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치솟는 월세를 잡아라…상한제 실패한 베를린, ‘주택 몰수·공유화’ 추진

입력 2021.09.04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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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부터 최근까지 베를린의 1㎡당 월세 추이. 9년 동안 월세가 2배 가까이 상승했다.(출쳐=statista 웹페이지 갈무리)2012년부터 최근까지 베를린의 1㎡당 월세 추이. 9년 동안 월세가 2배 가까이 상승했다.(출쳐=statista 웹페이지 갈무리)
베를린 시 정부의 가장 큰 골칫거리는 아무래도 월세가 아닐까 싶습니다.

베를린의 평균 월세는 2012년 1㎡당 6.65유로였는데, 지금은 10유로가 넘습니다. 80㎡ 넓이의 다세대 주택에 월세로 산다고 한다면 순 월세만 800유로(약 110만 원)가 넘습니다. 여기에 관리비가 들어가게 되면 1,000유로(약 137만 원) 안팎이 될 겁니다.

저렴한 월세와 훌륭한 치안으로 한 때 유럽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이라는 명성이 있었지만 치솟는 월세에 이젠 옛말이 돼버렸습니다. 특히 베를린은 임대주택에 사는 사람 비율이 80%가 넘어 월세 상승에 대한 반감이 다른 지역보다 큰 곳이기도 합니다.

월세가 사회문제가 되자 베를린 시 정부는 지난해 2월 '월세 상한제'라는 주거대책을 시행했습니다. 말 그대로 월세를 일정한 선에서 월세를 동결하는 조치였습니다. 그런데 베를린의 월세 실험은 지난 4월 연방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이 내려지며 제동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베를린은 또 하나의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대형 부동산 회사가 가진 물량을 몰수해 공유화한 뒤 싸게 공급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주택 20만여 채 몰수·공유화 '주민투표'

베를린시는 독일 총선이 열리는 이달 26일 주택 3,000채 이상을 보유한 민간 부동산회사의 보유주택을 몰수해 공유화하는 결의안에 대한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를 시행합니다.

이 주민투표는 '도이체 보넨 등 몰수(Deutsche Wohnen & Co enteignen)'라는 시민단체가 발의했습니다. 도이체 보넨은 독일 증시에도 상장된 부동산 회사로 전 독일에 15만 5,000여 채를 보유하고 하고, 이 중 11만여 채가 베를린에 있습니다.

즉, 월세 폭등의 주범으로 꼽히는 도이체 보넨 등 부동산 회사들이 보유한 집을 몰수해, 시가 공급하는 방법으로 월세를 안정시켜야 한다는 얘깁니다.

다소 과격한 주장 같지만, 헌법상 근거도 있습니다. 독일 연방기본법 15조는 "토지와 천연자원, 생산수단은 사회화(공유화)를 위한 손해배상의 방식과 규모를 정하는 법률을 통해 공유재산이나 공유경제의 다른 형태로 전환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공유화(몰수)가 가능하고, 공유화를 할 때 손해배상을 해야 하며, 이는 법률로 정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베를린시는 부동산 회사에 대한 보상액까지 검토했는데 최대 360억 유로(약 49조 원)가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베를린의 임대 주택은 모두 150만여 채, 이 중 10여 개 부동산 회사가 보유 중인 24만여 채가 몰수 대상이라고 합니다. '도이체 보넨 등 몰수' 측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몰수한 주택은 베를린시와 임차인 조직 대표가 참여하는 공공기관에서 관리하고, 이 주택들이 다시 개인이나 회사의 소유가 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최소한 지금 같은 '미친' 월세 상승률은 막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부동산 회사 소유 주택 몰수에 대한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 용지. 사전투표를 희망하는 주민들에게 우편으로 발송됐다.부동산 회사 소유 주택 몰수에 대한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 용지. 사전투표를 희망하는 주민들에게 우편으로 발송됐다.
■주민 다수는 '주택 몰수 결의안' 찬성…법안 마련까지는 산 넘어 산

주민투표가 성사되는 데에는 베를린 유권자 약 17만 5,000여 명의 서명이 있었습니다. 최소 17만 표 이상의 찬성표는 확보된 셈이죠. 베를린시 유권자다 247만여 명인에, 투표자 중 과반이 찬성하면 결의안은 통과됩니다. 참고로 최근 언론사 여론 조사 결과 주택 몰수가 '좋다'고 응답한 베를린 유권자는 47%, '나쁘다'고 응답한 유권자는 43%였습니다. 통과될 가능성이 제법 크다고 보여집니다.

그렇다면 통과가 되면 바로 몰수에 들어가느냐, 이건 아닙니다.

이번 주민투표는 법안에 대한 투표가 아니고, 베를린시에 부동산회사로부터 주택 몰수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키는 것입니다. 가결되면 이를 베를린시 의회에서 논의하게 됩니다. 베를린시 의회도 이번 총선에서 새로 구성되기 때문에 주민투표 결과를 논의하는 것은 조금 뒤의 일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법적으로 이행 의무도 없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베를린시 의회가 어떻게 구성되느냐, 즉 주택 몰수에 찬성하는 정당이 다수당을 차지하는 게 중요합니다. 현재 다수당은 사회민주당(SPD)이지만 과반 의석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베를린시 정부도 좌파당, 녹색당과 연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민당과 녹색당은 이 정책에 뜨뜻미지근한 상황입니다. 이를 지지하는 곳은 좌파당 뿐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기민-기사당 연합이나 자유민주당 등은 물론 반대입니다. 주민투표가 통과된다고 해도 의회 구성에 따라 '베를린의 실험'이 실시될지가 결정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난 4월 연방 헌재가 베를린시의 월세상한체 위헌 결정을 내리자 세입자들이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였다.지난 4월 연방 헌재가 베를린시의 월세상한체 위헌 결정을 내리자 세입자들이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이런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2020년 독일 근로자의 평균 월 소득은 세후 2,084유로(약 286만 원)입니다. 베를린에서 임대주택에 산다면 월급의 절반 가량은 월세로 지출한다는 계산입니다. 월세 내느라 삶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겠죠.
기본권이 제한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 그렇기 때문에 정치권에서 어떻게든 해결하고 싶어 하고,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라는 겁니다. 주민투표 결과를 진지하게 논의해 어떤 식으로든 월세 폭등 제어 장치를 마련할 수밖에 없습니다. 9월 26일 베를린의 주민투표가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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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치솟는 월세를 잡아라…상한제 실패한 베를린, ‘주택 몰수·공유화’ 추진
    • 입력 2021-09-04 10:05:21
    특파원 리포트
2012년부터 최근까지 베를린의 1㎡당 월세 추이. 9년 동안 월세가 2배 가까이 상승했다.(출쳐=statista 웹페이지 갈무리)베를린 시 정부의 가장 큰 골칫거리는 아무래도 월세가 아닐까 싶습니다.

베를린의 평균 월세는 2012년 1㎡당 6.65유로였는데, 지금은 10유로가 넘습니다. 80㎡ 넓이의 다세대 주택에 월세로 산다고 한다면 순 월세만 800유로(약 110만 원)가 넘습니다. 여기에 관리비가 들어가게 되면 1,000유로(약 137만 원) 안팎이 될 겁니다.

저렴한 월세와 훌륭한 치안으로 한 때 유럽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이라는 명성이 있었지만 치솟는 월세에 이젠 옛말이 돼버렸습니다. 특히 베를린은 임대주택에 사는 사람 비율이 80%가 넘어 월세 상승에 대한 반감이 다른 지역보다 큰 곳이기도 합니다.

월세가 사회문제가 되자 베를린 시 정부는 지난해 2월 '월세 상한제'라는 주거대책을 시행했습니다. 말 그대로 월세를 일정한 선에서 월세를 동결하는 조치였습니다. 그런데 베를린의 월세 실험은 지난 4월 연방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이 내려지며 제동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베를린은 또 하나의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대형 부동산 회사가 가진 물량을 몰수해 공유화한 뒤 싸게 공급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주택 20만여 채 몰수·공유화 '주민투표'

베를린시는 독일 총선이 열리는 이달 26일 주택 3,000채 이상을 보유한 민간 부동산회사의 보유주택을 몰수해 공유화하는 결의안에 대한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를 시행합니다.

이 주민투표는 '도이체 보넨 등 몰수(Deutsche Wohnen & Co enteignen)'라는 시민단체가 발의했습니다. 도이체 보넨은 독일 증시에도 상장된 부동산 회사로 전 독일에 15만 5,000여 채를 보유하고 하고, 이 중 11만여 채가 베를린에 있습니다.

즉, 월세 폭등의 주범으로 꼽히는 도이체 보넨 등 부동산 회사들이 보유한 집을 몰수해, 시가 공급하는 방법으로 월세를 안정시켜야 한다는 얘깁니다.

다소 과격한 주장 같지만, 헌법상 근거도 있습니다. 독일 연방기본법 15조는 "토지와 천연자원, 생산수단은 사회화(공유화)를 위한 손해배상의 방식과 규모를 정하는 법률을 통해 공유재산이나 공유경제의 다른 형태로 전환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공유화(몰수)가 가능하고, 공유화를 할 때 손해배상을 해야 하며, 이는 법률로 정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베를린시는 부동산 회사에 대한 보상액까지 검토했는데 최대 360억 유로(약 49조 원)가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베를린의 임대 주택은 모두 150만여 채, 이 중 10여 개 부동산 회사가 보유 중인 24만여 채가 몰수 대상이라고 합니다. '도이체 보넨 등 몰수' 측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몰수한 주택은 베를린시와 임차인 조직 대표가 참여하는 공공기관에서 관리하고, 이 주택들이 다시 개인이나 회사의 소유가 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최소한 지금 같은 '미친' 월세 상승률은 막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부동산 회사 소유 주택 몰수에 대한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 용지. 사전투표를 희망하는 주민들에게 우편으로 발송됐다. ■주민 다수는 '주택 몰수 결의안' 찬성…법안 마련까지는 산 넘어 산

주민투표가 성사되는 데에는 베를린 유권자 약 17만 5,000여 명의 서명이 있었습니다. 최소 17만 표 이상의 찬성표는 확보된 셈이죠. 베를린시 유권자다 247만여 명인에, 투표자 중 과반이 찬성하면 결의안은 통과됩니다. 참고로 최근 언론사 여론 조사 결과 주택 몰수가 '좋다'고 응답한 베를린 유권자는 47%, '나쁘다'고 응답한 유권자는 43%였습니다. 통과될 가능성이 제법 크다고 보여집니다.

그렇다면 통과가 되면 바로 몰수에 들어가느냐, 이건 아닙니다.

이번 주민투표는 법안에 대한 투표가 아니고, 베를린시에 부동산회사로부터 주택 몰수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키는 것입니다. 가결되면 이를 베를린시 의회에서 논의하게 됩니다. 베를린시 의회도 이번 총선에서 새로 구성되기 때문에 주민투표 결과를 논의하는 것은 조금 뒤의 일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법적으로 이행 의무도 없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베를린시 의회가 어떻게 구성되느냐, 즉 주택 몰수에 찬성하는 정당이 다수당을 차지하는 게 중요합니다. 현재 다수당은 사회민주당(SPD)이지만 과반 의석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베를린시 정부도 좌파당, 녹색당과 연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민당과 녹색당은 이 정책에 뜨뜻미지근한 상황입니다. 이를 지지하는 곳은 좌파당 뿐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기민-기사당 연합이나 자유민주당 등은 물론 반대입니다. 주민투표가 통과된다고 해도 의회 구성에 따라 '베를린의 실험'이 실시될지가 결정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난 4월 연방 헌재가 베를린시의 월세상한체 위헌 결정을 내리자 세입자들이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였다.하지만 이런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2020년 독일 근로자의 평균 월 소득은 세후 2,084유로(약 286만 원)입니다. 베를린에서 임대주택에 산다면 월급의 절반 가량은 월세로 지출한다는 계산입니다. 월세 내느라 삶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겠죠.
기본권이 제한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 그렇기 때문에 정치권에서 어떻게든 해결하고 싶어 하고,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라는 겁니다. 주민투표 결과를 진지하게 논의해 어떤 식으로든 월세 폭등 제어 장치를 마련할 수밖에 없습니다. 9월 26일 베를린의 주민투표가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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