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도발·무관심에도 다시 ‘종전선언’ 꺼내든 이유는?

입력 2021.09.22 (13:57)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현지 시간 21일 임기 마지막 유엔총회 무대에서 종전선언 카드를 다시 꺼내 들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가 모여 종전선언을 하자고 밝혔습니다.

북한이 잇따라 미사일 도발을 하고, 영변 핵시설 재가동 징후까지 포착된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다시 종전선언을 제안한 건 의외라는 반응이 나옵니다.

북한이 우리의 통신선 연락에 전혀 응답하지 않고 있고, 남북 및 북미 대화 재개에 반응을 보이지도 않고 있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다시 '종전선언' 카드를 꺼내는 이유는 뭘까요?

■ '종전선언' 2018년 첫 언급…올해는 중국 참여도 제안

문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종전선언을 언급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UN 총회에서 나온 문 대통령 '종전선언' 관련 발언>

2018년 UN 총회 연설
"앞으로 비핵화를 위한 과감한 조치들이 관련국들 사이에서 실행되고 종전선언으로 이어질 것을 기대합니다."

2019년 UN 총회 연설
"한반도에서 두 번 다시 전쟁의 비극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긴 정전을 끝내고 완전한 종전을 이루어야 합니다."

2020년 UN 총회 연설
"그 시작은 평화에 대한 서로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한반도 종전선언이라고 믿습니다. 종전선언이야말로 한반도에서 비핵화와 함께 항구적 평화체제의 길을 여는 문이 될 것입니다."

2021년 UN 총회 연설
"나는 오늘 한반도 '종전선언'을 위해 국제사회가 힘을 모아주실 것을 다시 한번 촉구하며,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가 모여 한반도에서의 전쟁이 종료되었음을 함께 선언하길 제안합니다."

종전선언을 처음 언급한 건 2018년이었고, 작년엔 한반도 평화의 시작은 '종전선언'이라며 국제사회에 한반도 종전선언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습니다.

올해는 종전선언의 주체와 관련해 '남북미' 또는 '남북미중'이라고 언급했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작년보다 훨씬 더 구체적인 제안을 한 셈입니다.

특히 중국이 종전선언 주체로 처음 언급됐는데, 최근 왕이 외교부장이 한국을 방문해 문재인 대통령을 만났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종전선언' 언급과 관련해 중국과 사전에 어느 정도 교감이 있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또 한국과 미국이 그동안 UN 총회 연설 전에 대북 메시지를 서로 조율해왔다는 점에 비춰보면, '종전선언' 발언과 관련해서도 미국과도 사전에 교감이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 바이든 대통령도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진지한 외교를 추구한다며 우리 정부와 톤을 맞췄습니다.

물론 사전에 이런 교감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미국이나 중국이 당장 종전선언 참가에 찬성하는 입장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미국은 북한이 비핵화와 관련한 뚜렷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으면 종전선언을 고려할 수 없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밝혀왔습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조현 주유엔대사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조현 주유엔대사

■ 임기 8개월 남기고 '종전선언 카드' 꺼내든 이유는?

외교가에서는 문 대통령이 올해는 연설에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지지를 호소하는 원론적인 수준의 발언만 할 거란 전망이 많았습니다. 북한의 도발과 무관심에, 대선을 6개월 앞둔 국내 정치적 상황까지 고려하면 파격적인 제안을 하긴 어려울 거란 분석이었습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이런 관측을 뛰어 넘어, 종전선언 카드를 꺼내 들었습니다.

문 대통령 입장에서는 올해가 남북의 유엔 동시 가입 30주년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종전선언이라는 과감한 제안을 하기엔 적절한 시기였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또 비핵화 협상의 교착 국면이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상황을 타개할 과감한 반전 카드가 필요하다는 인식도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2018년부터 진행되어온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2019년 2월 이른바 '하노이 노딜'로 좌초됐고, 이후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다시 한번 기대감을 높였지만, 여전히 남북, 북미 간 대화는 꽉 막혀 있는 상황입니다.

임기를 8개월 남긴 문 대통령 입장에선 다시 한번 '톱 다운' 방식의 과감한 접근을 통해 현재 상황을 타개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종전선언'을 물꼬로 정부가 그동안 구상했던 남북 간 백신 협력, 통신선 연락 재개, 화상 이산가족 상봉, 북미 협상 재개 등을 현실화해나가겠다는 겁니다.

그렇게 논의를 진척시켜나가다 보면, 내년 2월 '베이징 동계 올림픽'이 남북미, 또는 남북미중이 종전선언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구상으로 보입니다.

■ "비핵화 입구는 종전선언"…원칙적 입장 재천명

이런 전략적인 판단이 아니더라도 문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강조한 이유는 또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의 '입구'에 종전선언을 두어야 한다는 확실한 생각을 하고 있고, 이를 여러 차례 공식 석상에서 밝혀왔습니다.

종전선언은 '평화협정'과 달라서 정치적인 선언일 뿐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전쟁 당사자들이 국제사회에 전쟁의 종식을 공식 선언한다는 점에서 '평화협정'으로 가기 위한 '입구'가 될 수 있습니다.

이번 연설은 문재인 대통령의 마지막 유엔 연설이었습니다. 문 대통령은 본인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원칙을 국제 사회에 다시 한번 알리고, 다음 정부가 이를 계승할 수 있도록 길을 닦아 놓겠다는 판단도 엿보입니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이번 연설에 '종전선언'뿐 아니라, 기존의 대북 제안들을 정리해 모두 담았습니다.

먼저 2019년 유엔총회에서 밝혔던 전쟁 불용·상호 안전보장·공동번영 등 3원칙을 다시 천명했고, 작년에 제안했던 '동북아시아 방역·보건 협력체' 구상도 거듭 밝혔습니다. 또 남북 대화로 역내 평화를 선도하겠다는 '한반도 모델' 구상도 재차 강조했습니다.

북한 주유엔대표부 3등 서기관 김남혁북한 주유엔대표부 3등 서기관 김남혁

■ 北 3등 서기관이 연설 들어…북 호응은 낙관 어려워

문 대통령의 기조연설 때 북한 대표부 자리에는 북한 주유엔대표부 3등 서기관인 김남혁이 앉아있는 모습이 포착됐습니다. 김성 주유엔 대사가 아니라 3등 서기관이 와 있었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문 대통령의 연설이 북한에 전달된다고 하더라도, 북한이 긍정적으로 호응할 거라곤 낙관하기 어렵습니다.

현재 북한은 남북, 북미 대화 재개에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은 한미 연합훈련을 이유로 복구했던 남북 통신선 연락에 계속 응답하지 않고 있습니다.

또 북한은 지난 13일 '장거리 순항미사일' 시험 발사 사실을 공개했고, 이틀 만인 15일엔 유엔 결의 위반인 '단거리 탄도 미사일'을 동해로 쐈습니다. 거기에 영변 핵시설 가동 징후까지 포착된 상황입니다. IAEA(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은 "북한이 핵 프로그램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이는 북한이 '우리 식' 시간표대로 군사 기술력을 강화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남북, 또는 북미 간 대화가 아니라 '자력갱생'을 통해 현재의 난국을 타개하겠다는 분명한 내부적 목표가 제시된 셈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에 북한이 움직이기는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입니다.

김성 주유엔 북한대사의 연설은 일반 토의 마지막 날인 27일에 예정됐는데, 일단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1차적인 북한의 반응은 김 대사의 연설로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北 도발·무관심에도 다시 ‘종전선언’ 꺼내든 이유는?
    • 입력 2021-09-22 13:57:51
    취재K

문재인 대통령이 현지 시간 21일 임기 마지막 유엔총회 무대에서 종전선언 카드를 다시 꺼내 들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가 모여 종전선언을 하자고 밝혔습니다.

북한이 잇따라 미사일 도발을 하고, 영변 핵시설 재가동 징후까지 포착된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다시 종전선언을 제안한 건 의외라는 반응이 나옵니다.

북한이 우리의 통신선 연락에 전혀 응답하지 않고 있고, 남북 및 북미 대화 재개에 반응을 보이지도 않고 있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다시 '종전선언' 카드를 꺼내는 이유는 뭘까요?

■ '종전선언' 2018년 첫 언급…올해는 중국 참여도 제안

문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종전선언을 언급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UN 총회에서 나온 문 대통령 '종전선언' 관련 발언>

2018년 UN 총회 연설
"앞으로 비핵화를 위한 과감한 조치들이 관련국들 사이에서 실행되고 종전선언으로 이어질 것을 기대합니다."

2019년 UN 총회 연설
"한반도에서 두 번 다시 전쟁의 비극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긴 정전을 끝내고 완전한 종전을 이루어야 합니다."

2020년 UN 총회 연설
"그 시작은 평화에 대한 서로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한반도 종전선언이라고 믿습니다. 종전선언이야말로 한반도에서 비핵화와 함께 항구적 평화체제의 길을 여는 문이 될 것입니다."

2021년 UN 총회 연설
"나는 오늘 한반도 '종전선언'을 위해 국제사회가 힘을 모아주실 것을 다시 한번 촉구하며,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가 모여 한반도에서의 전쟁이 종료되었음을 함께 선언하길 제안합니다."

종전선언을 처음 언급한 건 2018년이었고, 작년엔 한반도 평화의 시작은 '종전선언'이라며 국제사회에 한반도 종전선언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습니다.

올해는 종전선언의 주체와 관련해 '남북미' 또는 '남북미중'이라고 언급했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작년보다 훨씬 더 구체적인 제안을 한 셈입니다.

특히 중국이 종전선언 주체로 처음 언급됐는데, 최근 왕이 외교부장이 한국을 방문해 문재인 대통령을 만났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종전선언' 언급과 관련해 중국과 사전에 어느 정도 교감이 있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또 한국과 미국이 그동안 UN 총회 연설 전에 대북 메시지를 서로 조율해왔다는 점에 비춰보면, '종전선언' 발언과 관련해서도 미국과도 사전에 교감이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 바이든 대통령도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진지한 외교를 추구한다며 우리 정부와 톤을 맞췄습니다.

물론 사전에 이런 교감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미국이나 중국이 당장 종전선언 참가에 찬성하는 입장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미국은 북한이 비핵화와 관련한 뚜렷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으면 종전선언을 고려할 수 없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밝혀왔습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조현 주유엔대사
■ 임기 8개월 남기고 '종전선언 카드' 꺼내든 이유는?

외교가에서는 문 대통령이 올해는 연설에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지지를 호소하는 원론적인 수준의 발언만 할 거란 전망이 많았습니다. 북한의 도발과 무관심에, 대선을 6개월 앞둔 국내 정치적 상황까지 고려하면 파격적인 제안을 하긴 어려울 거란 분석이었습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이런 관측을 뛰어 넘어, 종전선언 카드를 꺼내 들었습니다.

문 대통령 입장에서는 올해가 남북의 유엔 동시 가입 30주년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종전선언이라는 과감한 제안을 하기엔 적절한 시기였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또 비핵화 협상의 교착 국면이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상황을 타개할 과감한 반전 카드가 필요하다는 인식도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2018년부터 진행되어온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2019년 2월 이른바 '하노이 노딜'로 좌초됐고, 이후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다시 한번 기대감을 높였지만, 여전히 남북, 북미 간 대화는 꽉 막혀 있는 상황입니다.

임기를 8개월 남긴 문 대통령 입장에선 다시 한번 '톱 다운' 방식의 과감한 접근을 통해 현재 상황을 타개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종전선언'을 물꼬로 정부가 그동안 구상했던 남북 간 백신 협력, 통신선 연락 재개, 화상 이산가족 상봉, 북미 협상 재개 등을 현실화해나가겠다는 겁니다.

그렇게 논의를 진척시켜나가다 보면, 내년 2월 '베이징 동계 올림픽'이 남북미, 또는 남북미중이 종전선언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구상으로 보입니다.

■ "비핵화 입구는 종전선언"…원칙적 입장 재천명

이런 전략적인 판단이 아니더라도 문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강조한 이유는 또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의 '입구'에 종전선언을 두어야 한다는 확실한 생각을 하고 있고, 이를 여러 차례 공식 석상에서 밝혀왔습니다.

종전선언은 '평화협정'과 달라서 정치적인 선언일 뿐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전쟁 당사자들이 국제사회에 전쟁의 종식을 공식 선언한다는 점에서 '평화협정'으로 가기 위한 '입구'가 될 수 있습니다.

이번 연설은 문재인 대통령의 마지막 유엔 연설이었습니다. 문 대통령은 본인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원칙을 국제 사회에 다시 한번 알리고, 다음 정부가 이를 계승할 수 있도록 길을 닦아 놓겠다는 판단도 엿보입니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이번 연설에 '종전선언'뿐 아니라, 기존의 대북 제안들을 정리해 모두 담았습니다.

먼저 2019년 유엔총회에서 밝혔던 전쟁 불용·상호 안전보장·공동번영 등 3원칙을 다시 천명했고, 작년에 제안했던 '동북아시아 방역·보건 협력체' 구상도 거듭 밝혔습니다. 또 남북 대화로 역내 평화를 선도하겠다는 '한반도 모델' 구상도 재차 강조했습니다.

북한 주유엔대표부 3등 서기관 김남혁
■ 北 3등 서기관이 연설 들어…북 호응은 낙관 어려워

문 대통령의 기조연설 때 북한 대표부 자리에는 북한 주유엔대표부 3등 서기관인 김남혁이 앉아있는 모습이 포착됐습니다. 김성 주유엔 대사가 아니라 3등 서기관이 와 있었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문 대통령의 연설이 북한에 전달된다고 하더라도, 북한이 긍정적으로 호응할 거라곤 낙관하기 어렵습니다.

현재 북한은 남북, 북미 대화 재개에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은 한미 연합훈련을 이유로 복구했던 남북 통신선 연락에 계속 응답하지 않고 있습니다.

또 북한은 지난 13일 '장거리 순항미사일' 시험 발사 사실을 공개했고, 이틀 만인 15일엔 유엔 결의 위반인 '단거리 탄도 미사일'을 동해로 쐈습니다. 거기에 영변 핵시설 가동 징후까지 포착된 상황입니다. IAEA(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은 "북한이 핵 프로그램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이는 북한이 '우리 식' 시간표대로 군사 기술력을 강화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남북, 또는 북미 간 대화가 아니라 '자력갱생'을 통해 현재의 난국을 타개하겠다는 분명한 내부적 목표가 제시된 셈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에 북한이 움직이기는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입니다.

김성 주유엔 북한대사의 연설은 일반 토의 마지막 날인 27일에 예정됐는데, 일단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1차적인 북한의 반응은 김 대사의 연설로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