 기업에 대해 무죄가 선고된 것입니다. 이 판결 때문에 피해자들에 대한 기업의 배상은 더 어려워졌습니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기업의 소극적인 태도가 가장 큰 문제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최예용 /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
"여전히 기업들은 자신들의 피해자를 찾아내는 일을 전혀 하지 않고 있습니다. 4,100명이 넘는 피해자를 확인했음에도, 정부가 인정한 피해자조차 자신들이 배상과 보상을 하지 않는 무책임하고 파렴치한 행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최소한 정부가 인정한 4,100여 명의 피해자들에 대해서 기업이 배·보상을 해야 할 것입니다."


■ "내 몸이 증거다" 참사 10년 만에 만들어진 '조정기구'

가습기 살균제 참사 10년. 최근 정부는 관련 기업들과 피해자 사이의 조정기구 출범을 선언했습니다. 특별법으로 만들어졌던 기존의 피해구제위원회와는 별도의 기구입니다.

이 조정기구는 앞으로 피해자와 기업 간의 논의를 통해 합의 절차를 도출하게 됩니다. 환경부는 현재 김이수 전 헌법재판관을 이 조정기구의 위원장으로 추천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습니다. 참여 기업 수입니다. 2017년 정부가 1,250억 원의 피해구제분담금을 부과한 18개 기업 가운데 조정위원회에 참가한 곳은 6곳에 불과합니다.

환경부에 따르면, 분담금을 낸 18곳 가운데 영세기업 1곳은 폐업했습니다. 분담금을 냈지만, 조정위원회에 참가하지 않은 기업들 가운데 GS리테일과 LG생활건강 등 대기업도 이 조정기구에 불참했습니다.

■ 10년 만의 '조정기구', 정부와 기업의 '눈치 게임'

피해자들이 답답해하지만, 정부와 기업은 서로 눈치를 보는 모습입니다.

한정애 환경부 장관은 피해자와 배상과 보상 협의에 나서지 않는 기업에 대해 "(기업) 접촉은 필요하다면 할 생각이다. 조정위원회가 공식화되는 시점에 기업들이 (참여) 논의를 시작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밝혔습니다. 환경부도 이번 조정위원회는 사적 조정이라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접촉할 수 없었다는 입장입니다.

이번에는 KBS가 해당 기업에 직접 입장을 물었습니다. 그런데 돌아온 답이 의외입니다.

GS리테일"실무 부서에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연락이 온 게 없다. 연락이 오면 참여 여부를 검토하겠다."라고 밝혔습니다. LG생활건강"사적 조정기구가 어떻게 구성되고 운영될 것인지 검토한 후에 내부 논의를 거쳐 판단하겠다."라고 답변했습니다.

유독물질로 만들어진 가습기살균제 피해가 시작된 지 27년, 정부 조사로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세상에 드러난 지는 10년이 됐습니다. 너무 긴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 누군가는 가족을 잃었고, 또 누군가는 돌이킬 수 없는 장애를 가졌습니다.

그 피해에 대한 당연하고도 합당한 '배상'과 '보상'에 대한 논의는 이제야 시작됐습니다. 앞으로 얼마의 더 시간이 지나야 이 참사의 끝을 얘기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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