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남] ‘동거녀 상해’ 긴급체포된 남성…만장일치 무죄 난 까닭

입력 2021.09.29 (07:00) 수정 2021.10.01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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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남성 A 씨는 지난 4월 자신의 주거지에서 '코드 제로' 상황으로 출동한 경찰에 긴급 체포됐습니다. 코드 제로란 납치, 감금, 살인, 강도 등이 의심될 경우 발령되는 경찰 업무 매뉴얼 중 위급사항 최고 단계를 말합니다.

A씨는 함께 살던 여성 B 씨에게 술을 마신 뒤 흉기를 휘둘러 전치 2주의 상해를 입히고 위협을 가했다는 혐의를 받았고, 결국 구속기소됐습니다.

A 씨는 자신은 결백하다며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습니다. A 씨는 재판에서 "그와 같은 범행을 한 적이 없고, 사건 당시부터 경찰이 출동해 초인종을 누를 때까지 술에 취해 잠을 자고 있었을 뿐"이라며 "상처는 B 씨가 스스로 낸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 피해자 진술이 중요 증거인데…점차 바뀐 진술

법정에 제출된 증거는 피해자 B 씨의 진술과 목 부위에 긁힌 듯한 상처를 촬영한 사진, 흉기 등이었습니다.

흉기는 냉장고 위에서 발견됐는데, A 씨의 DNA가 발견되지는 않았습니다. 이때문에 피해자의 진술이 재판 과정에서 중요한 증거로 작용했습니다.

피해자 B 씨는 사건 당일 경찰에 "동거하던 A 씨에게 따로 살 집을 구했다고 하자 A 씨가 화를 내며 자신을 못 보내겠다고 하면서 주방에서 흉기를 갖고 왔다"며 자신의 목에 수차례 상처를 냈고, 찌르지는 않았다는 취지로 진술했습니다.

그 다음 경찰 조사에서 B 씨는 만취한 A 씨가 흉기를 휘두르자 "하지마"라고 말 한 후 욕실로 도망갔고, 욕실 안에서 112신고를 하는 동안 A 씨가 욕실 문을 두드리며 욕설을 했다고 진술했습니다.

이어진 경찰조사에서는 B 씨가 사건 당시 앉아 있는 상태였고, 자신이 A 씨의 오른팔을 잡았었다는 진술이 추가됐습니다. 또 하지 말라고 하니 A 씨가 순순히 흉기를 거뒀다고도 했습니다.

검찰 조사에서 B 씨의 진술은 좀 더 구체적으로 바뀝니다. A 씨는 서 있었고 자신은 앉아 있었으며, 양손으로 A 씨의 오른팔을 잡고 뿌리친 뒤 욕실로 도망갔다고 진술했습니다. 경찰에 신고한 뒤 A 씨가 5분 정도 계속해서 소리를 질렀다고도 했습니다.

국민참여재판에 출석한 B 씨는 "당시 바닥에 앉아 A 씨가 흉기를 가져오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가 A 씨가 앞으로 왔을 때 마주 보고 섰는데, A 씨가 왼손으로 자신의 오른쪽 어깨를 잡고 오른손으로 범행했다"면서 "찔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두 손으로 A 씨의 가슴 부위를 밀쳐 A 씨가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나는 사이 욕실로 도망갔다"고 증언했습니다.

당시 정황에 대한 피해자의 진술이 수사와 재판을 거치며 조금씩 바뀐 겁니다.

■ 배심원 만장일치 '무죄'…법원 "피해자 진술 신빙성 의심"

7명의 국민참여재판 배심원들은 만장일치로 A 씨의 무죄에 뜻을 모았고, 재판부의 판단도 같았습니다.

1심인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양철한 부장판사)는 "공소사실을 인정할 증거는 사실상 B 씨의 진술이 유일한데 상처가 난 경위와 욕실로 도망친 경위에 대한 진술은 일관성이 없어 믿기 어렵고, 검사가 제출한 나머지 증거들만으로는 공소사실을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A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B 씨가 112신고를 한 후 경찰관들은 약 4분 뒤에 도착했는데, 당시 현장 출동 경찰관은 '너무 조용해서 이미 상황이 종료된 것이 아닌가 하여 B 씨가 알려준 비밀번호로 현관문을 열지 않고 3~4분간 초인종을 눌렀고, 당시 의사소통이 어려울 정도로 술에 취한 A 씨가 문을 열어줬고 경찰서로 가자고 하니 저항 없이 순순히 따라 나왔다고 진술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B 씨 진술처럼 A 씨가 112신고 후에도 수분간 소리를 지르고 하였다면 4분 만에 도착한 경찰관이 그런 소리를 들었을 가능성이 높고, A 씨도 매우 흥분된 상태였을 것으로 보이는데 경찰의 진술이 이에 부합하지 않아 B 씨의 진술을 믿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또 "112 음성파일에도 B 씨가 신고 당시 처음부터 끝까지 다른 말소리나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는 점도 판단 근거라고 설명했습니다.

1심이 선고되자 검사는 항소했고, 이 재판은 2심으로 올라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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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결남] ‘동거녀 상해’ 긴급체포된 남성…만장일치 무죄 난 까닭
    • 입력 2021-09-29 07:00:57
    • 수정2021-10-01 15:48:24
    취재K

30대 남성 A 씨는 지난 4월 자신의 주거지에서 '코드 제로' 상황으로 출동한 경찰에 긴급 체포됐습니다. 코드 제로란 납치, 감금, 살인, 강도 등이 의심될 경우 발령되는 경찰 업무 매뉴얼 중 위급사항 최고 단계를 말합니다.

A씨는 함께 살던 여성 B 씨에게 술을 마신 뒤 흉기를 휘둘러 전치 2주의 상해를 입히고 위협을 가했다는 혐의를 받았고, 결국 구속기소됐습니다.

A 씨는 자신은 결백하다며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습니다. A 씨는 재판에서 "그와 같은 범행을 한 적이 없고, 사건 당시부터 경찰이 출동해 초인종을 누를 때까지 술에 취해 잠을 자고 있었을 뿐"이라며 "상처는 B 씨가 스스로 낸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 피해자 진술이 중요 증거인데…점차 바뀐 진술

법정에 제출된 증거는 피해자 B 씨의 진술과 목 부위에 긁힌 듯한 상처를 촬영한 사진, 흉기 등이었습니다.

흉기는 냉장고 위에서 발견됐는데, A 씨의 DNA가 발견되지는 않았습니다. 이때문에 피해자의 진술이 재판 과정에서 중요한 증거로 작용했습니다.

피해자 B 씨는 사건 당일 경찰에 "동거하던 A 씨에게 따로 살 집을 구했다고 하자 A 씨가 화를 내며 자신을 못 보내겠다고 하면서 주방에서 흉기를 갖고 왔다"며 자신의 목에 수차례 상처를 냈고, 찌르지는 않았다는 취지로 진술했습니다.

그 다음 경찰 조사에서 B 씨는 만취한 A 씨가 흉기를 휘두르자 "하지마"라고 말 한 후 욕실로 도망갔고, 욕실 안에서 112신고를 하는 동안 A 씨가 욕실 문을 두드리며 욕설을 했다고 진술했습니다.

이어진 경찰조사에서는 B 씨가 사건 당시 앉아 있는 상태였고, 자신이 A 씨의 오른팔을 잡았었다는 진술이 추가됐습니다. 또 하지 말라고 하니 A 씨가 순순히 흉기를 거뒀다고도 했습니다.

검찰 조사에서 B 씨의 진술은 좀 더 구체적으로 바뀝니다. A 씨는 서 있었고 자신은 앉아 있었으며, 양손으로 A 씨의 오른팔을 잡고 뿌리친 뒤 욕실로 도망갔다고 진술했습니다. 경찰에 신고한 뒤 A 씨가 5분 정도 계속해서 소리를 질렀다고도 했습니다.

국민참여재판에 출석한 B 씨는 "당시 바닥에 앉아 A 씨가 흉기를 가져오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가 A 씨가 앞으로 왔을 때 마주 보고 섰는데, A 씨가 왼손으로 자신의 오른쪽 어깨를 잡고 오른손으로 범행했다"면서 "찔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두 손으로 A 씨의 가슴 부위를 밀쳐 A 씨가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나는 사이 욕실로 도망갔다"고 증언했습니다.

당시 정황에 대한 피해자의 진술이 수사와 재판을 거치며 조금씩 바뀐 겁니다.

■ 배심원 만장일치 '무죄'…법원 "피해자 진술 신빙성 의심"

7명의 국민참여재판 배심원들은 만장일치로 A 씨의 무죄에 뜻을 모았고, 재판부의 판단도 같았습니다.

1심인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양철한 부장판사)는 "공소사실을 인정할 증거는 사실상 B 씨의 진술이 유일한데 상처가 난 경위와 욕실로 도망친 경위에 대한 진술은 일관성이 없어 믿기 어렵고, 검사가 제출한 나머지 증거들만으로는 공소사실을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A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B 씨가 112신고를 한 후 경찰관들은 약 4분 뒤에 도착했는데, 당시 현장 출동 경찰관은 '너무 조용해서 이미 상황이 종료된 것이 아닌가 하여 B 씨가 알려준 비밀번호로 현관문을 열지 않고 3~4분간 초인종을 눌렀고, 당시 의사소통이 어려울 정도로 술에 취한 A 씨가 문을 열어줬고 경찰서로 가자고 하니 저항 없이 순순히 따라 나왔다고 진술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B 씨 진술처럼 A 씨가 112신고 후에도 수분간 소리를 지르고 하였다면 4분 만에 도착한 경찰관이 그런 소리를 들었을 가능성이 높고, A 씨도 매우 흥분된 상태였을 것으로 보이는데 경찰의 진술이 이에 부합하지 않아 B 씨의 진술을 믿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또 "112 음성파일에도 B 씨가 신고 당시 처음부터 끝까지 다른 말소리나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는 점도 판단 근거라고 설명했습니다.

1심이 선고되자 검사는 항소했고, 이 재판은 2심으로 올라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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