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균 대책, 지금은]① 그 많던 대책은 다 어디로 갔길래…정규직 전환 Zero

입력 2021.09.30 (08:02)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요약

2018년 12월 11일, 만 24살 김용균이 숨졌다. 2019년 8월 19일, 김용균 특조위는 22개 권고안을 발표했다. 세부 과제로 치면 93개나 되는 방대한 양이었다. 정부는 권고안을 최대한 이행하겠다고 공언했다. 그 공언은 지금 얼마나 지켜지고 있을까. KBS는 「연속기획-김용균 대책, 지금은」을 통해 하나씩 따져본다.


김용균 참사는 문재인 정부 노동 정책의 리트머스 시험지로 볼 수 있다. 이른바 '1호 공약'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직결됐을 뿐 아니라 노동 현장의 안전·보건·인권 등을 망라한 대부분의 정책이 총집결된 이슈이기 때문이다.

김용균 참사 이후 정부와 여당은 각종 대책을 앞다퉈 쏟아냈다. 특히 대책의 핵심 중 핵심, 알맹이 중 알맹이는 단연 '정규직화'였다. 22개 권고안의 첫머리도 정규직화 안건이다. 1호, 첫머리…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은 해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것이다.


1. 2021년 9월 : "전혀 1도 나아진 게 없습니다"

정규직 전환 실적 0명. 전국에 석탄 화력발전소는 58곳이 있다. 여기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현재 11,200명 가량이다. 이 가운데 김용균 참사 이후 정규직으로 전환된 사례는 1명도 없다. 전혀 없다.

혹시라도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김용균 참사가 얼마나 뜨거웠나, 최소한 일부라도 성과가 있겠지…' 라고. 그랬다면, 완전 잘못 파악한 것이다. 현장 노동자들은 분노를 넘어 낙담과 냉소를 쏟아낸다. 그 많던 대책은 다 어디로 간걸까.

신대원/한국발전기술 노조위원장

"(김용균 참사) 3년이 다 됐지만 사실 고용은 전혀 1도 나아진 게 없습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해서 4년째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단 한 명도 정규직 전환이 되지 않았어요. 고용은 오히려 더 나빠지고 있다고 봐요. 기다림 속에 사람들이 사실 얼마나 지치겠습니까? 3년 버티면 많이 버티는 겁니다."

"집권 여당이 사실 약속을 했어요. 특조위부터 당정청 합의까지 했는데 결국 의지가 없는 겁니다. 인국공 사태 핑계 대고 사실 쏙 빠져나갔고, 정규직 전환 사실상 무산이라고 저는 판단합니다. 여당의 책임이 제일 큰데 지금 관심이 없습니다. 선거 국면이라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한국발전기술은 故 김용균 씨가 일했던 협력업체임


2. 2019년 8월 : 담대한 출발 "발전 5사가 직고용"

거슬러 가보자. 김용균 참사 여덟 달이 지나 김용균 특조위는 권고안을 발표했다. 권고안 1호는 '운전 및 정비 노동자 직접고용 정규직화' 였다. 크게 두 갈래였다. △ 운전 분야 하청 노동자는 발전회사가 직접 고용하고, △ 정비 분야는 한전KPS가 직접 고용 하라는 게 골자였다.

운전 분야란 <석탄 하역 - 저장 - 분쇄 - 운반> 등 석탄이 보일러에 들어가기 전까지 공정이다. 숨진 김용균 씨도 여기서 일했다. 여기서 일하던 하청 노동자를 별도의 자회사가 아니라 발전사가 직접 고용하라는 건 어떤 대안보다도 과감한 내용이었다. 대책의 출발은 이렇게 담대했다.

석탄 화력발전소는 흐름 공정이다. 석탄하역-운탄-보일러-터빈-회처리-탈황 일관생산방식이다. 일관된 흐름이지만 셋으로 쪼개 발전 분야만 발전 5사가 담당하고 있다. 나머지는 하청 업체에 맡기는 구조다.석탄 화력발전소는 흐름 공정이다. 석탄하역-운탄-보일러-터빈-회처리-탈황 일관생산방식이다. 일관된 흐름이지만 셋으로 쪼개 발전 분야만 발전 5사가 담당하고 있다. 나머지는 하청 업체에 맡기는 구조다.

3. 2020년 5월 : 작전상(?) 후퇴 "자회사 통해서 정규직화"

그러나 출발만 담대했다. 실무 작업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다. 발전 5사는 원청-하청 관계가 유지돼야 한다고 고집했다. 기존 하청 업체의 사측도 반발이 심했다. 운전 분야가 발전사 안으로 통합되면, 그간 해오던 일감이 통째로 사라지기 때문이다.

반발이 지속되자 정부와 여당도 부담을 느꼈다. 현실적 난관을 이유로 작전상(?) 후퇴를 결정한다. 한전에 자회사를 하나 두고, 그 자회사가 운전 분야 노동자 모두를 정규직으로 고용하기로 한다. 대상은 대략 2천여 명이었다. 자회사가 될 후보로 '한전산업개발'이 지목됐다.


4. 2021년 9월 : 핑퐁·머니게임 그리고 '희망고문'

한전산업개발은 이름만 들으면 이미 한전의 자회사 같지만, 그렇지 않다. 1990년대부터 쭉 1대 주주가 자유총연맹(31%)이다. 한전은 2대 주주(29%)이다. 정부가 확정한 정규직화 방침이 이행되려면 한전이 자유총연맹의 주식 보유분을 사들여서 자회사로 만들어야 한다.

한전산업개발은 코스피 상장사다. 연매출은 2천~3천억 원 수준이다. 한전이 자유총연맹의 지분 전체를 인수한다고 해도, 인수 가격은 넉넉 잡아도 천억 원을 넘기 어려웠다. 한전의 덩치를 고려하면 그다지 부담스러운 지분 인수는 아니었다.


그러나 지분 인수는 지금까지 단 한 발도 못떼고 있다. 속내를 취재해보면, 한전 측도 자유총연맹 측도 의지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기업 실사 일정도 안 잡고 있다. 당연히 인수 지분의 가격 협상은 시작도 못하고 있다. 양측은 '우리는 적극적인데, 저쪽이 의지가 없다'며 책임만 떠넘기고 있다.

양측이 핑퐁을 하는 사이, 한전산업개발 주가는 크게 올랐다. 예상하지 못한 움직임, 폭등이었다. 지난해 말부터 꿈틀대기 시작하더니, 올 들어 지난해보다 최고 8배까지 뛰었다. 발전주는 움직임이 매우 둔하다는 건 증권가의 상식이다. 지분 인수 논의에 자극받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하청 노동자의 정규직화를 위한 지분 인수는 단 한 걸음도 못 나갔는데, 난데없이 주가만 폭등한 셈. 자유총연맹과 한전은 양대 주주니까 손해볼 게 없다. 그러나 지분 인수는 더 꼬이는 모양새다. 적정 가격에 대한 자유총연맹 vs 한전 양측의 입장차가 더 커질 게 뻔하다.

반면, 정규직화 약속을 기다려온 노동자들은 정규직화가 지체될수록 '희망 고문'에 시달린다. 시간이 갈수록 정책 탄력이 떨어지는 걸 알면서도, 포기하기도 쉽지 않다. 청년 김용균의 목숨과 맞바꾼 정책이기 때문이다.


5. 748쪽 보고서, 이대로 가면 휴지조각

김용균 특조위가 내놓은 보고서는 무려 748쪽이다. 보고서 내용 가운데 이행된 사항도 없지는 않다. 중대재해처벌법 입법이 대표적인 성과다. 그러나 현장 노동자들이 피부로 느낄 '정규직화'는 제자리 걸음만 반복하고 있다. '노무비 착복'도 개선이 안되고 있다. (추후 보도 예정이다.)

현장의 당사자들이 변화를 몸으로 느끼지 못한다면, 748쪽 방대한 보고서가 다 무슨 소용일까. 휴지조각이라 불러도 지나치지 않을 수 있다. 이대로 두면 이슈가 될 때 숱한 대책을 내지만, 관심이 꺼지면 휴지조각으로 버리는 고질병이 이번에도 반복될 지 모른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김용균 대책, 지금은]① 그 많던 대책은 다 어디로 갔길래…정규직 전환 Zero
    • 입력 2021-09-30 08:02:03
    취재K
2018년 12월 11일, 만 24살 김용균이 숨졌다. 2019년 8월 19일, 김용균 특조위는 <strong>22개</strong> 권고안을 발표했다. 세부 과제로 치면 <strong>93개나 되는</strong> 방대한 양이었다. 정부는 권고안을 최대한 이행하겠다고 공언했다. 그 공언은 지금 얼마나 지켜지고 있을까. KBS는 <strong>「연속기획-김용균 대책, 지금은」</strong>을 통해 하나씩 따져본다.

김용균 참사는 문재인 정부 노동 정책의 리트머스 시험지로 볼 수 있다. 이른바 '1호 공약'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직결됐을 뿐 아니라 노동 현장의 안전·보건·인권 등을 망라한 대부분의 정책이 총집결된 이슈이기 때문이다.

김용균 참사 이후 정부와 여당은 각종 대책을 앞다퉈 쏟아냈다. 특히 대책의 핵심 중 핵심, 알맹이 중 알맹이는 단연 '정규직화'였다. 22개 권고안의 첫머리도 정규직화 안건이다. 1호, 첫머리…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은 해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것이다.


1. 2021년 9월 : "전혀 1도 나아진 게 없습니다"

정규직 전환 실적 0명. 전국에 석탄 화력발전소는 58곳이 있다. 여기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현재 11,200명 가량이다. 이 가운데 김용균 참사 이후 정규직으로 전환된 사례는 1명도 없다. 전혀 없다.

혹시라도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김용균 참사가 얼마나 뜨거웠나, 최소한 일부라도 성과가 있겠지…' 라고. 그랬다면, 완전 잘못 파악한 것이다. 현장 노동자들은 분노를 넘어 낙담과 냉소를 쏟아낸다. 그 많던 대책은 다 어디로 간걸까.

신대원/한국발전기술 노조위원장

"(김용균 참사) 3년이 다 됐지만 사실 고용은 전혀 1도 나아진 게 없습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해서 4년째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단 한 명도 정규직 전환이 되지 않았어요. 고용은 오히려 더 나빠지고 있다고 봐요. 기다림 속에 사람들이 사실 얼마나 지치겠습니까? 3년 버티면 많이 버티는 겁니다."

"집권 여당이 사실 약속을 했어요. 특조위부터 당정청 합의까지 했는데 결국 의지가 없는 겁니다. 인국공 사태 핑계 대고 사실 쏙 빠져나갔고, 정규직 전환 사실상 무산이라고 저는 판단합니다. 여당의 책임이 제일 큰데 지금 관심이 없습니다. 선거 국면이라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한국발전기술은 故 김용균 씨가 일했던 협력업체임


2. 2019년 8월 : 담대한 출발 "발전 5사가 직고용"

거슬러 가보자. 김용균 참사 여덟 달이 지나 김용균 특조위는 권고안을 발표했다. 권고안 1호는 '운전 및 정비 노동자 직접고용 정규직화' 였다. 크게 두 갈래였다. △ 운전 분야 하청 노동자는 발전회사가 직접 고용하고, △ 정비 분야는 한전KPS가 직접 고용 하라는 게 골자였다.

운전 분야란 <석탄 하역 - 저장 - 분쇄 - 운반> 등 석탄이 보일러에 들어가기 전까지 공정이다. 숨진 김용균 씨도 여기서 일했다. 여기서 일하던 하청 노동자를 별도의 자회사가 아니라 발전사가 직접 고용하라는 건 어떤 대안보다도 과감한 내용이었다. 대책의 출발은 이렇게 담대했다.

석탄 화력발전소는 흐름 공정이다. 석탄하역-운탄-보일러-터빈-회처리-탈황 일관생산방식이다. 일관된 흐름이지만 셋으로 쪼개 발전 분야만 발전 5사가 담당하고 있다. 나머지는 하청 업체에 맡기는 구조다.
3. 2020년 5월 : 작전상(?) 후퇴 "자회사 통해서 정규직화"

그러나 출발만 담대했다. 실무 작업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다. 발전 5사는 원청-하청 관계가 유지돼야 한다고 고집했다. 기존 하청 업체의 사측도 반발이 심했다. 운전 분야가 발전사 안으로 통합되면, 그간 해오던 일감이 통째로 사라지기 때문이다.

반발이 지속되자 정부와 여당도 부담을 느꼈다. 현실적 난관을 이유로 작전상(?) 후퇴를 결정한다. 한전에 자회사를 하나 두고, 그 자회사가 운전 분야 노동자 모두를 정규직으로 고용하기로 한다. 대상은 대략 2천여 명이었다. 자회사가 될 후보로 '한전산업개발'이 지목됐다.


4. 2021년 9월 : 핑퐁·머니게임 그리고 '희망고문'

한전산업개발은 이름만 들으면 이미 한전의 자회사 같지만, 그렇지 않다. 1990년대부터 쭉 1대 주주가 자유총연맹(31%)이다. 한전은 2대 주주(29%)이다. 정부가 확정한 정규직화 방침이 이행되려면 한전이 자유총연맹의 주식 보유분을 사들여서 자회사로 만들어야 한다.

한전산업개발은 코스피 상장사다. 연매출은 2천~3천억 원 수준이다. 한전이 자유총연맹의 지분 전체를 인수한다고 해도, 인수 가격은 넉넉 잡아도 천억 원을 넘기 어려웠다. 한전의 덩치를 고려하면 그다지 부담스러운 지분 인수는 아니었다.


그러나 지분 인수는 지금까지 단 한 발도 못떼고 있다. 속내를 취재해보면, 한전 측도 자유총연맹 측도 의지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기업 실사 일정도 안 잡고 있다. 당연히 인수 지분의 가격 협상은 시작도 못하고 있다. 양측은 '우리는 적극적인데, 저쪽이 의지가 없다'며 책임만 떠넘기고 있다.

양측이 핑퐁을 하는 사이, 한전산업개발 주가는 크게 올랐다. 예상하지 못한 움직임, 폭등이었다. 지난해 말부터 꿈틀대기 시작하더니, 올 들어 지난해보다 최고 8배까지 뛰었다. 발전주는 움직임이 매우 둔하다는 건 증권가의 상식이다. 지분 인수 논의에 자극받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하청 노동자의 정규직화를 위한 지분 인수는 단 한 걸음도 못 나갔는데, 난데없이 주가만 폭등한 셈. 자유총연맹과 한전은 양대 주주니까 손해볼 게 없다. 그러나 지분 인수는 더 꼬이는 모양새다. 적정 가격에 대한 자유총연맹 vs 한전 양측의 입장차가 더 커질 게 뻔하다.

반면, 정규직화 약속을 기다려온 노동자들은 정규직화가 지체될수록 '희망 고문'에 시달린다. 시간이 갈수록 정책 탄력이 떨어지는 걸 알면서도, 포기하기도 쉽지 않다. 청년 김용균의 목숨과 맞바꾼 정책이기 때문이다.


5. 748쪽 보고서, 이대로 가면 휴지조각

김용균 특조위가 내놓은 보고서는 무려 748쪽이다. 보고서 내용 가운데 이행된 사항도 없지는 않다. 중대재해처벌법 입법이 대표적인 성과다. 그러나 현장 노동자들이 피부로 느낄 '정규직화'는 제자리 걸음만 반복하고 있다. '노무비 착복'도 개선이 안되고 있다. (추후 보도 예정이다.)

현장의 당사자들이 변화를 몸으로 느끼지 못한다면, 748쪽 방대한 보고서가 다 무슨 소용일까. 휴지조각이라 불러도 지나치지 않을 수 있다. 이대로 두면 이슈가 될 때 숱한 대책을 내지만, 관심이 꺼지면 휴지조각으로 버리는 고질병이 이번에도 반복될 지 모른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