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아베가 미는 ‘다카이치’ 日 극우의 얼굴이 될 수 있을까?

입력 2021.09.28 (14:33) 수정 2021.09.28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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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 총리의 갑작스런 불출마 선언으로 예상 외로 뜨거워진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

'1년 단명 총리'로 끝난 스가 요시히데의 임기 동안에도, 포스트 스가를 뽑는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에도 아베 전 총리는 막후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아베는 일찌감치 다카이치 사나에 전 총무상을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습니다. 아베 내각에서 요직을 맡아 함께 일했고, 당선 가능성도 높은 기시다도, 고노도 아베의 '지명'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자민당 총재 선거 후보 4명. 왼쪽부터 고노 다로, 기시다 후미오, 다카이치 사나에, 노다 세이코자민당 총재 선거 후보 4명. 왼쪽부터 고노 다로, 기시다 후미오, 다카이치 사나에, 노다 세이코

아베가 당선 가능성이 낮은 다카이치를 밀어주기로 한 건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고노의 당선을 막기 위한 작전일 수 있습니다.

고노 다로는 '탈원전'론자로 일본 재계가 가장 경계하는 후보입니다. 또 아버지인 고노 요헤이가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사죄한 '고노 담화'를 계승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혀 왔습니다. 예상 외로 뜨거워진 이번 선거에서도 그는 한 방송에 나와 그 뜻을 계승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상대적으로 개혁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당내외에서 젊은 층의 지지를 받고 있고 할 말은 하는, 일본 내에서는 보기 드문 정치인입니다.

원고를 보지 않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은 전임 스가 총리와 크게 비교되는 부분입니다. 한국 대사의 말을 끊고 "무례하다"고 외친 고노는 일본 우익 진영에게도 위험한 인물입니다.

반면, '첫 여성 총리' 후보로 나선 다카이치는 강렬한 극우의 색채를 띄고 있습니다. 극우적인 정치적 성향 때문에, '첫 여성 총리'라는 타이틀이 어울리지 않고, '여성'이라는 정체성과도 무관하다는 비판까지 일각에서 나올 정도입니다.


다카이치 사나에 홈페이지 캡처 ‘일본을 지킨다. 미래를 개척한다’라고 쓰여 있다.다카이치 사나에 홈페이지 캡처 ‘일본을 지킨다. 미래를 개척한다’라고 쓰여 있다.
다카이치는 일본의 패전일(8월 15일)과 봄, 가을의 예대제(제사)가 되면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꼬박꼬박 참배해 왔습니다. 이번에도 총리가 되면 참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고노와 노다는 참배하지 않겠다고 했고, 기시다는 시기와 상황을 고려하겠다고 모호하게 답했습니다.

한 청년이 독도 문제에 대해 묻자, 다카이치는 "한국이 더 이상 구조물을 못 만들게 하겠다"며 거침없는 발언을 했습니다. "한국과 중국은 부정확한 정보를 발신하는데 일본은 '역사 외교'가 약하다"며 관련 부서를 내각 관방에 신설하겠다"는 포부도 밝힌 바 있습니다.

다카이치는 현재 한일 간 가장 첨예한 현안인 '강제징용'에 대해서도 통째로 부정해 왔습니다.

민주당이 정권을 잡았던 2010년, 하토야마 내각은 영주 외국인에 대한 지방참정권 부여를 중점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중의원 다카이치는 외무성으로부터 하나의 문서를 입수해 공개합니다.

일본 강제징용 조선인은 (1959년 시점에 한국 국적과 북한 국적을 더한 61만 명 중) 고작 245명. 이들은 모두 "'자유의사'로 일본에 체류하거나 태어난 사람들"이고, "일본 정부가 본인의 의지에 반해 일본에 체류하도록 한 조선인은 범죄자 외에 단 한 명도 없다"는 내용이 기재돼 있었습니다.

'자발적 체류'라는 외무성의 유권 해석이 확인됨에 따라 우익의 목소리에는 더욱 힘이 실렸습니다.

10년이 더 지난 지금도 다카이치 사나에 홈페이지에서 당시(2010.4.2)의 문건 입수 경위와 분석해 놓은 글을 볼 수 있습니다.

다카이치는 말미에 이런 해석도 덧붙였습니다.

만약, 이 외무성 발표 자료의 기재가 정확하다면, 이른바 '강제 연행'이라는 사실은 없고, '같은 일본국민으로서의 전시 징용'이라고 봐야만 한다. 일본정부가 특히 전시 징용자를 우선해 한국으로의 귀환을 지원했다는 내용도 제시돼 있다.


현재로선 다카이치가 일본의 100대 총리가 될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만, 예상치 못했던 선방에 언론들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기자들 사이에서는 "다카이치 (당선될 경우의) 기사도 준비해야 되는 거 아니냐"는 얘기까지 들립니다.

실제로 일부 여론조사에서 다카이치가 기시다를 제치고 2위가 될 거라는 결과까지 나왔습니다. 아베 지지층의 입맛에 꼭 맞는 '극우' 성향에, 아베의 입김까지 더해져, 모호한 태도의 기시다보다 우익 의원들의 마음을 끌고 있습니다.

1,2위 결선 투표에서 고노와 다카이치가 맞붙게 되고 기시다의 표가 다카이치로 몰리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처음엔 고노 제거를 위한 '작전용 카드'에 불과했지만 적어도 차기 유력 주자로 입지를 굳히는 데는 성공한 모양새입니다.


산케이신문에 실린 월간지 Hanada 광고산케이신문에 실린 월간지 Hanada 광고
선거 국면에 접어들며 극우 성향의 산케이 지면에서는 연일 다카이치의 얼굴이 실린 잡지 광고를 접할 수 있습니다. 광고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얼굴 사진 배치와 크기로 행간을 읽는 재미가 있는데, 요즘은 단연 다카이치의 얼굴이 가장 크게 등장합니다.

그녀의 얼굴 앞에는 일본을 구할 유일한 희망이라는 식의 수식어가, 그리고 아베의 얼굴이 따라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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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9-28 14:33:30
    • 수정2021-09-28 16:19:21
    특파원 리포트

스가 총리의 갑작스런 불출마 선언으로 예상 외로 뜨거워진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

'1년 단명 총리'로 끝난 스가 요시히데의 임기 동안에도, 포스트 스가를 뽑는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에도 아베 전 총리는 막후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아베는 일찌감치 다카이치 사나에 전 총무상을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습니다. 아베 내각에서 요직을 맡아 함께 일했고, 당선 가능성도 높은 기시다도, 고노도 아베의 '지명'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자민당 총재 선거 후보 4명. 왼쪽부터 고노 다로, 기시다 후미오, 다카이치 사나에, 노다 세이코
아베가 당선 가능성이 낮은 다카이치를 밀어주기로 한 건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고노의 당선을 막기 위한 작전일 수 있습니다.

고노 다로는 '탈원전'론자로 일본 재계가 가장 경계하는 후보입니다. 또 아버지인 고노 요헤이가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사죄한 '고노 담화'를 계승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혀 왔습니다. 예상 외로 뜨거워진 이번 선거에서도 그는 한 방송에 나와 그 뜻을 계승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상대적으로 개혁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당내외에서 젊은 층의 지지를 받고 있고 할 말은 하는, 일본 내에서는 보기 드문 정치인입니다.

원고를 보지 않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은 전임 스가 총리와 크게 비교되는 부분입니다. 한국 대사의 말을 끊고 "무례하다"고 외친 고노는 일본 우익 진영에게도 위험한 인물입니다.

반면, '첫 여성 총리' 후보로 나선 다카이치는 강렬한 극우의 색채를 띄고 있습니다. 극우적인 정치적 성향 때문에, '첫 여성 총리'라는 타이틀이 어울리지 않고, '여성'이라는 정체성과도 무관하다는 비판까지 일각에서 나올 정도입니다.


다카이치 사나에 홈페이지 캡처 ‘일본을 지킨다. 미래를 개척한다’라고 쓰여 있다.다카이치는 일본의 패전일(8월 15일)과 봄, 가을의 예대제(제사)가 되면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꼬박꼬박 참배해 왔습니다. 이번에도 총리가 되면 참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고노와 노다는 참배하지 않겠다고 했고, 기시다는 시기와 상황을 고려하겠다고 모호하게 답했습니다.

한 청년이 독도 문제에 대해 묻자, 다카이치는 "한국이 더 이상 구조물을 못 만들게 하겠다"며 거침없는 발언을 했습니다. "한국과 중국은 부정확한 정보를 발신하는데 일본은 '역사 외교'가 약하다"며 관련 부서를 내각 관방에 신설하겠다"는 포부도 밝힌 바 있습니다.

다카이치는 현재 한일 간 가장 첨예한 현안인 '강제징용'에 대해서도 통째로 부정해 왔습니다.

민주당이 정권을 잡았던 2010년, 하토야마 내각은 영주 외국인에 대한 지방참정권 부여를 중점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중의원 다카이치는 외무성으로부터 하나의 문서를 입수해 공개합니다.

일본 강제징용 조선인은 (1959년 시점에 한국 국적과 북한 국적을 더한 61만 명 중) 고작 245명. 이들은 모두 "'자유의사'로 일본에 체류하거나 태어난 사람들"이고, "일본 정부가 본인의 의지에 반해 일본에 체류하도록 한 조선인은 범죄자 외에 단 한 명도 없다"는 내용이 기재돼 있었습니다.

'자발적 체류'라는 외무성의 유권 해석이 확인됨에 따라 우익의 목소리에는 더욱 힘이 실렸습니다.

10년이 더 지난 지금도 다카이치 사나에 홈페이지에서 당시(2010.4.2)의 문건 입수 경위와 분석해 놓은 글을 볼 수 있습니다.

다카이치는 말미에 이런 해석도 덧붙였습니다.

만약, 이 외무성 발표 자료의 기재가 정확하다면, 이른바 '강제 연행'이라는 사실은 없고, '같은 일본국민으로서의 전시 징용'이라고 봐야만 한다. 일본정부가 특히 전시 징용자를 우선해 한국으로의 귀환을 지원했다는 내용도 제시돼 있다.


현재로선 다카이치가 일본의 100대 총리가 될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만, 예상치 못했던 선방에 언론들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기자들 사이에서는 "다카이치 (당선될 경우의) 기사도 준비해야 되는 거 아니냐"는 얘기까지 들립니다.

실제로 일부 여론조사에서 다카이치가 기시다를 제치고 2위가 될 거라는 결과까지 나왔습니다. 아베 지지층의 입맛에 꼭 맞는 '극우' 성향에, 아베의 입김까지 더해져, 모호한 태도의 기시다보다 우익 의원들의 마음을 끌고 있습니다.

1,2위 결선 투표에서 고노와 다카이치가 맞붙게 되고 기시다의 표가 다카이치로 몰리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처음엔 고노 제거를 위한 '작전용 카드'에 불과했지만 적어도 차기 유력 주자로 입지를 굳히는 데는 성공한 모양새입니다.


산케이신문에 실린 월간지 Hanada 광고선거 국면에 접어들며 극우 성향의 산케이 지면에서는 연일 다카이치의 얼굴이 실린 잡지 광고를 접할 수 있습니다. 광고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얼굴 사진 배치와 크기로 행간을 읽는 재미가 있는데, 요즘은 단연 다카이치의 얼굴이 가장 크게 등장합니다.

그녀의 얼굴 앞에는 일본을 구할 유일한 희망이라는 식의 수식어가, 그리고 아베의 얼굴이 따라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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