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무기개발은 정당한 권리…美, 적대의사 없다면 행동으로 보여야”

입력 2021.09.28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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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관들의 슈퍼볼(Super Bowl of diplomats)이라고 불리는 유엔 총회.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이 외교적 무대에, 미국 뉴욕 현지시간 27일 북한 대표가 섰습니다.

올해 총회 참석을 위해 193개 유엔 회원국 중 150개 국의 정상급 인사들이 뉴욕을 찾았지만, 북한은 3년 연속으로 김성 주유엔 대사가 고위급 회의 일반토의의 연설자로 나섰습니다.

약 25분 간 진행된 김 대사의 연설은 유튜브와 유엔 홈페이지를 통해 생중계 됐습니다. (▶다시보기 링크: https://media.un.org/en/asset/k11/k11rnzf8a0)

비록 대사급 인사의 연설이긴 하지만 북한을 대표해 나온 것이니 만큼, 이번 연설이 지역·국제 현안에 대한 북한의 관점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 北 "코로나19 유입의 철저한 차단, 사활적 문제"

김 대사는 전 세계적 현안인 코로나19 팬데믹과 기후 변화 문제를 지적하며 연설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국제 공동체가 유엔 창설 이후 가장 심각한 위기 국면에 직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면서, 세계적 보건 위기 극복과 사회경제적 회복이라는 토의의 주제에 맞게 북한 정부가 진행 중인 국내 사업을 통보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북한 정부가 어린이들에게 영양식품을 무상으로 공급했고, 해마다 수 만 세대의 집을 지어 인민들에게 나눠주고 있으며, 자연 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계획과 대책을 빈틈없이 강구하고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공업 부문이 상승 궤도에 올랐고 올해 곡물 생산 계획도 안전하게 수행할 수 있게 됐다며 경제적 성과를 올렸다고 언급했습니다.

북한 내 코로나19 방역과 관련해선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우리 공화국 정부는 신종코로나비루스 감염증(코로나19)의 유입을 철저히 차단하는 것을 사활적인 문제로 보며, 전인민적인 공감과 동일적인 행동 규칙을 보장하면서 전면적인 방역대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또 각 국가가 "자기 나라의 구체적 실정에 맞게 방역 대책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김성 유엔 주재 북한 대사가 현지시간 27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6차 유엔총회 일반토의 연설을 하기 위해 유엔본부 총회장 연단으로 나오고 있다. [유튜브 생중계 캡처]김성 유엔 주재 북한 대사가 현지시간 27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6차 유엔총회 일반토의 연설을 하기 위해 유엔본부 총회장 연단으로 나오고 있다. [유튜브 생중계 캡처]

■ "남·북 갈라져 유엔 가입은 비극…모든 건 美 적대시 정책 탓"

올해는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한 지 3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김 대사는 당초 북한은 남북이 하나의 구성원으로 유엔에 가입하자는 입장을 견지했지만 "유엔 가입 문제를 이용하여 민족의 분열을 영구화, 합법화하고 우리 공화국을 국제적으로 고립시키려는 반통일적, 반민족적 기도가 노골화되고 있는 데 대처해" 유엔 가입을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렇게 남북이 갈라져 유엔에 가입한 것은 "비극"이라며, 국제평화와 안전보장이라는 유엔의 창립 정신과 정반대로 한반도는 늘 정세 긴장과 불안정을 겪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자리를 빌어 조선반도(한반도) 문제가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근원과, 조선반도의 항구적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기 위한 근본 방도와 관련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입장을 밝히려고 한다"고 했습니다.

김 대사는 우선 한반도 문제의 근본 원인은 "대조선 적대시 정책에 있다"는 북한의 입장을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미국을 겨냥한 메시지가 처음 나타난 대목입니다.

김 대사는 "아직까지도 적지 않은 유엔 성원국들은 조선반도 문제가 원래부터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 때문에 발생하였다는 데에 대해서 모르고 있으며, 심지어는 미국이 핵 때문에 우리를 적대시하고 있는 것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세계 최대의 핵 보유국"인 미국이 70년 전부터 북한을 적대시하면서 핵 위협을 가해왔기 때문에, 북한은 "불가피한 역사"(핵 개발)을 택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김 대사는 "미국은 우리 공화국을 공산국가, 비시장경제국으로 규정하고 인권 문제, 대량살인무기 전파, 퇴로 지원, 종교 탄압, 자금 세척 등 부당한 용어 밑에 조·미(북·미) 사이 정치, 경제, 무역관계 수립을 제도적으로 법률적으로 완전 차단했다"면서 "이것이 적대시 정책이 아니라면 우호 정책이라고 말해야 되겠습니까"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북한 유엔 대표부 외교관들이 뉴욕 유엔본부 총회장에서 김성 대사의 연설을 듣고 있다. [유튜브 생중계 캡처]북한 유엔 대표부 외교관들이 뉴욕 유엔본부 총회장에서 김성 대사의 연설을 듣고 있다. [유튜브 생중계 캡처]

■ "전쟁 안나는 건 믿음직한 억제력 키운 덕…무기 개발, 정당한 권리"

김 대사는 미국의 적대시 정책의 핵심은 '군사적 위협'이라고 했습니다. 주한미군 주둔과 한·미연합훈련 등 한반도 인근에서의 미군 주도 군사훈련을 문제삼은 것입니다.

특히 "지난 8월 우리 정부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남조선이 강행한 연합지휘소 훈련은, 미국이 수십 년 전부터 불려온 합동군사연습의 이름만 바꾸어 놓은 철저한 공격적 성격의 전쟁 연습"이라며 지난달 열린 한미연합훈련을 비판했습니다.

그는 주한미군과 한미동맹 때문에 남북 관계가 미국의 간섭과 방해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민족의 화합보다 동맹과의 협조를 우선시하는 한국의 잘못된 행태 탓에 "북남 합의가 언제 한 번 성실히 이행돼 본 적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북미 관계는 "전쟁 상태에 있는 교전국들 사이 관계"와 같다면서, 그럼에도 전쟁이 나지 않고 있는 건 북한이 미국의 침공을 제압할 수 있는 "믿음직한 억제력"을 키우고 있기 때문임을 국제사회가 간과해선 안 된다고 했습니다. 북한의 무기 개발은 정당하고 필요한 조치라는 주장인데요.

이 주장은 여러 번 반복됐습니다. 김 대사는 "지구상에 우리나라처럼 항시적인 전쟁 위협을 받고 있는 나라는 없으며, 그만큼 평화에 대한 우리 인민의 갈망은 매우 강렬하다"면서도 "우리가 말하는 전쟁 억제력은 말그대로 침략 전쟁을 막고 우리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정정당당한 자위적 권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지키고 나라의 안정과 평화를 믿음직하게 수호하기 위해 국방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라며 "때문에 우리는 누구의 '도발'을 억제하기 위해 충분한 군사력을 키운다는 표현도 함부로 하지 않는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미국과 한미 군사동맹이 북한을 겨냥한 군사적 위협을 날로 가중시키고 있다며, 이런 조건에서 북한이 동등한 무기 체계를 개발하고 시험, 제작, 보유하는 것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정당한 권리"라고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북한은 김 대사의 유엔총회 연설이 시작되기 20분 전쯤 보란듯이 단거리 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를 발사했습니다.

김 대사는 그러면서도 "우리는 그러한 수단들을 누구를 겨냥해 쓰고 싶지 않다"면서 "미국이나 남조선, 우리 주변 국가들의 안전을 절대로 침해하거나 위태롭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 "적대시 정책 철회, 행동으로 보여준다면 기꺼이 화답할 것"

이후 이번 연설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북한의 대미 메시지가 나왔습니다.

김 대사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밝힌 강대강·선대선 원칙을 재차 언급하면서, 미국이 "시대착오적인 대조선 정책을 대담하게 근본적으로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우리는 북한을 향한 어떤 적대적 의도도 갖고 있지 않다(We have no hostile intent towards the DPRK)"고 강조하면서 북한과 조건없이 언제 어디서든 만날 수 있다는 대북 메시지를 반복하고 있는데요.

이에 대해 김 대사는 말뿐인 의사 표명은 "적대시 정책을 가리기 위한 미사여구에 불과하다"면서 "현 미 행정부는 대조선 적대적 의사가 없다는 정책적 입장을 말이 아니라 실천,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대조선 이중 기준도 철회해야 한다"며, 북한의 군사 행동을 '도발'이라며 비판해 온 미국의 입장은 모순이라는 북한 측 논지를 재확인했습니다.

김 대사는 "미국이 행동으로 적대시 정책을 철회할 용단을 보여준다면, 우리도 언제든지 기꺼이 화답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서 북미 대화를 위한 선결조건을 다시금 명확히 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조선반도와 그 주변에서 우리를 겨냥한 합동군사연습과 각종 전략무기 투입을 영구 중지하는 것으로부터 대조선 적대시 정책 포기 첫 걸음을 떼야할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그러면서 "현 단계에서 미국이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실지로(실제로) 포기할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라고 했습니다.

김 대사는 이미 북한이 적대시 정책에 대처할 생존방식을 터득했기 때문에 미국에 "적대시하지 말아달라"고 사정할 필요가 없다며, 북한이 먼저 대화에 복귀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계속 미국의 대조선 정책 동향을 살펴볼 것"이라며 미국에 다시 공을 돌렸습니다.

특히 "미국이 때없이 우리를 걸고 들면서 도발하는 근성, 군사동맹과 같은 냉전시대 유물을 가지고 우리를 위협하는 일을 계속 행한다면 정말 재미없을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 "유엔, 北 정정당당한 자위적 조치만 사사건건 걸고 들어"…대북 제재 비판

마지막으로 김 대사는 최근의 아프가니스탄 사태를 언급하며 "(이는) 주권국가에 대한 공공연한 무력 사용과 내정간섭, 외국 군대의 주둔이 가져온 비극적 국가에 대한 명백한 반성으로 된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미국 등 특정 국가들의 "무분별한 군비증강과 전쟁범죄 행위"에 대해선 아무 말도 못하면서 북한의 "정정당당한 자위적 조치들을 사사건건 걸고 드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며, 대북 제재를 비판했습니다. 안보리가 이런 식으로 행동한다면 유엔은 "특권화된 소수 집단의 안방으로 변질"되는 것이라고도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유엔이 "주권평등의 원칙과 인민들의 평등권 및 자결권 존중을 골간으로 하는 헌장 요구에 맞게 철저한 공정성과 형평성을 보장하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김 대사는 연설을 마친 뒤 일부 한국 특파원들과 마주친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2년 연속 종전선언 제안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입장이 다 나오지 않았느냐, 연설문대로 생각하면 된다"라고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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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무기개발은 정당한 권리…美, 적대의사 없다면 행동으로 보여야”
    • 입력 2021-09-28 10:52:43
    취재K

외교관들의 슈퍼볼(Super Bowl of diplomats)이라고 불리는 유엔 총회.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이 외교적 무대에, 미국 뉴욕 현지시간 27일 북한 대표가 섰습니다.

올해 총회 참석을 위해 193개 유엔 회원국 중 150개 국의 정상급 인사들이 뉴욕을 찾았지만, 북한은 3년 연속으로 김성 주유엔 대사가 고위급 회의 일반토의의 연설자로 나섰습니다.

약 25분 간 진행된 김 대사의 연설은 유튜브와 유엔 홈페이지를 통해 생중계 됐습니다. (▶다시보기 링크: https://media.un.org/en/asset/k11/k11rnzf8a0)

비록 대사급 인사의 연설이긴 하지만 북한을 대표해 나온 것이니 만큼, 이번 연설이 지역·국제 현안에 대한 북한의 관점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 北 "코로나19 유입의 철저한 차단, 사활적 문제"

김 대사는 전 세계적 현안인 코로나19 팬데믹과 기후 변화 문제를 지적하며 연설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국제 공동체가 유엔 창설 이후 가장 심각한 위기 국면에 직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면서, 세계적 보건 위기 극복과 사회경제적 회복이라는 토의의 주제에 맞게 북한 정부가 진행 중인 국내 사업을 통보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북한 정부가 어린이들에게 영양식품을 무상으로 공급했고, 해마다 수 만 세대의 집을 지어 인민들에게 나눠주고 있으며, 자연 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계획과 대책을 빈틈없이 강구하고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공업 부문이 상승 궤도에 올랐고 올해 곡물 생산 계획도 안전하게 수행할 수 있게 됐다며 경제적 성과를 올렸다고 언급했습니다.

북한 내 코로나19 방역과 관련해선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우리 공화국 정부는 신종코로나비루스 감염증(코로나19)의 유입을 철저히 차단하는 것을 사활적인 문제로 보며, 전인민적인 공감과 동일적인 행동 규칙을 보장하면서 전면적인 방역대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또 각 국가가 "자기 나라의 구체적 실정에 맞게 방역 대책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김성 유엔 주재 북한 대사가 현지시간 27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6차 유엔총회 일반토의 연설을 하기 위해 유엔본부 총회장 연단으로 나오고 있다. [유튜브 생중계 캡처]
■ "남·북 갈라져 유엔 가입은 비극…모든 건 美 적대시 정책 탓"

올해는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한 지 3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김 대사는 당초 북한은 남북이 하나의 구성원으로 유엔에 가입하자는 입장을 견지했지만 "유엔 가입 문제를 이용하여 민족의 분열을 영구화, 합법화하고 우리 공화국을 국제적으로 고립시키려는 반통일적, 반민족적 기도가 노골화되고 있는 데 대처해" 유엔 가입을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렇게 남북이 갈라져 유엔에 가입한 것은 "비극"이라며, 국제평화와 안전보장이라는 유엔의 창립 정신과 정반대로 한반도는 늘 정세 긴장과 불안정을 겪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자리를 빌어 조선반도(한반도) 문제가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근원과, 조선반도의 항구적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기 위한 근본 방도와 관련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입장을 밝히려고 한다"고 했습니다.

김 대사는 우선 한반도 문제의 근본 원인은 "대조선 적대시 정책에 있다"는 북한의 입장을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미국을 겨냥한 메시지가 처음 나타난 대목입니다.

김 대사는 "아직까지도 적지 않은 유엔 성원국들은 조선반도 문제가 원래부터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 때문에 발생하였다는 데에 대해서 모르고 있으며, 심지어는 미국이 핵 때문에 우리를 적대시하고 있는 것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세계 최대의 핵 보유국"인 미국이 70년 전부터 북한을 적대시하면서 핵 위협을 가해왔기 때문에, 북한은 "불가피한 역사"(핵 개발)을 택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김 대사는 "미국은 우리 공화국을 공산국가, 비시장경제국으로 규정하고 인권 문제, 대량살인무기 전파, 퇴로 지원, 종교 탄압, 자금 세척 등 부당한 용어 밑에 조·미(북·미) 사이 정치, 경제, 무역관계 수립을 제도적으로 법률적으로 완전 차단했다"면서 "이것이 적대시 정책이 아니라면 우호 정책이라고 말해야 되겠습니까"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북한 유엔 대표부 외교관들이 뉴욕 유엔본부 총회장에서 김성 대사의 연설을 듣고 있다. [유튜브 생중계 캡처]
■ "전쟁 안나는 건 믿음직한 억제력 키운 덕…무기 개발, 정당한 권리"

김 대사는 미국의 적대시 정책의 핵심은 '군사적 위협'이라고 했습니다. 주한미군 주둔과 한·미연합훈련 등 한반도 인근에서의 미군 주도 군사훈련을 문제삼은 것입니다.

특히 "지난 8월 우리 정부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남조선이 강행한 연합지휘소 훈련은, 미국이 수십 년 전부터 불려온 합동군사연습의 이름만 바꾸어 놓은 철저한 공격적 성격의 전쟁 연습"이라며 지난달 열린 한미연합훈련을 비판했습니다.

그는 주한미군과 한미동맹 때문에 남북 관계가 미국의 간섭과 방해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민족의 화합보다 동맹과의 협조를 우선시하는 한국의 잘못된 행태 탓에 "북남 합의가 언제 한 번 성실히 이행돼 본 적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북미 관계는 "전쟁 상태에 있는 교전국들 사이 관계"와 같다면서, 그럼에도 전쟁이 나지 않고 있는 건 북한이 미국의 침공을 제압할 수 있는 "믿음직한 억제력"을 키우고 있기 때문임을 국제사회가 간과해선 안 된다고 했습니다. 북한의 무기 개발은 정당하고 필요한 조치라는 주장인데요.

이 주장은 여러 번 반복됐습니다. 김 대사는 "지구상에 우리나라처럼 항시적인 전쟁 위협을 받고 있는 나라는 없으며, 그만큼 평화에 대한 우리 인민의 갈망은 매우 강렬하다"면서도 "우리가 말하는 전쟁 억제력은 말그대로 침략 전쟁을 막고 우리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정정당당한 자위적 권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지키고 나라의 안정과 평화를 믿음직하게 수호하기 위해 국방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라며 "때문에 우리는 누구의 '도발'을 억제하기 위해 충분한 군사력을 키운다는 표현도 함부로 하지 않는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미국과 한미 군사동맹이 북한을 겨냥한 군사적 위협을 날로 가중시키고 있다며, 이런 조건에서 북한이 동등한 무기 체계를 개발하고 시험, 제작, 보유하는 것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정당한 권리"라고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북한은 김 대사의 유엔총회 연설이 시작되기 20분 전쯤 보란듯이 단거리 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를 발사했습니다.

김 대사는 그러면서도 "우리는 그러한 수단들을 누구를 겨냥해 쓰고 싶지 않다"면서 "미국이나 남조선, 우리 주변 국가들의 안전을 절대로 침해하거나 위태롭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 "적대시 정책 철회, 행동으로 보여준다면 기꺼이 화답할 것"

이후 이번 연설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북한의 대미 메시지가 나왔습니다.

김 대사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밝힌 강대강·선대선 원칙을 재차 언급하면서, 미국이 "시대착오적인 대조선 정책을 대담하게 근본적으로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우리는 북한을 향한 어떤 적대적 의도도 갖고 있지 않다(We have no hostile intent towards the DPRK)"고 강조하면서 북한과 조건없이 언제 어디서든 만날 수 있다는 대북 메시지를 반복하고 있는데요.

이에 대해 김 대사는 말뿐인 의사 표명은 "적대시 정책을 가리기 위한 미사여구에 불과하다"면서 "현 미 행정부는 대조선 적대적 의사가 없다는 정책적 입장을 말이 아니라 실천,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대조선 이중 기준도 철회해야 한다"며, 북한의 군사 행동을 '도발'이라며 비판해 온 미국의 입장은 모순이라는 북한 측 논지를 재확인했습니다.

김 대사는 "미국이 행동으로 적대시 정책을 철회할 용단을 보여준다면, 우리도 언제든지 기꺼이 화답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서 북미 대화를 위한 선결조건을 다시금 명확히 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조선반도와 그 주변에서 우리를 겨냥한 합동군사연습과 각종 전략무기 투입을 영구 중지하는 것으로부터 대조선 적대시 정책 포기 첫 걸음을 떼야할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그러면서 "현 단계에서 미국이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실지로(실제로) 포기할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라고 했습니다.

김 대사는 이미 북한이 적대시 정책에 대처할 생존방식을 터득했기 때문에 미국에 "적대시하지 말아달라"고 사정할 필요가 없다며, 북한이 먼저 대화에 복귀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계속 미국의 대조선 정책 동향을 살펴볼 것"이라며 미국에 다시 공을 돌렸습니다.

특히 "미국이 때없이 우리를 걸고 들면서 도발하는 근성, 군사동맹과 같은 냉전시대 유물을 가지고 우리를 위협하는 일을 계속 행한다면 정말 재미없을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 "유엔, 北 정정당당한 자위적 조치만 사사건건 걸고 들어"…대북 제재 비판

마지막으로 김 대사는 최근의 아프가니스탄 사태를 언급하며 "(이는) 주권국가에 대한 공공연한 무력 사용과 내정간섭, 외국 군대의 주둔이 가져온 비극적 국가에 대한 명백한 반성으로 된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미국 등 특정 국가들의 "무분별한 군비증강과 전쟁범죄 행위"에 대해선 아무 말도 못하면서 북한의 "정정당당한 자위적 조치들을 사사건건 걸고 드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며, 대북 제재를 비판했습니다. 안보리가 이런 식으로 행동한다면 유엔은 "특권화된 소수 집단의 안방으로 변질"되는 것이라고도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유엔이 "주권평등의 원칙과 인민들의 평등권 및 자결권 존중을 골간으로 하는 헌장 요구에 맞게 철저한 공정성과 형평성을 보장하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김 대사는 연설을 마친 뒤 일부 한국 특파원들과 마주친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2년 연속 종전선언 제안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입장이 다 나오지 않았느냐, 연설문대로 생각하면 된다"라고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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