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종전선언’으로 마지막 승부수…실현 가능성은?

입력 2021.09.2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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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현지시간 21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76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또다시 '종전선언'을 제안했습니다. 문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종전선언을 언급한 것은 이번이 네번째. 2018년부터 꾸준히 매년 종전선언을 제안해 왔습니다.

다만 연설 시점의 한반도의 상황은 매년 조금씩 달랐는데요, 올해는 특히 북한의 핵시설 가동 징후 포착과 미사일 시험 등으로 남북관계가 긴장돼 있는 상태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임기 마지막 연설에 종전선언을 재차 언급한 것은, 더이상 남북관계를 교착 상태로 둘 수는 없다는 판단 하에 마지막 승부수를 띄운 것으로 보입니다.

문 대통령의 남은 임기는 이제 약 8개월. 문 대통령이 몇년째 제안하고 있는 종전선언은 과연 가능한 것일까요?

■ '종전선언', 비핵화 입구의 중요 카드였지만… '하노이 노딜'로 빛 잃어


종전선언이 처음 명문화된 것은 2007년 10.4 선언입니다. 당시 남북정상회담을 마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0.4 선언에서 "남과 북은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 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밝혔습니다.

이후 '종전선언'은 남북관계가 다시 긴장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자취를 감췄다가, 11년만인 2018년 4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판문점 선언에서 다시 등장합니다. 바로 이 대목입니다.

남과 북은 정전협정체결 65년이 되는 올해(2018년)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

판문점 선언 두 달 뒤인 2018년 6월 트럼프 대통령 역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을 만난 뒤 "종전선언을 할 수도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 끌어온 전쟁을 끝내는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히면서 기대감은 더욱 커졌습니다.

사실 종전선언은 법적 구속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정치적 선언'입니다. 하지만 체제 불안감 속에서 비핵화 조치를 망설이는 북한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과도기적 체제 안전 보장안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카드로 인식됐습니다. 북한 비핵화 협상의 입구에서 종전선언이 모멘텀이 될 수 있다는 기대였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하노이 노딜'이었습니다. 중국마저 정전협정 당사자라는 지위를 강조하며 '남북미 3자'에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면서 종전선언 카드는 빛을 잃었고 북미 비핵화 협상도, 남북관계 개선도 모두 멈춰섰습니다.

■ '종전선언'에 대한 집념…'남북미중' 언급으로 북한에게 공 넘기고 중국에 도움 요청

하지만 문 대통령은 2019년 하노이 북미회담의 결렬 뒤에도 꾸준히 종전선언을 언급해 왔습니다. 특히 올해 연설에서는 종전선언의 주체를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로 명시하기까지 했습니다.

남북미 3자나 남북미중 4자는 앞서 10.4 선언에서도 나온 내용입니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 이를 재확인한 것은 의미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합니다.


양무진 북한대학교대학원 교수는 "4자 종전선언이 남북미 3자 종전선언보다 실효적"이라며 "중국이 참여한다면 북한이 대화의 장에 보다 수월하게 나올 수 있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중국의 참여로 종전으로 가는 길에 보다 강화된 보장을 담보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정상국가'를 지향하고 있는 북한에게 좀더 수월한 선택지를 열어주면서 공을 다시 북한으로 넘기고, 국제사회의 시선 속에서 북한에게 심리적 압박감을 주겠다는 의도입니다.

중국에 더 적극적인 개입을 요청하는 것으로도 읽힙니다. 꼼짝 않고 문을 닫아건 북한을 중국이 움직여달라는 겁니다.

중국에서는 내년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열립니다. 현재로써는 IOC가 도쿄올림픽 불참을 이유로 북한의 국가올림픽 위원회 자격을 2022년 말까지 정지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어제(23일) 한 언론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의 방중에 대한) 부정적 기류의 보도가 있는가 하면 중국이 정치적으로 역할을 해 문제를 풀어낼 수 있다고 기대하는 보도도 있다"며 베이징 올림픽에 대한 여전한 기대를 내비쳤습니다.

최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의 방한에서 관련 내용이 언급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문 대통령은 당시 왕이 부장 접견에서 북한의 대화 복귀 견인을 위한 중국의 건설적인 역할과 지속적인 협력을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 실현 가능성은 '갸우뚱'…'제안 자체가 부적절' 지적도

다만 이런저런 정부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실제 종전선언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고개를 가로젓고 있습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은 종전선언과 관련해 2018년 9월 공개적으로 더는 관심을 표명하지 않는다고 밝힌 후부터는 언급이 없다. 아무런 전제 조건 없는 종전선언이라면 북한이 특별히 반대하지는 않겠지만, 상응조치 차원에서 제시되는 종전선언은 수용 불가라는 입장"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당사자인 북한이 종전선언에 더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현실적인 상황도 종전선언의 걸림돌입니다. 코로나19로 북한이 국경까지 봉쇄한 상황에서 정상들이 만나야 하는 종전선언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고, 미중간 패권 다툼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과연 한반도 종전선언을 위해 미중 정상이 만날지도 미지수입니다.

특히 미국은 한반도 비핵화 문제에 중국이 개입하는 것을 지속적으로 견제해 왔습니다. 중국의 한반도 영향력을 키울 수밖에 없는 4자 종전선언에 미국이 동의할 가능성은 그다지 커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현재 분위기나 시점상 종전선언 언급 자체가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북한의 미사일 시험과 우리 군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로 남북의 군사력 경쟁 국면이 전개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종전선언을 제안하는 것은 그 자체로 북한에게 부적절한 신호가 될 수 있습니다. 종전선언이 아무리 법적 구속력 없는 정치적 선언이라 하더라도, 명백히 전쟁 대비 훈련인 한미연합훈련에는 일정 정도의 수정이 가해질 수밖에 없고, 주한미군이나 한미동맹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박원곤 교수는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최근 담화에서 주한미군 철수 주장을 펼친 바 있으므로, 한국 정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종전선언은 한미동맹과 주한미군 변화 요구로 연계될 가능성이 커져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 통일부 "종전선언은 유효하고 중요한 모멘텀"…27일 김성 주 유엔 북한대사 연설 주목

통일부는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종전선언을 제안한 것에 대해 "종전선언을 통해 한반도의 불안정한 정전 체제를 공고한 평화 체제로 바꿔나가겠다는 것이 정부의 기본 입장"이라고 밝혔습니다.

10.4선언, 판문점 선언에서 남북이 이미 합의한 사안이라고도 덧붙였습니다.

정부는 여전히 종전선언을 남북 간 평화프로세스를 진전시킬 수 있는 중요 모멘텀으로 보고 있는 건데요. 과연 북한의 화답은 무엇일지, 일단 오는 27일 김성 주 유엔 북한대사의 연설을 주목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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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 대통령, ‘종전선언’으로 마지막 승부수…실현 가능성은?
    • 입력 2021-09-24 07:00:29
    취재K

문재인 대통령이 현지시간 21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76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또다시 '종전선언'을 제안했습니다. 문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종전선언을 언급한 것은 이번이 네번째. 2018년부터 꾸준히 매년 종전선언을 제안해 왔습니다.

다만 연설 시점의 한반도의 상황은 매년 조금씩 달랐는데요, 올해는 특히 북한의 핵시설 가동 징후 포착과 미사일 시험 등으로 남북관계가 긴장돼 있는 상태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임기 마지막 연설에 종전선언을 재차 언급한 것은, 더이상 남북관계를 교착 상태로 둘 수는 없다는 판단 하에 마지막 승부수를 띄운 것으로 보입니다.

문 대통령의 남은 임기는 이제 약 8개월. 문 대통령이 몇년째 제안하고 있는 종전선언은 과연 가능한 것일까요?

■ '종전선언', 비핵화 입구의 중요 카드였지만… '하노이 노딜'로 빛 잃어


종전선언이 처음 명문화된 것은 2007년 10.4 선언입니다. 당시 남북정상회담을 마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0.4 선언에서 "남과 북은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 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밝혔습니다.

이후 '종전선언'은 남북관계가 다시 긴장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자취를 감췄다가, 11년만인 2018년 4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판문점 선언에서 다시 등장합니다. 바로 이 대목입니다.

남과 북은 정전협정체결 65년이 되는 올해(2018년)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

판문점 선언 두 달 뒤인 2018년 6월 트럼프 대통령 역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을 만난 뒤 "종전선언을 할 수도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 끌어온 전쟁을 끝내는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히면서 기대감은 더욱 커졌습니다.

사실 종전선언은 법적 구속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정치적 선언'입니다. 하지만 체제 불안감 속에서 비핵화 조치를 망설이는 북한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과도기적 체제 안전 보장안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카드로 인식됐습니다. 북한 비핵화 협상의 입구에서 종전선언이 모멘텀이 될 수 있다는 기대였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하노이 노딜'이었습니다. 중국마저 정전협정 당사자라는 지위를 강조하며 '남북미 3자'에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면서 종전선언 카드는 빛을 잃었고 북미 비핵화 협상도, 남북관계 개선도 모두 멈춰섰습니다.

■ '종전선언'에 대한 집념…'남북미중' 언급으로 북한에게 공 넘기고 중국에 도움 요청

하지만 문 대통령은 2019년 하노이 북미회담의 결렬 뒤에도 꾸준히 종전선언을 언급해 왔습니다. 특히 올해 연설에서는 종전선언의 주체를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로 명시하기까지 했습니다.

남북미 3자나 남북미중 4자는 앞서 10.4 선언에서도 나온 내용입니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 이를 재확인한 것은 의미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합니다.


양무진 북한대학교대학원 교수는 "4자 종전선언이 남북미 3자 종전선언보다 실효적"이라며 "중국이 참여한다면 북한이 대화의 장에 보다 수월하게 나올 수 있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중국의 참여로 종전으로 가는 길에 보다 강화된 보장을 담보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정상국가'를 지향하고 있는 북한에게 좀더 수월한 선택지를 열어주면서 공을 다시 북한으로 넘기고, 국제사회의 시선 속에서 북한에게 심리적 압박감을 주겠다는 의도입니다.

중국에 더 적극적인 개입을 요청하는 것으로도 읽힙니다. 꼼짝 않고 문을 닫아건 북한을 중국이 움직여달라는 겁니다.

중국에서는 내년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열립니다. 현재로써는 IOC가 도쿄올림픽 불참을 이유로 북한의 국가올림픽 위원회 자격을 2022년 말까지 정지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어제(23일) 한 언론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의 방중에 대한) 부정적 기류의 보도가 있는가 하면 중국이 정치적으로 역할을 해 문제를 풀어낼 수 있다고 기대하는 보도도 있다"며 베이징 올림픽에 대한 여전한 기대를 내비쳤습니다.

최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의 방한에서 관련 내용이 언급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문 대통령은 당시 왕이 부장 접견에서 북한의 대화 복귀 견인을 위한 중국의 건설적인 역할과 지속적인 협력을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 실현 가능성은 '갸우뚱'…'제안 자체가 부적절' 지적도

다만 이런저런 정부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실제 종전선언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고개를 가로젓고 있습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은 종전선언과 관련해 2018년 9월 공개적으로 더는 관심을 표명하지 않는다고 밝힌 후부터는 언급이 없다. 아무런 전제 조건 없는 종전선언이라면 북한이 특별히 반대하지는 않겠지만, 상응조치 차원에서 제시되는 종전선언은 수용 불가라는 입장"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당사자인 북한이 종전선언에 더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현실적인 상황도 종전선언의 걸림돌입니다. 코로나19로 북한이 국경까지 봉쇄한 상황에서 정상들이 만나야 하는 종전선언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고, 미중간 패권 다툼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과연 한반도 종전선언을 위해 미중 정상이 만날지도 미지수입니다.

특히 미국은 한반도 비핵화 문제에 중국이 개입하는 것을 지속적으로 견제해 왔습니다. 중국의 한반도 영향력을 키울 수밖에 없는 4자 종전선언에 미국이 동의할 가능성은 그다지 커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현재 분위기나 시점상 종전선언 언급 자체가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북한의 미사일 시험과 우리 군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로 남북의 군사력 경쟁 국면이 전개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종전선언을 제안하는 것은 그 자체로 북한에게 부적절한 신호가 될 수 있습니다. 종전선언이 아무리 법적 구속력 없는 정치적 선언이라 하더라도, 명백히 전쟁 대비 훈련인 한미연합훈련에는 일정 정도의 수정이 가해질 수밖에 없고, 주한미군이나 한미동맹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박원곤 교수는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최근 담화에서 주한미군 철수 주장을 펼친 바 있으므로, 한국 정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종전선언은 한미동맹과 주한미군 변화 요구로 연계될 가능성이 커져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 통일부 "종전선언은 유효하고 중요한 모멘텀"…27일 김성 주 유엔 북한대사 연설 주목

통일부는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종전선언을 제안한 것에 대해 "종전선언을 통해 한반도의 불안정한 정전 체제를 공고한 평화 체제로 바꿔나가겠다는 것이 정부의 기본 입장"이라고 밝혔습니다.

10.4선언, 판문점 선언에서 남북이 이미 합의한 사안이라고도 덧붙였습니다.

정부는 여전히 종전선언을 남북 간 평화프로세스를 진전시킬 수 있는 중요 모멘텀으로 보고 있는 건데요. 과연 북한의 화답은 무엇일지, 일단 오는 27일 김성 주 유엔 북한대사의 연설을 주목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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