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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식조리사 30년에 발병한 폐암…‘산재 인정’ 기다리는 사람들
입력 2021.09.26 (09:00) 취재K

■ 희뿌연 연기로 가득한 급식실…3명이서 200인분 조리

광주광역시 한 학교의 급식 조리실. 이른 아침부터 조리사 3명이 쉴 새 없이 움직입니다. 주어진 시간은 2시간 30분. 그리 길지 않은 시간 안에 조리사 3명이 200인분의 점심 식사를 만들어 내야 합니다.


커다란 조리솥에 아욱된장국과 카레를 끓입니다. 비엔나 소시지와 조랭이떡도 한가득 볶습니다. 이날의 메인 메뉴는 '돈까스'. 학생들에겐 인기 만점인 메뉴지만, 조리사들에겐 힘겨운 메뉴입니다. 1시간 가까이 180도가 넘는 고온의 기름에 돈까스 200개를 튀겨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뜨거운 기름 앞에 선 조리사들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습니다. 환기시설이 갖춰져 있지만, 조리실 내부는 안개 같은 희뿌연 연기로 자욱했습니다. 등줄기엔 땀이 가득 차고, 매캐한 냄새에 숨이 턱턱 막힙니다.

■ 급식 조리사로 보낸 30년… 끝내 '폐암' 발병


한 학교의 급식실에서 30년 가까이 근무했던 60대 여성 A씨. 매일같이 하루 평균 1천여 명의 점심 식사를 만들어냈습니다. 출근 직후부터 배식 시간이 끝날 때까지 단 한 순간도 쉴 틈 없이 일했습니다. 몸은 힘들었지만, 자식 같은 학생들을 위해 기쁜 마음으로 일해왔습니다.

3년 전 어느 날, 여느 때처럼 학생들의 점심 식사를 준비하던 A씨의 몸에 이상이 찾아왔습니다. 목이 쉬기 시작한 겁니다. 가슴과 배에서도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습니다. 병원을 찾은 A씨는 폐암 3기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A씨는 결국 정년을 채우지 못한 채 조리사 일을 그만둬야만 했습니다. A씨는 현재 요양병원에 입원해 힘겨운 투병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A씨는 "돌이켜보니 급식실에 환기시설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다"며 "제대로 된 후드도 없었고 조그마한 환풍구만 두세 개 정도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또 "마스크 등 보호장비도 착용하지 않고 일했다"며 "유해물질을 모두 흡입하며 일했던 것 같다"고 털어놓았습니다.

■ 올해 2월 첫 산재 인정… 발암성 연기인 '조리흄'이 폐암의 원인


또한, A씨는 교육 당국의 안전 교육이 부재했기에, 자신의 업무가 폐암을 유발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고 말했습니다.

A씨처럼 급식 조리사의 조리 업무와 폐암 발병 간의 인과관계를 인지하지 못한 이들이 대부분이었을텐데요. 올들어 지난 2월, 근로복지공단 직업환경연구원은 2018년에 숨진 수원의 한 급식 조리사의 폐암이 '조리흄'으로 인한 '직업성 암'이라고 명시하는 내용의 심의 결과 회신서를 내놓았습니다. 급식조리사의 폐암이 업무상 질병 판정을 받은 첫 사례였습니다.

고온 상태에서 기름을 사용할 때 기름이 산화되면서 나오는 발암성 연기가 바로 '조리흄'입니다. 조리흄에는 발암성 물질인 벤젠, 포름 알데히드 등이 섞여 있습니다.

이철갑 조선대학교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는 "대량의 음식을 조리할 때 나오는 미세먼지와 더불어 조리흄이 폐암의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폐암 발병과 급식실 조리 업무의 연관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 대책 마련해야 …산재 인정을 기다리는 이들


조리사들은 가장 시급한 과제로 '급식실 환경 개선'을 촉구합니다. 조리용 후드(환풍기)를 비롯해 환기시설을 잘 갖춰서 조리흄에 대한 노출을 줄여야 한다는 겁니다. 이를 위해 급식실 실태조사를 시행할 것을 요구 중입니다.

또한, 인력을 확충함으로써 1인당 식수 인원을 대폭 줄여, 살인적인 노동 강도를 낮출 필요가 있다고 요구합니다. 학교비정규직노조에 의하면 현재 급식 조리사들이 담당하는 식수 인원은 타 공공기관보다 2~3배 많은 상황입니다.

"죽음의 학교 급식실! 죽지 않고 건강하게 일하고 싶다!"

지난 1일, 광주광역시교육청 앞에서 열린 급식실 노동환경 개선 및 노동강도 완화 촉구 기자회견에서 조리사들이 외친 구호입니다.

올해 2월, 한 급식조리사의 폐암이 업무상 질병 판정을 받은 이후 폐암에 걸린 급식조리사들이 산재 신청 준비에 나섰습니다. 시민단체 직업성암119가 집단 산재 신청 사전 접수한 결과, 폐암에 걸려 산재 신청 준비에 나선 급식조리사들은 전국적으로 27명에 이릅니다. 신청을 하지 않은 이들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습니다.

오는 28일, 이들은 집단 산재 신청에 나설 예정입니다. '죽지 않고 건강하게 일하고 싶다'는 외침에 어떤 응답이 올지 이들 모두 간절한 마음 뿐 입니다.
  • 급식조리사 30년에 발병한 폐암…‘산재 인정’ 기다리는 사람들
    • 입력 2021-09-26 09:00:23
    취재K

■ 희뿌연 연기로 가득한 급식실…3명이서 200인분 조리

광주광역시 한 학교의 급식 조리실. 이른 아침부터 조리사 3명이 쉴 새 없이 움직입니다. 주어진 시간은 2시간 30분. 그리 길지 않은 시간 안에 조리사 3명이 200인분의 점심 식사를 만들어 내야 합니다.


커다란 조리솥에 아욱된장국과 카레를 끓입니다. 비엔나 소시지와 조랭이떡도 한가득 볶습니다. 이날의 메인 메뉴는 '돈까스'. 학생들에겐 인기 만점인 메뉴지만, 조리사들에겐 힘겨운 메뉴입니다. 1시간 가까이 180도가 넘는 고온의 기름에 돈까스 200개를 튀겨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뜨거운 기름 앞에 선 조리사들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습니다. 환기시설이 갖춰져 있지만, 조리실 내부는 안개 같은 희뿌연 연기로 자욱했습니다. 등줄기엔 땀이 가득 차고, 매캐한 냄새에 숨이 턱턱 막힙니다.

■ 급식 조리사로 보낸 30년… 끝내 '폐암' 발병


한 학교의 급식실에서 30년 가까이 근무했던 60대 여성 A씨. 매일같이 하루 평균 1천여 명의 점심 식사를 만들어냈습니다. 출근 직후부터 배식 시간이 끝날 때까지 단 한 순간도 쉴 틈 없이 일했습니다. 몸은 힘들었지만, 자식 같은 학생들을 위해 기쁜 마음으로 일해왔습니다.

3년 전 어느 날, 여느 때처럼 학생들의 점심 식사를 준비하던 A씨의 몸에 이상이 찾아왔습니다. 목이 쉬기 시작한 겁니다. 가슴과 배에서도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습니다. 병원을 찾은 A씨는 폐암 3기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A씨는 결국 정년을 채우지 못한 채 조리사 일을 그만둬야만 했습니다. A씨는 현재 요양병원에 입원해 힘겨운 투병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A씨는 "돌이켜보니 급식실에 환기시설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다"며 "제대로 된 후드도 없었고 조그마한 환풍구만 두세 개 정도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또 "마스크 등 보호장비도 착용하지 않고 일했다"며 "유해물질을 모두 흡입하며 일했던 것 같다"고 털어놓았습니다.

■ 올해 2월 첫 산재 인정… 발암성 연기인 '조리흄'이 폐암의 원인


또한, A씨는 교육 당국의 안전 교육이 부재했기에, 자신의 업무가 폐암을 유발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고 말했습니다.

A씨처럼 급식 조리사의 조리 업무와 폐암 발병 간의 인과관계를 인지하지 못한 이들이 대부분이었을텐데요. 올들어 지난 2월, 근로복지공단 직업환경연구원은 2018년에 숨진 수원의 한 급식 조리사의 폐암이 '조리흄'으로 인한 '직업성 암'이라고 명시하는 내용의 심의 결과 회신서를 내놓았습니다. 급식조리사의 폐암이 업무상 질병 판정을 받은 첫 사례였습니다.

고온 상태에서 기름을 사용할 때 기름이 산화되면서 나오는 발암성 연기가 바로 '조리흄'입니다. 조리흄에는 발암성 물질인 벤젠, 포름 알데히드 등이 섞여 있습니다.

이철갑 조선대학교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는 "대량의 음식을 조리할 때 나오는 미세먼지와 더불어 조리흄이 폐암의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폐암 발병과 급식실 조리 업무의 연관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 대책 마련해야 …산재 인정을 기다리는 이들


조리사들은 가장 시급한 과제로 '급식실 환경 개선'을 촉구합니다. 조리용 후드(환풍기)를 비롯해 환기시설을 잘 갖춰서 조리흄에 대한 노출을 줄여야 한다는 겁니다. 이를 위해 급식실 실태조사를 시행할 것을 요구 중입니다.

또한, 인력을 확충함으로써 1인당 식수 인원을 대폭 줄여, 살인적인 노동 강도를 낮출 필요가 있다고 요구합니다. 학교비정규직노조에 의하면 현재 급식 조리사들이 담당하는 식수 인원은 타 공공기관보다 2~3배 많은 상황입니다.

"죽음의 학교 급식실! 죽지 않고 건강하게 일하고 싶다!"

지난 1일, 광주광역시교육청 앞에서 열린 급식실 노동환경 개선 및 노동강도 완화 촉구 기자회견에서 조리사들이 외친 구호입니다.

올해 2월, 한 급식조리사의 폐암이 업무상 질병 판정을 받은 이후 폐암에 걸린 급식조리사들이 산재 신청 준비에 나섰습니다. 시민단체 직업성암119가 집단 산재 신청 사전 접수한 결과, 폐암에 걸려 산재 신청 준비에 나선 급식조리사들은 전국적으로 27명에 이릅니다. 신청을 하지 않은 이들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습니다.

오는 28일, 이들은 집단 산재 신청에 나설 예정입니다. '죽지 않고 건강하게 일하고 싶다'는 외침에 어떤 응답이 올지 이들 모두 간절한 마음 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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