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세금이 새고 있다]④ 주민숙원사업에선 왜 세금이 샐 수밖에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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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세금 1조 원이 검증없이 쓰이고 있습니다.
이 막대한 세금이 어떻게 낭비되고 있는지, KBS가 연속해서 알려드립니다.
오늘은 네 번째 시간입니다.
■ 세금으로 특정인 배 불리기?
멀쩡한 인도 블록을 바꾸거나 인적 드문 곳에 공원이 생기는 모습을 보면서, 한번쯤 "세금 또 낭비하는구나" 이런 생각을 해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단순히 세금이 낭비되는 게 아니라, 그 세금이 누군가의 사익을 위해 쓰인다면 더 큰 문제겠죠.
KBS는 <당신의 세금이 새고 있다> 1편 ~ 3편을 통해 그런 사례를 소개해드렸습니다.
'주민숙원사업' 예산이 아무런 검증 없이 집행되면서 엉뚱한 이들이 혜택을 보고, 일부 공직자들이 이런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부동산 투기를 한 사례들입니다.
그런데 소중한 세금이 왜 이렇게 제대로 된 검증 없이 쓰이고 있는 걸까요?
■ 사업에 법적 근거가 없다
주민숙원사업의 근본적인 문제는 '명확한 법적 근거가 없다' 는 겁니다. 현행 지방재정법에는 주민 복리 증진을 위해 재정을 건전하게 쓰라고만 명시되어 있을 뿐입니다. 현행법과 예산 지침을 아무리 뒤져봐도 '주민숙원사업'이라는 명칭조차 나와 있지 않습니다.
법이 없으니, 예산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규정도 없습니다. 이 때문에 자치단체마다 사업 절차가 모두 제각각입니다. 몇몇 자치단체는 심지어 '사업 검증을 하지 않는다'고 당당히 밝히기까지 했을 정도입니다.
A 자치단체 공무원 "주민숙원사업은 사업 검증을 안 해요. 그냥 읍면동에 바로 예산 내려보내요. 사업 자체가 법적 근거가 없잖아요." |
사업 진행도 주먹구구식입니다. 우선 사업을 담당하는 부서가 제각각입니다.
경북의 한 자치단체에선 도로과와 건설과, 새마을과와 각 읍면동 사무소가 모두 주민숙원사업을 제각각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민숙원사업을 총괄 관리하고 책임지는 부서가 없다 보니, 전체 예산 규모가 얼마인지, 얼마나 많은 사업이 어느 정도 규모로 진행되고 있는지 실무 공무원조차도 잘 모릅니다.
사업의 투명성도 낮습니다. 예산서에 주민숙원사업이라는 이름 대신, '시설비' 명목으로 예산이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결국 외부에서 아무리 예산서를 살펴봐도 어떤 사업이 주민숙원사업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매년 전국에서 1조 원 넘게 주민숙원사업 예산이 지출되는 상황을 고려하면 이해하기 힘든 대목입니다.
하승수/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 "공무원들이 '밀실'에서 예산서를 만들고 있습니다. 공개적인 검증이 불가능하잖아요. 임의로 자기들끼리 세금을 운영하는 거죠. 부정행위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
■ 지방의회 감시 소홀
지방의회의 예산 심의도 잘 안 됩니다. 예산이 부실하게 편성되었더라도, 지방의회에서 걸러진다면 세금 유용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민숙원사업의 경우 앞서 지적한 이유들로 사업들이 '시설비' 명목으로 건건이 분산돼있어, 지방의회에서 사업을 일일이 심의하기 어려운 구조로 돼있습니다.
기자 "지방의회에서 예산 심의가 잘 안 되나요?" B 자치단체 관계자 "별도로 건건이 예산심의를 거치는 건 없습니다. 규모 정도는 보시겠죠." |
심의를 해야 할 지방의원들 가운데 일부는 오히려 이런 허점을 이용한다는 의혹까지 제기됩니다. 취재를 했던 한 지자체에서는, 지방의원이 주민숙원사업 예산으로 자신의 지지자 토지 주변에 도로를 내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기자가 만난 공무원 중에는, 일부 지방의원들의 주민숙원사업 로비와 관련한 고충을 토로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C 자치단체 공무원 "의원님들이 자기 지역 어디에 도로를 좀 내라고 압박을 해요. 그럼 그게 누구 땅인지, 왜 만들어지는지 확인을 해야 하는데도 그냥 예산 편성하는 거죠." |
■ "돈을 왜 빨리 못 쓰냐고 매일 혼나요."
'신속집행제도'도 주민숙원사업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게 만드는 한 요인입니다.
신속집행제도, 이름 그대로 예산을 빨리 쓰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지난 2009년, 미국발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예산을 조기 집행함으로써 지역 경기를 활성화하자는 취지로 도입됐는데요. 신속집행을 잘한 자치단체에게 인센티브가 주어집니다.
그런데 여러 공무원들이 이 신속집행 제도가 주민숙원사업에 대한 검증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라고 토로했습니다. 예산 집행 중 수상한 내용이 발견되더라도, 예산을 빨리 집행하라는 압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현장 출장 등의 확인을 포기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D 자치단체 공무원 "외부세력들이 사업 거래를 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걸 저희가 발견하거든요. '어? 이 사업은 뭔가 이상하다.' 그런데 위에서 계속 '빨리 빨리 지출해' 이러니깐, 그냥 덮는 거예요." |
실제 매년 도 단위 자치단체에서는, 소속 자치단체별 신속집행률 순위를 매깁니다. 예산을 빨리 쓴 지자체는 칭찬을 받고, 그렇지 못한 지자체는 평가가 깎입니다.
정창수/나라살림연구소 소장 "금융위기 당시에는 돈을 빨리 써서 경제를 살려야 하니깐 그럴 수 있죠. 지금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제도가 한 번 생기니깐 유지되는 거에요. 무조건 돈을 쓰는 게 능사가 아니잖아요." |
엉뚱한 곳에 세금이 쓰이면, 그 피해는 세금을 낸 주민들의 몫이 됩니다. 실제 이번 연속 보도 이후 피해 제보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청도군의 한 주민 "마을 도로가 좁아서 10년 넘게 도로 좀 넓혀달라고 했어요. 경운기가 움직이기 힘드니깐, 농민들이 농사짓기가 어렵다고.. 군청에서는 맨날 돈 없다고만 그래요. 그런데 뉴스 보니깐 예산이 없는 게 아니었네요…." |
■ 정부는 왜 감시하지 않았나?
정부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동안 감사원이 주민숙원사업과 관련해 수차례 부정사례를 적발했지만, 제대로 된 대책을 세우지 않았습니다.
건설과 소속 공무원이 전직 부군수 집 앞에 난 도로를 확장시켜준 사건, 마을 유지를 위해 진입도로를 만들어준 사건 등 감사원에 이미 적발된 사례들 중에도 주민숙원사업의 문제들이 드러나있었습니다.
주민숙원사업은 소규모 예산입니다. 또 잘게 쪼개어져 있다 보니 그동안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모아놓고 보니 '태산'이었습니다. 앞선 기사들에서 밝힌 것처럼 KBS가 지난 2014년 ~ 2020년 6년 치 주민숙원사업 예산 총액을 정보공개청구 해보니 6조 5천억 원이나 됐습니다. 반드시 제도를 개선해야 할 이유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어느 자치단체에서 예산을 가장 많이 썼나, 특히 지방선거를 앞두고 예산이 대폭 상승한 자치단체 등에 대해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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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세금이 새고 있다]④ 주민숙원사업에선 왜 세금이 샐 수밖에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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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1-09-03 07:00:17
■ 세금으로 특정인 배 불리기?
멀쩡한 인도 블록을 바꾸거나 인적 드문 곳에 공원이 생기는 모습을 보면서, 한번쯤 "세금 또 낭비하는구나" 이런 생각을 해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단순히 세금이 낭비되는 게 아니라, 그 세금이 누군가의 사익을 위해 쓰인다면 더 큰 문제겠죠.
KBS는 <당신의 세금이 새고 있다> 1편 ~ 3편을 통해 그런 사례를 소개해드렸습니다.
'주민숙원사업' 예산이 아무런 검증 없이 집행되면서 엉뚱한 이들이 혜택을 보고, 일부 공직자들이 이런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부동산 투기를 한 사례들입니다.
그런데 소중한 세금이 왜 이렇게 제대로 된 검증 없이 쓰이고 있는 걸까요?
■ 사업에 법적 근거가 없다
주민숙원사업의 근본적인 문제는 '명확한 법적 근거가 없다' 는 겁니다. 현행 지방재정법에는 주민 복리 증진을 위해 재정을 건전하게 쓰라고만 명시되어 있을 뿐입니다. 현행법과 예산 지침을 아무리 뒤져봐도 '주민숙원사업'이라는 명칭조차 나와 있지 않습니다.
법이 없으니, 예산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규정도 없습니다. 이 때문에 자치단체마다 사업 절차가 모두 제각각입니다. 몇몇 자치단체는 심지어 '사업 검증을 하지 않는다'고 당당히 밝히기까지 했을 정도입니다.
A 자치단체 공무원 "주민숙원사업은 사업 검증을 안 해요. 그냥 읍면동에 바로 예산 내려보내요. 사업 자체가 법적 근거가 없잖아요." |
사업 진행도 주먹구구식입니다. 우선 사업을 담당하는 부서가 제각각입니다.
경북의 한 자치단체에선 도로과와 건설과, 새마을과와 각 읍면동 사무소가 모두 주민숙원사업을 제각각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민숙원사업을 총괄 관리하고 책임지는 부서가 없다 보니, 전체 예산 규모가 얼마인지, 얼마나 많은 사업이 어느 정도 규모로 진행되고 있는지 실무 공무원조차도 잘 모릅니다.
사업의 투명성도 낮습니다. 예산서에 주민숙원사업이라는 이름 대신, '시설비' 명목으로 예산이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결국 외부에서 아무리 예산서를 살펴봐도 어떤 사업이 주민숙원사업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매년 전국에서 1조 원 넘게 주민숙원사업 예산이 지출되는 상황을 고려하면 이해하기 힘든 대목입니다.
하승수/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 "공무원들이 '밀실'에서 예산서를 만들고 있습니다. 공개적인 검증이 불가능하잖아요. 임의로 자기들끼리 세금을 운영하는 거죠. 부정행위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
■ 지방의회 감시 소홀
지방의회의 예산 심의도 잘 안 됩니다. 예산이 부실하게 편성되었더라도, 지방의회에서 걸러진다면 세금 유용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민숙원사업의 경우 앞서 지적한 이유들로 사업들이 '시설비' 명목으로 건건이 분산돼있어, 지방의회에서 사업을 일일이 심의하기 어려운 구조로 돼있습니다.
기자 "지방의회에서 예산 심의가 잘 안 되나요?" B 자치단체 관계자 "별도로 건건이 예산심의를 거치는 건 없습니다. 규모 정도는 보시겠죠." |
심의를 해야 할 지방의원들 가운데 일부는 오히려 이런 허점을 이용한다는 의혹까지 제기됩니다. 취재를 했던 한 지자체에서는, 지방의원이 주민숙원사업 예산으로 자신의 지지자 토지 주변에 도로를 내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기자가 만난 공무원 중에는, 일부 지방의원들의 주민숙원사업 로비와 관련한 고충을 토로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C 자치단체 공무원 "의원님들이 자기 지역 어디에 도로를 좀 내라고 압박을 해요. 그럼 그게 누구 땅인지, 왜 만들어지는지 확인을 해야 하는데도 그냥 예산 편성하는 거죠." |
■ "돈을 왜 빨리 못 쓰냐고 매일 혼나요."
'신속집행제도'도 주민숙원사업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게 만드는 한 요인입니다.
신속집행제도, 이름 그대로 예산을 빨리 쓰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지난 2009년, 미국발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예산을 조기 집행함으로써 지역 경기를 활성화하자는 취지로 도입됐는데요. 신속집행을 잘한 자치단체에게 인센티브가 주어집니다.
그런데 여러 공무원들이 이 신속집행 제도가 주민숙원사업에 대한 검증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라고 토로했습니다. 예산 집행 중 수상한 내용이 발견되더라도, 예산을 빨리 집행하라는 압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현장 출장 등의 확인을 포기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D 자치단체 공무원 "외부세력들이 사업 거래를 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걸 저희가 발견하거든요. '어? 이 사업은 뭔가 이상하다.' 그런데 위에서 계속 '빨리 빨리 지출해' 이러니깐, 그냥 덮는 거예요." |
실제 매년 도 단위 자치단체에서는, 소속 자치단체별 신속집행률 순위를 매깁니다. 예산을 빨리 쓴 지자체는 칭찬을 받고, 그렇지 못한 지자체는 평가가 깎입니다.
정창수/나라살림연구소 소장 "금융위기 당시에는 돈을 빨리 써서 경제를 살려야 하니깐 그럴 수 있죠. 지금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제도가 한 번 생기니깐 유지되는 거에요. 무조건 돈을 쓰는 게 능사가 아니잖아요." |
엉뚱한 곳에 세금이 쓰이면, 그 피해는 세금을 낸 주민들의 몫이 됩니다. 실제 이번 연속 보도 이후 피해 제보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청도군의 한 주민 "마을 도로가 좁아서 10년 넘게 도로 좀 넓혀달라고 했어요. 경운기가 움직이기 힘드니깐, 농민들이 농사짓기가 어렵다고.. 군청에서는 맨날 돈 없다고만 그래요. 그런데 뉴스 보니깐 예산이 없는 게 아니었네요…." |
■ 정부는 왜 감시하지 않았나?
정부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동안 감사원이 주민숙원사업과 관련해 수차례 부정사례를 적발했지만, 제대로 된 대책을 세우지 않았습니다.
건설과 소속 공무원이 전직 부군수 집 앞에 난 도로를 확장시켜준 사건, 마을 유지를 위해 진입도로를 만들어준 사건 등 감사원에 이미 적발된 사례들 중에도 주민숙원사업의 문제들이 드러나있었습니다.
예산 전문가들은, 아무리 취지가 좋아도 문제를 방치해선 안된다며, 정부가 당장 제도 개선에 나설 것을 주문했습니다.
주민숙원사업은 소규모 예산입니다. 또 잘게 쪼개어져 있다 보니 그동안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모아놓고 보니 '태산'이었습니다. 앞선 기사들에서 밝힌 것처럼 KBS가 지난 2014년 ~ 2020년 6년 치 주민숙원사업 예산 총액을 정보공개청구 해보니 6조 5천억 원이나 됐습니다. 반드시 제도를 개선해야 할 이유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어느 자치단체에서 예산을 가장 많이 썼나, 특히 지방선거를 앞두고 예산이 대폭 상승한 자치단체 등에 대해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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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 기자 jyp@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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