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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리포트] ‘월세와의 전쟁’ 베를린…부동산 ‘강제 보상 수용’ 주민투표 가결
입력 2021.09.29 (10:31) 특파원 리포트
치솟는 월세에 항의하는 베를린 시민들의 시위.치솟는 월세에 항의하는 베를린 시민들의 시위.

월세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독일 베를린시가 또 한 번의 실험을 시작합니다.

거대 부동산 회사들이 보유한 주택을 '몰수'해서 싼값에 공급하자는 주민투표가 가결된 겁니다.

법을 만들어 기업의 부동산을 일정 금액을 지불해 수용하는 형태인데 사실상 '몰수'에 가깝습니다. 주민투표를 발의한 시민단체 이름도 '도이체 보넨 등 몰수(Deutsche Wohnen & Co. enteignen)'이고, 주민투표 용지에도 '국유화(vergesellschaften)'라고 적시돼 있습니다.

즉, 기업의 재산을 '몰수'해 '국유화'하자는 게 이번 주민투표의 목적입니다.

2012년부터 최근까지 베를린의 1㎡당 월세 추이. 9년 동안 월세가 2배 가까이 상승했다.(출처=statista 웹페이지 갈무리)2012년부터 최근까지 베를린의 1㎡당 월세 추이. 9년 동안 월세가 2배 가까이 상승했다.(출처=statista 웹페이지 갈무리)

■베를린 월세 어떻길래…10년 사이 두 배 가까이 상승

베를린의 인구는 약 360만 명입니다. 이 중 80%가 임대주택, 즉 월세로 삽니다.

베를린은 저렴한 월세와 훌륭한 치안으로, 한 때 유럽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이란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10년간 베를린의 월세는 미친 듯이 올랐습니다. 2012년 1㎡당 평균 월세는 6.65 유로였는데, 올해 1분기에 10.49 유로로 조사됐습니다. 거의 두 배가 오른 겁니다. 베를린 시민들은 이런 월세 급등을 기본권 침해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베를린시 정부도 손 놓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지난해 2월 '월세 상한제'라는 주거대책을 시행했는데, 말 그대로 일정한 선에서 월세를 동결하는 조치였습니다.

그런데 올해 4월 연방헌법재판소는 베를린의 이 '실험'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 위헌 결정이 시민들을 움직였습니다. 거리로 나선 시민들은 월세 급등의 원인이 주택을 다량 매입해 마음대로 가격을 조정하고 있는 대형 부동산기업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실제로 '도이체 보넨'이라는 부동산기업은 독일 내에 15만 여 채의 임대주택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 중 11만 채가 베를린에 있습니다.

대형 부동산기업이 소유한 주택을 '몰수'해 공공기관이 싸게 월세를 공급하자는 주민투표를 제안한 시민단체 이름이 '도이체 보넨 등 몰수'인 이유입니다.

9월 26일 치러진 베를린 주민투표 찬반 투표지.9월 26일 치러진 베를린 주민투표 찬반 투표지.

■"24만 여 채 '몰수'" 주민투표 가결

위 사진은 주민투표 용지입니다. 핵심 문장은 이겁니다.

-베를린시는 3.000개 이상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민간 부동산업체의 주택을 '국영화'해야 한다.


투표용지에는 거칠지만 '몰수'의 방법도 제시했습니다. 현 시장 가격보다 현저히 낮은 금액으로 보상한다고 돼 있습니다.

이렇게 확보한 주택은 시 관계자와 주민 대표 등이 참여하는 공공기관의 관리 아래 낮은 월세로 공급하자는 겁니다.

보상 규모는 '도이체 보넨 등 몰수' 측은 80억 유로(약 11조 원), 베를린시는 379억 유로(약 52조 원)로 각각 추산하고 있습니다.

주민투표 결과, 투표자의 56.4%가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반대표는 39%에 불과했습니다.

법안에 대한 투표가 아니기 때문에 베를린시가 반드시 이행해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이에 '도이체 보넨 등 몰수' 측은 "차기 베를린시 정부는 대형 부동산회사 보유주택 몰수와 공유를 위한 관련 법안 제정을 어떻게 추진할 것인지 명확한 계획을 내놔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베를린 세입자 협회도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베를린 시민들이 결정을 내렸다. 이에 대한 정책이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물론 비판도 만만치 않습니다. 베를린-브란덴부르크 비즈니스 협회는 이번 주민투표를 "투자자를 억제하고 국가 재정을 망칠 자의적 행위"라며 "베를린 주택시장을 1밀리미터도 발전시키지 못할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이 협회의 크리스티안 암싱크 이사는 "몰수가 주택을 만들어 내진 않습니다. 주택의 신규 공급만이 월세를 낮출 방법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당초 ‘몰수’에 부정적 입장이었던 차기 베를린 시장 프란치스카 기파이는 “주민투표 결과를 존중하겠다”라고 밝혔다.당초 ‘몰수’에 부정적 입장이었던 차기 베를린 시장 프란치스카 기파이는 “주민투표 결과를 존중하겠다”라고 밝혔다.

■"주민투표 결과 존중하겠다"…전망은?

9월 26일 연방 총선일에 맞춰 베를린 지방선거가 함께 치러졌습니다.

베를린 시장도 바뀌고 의회도 새로 구성됩니다. 이번 주민투표 결과에 따른 조처는 조만간 새로 구성될 시정부와 시의회의 몫입니다.

차기 시장은 사회민주당(SPD)의 프란치시카 기파이입니다. 얼마전까지 연방정부의 가족부 장관을 지냈는데 베를린 최초의 여성 시장에 오릅니다.

기파이는 앞서 선거전에서 대형 부동산회사 보유 주택의 몰수와 공유 방안에 대한 반대입장을 명확히 했습니다. 하지만 선거가 마무리된 뒤에는 "주민 투표 결과를 존중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베를린 시정부와 의회는 구성되는 대로 논의에 착수해 관련 법안을 제정할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법안의 '위헌성' 제거가 될 것입니다.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막고, 사유재산을 '강제로 수용'하는 법안이라는 지적 말입니다.

도이체 보넨 등 부동산 기업들은 "이런 정책은 베를린 주택 시장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서 몇 가지 대책을 제시하며 베를린시에 대화를 제안했습니다.

향후 5년 동안 자발적으로 임대료를 제한하고, 베를린에 아파트 1만 3,000채를 짓겠다는 겁니다. 이런 제안들이 받아들여 지지 않고 법안이 만들어져 시행되면 연방 헌재에 위헌 소송을 낼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로선 부동산 '몰수'와 '공유'가 어떻게 진행될지 가늠하기 쉽지 않습니다. 법안이 마련될 때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고, 그 사이 기업들이 만족할 만한 수준의 월세 대책을 내놓는다면 없던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법안이 만들어지더라도 헌재로 갈 가능성이 크고요.

또 앞서 말씀드렸지만 주민투표 결과를 반드시 이행해야 하는 게 아닙니다.

실제로 2017년 베를린 테겔 공항 폐쇄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가 시행됐는데, 당시 폐쇄 반대가 56%였습니다. 하지만 테겔 공항은 지난해 11월에 폐쇄됐습니다.
  • [특파원 리포트] ‘월세와의 전쟁’ 베를린…부동산 ‘강제 보상 수용’ 주민투표 가결
    • 입력 2021-09-29 10:31:10
    특파원 리포트
치솟는 월세에 항의하는 베를린 시민들의 시위.치솟는 월세에 항의하는 베를린 시민들의 시위.

월세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독일 베를린시가 또 한 번의 실험을 시작합니다.

거대 부동산 회사들이 보유한 주택을 '몰수'해서 싼값에 공급하자는 주민투표가 가결된 겁니다.

법을 만들어 기업의 부동산을 일정 금액을 지불해 수용하는 형태인데 사실상 '몰수'에 가깝습니다. 주민투표를 발의한 시민단체 이름도 '도이체 보넨 등 몰수(Deutsche Wohnen & Co. enteignen)'이고, 주민투표 용지에도 '국유화(vergesellschaften)'라고 적시돼 있습니다.

즉, 기업의 재산을 '몰수'해 '국유화'하자는 게 이번 주민투표의 목적입니다.

2012년부터 최근까지 베를린의 1㎡당 월세 추이. 9년 동안 월세가 2배 가까이 상승했다.(출처=statista 웹페이지 갈무리)2012년부터 최근까지 베를린의 1㎡당 월세 추이. 9년 동안 월세가 2배 가까이 상승했다.(출처=statista 웹페이지 갈무리)

■베를린 월세 어떻길래…10년 사이 두 배 가까이 상승

베를린의 인구는 약 360만 명입니다. 이 중 80%가 임대주택, 즉 월세로 삽니다.

베를린은 저렴한 월세와 훌륭한 치안으로, 한 때 유럽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이란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10년간 베를린의 월세는 미친 듯이 올랐습니다. 2012년 1㎡당 평균 월세는 6.65 유로였는데, 올해 1분기에 10.49 유로로 조사됐습니다. 거의 두 배가 오른 겁니다. 베를린 시민들은 이런 월세 급등을 기본권 침해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베를린시 정부도 손 놓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지난해 2월 '월세 상한제'라는 주거대책을 시행했는데, 말 그대로 일정한 선에서 월세를 동결하는 조치였습니다.

그런데 올해 4월 연방헌법재판소는 베를린의 이 '실험'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 위헌 결정이 시민들을 움직였습니다. 거리로 나선 시민들은 월세 급등의 원인이 주택을 다량 매입해 마음대로 가격을 조정하고 있는 대형 부동산기업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실제로 '도이체 보넨'이라는 부동산기업은 독일 내에 15만 여 채의 임대주택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 중 11만 채가 베를린에 있습니다.

대형 부동산기업이 소유한 주택을 '몰수'해 공공기관이 싸게 월세를 공급하자는 주민투표를 제안한 시민단체 이름이 '도이체 보넨 등 몰수'인 이유입니다.

9월 26일 치러진 베를린 주민투표 찬반 투표지.9월 26일 치러진 베를린 주민투표 찬반 투표지.

■"24만 여 채 '몰수'" 주민투표 가결

위 사진은 주민투표 용지입니다. 핵심 문장은 이겁니다.

-베를린시는 3.000개 이상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민간 부동산업체의 주택을 '국영화'해야 한다.


투표용지에는 거칠지만 '몰수'의 방법도 제시했습니다. 현 시장 가격보다 현저히 낮은 금액으로 보상한다고 돼 있습니다.

이렇게 확보한 주택은 시 관계자와 주민 대표 등이 참여하는 공공기관의 관리 아래 낮은 월세로 공급하자는 겁니다.

보상 규모는 '도이체 보넨 등 몰수' 측은 80억 유로(약 11조 원), 베를린시는 379억 유로(약 52조 원)로 각각 추산하고 있습니다.

주민투표 결과, 투표자의 56.4%가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반대표는 39%에 불과했습니다.

법안에 대한 투표가 아니기 때문에 베를린시가 반드시 이행해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이에 '도이체 보넨 등 몰수' 측은 "차기 베를린시 정부는 대형 부동산회사 보유주택 몰수와 공유를 위한 관련 법안 제정을 어떻게 추진할 것인지 명확한 계획을 내놔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베를린 세입자 협회도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베를린 시민들이 결정을 내렸다. 이에 대한 정책이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물론 비판도 만만치 않습니다. 베를린-브란덴부르크 비즈니스 협회는 이번 주민투표를 "투자자를 억제하고 국가 재정을 망칠 자의적 행위"라며 "베를린 주택시장을 1밀리미터도 발전시키지 못할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이 협회의 크리스티안 암싱크 이사는 "몰수가 주택을 만들어 내진 않습니다. 주택의 신규 공급만이 월세를 낮출 방법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당초 ‘몰수’에 부정적 입장이었던 차기 베를린 시장 프란치스카 기파이는 “주민투표 결과를 존중하겠다”라고 밝혔다.당초 ‘몰수’에 부정적 입장이었던 차기 베를린 시장 프란치스카 기파이는 “주민투표 결과를 존중하겠다”라고 밝혔다.

■"주민투표 결과 존중하겠다"…전망은?

9월 26일 연방 총선일에 맞춰 베를린 지방선거가 함께 치러졌습니다.

베를린 시장도 바뀌고 의회도 새로 구성됩니다. 이번 주민투표 결과에 따른 조처는 조만간 새로 구성될 시정부와 시의회의 몫입니다.

차기 시장은 사회민주당(SPD)의 프란치시카 기파이입니다. 얼마전까지 연방정부의 가족부 장관을 지냈는데 베를린 최초의 여성 시장에 오릅니다.

기파이는 앞서 선거전에서 대형 부동산회사 보유 주택의 몰수와 공유 방안에 대한 반대입장을 명확히 했습니다. 하지만 선거가 마무리된 뒤에는 "주민 투표 결과를 존중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베를린 시정부와 의회는 구성되는 대로 논의에 착수해 관련 법안을 제정할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법안의 '위헌성' 제거가 될 것입니다.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막고, 사유재산을 '강제로 수용'하는 법안이라는 지적 말입니다.

도이체 보넨 등 부동산 기업들은 "이런 정책은 베를린 주택 시장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서 몇 가지 대책을 제시하며 베를린시에 대화를 제안했습니다.

향후 5년 동안 자발적으로 임대료를 제한하고, 베를린에 아파트 1만 3,000채를 짓겠다는 겁니다. 이런 제안들이 받아들여 지지 않고 법안이 만들어져 시행되면 연방 헌재에 위헌 소송을 낼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로선 부동산 '몰수'와 '공유'가 어떻게 진행될지 가늠하기 쉽지 않습니다. 법안이 마련될 때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고, 그 사이 기업들이 만족할 만한 수준의 월세 대책을 내놓는다면 없던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법안이 만들어지더라도 헌재로 갈 가능성이 크고요.

또 앞서 말씀드렸지만 주민투표 결과를 반드시 이행해야 하는 게 아닙니다.

실제로 2017년 베를린 테겔 공항 폐쇄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가 시행됐는데, 당시 폐쇄 반대가 56%였습니다. 하지만 테겔 공항은 지난해 11월에 폐쇄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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