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프차에 타는 순간 폭력이 가해졌습니다. 경찰서에 도착하니 이미 수갑이 채워져 있었고요” |
1989년 5월 24일 11시 30분. 충북 제천의 제원고등학교(현 제천디지털전자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일본어를 가르치던 강성호 교사에게 교장실로 와달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교장실 문을 열자 제천경찰서 대공과 형사 2명이 강 교사를 맞았습니다.
“강성호 선생님 맞으시죠? 학생 문제 때문에 확인할 내용이 있습니다. 잠시 경찰서로 가주셔야겠습니다” |
‘학생 문제’라는 말에 이제 막 부임한 28살의 초임교사는 형사들을 따라 나섰습니다. 하지만 현관 앞에 세워져 있던 검정색 지프자에 올라타는 순간.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알았습니다. 주먹과 구둣발이 날아왔기 때문입니다.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도착한 곳은 제천경찰서 대공과 사무실. 손에는 이미 수갑이 채워져 있었습니다.
경찰은 강 교사가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6·25 북침설’을 교육하고 ‘북한이 살기 좋은 곳’이라고 교육해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고 말했습니다. 간첩 혐의가 적용됐으니 사실대로 진술하라고 강조했습니다.
강 교사는 “그런 적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자신은 간첩도 아니고 친북 교육을 한 적도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강 교사의 진술을 믿지 않았습니다.
깊은 밤이 되자 경찰은 강 교사의 제자들을 조사실로 불러 대질신문을 시작했습니다. 제자들은 고개를 숙인 채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이 6·25가 북침이라고 가르쳤어요. 미군이 북한을 먼저 공격해서 벌어진 전쟁이라고….” |
강 교사는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같은 반 학생 여러 명이 수차례에 걸쳐 강 교사의 ‘친북 발언’을 진술했기 때문입니다. 1심과 2심을 거쳐 대법원까지 갔지만 판결은 뒤집히지 않았습니다.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자격정지 1년. 발령 4개월 만에 수감된 강 교사는 출소하고도 10년 넘게 학교 밖을 맴돌아야 했습니다.
강 교사는 일련의 사건이 당시 막 결성되기 시작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을 와해시키기 위한 공작이라고 주장해왔습니다. 노태우정부는 재임기간 내내 전교조는 불법조직이라는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전교조 결성식에 참여한 저를 간첩으로 몰아서 전교조가 좌경 용공집단이라는 낙인을 찍는 데 결정적인 근거로 사용한 거죠” |
그리고 2년 전, 명예회복을 위해 강 교사는 재심을 청구했습니다. 법원은 당시 형사들이 강 교사를 불법적으로 체포하고 구금했다면서 재심 청구를 받아들였습니다.
재심 법정에 선 당시 학생들은 ‘담임 선생님과 경찰이 거짓 진술을 하라고 회유하고 압박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이들 중 일부는 문제가 된 수업에 결석했던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담임 교사가 학생을 행선지도 알려주지 않은 채 경찰서에 데리고 가서 진술을 종용한 사실도 새롭게 확인됐습니다. 경찰이 영장 없이 강 교사가 근무했던 교무실과 주거지를 압수 수색을 한 사실도 확인됐습니다.
재판부는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32년 만에 간첩 교사라는 누명을 벗게 됐지만 강 교사는 여전히 마음이 편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32년 전 교실을 빠져나와 교장실로 불려간 이후부터 재심 결과가 나온 오늘까지. 법정 밖에서 제자들과 단 한 번도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강 교사는 여전히 32년 전 경찰서에서 제자와 만난 그 날을 가장 마음 아파했습니다.
“저를 간첩이라고 증언했던 그 제자들, 제자들은 여전히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합니다. 그런 제자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결코 가볍지는 않죠. 그렇지만 저는 그 제자들을 결코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도 국가보안법이 만든 하나의 희생양이죠. 제가 어떻게 미워할 수 있겠습니까” |
강 교사는 다만 당시 사건의 진실 은폐에 관여한 교장과 교감 등 교육 관계자들이 즉각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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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침’ 거짓 진술에…교사 32년 만에 무죄 “제자들 짐 내려놓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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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1-09-05 08:00:05
“지프차에 타는 순간 폭력이 가해졌습니다. 경찰서에 도착하니 이미 수갑이 채워져 있었고요” |
1989년 5월 24일 11시 30분. 충북 제천의 제원고등학교(현 제천디지털전자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일본어를 가르치던 강성호 교사에게 교장실로 와달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교장실 문을 열자 제천경찰서 대공과 형사 2명이 강 교사를 맞았습니다.
“강성호 선생님 맞으시죠? 학생 문제 때문에 확인할 내용이 있습니다. 잠시 경찰서로 가주셔야겠습니다” |
‘학생 문제’라는 말에 이제 막 부임한 28살의 초임교사는 형사들을 따라 나섰습니다. 하지만 현관 앞에 세워져 있던 검정색 지프자에 올라타는 순간.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알았습니다. 주먹과 구둣발이 날아왔기 때문입니다.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도착한 곳은 제천경찰서 대공과 사무실. 손에는 이미 수갑이 채워져 있었습니다.
경찰은 강 교사가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6·25 북침설’을 교육하고 ‘북한이 살기 좋은 곳’이라고 교육해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고 말했습니다. 간첩 혐의가 적용됐으니 사실대로 진술하라고 강조했습니다.
강 교사는 “그런 적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자신은 간첩도 아니고 친북 교육을 한 적도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강 교사의 진술을 믿지 않았습니다.
깊은 밤이 되자 경찰은 강 교사의 제자들을 조사실로 불러 대질신문을 시작했습니다. 제자들은 고개를 숙인 채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이 6·25가 북침이라고 가르쳤어요. 미군이 북한을 먼저 공격해서 벌어진 전쟁이라고….” |
강 교사는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같은 반 학생 여러 명이 수차례에 걸쳐 강 교사의 ‘친북 발언’을 진술했기 때문입니다. 1심과 2심을 거쳐 대법원까지 갔지만 판결은 뒤집히지 않았습니다.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자격정지 1년. 발령 4개월 만에 수감된 강 교사는 출소하고도 10년 넘게 학교 밖을 맴돌아야 했습니다.
강 교사는 일련의 사건이 당시 막 결성되기 시작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을 와해시키기 위한 공작이라고 주장해왔습니다. 노태우정부는 재임기간 내내 전교조는 불법조직이라는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전교조 결성식에 참여한 저를 간첩으로 몰아서 전교조가 좌경 용공집단이라는 낙인을 찍는 데 결정적인 근거로 사용한 거죠” |
그리고 2년 전, 명예회복을 위해 강 교사는 재심을 청구했습니다. 법원은 당시 형사들이 강 교사를 불법적으로 체포하고 구금했다면서 재심 청구를 받아들였습니다.
재심 법정에 선 당시 학생들은 ‘담임 선생님과 경찰이 거짓 진술을 하라고 회유하고 압박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이들 중 일부는 문제가 된 수업에 결석했던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담임 교사가 학생을 행선지도 알려주지 않은 채 경찰서에 데리고 가서 진술을 종용한 사실도 새롭게 확인됐습니다. 경찰이 영장 없이 강 교사가 근무했던 교무실과 주거지를 압수 수색을 한 사실도 확인됐습니다.
재판부는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32년 만에 간첩 교사라는 누명을 벗게 됐지만 강 교사는 여전히 마음이 편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32년 전 교실을 빠져나와 교장실로 불려간 이후부터 재심 결과가 나온 오늘까지. 법정 밖에서 제자들과 단 한 번도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강 교사는 여전히 32년 전 경찰서에서 제자와 만난 그 날을 가장 마음 아파했습니다.
“저를 간첩이라고 증언했던 그 제자들, 제자들은 여전히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합니다. 그런 제자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결코 가볍지는 않죠. 그렇지만 저는 그 제자들을 결코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도 국가보안법이 만든 하나의 희생양이죠. 제가 어떻게 미워할 수 있겠습니까” |
강 교사는 다만 당시 사건의 진실 은폐에 관여한 교장과 교감 등 교육 관계자들이 즉각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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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영 기자 1234@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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