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학동 철거건물 붕괴사고 석달…멈춰버린 유족들 시간

입력 2021.09.1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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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학동 참사로 숨진 A씨가 사고 전 어머니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광주 학동 참사로 숨진 A씨가 사고 전 어머니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

2021년 6월 9일, A 씨는 아버지와 함께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암 수술 이후 요양병원에 있는 엄마를 보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엄마에게 '지금 출발한다'는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랬던 A 씨는 싸늘한 주검이 돼 어머니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에서 철거 중이던 5층 건물이 무너져 내려 A 씨가 타고 있던 버스를 덮쳤습니다. A 씨를 포함해 9명이 숨지고, 8명이 크게 다쳤습니다.

사고가 일어난지 석 달이 지났지만, A씨의 가족들은 여전히 참사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언니는 발길이 닿는 곳마다 막내 동생을 떠올리고, 어머니는 답장 없는 문자 메시지로 안부를 물으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습니다. 석 달 전에 멈춰버린 유족들의 삶을 들여다 봤습니다.

■ 생사 엇갈린 부녀...재간둥이 막내동생의 죽음


A 씨는 다섯 자매 중 막내딸이었습니다. 사고 당일, A 씨는 아버지와 함께였습니다. 아버지는 버스 앞쪽에 앉았고 A 씨는 뒤쪽에 앉았습니다. 아버지는 극적으로 목숨을 구했지만, A 씨는 숨졌습니다.

아버지는 큰 소리가 나더니 두 무릎 사이로 고개가 고꾸라졌다고 사고 당시를 회상합니다. 구조되는 순간까지 "막둥아"를 부르며 A 씨를 찾았지만 대답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동물을 좋아했던 A 씨는 수의대로 편입을 준비했습니다. 토익 980점을 받을 만큼 공부도 잘했습니다. 암 수술 후 어머니의 병간호를 위해 편입 준비를 스스로 미룰 정도로 착한 동생이었습니다.

A씨의 언니는 "막내가 '언니 내가 공부는 나중에 할 수 있지만, 엄마를 이렇게 보살필 수 있는 시기나 기회는 없을 것 같다'고 '공부는 나중에 하면 된다'고 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언니들과 부모님 사이의 갈등을 중재하던 현명하고 똑똑한 막내는 하루아침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 풍비박산 난 가족의 삶...광주 떠나 낯선 도시로


A 씨의 어머니는 참사 이후 광주를 떠났습니다. 평생 삶을 일궈왔던 곳이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눈길, 발길이 닿는 곳마다 막내딸이 아른거렸기 때문입니다. 낯선 도시로 온 어머니는 온종일 버스를 타고 배회 하는 게 일상이 됐습니다.

A 씨의 형부는 "장모님께서도 그렇고 장인 어르신께서도 그렇고 전부 다 본인들이 죄인이라고 생각하고 계신다. 그러실 필요가 없다고 말씀드려도 항상 죄책감 속에 살고 계신다. 그 마음을 어떻게 헤아릴 수가 있겠냐"며 참사 이후로 "모든 게 달라졌다. 아예 쑥대밭이 됐고, 풍비박산이 났다"고 말합니다.

■ 오직 바라는 건 "막내가 살아 돌아오는 것뿐"


A 씨의 아버지는 참사로 갈비뼈 10개와 허리등뼈가 골절되는 중상을 입었습니다. 10시간 가까이 수술을 받고 현재는 요양병원에서 머물고 있습니다. 최근엔 의사로부터 사고 후 충격으로 '외상성 치매' 소견이 보인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처음에 가족들은 아버지에게 막내딸의 죽음을 숨겼습니다. 차마 사실대로 알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막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자신에게 힘이 되어주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막내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땐 세상이 무너져내렸습니다. 아버지에게 있어 자신의 몸이 회복되는 것보다 더 바라는 게 있다면, 막내딸이 살아서 돌아오는 것입니다.

A 씨의 아버지는 "우리 막둥이를 앞으로 볼 수가 없다는 것, 그것 외에 내 몸이야 상관없다. 그것 외에 나는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다"고 말합니다. A 씨의 언니도 "매 순간, 매 공간 동생이 생각난다"며 "몇천억, 몇백억, 세상을 다 준다고 해도 원하는 건 동생이다"고 말합니다.

■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참사...같은 일 없어야


생각지도 못했던 순간에 맞닥뜨린 참사.

사랑했던 아들과 어머니, 아버지, 막둥이 딸과 영영 이별해야 했습니다. 책임자 엄벌과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집회에 참석하고, 시민대책위를 구성하는 등 피폐해진 삶 속에서도 가족의 죽음이 잊히지 않도록 동분서주하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학동 참사 유가족 대표 이진의 씨는 "저희가 발버둥 치지 않으면 관심을 두지 않는다. 정치권, 행정, 정부, 광주시, 동구청 역시 저희가 소리를 내고 도와달라 애원을 해야 저희 이야기를 들어준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유족들은 각종 가짜 소문에 싸우고 있다. 20억을 받았다, 재개발 현장에서 지어지는 아파트를 받는다는 것들이다"고 2차 가해를 멈춰달라고 호소했습니다.

A 씨의 언니는 "동생을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다른 사람은 이런 똑같은 아픔을 절대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면서 "이번 사고로 인해 우리 사회를 바꿀 수 있는 단 한걸음이라도 나아가길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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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주 학동 철거건물 붕괴사고 석달…멈춰버린 유족들 시간
    • 입력 2021-09-10 07:00:07
    취재K
광주 학동 참사로 숨진 A씨가 사고 전 어머니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
2021년 6월 9일, A 씨는 아버지와 함께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암 수술 이후 요양병원에 있는 엄마를 보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엄마에게 '지금 출발한다'는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랬던 A 씨는 싸늘한 주검이 돼 어머니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에서 철거 중이던 5층 건물이 무너져 내려 A 씨가 타고 있던 버스를 덮쳤습니다. A 씨를 포함해 9명이 숨지고, 8명이 크게 다쳤습니다.

사고가 일어난지 석 달이 지났지만, A씨의 가족들은 여전히 참사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언니는 발길이 닿는 곳마다 막내 동생을 떠올리고, 어머니는 답장 없는 문자 메시지로 안부를 물으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습니다. 석 달 전에 멈춰버린 유족들의 삶을 들여다 봤습니다.

■ 생사 엇갈린 부녀...재간둥이 막내동생의 죽음


A 씨는 다섯 자매 중 막내딸이었습니다. 사고 당일, A 씨는 아버지와 함께였습니다. 아버지는 버스 앞쪽에 앉았고 A 씨는 뒤쪽에 앉았습니다. 아버지는 극적으로 목숨을 구했지만, A 씨는 숨졌습니다.

아버지는 큰 소리가 나더니 두 무릎 사이로 고개가 고꾸라졌다고 사고 당시를 회상합니다. 구조되는 순간까지 "막둥아"를 부르며 A 씨를 찾았지만 대답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동물을 좋아했던 A 씨는 수의대로 편입을 준비했습니다. 토익 980점을 받을 만큼 공부도 잘했습니다. 암 수술 후 어머니의 병간호를 위해 편입 준비를 스스로 미룰 정도로 착한 동생이었습니다.

A씨의 언니는 "막내가 '언니 내가 공부는 나중에 할 수 있지만, 엄마를 이렇게 보살필 수 있는 시기나 기회는 없을 것 같다'고 '공부는 나중에 하면 된다'고 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언니들과 부모님 사이의 갈등을 중재하던 현명하고 똑똑한 막내는 하루아침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 풍비박산 난 가족의 삶...광주 떠나 낯선 도시로


A 씨의 어머니는 참사 이후 광주를 떠났습니다. 평생 삶을 일궈왔던 곳이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눈길, 발길이 닿는 곳마다 막내딸이 아른거렸기 때문입니다. 낯선 도시로 온 어머니는 온종일 버스를 타고 배회 하는 게 일상이 됐습니다.

A 씨의 형부는 "장모님께서도 그렇고 장인 어르신께서도 그렇고 전부 다 본인들이 죄인이라고 생각하고 계신다. 그러실 필요가 없다고 말씀드려도 항상 죄책감 속에 살고 계신다. 그 마음을 어떻게 헤아릴 수가 있겠냐"며 참사 이후로 "모든 게 달라졌다. 아예 쑥대밭이 됐고, 풍비박산이 났다"고 말합니다.

■ 오직 바라는 건 "막내가 살아 돌아오는 것뿐"


A 씨의 아버지는 참사로 갈비뼈 10개와 허리등뼈가 골절되는 중상을 입었습니다. 10시간 가까이 수술을 받고 현재는 요양병원에서 머물고 있습니다. 최근엔 의사로부터 사고 후 충격으로 '외상성 치매' 소견이 보인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처음에 가족들은 아버지에게 막내딸의 죽음을 숨겼습니다. 차마 사실대로 알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막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자신에게 힘이 되어주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막내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땐 세상이 무너져내렸습니다. 아버지에게 있어 자신의 몸이 회복되는 것보다 더 바라는 게 있다면, 막내딸이 살아서 돌아오는 것입니다.

A 씨의 아버지는 "우리 막둥이를 앞으로 볼 수가 없다는 것, 그것 외에 내 몸이야 상관없다. 그것 외에 나는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다"고 말합니다. A 씨의 언니도 "매 순간, 매 공간 동생이 생각난다"며 "몇천억, 몇백억, 세상을 다 준다고 해도 원하는 건 동생이다"고 말합니다.

■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참사...같은 일 없어야


생각지도 못했던 순간에 맞닥뜨린 참사.

사랑했던 아들과 어머니, 아버지, 막둥이 딸과 영영 이별해야 했습니다. 책임자 엄벌과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집회에 참석하고, 시민대책위를 구성하는 등 피폐해진 삶 속에서도 가족의 죽음이 잊히지 않도록 동분서주하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학동 참사 유가족 대표 이진의 씨는 "저희가 발버둥 치지 않으면 관심을 두지 않는다. 정치권, 행정, 정부, 광주시, 동구청 역시 저희가 소리를 내고 도와달라 애원을 해야 저희 이야기를 들어준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유족들은 각종 가짜 소문에 싸우고 있다. 20억을 받았다, 재개발 현장에서 지어지는 아파트를 받는다는 것들이다"고 2차 가해를 멈춰달라고 호소했습니다.

A 씨의 언니는 "동생을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다른 사람은 이런 똑같은 아픔을 절대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면서 "이번 사고로 인해 우리 사회를 바꿀 수 있는 단 한걸음이라도 나아가길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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