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원주민 아동 집단 유해’ 잇따라 발견…그것은 ‘제노사이드’였다

입력 2021.09.30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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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나다 '원주민 기숙학교' 부지 4곳서 아동 유해 1,300여 구 발견…'묘비 없는 무덤 터'

현지 시간으로 지난 5월 28일, 캐나다 남서부 브리티시 컬럼비아주에 있는 옛 캠루프스 인디언 기숙학교 부지에서 아동 215명의 유해가 발견됐습니다. 지표 투과 레이더로 유해를 확인했더니, 세 살배기 아동들도 있었습니다.

얼마 뒤엔, 그 세 배가 넘는 751구의 아동 유해가 새스캐처원주에 있던 매리벌 원주민 기숙학교 터에서 탐지됐습니다. 그곳에도 묘비나 그 어떤 표식은 없었습니다.

충격적인 소식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곧이어 캐나다 원주민 단체인 '로어 쿠테네이 밴드'도 브리티시 컬럼비아주 크랜브룩 근처에 있는 옛 세인트 유진 선교학교 부지에서 표식이 없는 무덤 182기를 찾았다고 밝혔습니다. 역시, 이곳에서 교육받던 7∼15세 원주민 어린이들의 무덤으로 추정됐습니다.

네 번째 발견도 이어졌습니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주 페넬라쿠트섬에 있던 기숙학교 '쿠퍼 섬 원주민 공업학교' 터에서는 표식과 기록이 없는 무덤이 160기 넘게 나왔습니다.

이렇게 지난 5월부터 몇 주간 공식적으로 확인된 원주민 원주민 아동의 유해만 1천 3백여 구나 됩니다. 이들이 지냈던 기숙 학교들은 대부분 가톨릭 교회가 운영한 곳들이었습니다.


■ 원주민 기숙학교의 정체는?…"원주민에 대한 문화적 제노사이드(집단 학살)였다"

원주민 단체들과 전문가들은 이들 어린이 집단 무덤이 가톨릭교회가 원주민들에게 저지른 학대의 결과라고 분석했습니다.

캐나다는 과거 인디언과 이누이트족, 유럽인과 캐나다 원주민의 혼혈인 메티스 등을 격리해서 기숙학교에 집단 수용하고 언어와 문화를 교육했습니다. 명목은 백인 사회로의 동화였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원주민 언어 사용을 강제로 금지하는 등 원주민 문화 말살 정책이 시행됐고, 이 과정에서 원주민 어린이들은 열악하고 엄격한 훈육 아래 육체적, 정신적, 성적으로 학대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 장소였던 캐나다 원주민 기숙학교는 1883년경부터 1996년에 이르기까지 100여 년간 정부와 가톨릭교회 주도로 운영됐습니다. 전국적으로는 139곳에 이르렀고, 강제로 부모에게서 떨어져 수용된 원주민 아동은 15만 명에 달한 것으로 추산됩니다.

가톨릭교회는 특히 정부를 대신해 70%에 이르는 학교들을 운영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7년간 원주민 기숙학교 문제를 조사해 온 캐나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 2015년 보고서를 통해, 원주민 학생 4천100명이 영양실조, 질병, 학대 등으로 숨지거나 실종됐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이를 정부의 문화적 제노사이드(집단·종족 학살)라고 규정했습니다.

그리고 이 경험은 현재 캐나다 원주민들의 빈곤과 알코올 중독, 가정 폭력, 높은 자살률 등의 원인으로도 지목되고 있습니다.


■ 총리 "캐나다 역사의 어둡고 부끄러운 시기"…'9월 30일 국가 추념일' 만장일치 제정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지난 2017년에 원주민 기숙학교가 "캐나다의 부끄러운 역사"라며 정부 차원에서 공식으로 사과한 데 이어, 이번 유해 발견과 관련해서도 진실을 찾아내는 것은 중요하다며 구체적인 조치에 나서겠다고 밝혔습니다. 또 가톨릭 최고지도자인 교황에게 원주민 학대를 사과하라고 재차 촉구했습니다.

원주민 아동들의 무덤 터인 해당 기숙학교 부지에는 시민들의 추모 행렬이 이어졌고, 진실을 규명하라는 목소리가 쏟아졌습니다.

정부 기관은 건물마다 조기를 내걸며 애도했고, 원주민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지자체들은 건국의 날인 지난 7월 1일 '캐나다의 날' 기념 행사를 취소하거나 대폭 축소했습니다.

캐나다 의회는 만장일치로 매년 9월 30일을 원주민 기숙학교의 어두운 역사를 추념하기 위한 법정 공휴일, '진실과 화해를 위한 국가 추념일'로 제정했습니다.

■ 방화 잇따른 캐나다 가톨릭교회 사과…교황, 원주민 대표들과 12월 회동 뒤 사과할까?

한편, 가톨릭교회에는 원주민 아동의 집단 유해 첫 발견 이후 방화로 의심되는 화재가 잇따랐습니다. 캐나다 가톨릭교회는 곧 자신들이 운영한 원주민 기숙학교 부지에서 엄청난 학대가 있었다며 잘못을 시인하고 공식 사과했습니다.

첫 유해 발견 소식 일주일 만에 "소식을 접하고 경악했다"며 사과나 유감 표명을 하지는 않았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오는 12월 바티칸에서 원주민 대표자들을 만나기로 했습니다.

교황이 퍼스트네이션스, 메티스, 이누이트 등 3대 원주민 단체의 대표자들을 따로 만난 뒤 마지막 날 함께 접견하는 나흘간의 일정입니다.

캐나다 원주민들은 그동안 원주민 기숙학교 내 만행과 관련해 가톨릭의 책임이 있다며 가톨릭교회의 최고지도자인 교황이 직접 사과할 것을 오랫동안 촉구해왔지만, 교황청은 지금까지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캐나다 가톨릭 주교회의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진심 어린 친밀감을 표현하고 식민지화의 영향, 기숙학교 체계에서 가톨릭이 한 역할을 거론하며 원주민 부족들의 말을 직접 듣겠다고 확약했다"고 전했습니다.

캐나다 최대 원주민 단체인 퍼스트네이션스는 교황과의 회동에서 배상 문제를 논의하고 교황이 직접 캐나다를 방문해 사과하도록 설득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5년 볼리비아, 2018년 아일랜드를 방문했을 당시, 식민지 개척시대의 원주민 탄압과 사제들의 성적인 학대를 사과했습니다.

■ '원주민 정책'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미국... '원주민 기숙학교' 조사 착수

미국도 과거 150년간 운영했던 원주민 기숙학교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뎁 할랜드 미 내무부 장관은 지난 6월 22일(현지 시간) 연방 정부가 원주민 기숙학교와 관련한 "어두운 과거"를 조사할 것이며, 사망을 포함한 진실을 규명하고 후속 상황을 파악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할랜드 장관은 미국 원주민(Native American) 출신 첫 각료이자 원주민 정책을 다루는 내무부의 수장입니다.

미국은 1819년 시행된 원주민 관련 법을 계기로 전역에 인디언 기숙학교를 설립하기 시작했고, 150년에 걸쳐 원주민 어린이들을 동화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수용했습니다.

미 정부는 이번 조사를 통해 기숙학교 내 사망 규명과 희생자 묘지 보존, 원주민 공동체 지원 등을 추진하며 내년 4월 1일까지 최종 보고서를 내놓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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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캐나다 원주민 아동 집단 유해’ 잇따라 발견…그것은 ‘제노사이드’였다
    • 입력 2021-09-30 07:03:28
    취재K

■ 캐나다 '원주민 기숙학교' 부지 4곳서 아동 유해 1,300여 구 발견…'묘비 없는 무덤 터'

현지 시간으로 지난 5월 28일, 캐나다 남서부 브리티시 컬럼비아주에 있는 옛 캠루프스 인디언 기숙학교 부지에서 아동 215명의 유해가 발견됐습니다. 지표 투과 레이더로 유해를 확인했더니, 세 살배기 아동들도 있었습니다.

얼마 뒤엔, 그 세 배가 넘는 751구의 아동 유해가 새스캐처원주에 있던 매리벌 원주민 기숙학교 터에서 탐지됐습니다. 그곳에도 묘비나 그 어떤 표식은 없었습니다.

충격적인 소식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곧이어 캐나다 원주민 단체인 '로어 쿠테네이 밴드'도 브리티시 컬럼비아주 크랜브룩 근처에 있는 옛 세인트 유진 선교학교 부지에서 표식이 없는 무덤 182기를 찾았다고 밝혔습니다. 역시, 이곳에서 교육받던 7∼15세 원주민 어린이들의 무덤으로 추정됐습니다.

네 번째 발견도 이어졌습니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주 페넬라쿠트섬에 있던 기숙학교 '쿠퍼 섬 원주민 공업학교' 터에서는 표식과 기록이 없는 무덤이 160기 넘게 나왔습니다.

이렇게 지난 5월부터 몇 주간 공식적으로 확인된 원주민 원주민 아동의 유해만 1천 3백여 구나 됩니다. 이들이 지냈던 기숙 학교들은 대부분 가톨릭 교회가 운영한 곳들이었습니다.


■ 원주민 기숙학교의 정체는?…"원주민에 대한 문화적 제노사이드(집단 학살)였다"

원주민 단체들과 전문가들은 이들 어린이 집단 무덤이 가톨릭교회가 원주민들에게 저지른 학대의 결과라고 분석했습니다.

캐나다는 과거 인디언과 이누이트족, 유럽인과 캐나다 원주민의 혼혈인 메티스 등을 격리해서 기숙학교에 집단 수용하고 언어와 문화를 교육했습니다. 명목은 백인 사회로의 동화였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원주민 언어 사용을 강제로 금지하는 등 원주민 문화 말살 정책이 시행됐고, 이 과정에서 원주민 어린이들은 열악하고 엄격한 훈육 아래 육체적, 정신적, 성적으로 학대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 장소였던 캐나다 원주민 기숙학교는 1883년경부터 1996년에 이르기까지 100여 년간 정부와 가톨릭교회 주도로 운영됐습니다. 전국적으로는 139곳에 이르렀고, 강제로 부모에게서 떨어져 수용된 원주민 아동은 15만 명에 달한 것으로 추산됩니다.

가톨릭교회는 특히 정부를 대신해 70%에 이르는 학교들을 운영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7년간 원주민 기숙학교 문제를 조사해 온 캐나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 2015년 보고서를 통해, 원주민 학생 4천100명이 영양실조, 질병, 학대 등으로 숨지거나 실종됐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이를 정부의 문화적 제노사이드(집단·종족 학살)라고 규정했습니다.

그리고 이 경험은 현재 캐나다 원주민들의 빈곤과 알코올 중독, 가정 폭력, 높은 자살률 등의 원인으로도 지목되고 있습니다.


■ 총리 "캐나다 역사의 어둡고 부끄러운 시기"…'9월 30일 국가 추념일' 만장일치 제정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지난 2017년에 원주민 기숙학교가 "캐나다의 부끄러운 역사"라며 정부 차원에서 공식으로 사과한 데 이어, 이번 유해 발견과 관련해서도 진실을 찾아내는 것은 중요하다며 구체적인 조치에 나서겠다고 밝혔습니다. 또 가톨릭 최고지도자인 교황에게 원주민 학대를 사과하라고 재차 촉구했습니다.

원주민 아동들의 무덤 터인 해당 기숙학교 부지에는 시민들의 추모 행렬이 이어졌고, 진실을 규명하라는 목소리가 쏟아졌습니다.

정부 기관은 건물마다 조기를 내걸며 애도했고, 원주민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지자체들은 건국의 날인 지난 7월 1일 '캐나다의 날' 기념 행사를 취소하거나 대폭 축소했습니다.

캐나다 의회는 만장일치로 매년 9월 30일을 원주민 기숙학교의 어두운 역사를 추념하기 위한 법정 공휴일, '진실과 화해를 위한 국가 추념일'로 제정했습니다.

■ 방화 잇따른 캐나다 가톨릭교회 사과…교황, 원주민 대표들과 12월 회동 뒤 사과할까?

한편, 가톨릭교회에는 원주민 아동의 집단 유해 첫 발견 이후 방화로 의심되는 화재가 잇따랐습니다. 캐나다 가톨릭교회는 곧 자신들이 운영한 원주민 기숙학교 부지에서 엄청난 학대가 있었다며 잘못을 시인하고 공식 사과했습니다.

첫 유해 발견 소식 일주일 만에 "소식을 접하고 경악했다"며 사과나 유감 표명을 하지는 않았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오는 12월 바티칸에서 원주민 대표자들을 만나기로 했습니다.

교황이 퍼스트네이션스, 메티스, 이누이트 등 3대 원주민 단체의 대표자들을 따로 만난 뒤 마지막 날 함께 접견하는 나흘간의 일정입니다.

캐나다 원주민들은 그동안 원주민 기숙학교 내 만행과 관련해 가톨릭의 책임이 있다며 가톨릭교회의 최고지도자인 교황이 직접 사과할 것을 오랫동안 촉구해왔지만, 교황청은 지금까지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캐나다 가톨릭 주교회의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진심 어린 친밀감을 표현하고 식민지화의 영향, 기숙학교 체계에서 가톨릭이 한 역할을 거론하며 원주민 부족들의 말을 직접 듣겠다고 확약했다"고 전했습니다.

캐나다 최대 원주민 단체인 퍼스트네이션스는 교황과의 회동에서 배상 문제를 논의하고 교황이 직접 캐나다를 방문해 사과하도록 설득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5년 볼리비아, 2018년 아일랜드를 방문했을 당시, 식민지 개척시대의 원주민 탄압과 사제들의 성적인 학대를 사과했습니다.

■ '원주민 정책'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미국... '원주민 기숙학교' 조사 착수

미국도 과거 150년간 운영했던 원주민 기숙학교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뎁 할랜드 미 내무부 장관은 지난 6월 22일(현지 시간) 연방 정부가 원주민 기숙학교와 관련한 "어두운 과거"를 조사할 것이며, 사망을 포함한 진실을 규명하고 후속 상황을 파악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할랜드 장관은 미국 원주민(Native American) 출신 첫 각료이자 원주민 정책을 다루는 내무부의 수장입니다.

미국은 1819년 시행된 원주민 관련 법을 계기로 전역에 인디언 기숙학교를 설립하기 시작했고, 150년에 걸쳐 원주민 어린이들을 동화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수용했습니다.

미 정부는 이번 조사를 통해 기숙학교 내 사망 규명과 희생자 묘지 보존, 원주민 공동체 지원 등을 추진하며 내년 4월 1일까지 최종 보고서를 내놓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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