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서장 ‘친인척’이라서?…119구급차 440km 달리고 허위 신고까지

입력 2021.09.30 (07:03) 수정 2021.09.30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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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전주의 한 119센터 구급차 익산·서울 운행
해당 소방서장 친족 부탁에 서장이 구급대 ‘출동’ 지시
사건 살펴보니…부당 지시에 거짓 기록까지

전북 전주 덕진소방서전북 전주 덕진소방서

■ 소방서장 친인척 부탁에 소방서장이 119구급차 ‘출동’

지난달 20일 저녁 7시쯤. 이곳 전북 전주의 한 119안전센터에서 구급차 한 대가 출동했습니다. 당시 야간 근무 중이던 구급대원 두 명이 탄 구급차는 전북 익산의 원광대 병원으로 향했고, 환자 한 명을 태운 뒤 서울로 올라갑니다.

전주에서 익산, 익산에서 서울까지 모두 230km 거리. 서울에서 다시 전주까지 복귀한 건 다음 날 새벽 두 시쯤이었습니다.

비상 상황에 쓰이는 소방 119구급차의 장장 440km 주행.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이송된 환자는 지난달 17일 심혈관계 질환으로 익산 원광대병원을 찾았습니다. 사흘가량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다 서울의 한 병원으로 옮겨진 건데요.

보통 입원 환자가 병원에서 다른 병원으로 옮기는 전원을 할 때는 병원 내 구급차나 사설 구급차를 이용합니다.
그런데 이 환자의 경우는 좀 달랐습니다. 119구급차가 서울까지 전원을 도운 건데요.

소방본부 안팎에서 해당 환자의 가까운 인척이 전주 덕진소방서장이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됐고 이는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소방서장이 친인척의 부탁을 받고 출동 지시를 내려 공적 자산인 구급차를 사적으로 이용한 겁니다.



■ 개인적인 지시받은 대원들…허위 신고에 기록 조작까지?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당시 서장의 지시를 받은 구급대원들의 행동인데요. 119구급차는 출동의 근거가 ‘응급 신고’입니다.

서장의 지시였으니 당연히 신고가 있을 리 없었는데, 구급대원들은 구급차 출동을 위해 없는 환자를 있는 것처럼 만들어 허위 신고를 상황실에 전달합니다.

여기서 두 번째 문제가 발생하는데요.

소방서와 구급대는 관할 구역 안에서만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전주에서 익산이나 서울로는 갈 수 없습니다.

해당 대원들은 이 허위 신고에 따른 상황실의 지령을 결국 무시한 채 구급차를 관할 외 지역으로 몰았습니다.
이날 구급차 운행일지에 사실과 다른 내용이 담긴 것도 확인됐습니다.

지휘관인 소방서장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구급차를 사적으로 사용하고, 이 과정에서 119 허위 신고, 구급차 관할 외 주행, 사실과 다른 운행일지 작성 등이 한꺼번에 이뤄졌습니다.

전주 덕진소방서장실전주 덕진소방서장실

■ 직위 해제 없다던 소방감찰팀…하루 새 말 바꿔

전북소방본부는 사건이 벌어진 지 한 달여가 지나서야 이 상황을 인지했습니다. 이어 서장의 인척이 심혈관계질환을 앓고 있어 부탁한 것이라며 나서서 해명하기도 했는데요,

허위 신고나 운행일지 조작 등에 대해서는 ‘불가피하다’는 표현을 썼습니다.

공무원이 뚜렷한 비위를 저질렀을 때 징계와는 별도로 직위해제 조치가 먼저 이뤄지기도 하는데요,

전북소방본부 소방감찰팀은 보도가 난 지난 28일 해당 서장의 정년이 3년밖에 남지 않았고 지휘관 공백이 우려되는 만큼 직위해제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하지만 해당 서장은 어제(29일) 직위해제됐습니다.

중징계 의결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등 전북소방본부의 입장이 하루아침에 달라진 겁니다.

119구급대는 비상 상황에 발생하는 응급 환자의 골든타임을 지키기 위해 존재합니다. 1차 응급 처치를 하고 병원으로 재빠르게 이송해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 제 역할이죠.

그런데 이번 사건, ‘비상 상황’, ‘응급 환자’, ‘골든타임’과는 분명 거리가 멀었습니다. 친인척을 돕는 일은 소방 지휘관이라는 지위와는 별도로 이뤄졌어야 합니다.

또 국민의 공적 자산이 꼭 쓰여야 할 곳에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확인하는 일도 보다 철저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북소방본부의 감찰 결과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입니다.

(촬영기자 한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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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방서장 ‘친인척’이라서?…119구급차 440km 달리고 허위 신고까지
    • 입력 2021-09-30 07:03:28
    • 수정2021-09-30 07:33:58
    취재K
전주의 한 119센터 구급차 익산·서울 운행<br />해당 소방서장 친족 부탁에 서장이 구급대 ‘출동’ 지시<br />사건 살펴보니…부당 지시에 거짓 기록까지
전북 전주 덕진소방서
■ 소방서장 친인척 부탁에 소방서장이 119구급차 ‘출동’

지난달 20일 저녁 7시쯤. 이곳 전북 전주의 한 119안전센터에서 구급차 한 대가 출동했습니다. 당시 야간 근무 중이던 구급대원 두 명이 탄 구급차는 전북 익산의 원광대 병원으로 향했고, 환자 한 명을 태운 뒤 서울로 올라갑니다.

전주에서 익산, 익산에서 서울까지 모두 230km 거리. 서울에서 다시 전주까지 복귀한 건 다음 날 새벽 두 시쯤이었습니다.

비상 상황에 쓰이는 소방 119구급차의 장장 440km 주행.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이송된 환자는 지난달 17일 심혈관계 질환으로 익산 원광대병원을 찾았습니다. 사흘가량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다 서울의 한 병원으로 옮겨진 건데요.

보통 입원 환자가 병원에서 다른 병원으로 옮기는 전원을 할 때는 병원 내 구급차나 사설 구급차를 이용합니다.
그런데 이 환자의 경우는 좀 달랐습니다. 119구급차가 서울까지 전원을 도운 건데요.

소방본부 안팎에서 해당 환자의 가까운 인척이 전주 덕진소방서장이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됐고 이는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소방서장이 친인척의 부탁을 받고 출동 지시를 내려 공적 자산인 구급차를 사적으로 이용한 겁니다.



■ 개인적인 지시받은 대원들…허위 신고에 기록 조작까지?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당시 서장의 지시를 받은 구급대원들의 행동인데요. 119구급차는 출동의 근거가 ‘응급 신고’입니다.

서장의 지시였으니 당연히 신고가 있을 리 없었는데, 구급대원들은 구급차 출동을 위해 없는 환자를 있는 것처럼 만들어 허위 신고를 상황실에 전달합니다.

여기서 두 번째 문제가 발생하는데요.

소방서와 구급대는 관할 구역 안에서만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전주에서 익산이나 서울로는 갈 수 없습니다.

해당 대원들은 이 허위 신고에 따른 상황실의 지령을 결국 무시한 채 구급차를 관할 외 지역으로 몰았습니다.
이날 구급차 운행일지에 사실과 다른 내용이 담긴 것도 확인됐습니다.

지휘관인 소방서장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구급차를 사적으로 사용하고, 이 과정에서 119 허위 신고, 구급차 관할 외 주행, 사실과 다른 운행일지 작성 등이 한꺼번에 이뤄졌습니다.

전주 덕진소방서장실
■ 직위 해제 없다던 소방감찰팀…하루 새 말 바꿔

전북소방본부는 사건이 벌어진 지 한 달여가 지나서야 이 상황을 인지했습니다. 이어 서장의 인척이 심혈관계질환을 앓고 있어 부탁한 것이라며 나서서 해명하기도 했는데요,

허위 신고나 운행일지 조작 등에 대해서는 ‘불가피하다’는 표현을 썼습니다.

공무원이 뚜렷한 비위를 저질렀을 때 징계와는 별도로 직위해제 조치가 먼저 이뤄지기도 하는데요,

전북소방본부 소방감찰팀은 보도가 난 지난 28일 해당 서장의 정년이 3년밖에 남지 않았고 지휘관 공백이 우려되는 만큼 직위해제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하지만 해당 서장은 어제(29일) 직위해제됐습니다.

중징계 의결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등 전북소방본부의 입장이 하루아침에 달라진 겁니다.

119구급대는 비상 상황에 발생하는 응급 환자의 골든타임을 지키기 위해 존재합니다. 1차 응급 처치를 하고 병원으로 재빠르게 이송해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 제 역할이죠.

그런데 이번 사건, ‘비상 상황’, ‘응급 환자’, ‘골든타임’과는 분명 거리가 멀었습니다. 친인척을 돕는 일은 소방 지휘관이라는 지위와는 별도로 이뤄졌어야 합니다.

또 국민의 공적 자산이 꼭 쓰여야 할 곳에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확인하는 일도 보다 철저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북소방본부의 감찰 결과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입니다.

(촬영기자 한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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