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그가 꿈꾸는 건 ‘최초 여성 총리’일까, ‘극우의 일본’일까

입력 2021.09.09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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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이치 사나에 전 총무상이 어제(8일) 오후 일본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자민당 총재 선거 공식 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여성 의원의 자민당 총재 선거 출마는 2008년 고이케 유리코(현 도쿄도지사) 당시 의원 이후 처음이다.  NHK 화면 갈무리다카이치 사나에 전 총무상이 어제(8일) 오후 일본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자민당 총재 선거 공식 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여성 의원의 자민당 총재 선거 출마는 2008년 고이케 유리코(현 도쿄도지사) 당시 의원 이후 처음이다. NHK 화면 갈무리

다카이치 사나에 전 총무상이 어제(8일) 일본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는 29일 실시 예정인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공식 선언했습니다.

그는 "일본을 지킬 책임과 미래를 열겠다는 각오로 자민당 총재 선거 입후보를 표명한다"면서 "내 모든 것을 걸고 일할 것을 맹세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지난달 총재 선거에 나가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그땐 별로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이달 초 차기 총리 선호도를 묻는 여론조사에서도 지지율은 고작 4%대였습니다. 파벌이 중요한 일본 정계에서 심지어 그는 어느 파벌에도 속해 있지 않습니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선거판을 흔들지 모를 '다크 호스'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2020년 9월 16일 제99대 일본 총리로 선출된 스가 요시히데 자민당 총재가 다카이치 사나에(왼쪽 두 번째), 아베 신조(왼쪽 세 번째) 등  동료 의원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도쿄=교도 연합뉴스2020년 9월 16일 제99대 일본 총리로 선출된 스가 요시히데 자민당 총재가 다카이치 사나에(왼쪽 두 번째), 아베 신조(왼쪽 세 번째) 등 동료 의원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도쿄=교도 연합뉴스

그의 뒤엔 '강력한 우군, 아베'가…

남성들이 주로 활동해온 일본 정계에서 그는 나름 평탄한 길을 걸어왔습니다. 1993년 나라현에서 무소속 출마해 중의원에 당선됐고, 1996년 자민당에 입당했습니다.

중의원만 8선, 아베 정권 시절엔 정무조사회장(우리로 치면 정책위의장)과 총무상 등 요직도 거쳤습니다. 그런 이력에 비해 정책이나 리더십 등에서 정치인으로서 보여준 능력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최근까지만 해도 '그저 그런 군소 후보' 정도로 대접받아왔을 겁니다.

하지만 그에겐 '천군만마', 아베 신조 전 총리라는 강력한 '뒷배'가 있었습니다. 아베가 최근 다카이치에 대한 지지 의사를 내비치면서 '일본 첫 여성 총리 탄생' 가능성이 슬슬 언급되기 시작한 것이죠.

2020년 8월 15일 일본의 패전일을 맞아 다카이치 사나에 당시 총무상이 현직 각료 신분으로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KBS뉴스 화면 갈무리2020년 8월 15일 일본의 패전일을 맞아 다카이치 사나에 당시 총무상이 현직 각료 신분으로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KBS뉴스 화면 갈무리

■ "총리 돼도 야스쿠니 참배"

다카이치와 아베는 1993년 나란히 중의원에 당선돼 극우 내지 우파 정치 노선을 함께 걸어온 정치적 동지입니다.

아베는 자신이 속한 당내 최대 파벌인 '호소다파(96명) ' 의원들에게 정치 신념이 같다는 것과 여성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다카이치 지지를 호소했다고 일본 언론들은 전했습니다.

역시나 아베 정권 총무상 재임 시절, 각료(장관) 신분임에도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반복해서 참배했습니다. 극우 정치인이죠. 어제(8일) 출마 기자회견에서도 "신앙의 자유"를 언급하면서 총리가 되더라도 참배를 계속하겠다는 뜻을 밝혔고요.

과거 일본의 침략전쟁 책임을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에 대해선 "일방적으로 일본이 나쁘다고 사죄한 것"이라며 깎아내렸습니다.

고노 담화에 있는 '종군 위안부'라는 표현에 대해서도 "종군 위안부란 표현은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되레 "역사를 올바르게 가르쳐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역사 인식 수준만 낮은 게 아니었습니다. 다카이치는 예전에 여성을 '아이 낳는 기계'에 비유하는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남자만 왕위를 잇게 하는 현행 제도나 아내가 남편 성(姓)을 따르도록 하는 현행 부부동성제 개정에도 반대 의사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당선되면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될 것이란 점을 부각하려 하지만 사실 그가 서 있는 곳은 반(反)여성 입장인 셈이었습니다.

최근 차기 총리 선호도 조사에서 1~3위에 올라 있는 일본 자민당 의원들. 왼쪽부터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 기시다 후미오 전 정조회장, 고노 다로 행정개혁상.   NHK 화면 갈무리최근 차기 총리 선호도 조사에서 1~3위에 올라 있는 일본 자민당 의원들. 왼쪽부터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 기시다 후미오 전 정조회장, 고노 다로 행정개혁상. NHK 화면 갈무리

■ 파괴력 얼마나 클까

오는 29일 치러지는 자민당 총재 선거는 우선 1차 투표(의원 383표 + 당원 비례 383표)를 해서 384표 이상을 얻은 후보가 당선됩니다. 만약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결선 투표(의원 383표 + 광역자치단체 47표)를 통해 당선을 가립니다.

중요한 건 1차든, 결선이든 소속 국회의원(중의원 참의원)이 던지는 표입니다. 바꿔 말하면 각 파벌이 어떤 후보를 밀지가 결과에 큰 영향을 줍니다.

여론조사 지지율 1~3위 중에 공식 출마 선언을 한 사람은 아직 기시다 후보밖에 없고요. 2008년~2020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 4차례 출마해 낙선한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은 출마 뜻을 접고 고노 다로 행정규제개혁상 당선을 지지하는 쪽으로 돌아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선거가 '기시다 - 고노 - 다카이치 3파전' 구도에 놓이고, 아베의 지원 사격으로 다카이치가 적지 않은 보수표를 가져갈 경우 혼전 양상을 띨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비록 여전히 당선 가능성은 낮다고 하지만 다카이치가 이번에 보여줄 파괴력은 어느 정도일까요. 아베 전 총리의 막후 정치는 언제까지 유효한 것일까요.

점점 우경화하고 있는 일본은 가속 페달을 얼마나 밟게 될지, 다카이치의 선전(?) 여부도 하나의 판단 근거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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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그가 꿈꾸는 건 ‘최초 여성 총리’일까, ‘극우의 일본’일까
    • 입력 2021-09-09 08:03:08
    특파원 리포트
다카이치 사나에 전 총무상이 어제(8일) 오후 일본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자민당 총재 선거 공식 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여성 의원의 자민당 총재 선거 출마는 2008년 고이케 유리코(현 도쿄도지사) 당시 의원 이후 처음이다.  NHK 화면 갈무리
다카이치 사나에 전 총무상이 어제(8일) 일본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는 29일 실시 예정인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공식 선언했습니다.

그는 "일본을 지킬 책임과 미래를 열겠다는 각오로 자민당 총재 선거 입후보를 표명한다"면서 "내 모든 것을 걸고 일할 것을 맹세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지난달 총재 선거에 나가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그땐 별로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이달 초 차기 총리 선호도를 묻는 여론조사에서도 지지율은 고작 4%대였습니다. 파벌이 중요한 일본 정계에서 심지어 그는 어느 파벌에도 속해 있지 않습니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선거판을 흔들지 모를 '다크 호스'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2020년 9월 16일 제99대 일본 총리로 선출된 스가 요시히데 자민당 총재가 다카이치 사나에(왼쪽 두 번째), 아베 신조(왼쪽 세 번째) 등  동료 의원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도쿄=교도 연합뉴스
그의 뒤엔 '강력한 우군, 아베'가…

남성들이 주로 활동해온 일본 정계에서 그는 나름 평탄한 길을 걸어왔습니다. 1993년 나라현에서 무소속 출마해 중의원에 당선됐고, 1996년 자민당에 입당했습니다.

중의원만 8선, 아베 정권 시절엔 정무조사회장(우리로 치면 정책위의장)과 총무상 등 요직도 거쳤습니다. 그런 이력에 비해 정책이나 리더십 등에서 정치인으로서 보여준 능력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최근까지만 해도 '그저 그런 군소 후보' 정도로 대접받아왔을 겁니다.

하지만 그에겐 '천군만마', 아베 신조 전 총리라는 강력한 '뒷배'가 있었습니다. 아베가 최근 다카이치에 대한 지지 의사를 내비치면서 '일본 첫 여성 총리 탄생' 가능성이 슬슬 언급되기 시작한 것이죠.

2020년 8월 15일 일본의 패전일을 맞아 다카이치 사나에 당시 총무상이 현직 각료 신분으로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KBS뉴스 화면 갈무리
■ "총리 돼도 야스쿠니 참배"

다카이치와 아베는 1993년 나란히 중의원에 당선돼 극우 내지 우파 정치 노선을 함께 걸어온 정치적 동지입니다.

아베는 자신이 속한 당내 최대 파벌인 '호소다파(96명) ' 의원들에게 정치 신념이 같다는 것과 여성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다카이치 지지를 호소했다고 일본 언론들은 전했습니다.

역시나 아베 정권 총무상 재임 시절, 각료(장관) 신분임에도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반복해서 참배했습니다. 극우 정치인이죠. 어제(8일) 출마 기자회견에서도 "신앙의 자유"를 언급하면서 총리가 되더라도 참배를 계속하겠다는 뜻을 밝혔고요.

과거 일본의 침략전쟁 책임을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에 대해선 "일방적으로 일본이 나쁘다고 사죄한 것"이라며 깎아내렸습니다.

고노 담화에 있는 '종군 위안부'라는 표현에 대해서도 "종군 위안부란 표현은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되레 "역사를 올바르게 가르쳐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역사 인식 수준만 낮은 게 아니었습니다. 다카이치는 예전에 여성을 '아이 낳는 기계'에 비유하는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남자만 왕위를 잇게 하는 현행 제도나 아내가 남편 성(姓)을 따르도록 하는 현행 부부동성제 개정에도 반대 의사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당선되면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될 것이란 점을 부각하려 하지만 사실 그가 서 있는 곳은 반(反)여성 입장인 셈이었습니다.

최근 차기 총리 선호도 조사에서 1~3위에 올라 있는 일본 자민당 의원들. 왼쪽부터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 기시다 후미오 전 정조회장, 고노 다로 행정개혁상.   NHK 화면 갈무리
■ 파괴력 얼마나 클까

오는 29일 치러지는 자민당 총재 선거는 우선 1차 투표(의원 383표 + 당원 비례 383표)를 해서 384표 이상을 얻은 후보가 당선됩니다. 만약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결선 투표(의원 383표 + 광역자치단체 47표)를 통해 당선을 가립니다.

중요한 건 1차든, 결선이든 소속 국회의원(중의원 참의원)이 던지는 표입니다. 바꿔 말하면 각 파벌이 어떤 후보를 밀지가 결과에 큰 영향을 줍니다.

여론조사 지지율 1~3위 중에 공식 출마 선언을 한 사람은 아직 기시다 후보밖에 없고요. 2008년~2020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 4차례 출마해 낙선한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은 출마 뜻을 접고 고노 다로 행정규제개혁상 당선을 지지하는 쪽으로 돌아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선거가 '기시다 - 고노 - 다카이치 3파전' 구도에 놓이고, 아베의 지원 사격으로 다카이치가 적지 않은 보수표를 가져갈 경우 혼전 양상을 띨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비록 여전히 당선 가능성은 낮다고 하지만 다카이치가 이번에 보여줄 파괴력은 어느 정도일까요. 아베 전 총리의 막후 정치는 언제까지 유효한 것일까요.

점점 우경화하고 있는 일본은 가속 페달을 얼마나 밟게 될지, 다카이치의 선전(?) 여부도 하나의 판단 근거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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