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바뀐 게 뭐야?” 파리 최고시속 30km 제한 한달 후

입력 2021.09.30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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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상젤리제 거리 관광객 시승용 슈퍼카 람보르기니파리 상젤리제 거리 관광객 시승용 슈퍼카 람보르기니

파리 샹젤리제 거리의 사잇길에서는 페라리나 람보르기니 같은 슈퍼카들이 주차돼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몇몇 거부들이 타는 차도 있겠지만 주로 관광객들에게 돈을 받고 시승시켜주는 차들이죠.

시속 300km를 달리는 슈퍼카들, 그런데 파리 거의 대부분의 도로는 최고시속이 30km, 이런 차들은 기어를 2단에 놓고도 시속 100km씩 달릴 수 있다는데 그럼 1단만 놓고 다녀야겠죠? 그럼 매연은 더 나오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직접 차량시승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에게 물어봤더니 "최고시속 30km는 아직 안 지켜도 된다. 그 전처럼 50km 정도로 달린다."는 약간은 무책임한 답변을 하더군요.

파리 샹젤리제 슈퍼카 시승 요금표파리 샹젤리제 슈퍼카 시승 요금표

■ 파리 시내 30km 속도 제한 이후...별로 달라진 게 없는 도로

그럼 파리 시민들은 차량 속도를 잘 준수하고 있을까요? 아직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차가 많지 않은 거리에서 30km로 달리면 뒤에서 경적을 울리는 차들 때문에 오히려 당황스럽습니다.

서울과 비교하면 파리 시내 도로는 워낙 좁고 울퉁불퉁해서 굳이 폭주족이 아니라면 빨리 달릴 만한 도로도 사실은 별로 없습니다. 막히는 도로는 원래도 거북이 주행이었고 뻥 뚤려봐야 잠깐 60km 전후 속도로 달릴 수 있는 수준이죠.

그래서 그런지 30km 제한 규정이 생긴 뒤에도 파리 시내의 차량 흐름은 그 전과 아무런 차이를 느낄 수 없습니다. 파리에선 교통사고가 나기 전까지는 교통단속을 하는 경찰을 거의 볼 수가 없습니다.

음주단속을 하는 경찰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죠. 오히려 회전교차로에서 차들이 뒤엉켜 있을 때, 경찰이 제발 좀 나와 줬으면 하고 바랄 때가 더 많은 게 현실입니다.

이처럼 단속하는 경찰도 없고, 무인 카메라 단속을 하는 구간도 시내에는 매우 드물어서 속도제한을 30km로 낮췄어도 아직 큰 변화는 없습니다. 워낙 자기 스타일 대로 사는 파리 시민들은 그냥 몸에 익숙한 속도로 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자전거와 전기 스쿠터, 전동킥보드 넘쳐나는 파리 시내 (사진:컨스트럭션21)자전거와 전기 스쿠터, 전동킥보드 넘쳐나는 파리 시내 (사진:컨스트럭션21)

■ 그럼 이런 규제는 왜 만들었지?

시민들의 정서도 30km 제한 규정은 이달고 파리 시장이 과거 내세웠던 공약을 지킨 것이고 대권 도전에 앞서 친환경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강행한 제도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프랑스인은 법은 있지만 잘 지키지는 않는다'는 우스갯소리처럼, 조심스럽지만 현 단계에선 파리의 차량 속도 제한 조치는 '법 따로 현실 따로'라는 평가가 나올만합니다.

하지만 이 규정이 품고 있는 가치는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시내에서 차를 가지고 다니는 게 '절대 편하지 않다!'라는 암시, 그러니까 '가급적 차를 가지고 다니지 마라!', 그리고 기후변화에 맞서 '환경을 생각하자!' 아마도 시속 30km 제한이 갖는 가치는 이런 게 아닐까 합니다.

■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치밀한 계획을 짤 때

하지만 그렇기 위해서는 좀 더 치밀한 계획, 그리고 국민과의 공감대가 필요해 보입니다. 도로의 속도는 낮췄지만 친환경차의 보급은 충분치 않고(심지어 일부 전기차들은 여전히 고속주행 능력을 과시하죠), 무인 자율 자동차 시대는 아직 멀어 보이고, 구시대의 탈 것과 새 시대의 탈 것(공유형 자전거와 전기 킥보드 같은)이 마구 섞여 돌아다니면서 사고 가능성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는 측면도 있으니까요.

파격처럼 보이는 이달고 시장의 정책은 성급했던 것처럼 보이지만 방향성이 틀렸다고 볼 수는 없을 거 같은데요. 한국에서도 차량 제한속도는 점차 낮아지고 있지만 자동차 산업은 아직도 속도 경쟁을 하고, 여기저기 도로는 새로 뚫리고 확장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죠.

새로운 교통혁명을 위해 하루 빨리 제반 규정을 정리하고 사회적 공감대를 이끌어 내야 하는 숙제가 파리와 서울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도시에 부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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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바뀐 게 뭐야?” 파리 최고시속 30km 제한 한달 후
    • 입력 2021-09-30 10:13:03
    특파원 리포트
파리 상젤리제 거리 관광객 시승용 슈퍼카 람보르기니
파리 샹젤리제 거리의 사잇길에서는 페라리나 람보르기니 같은 슈퍼카들이 주차돼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몇몇 거부들이 타는 차도 있겠지만 주로 관광객들에게 돈을 받고 시승시켜주는 차들이죠.

시속 300km를 달리는 슈퍼카들, 그런데 파리 거의 대부분의 도로는 최고시속이 30km, 이런 차들은 기어를 2단에 놓고도 시속 100km씩 달릴 수 있다는데 그럼 1단만 놓고 다녀야겠죠? 그럼 매연은 더 나오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직접 차량시승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에게 물어봤더니 "최고시속 30km는 아직 안 지켜도 된다. 그 전처럼 50km 정도로 달린다."는 약간은 무책임한 답변을 하더군요.

파리 샹젤리제 슈퍼카 시승 요금표
■ 파리 시내 30km 속도 제한 이후...별로 달라진 게 없는 도로

그럼 파리 시민들은 차량 속도를 잘 준수하고 있을까요? 아직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차가 많지 않은 거리에서 30km로 달리면 뒤에서 경적을 울리는 차들 때문에 오히려 당황스럽습니다.

서울과 비교하면 파리 시내 도로는 워낙 좁고 울퉁불퉁해서 굳이 폭주족이 아니라면 빨리 달릴 만한 도로도 사실은 별로 없습니다. 막히는 도로는 원래도 거북이 주행이었고 뻥 뚤려봐야 잠깐 60km 전후 속도로 달릴 수 있는 수준이죠.

그래서 그런지 30km 제한 규정이 생긴 뒤에도 파리 시내의 차량 흐름은 그 전과 아무런 차이를 느낄 수 없습니다. 파리에선 교통사고가 나기 전까지는 교통단속을 하는 경찰을 거의 볼 수가 없습니다.

음주단속을 하는 경찰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죠. 오히려 회전교차로에서 차들이 뒤엉켜 있을 때, 경찰이 제발 좀 나와 줬으면 하고 바랄 때가 더 많은 게 현실입니다.

이처럼 단속하는 경찰도 없고, 무인 카메라 단속을 하는 구간도 시내에는 매우 드물어서 속도제한을 30km로 낮췄어도 아직 큰 변화는 없습니다. 워낙 자기 스타일 대로 사는 파리 시민들은 그냥 몸에 익숙한 속도로 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자전거와 전기 스쿠터, 전동킥보드 넘쳐나는 파리 시내 (사진:컨스트럭션21)
■ 그럼 이런 규제는 왜 만들었지?

시민들의 정서도 30km 제한 규정은 이달고 파리 시장이 과거 내세웠던 공약을 지킨 것이고 대권 도전에 앞서 친환경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강행한 제도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프랑스인은 법은 있지만 잘 지키지는 않는다'는 우스갯소리처럼, 조심스럽지만 현 단계에선 파리의 차량 속도 제한 조치는 '법 따로 현실 따로'라는 평가가 나올만합니다.

하지만 이 규정이 품고 있는 가치는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시내에서 차를 가지고 다니는 게 '절대 편하지 않다!'라는 암시, 그러니까 '가급적 차를 가지고 다니지 마라!', 그리고 기후변화에 맞서 '환경을 생각하자!' 아마도 시속 30km 제한이 갖는 가치는 이런 게 아닐까 합니다.

■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치밀한 계획을 짤 때

하지만 그렇기 위해서는 좀 더 치밀한 계획, 그리고 국민과의 공감대가 필요해 보입니다. 도로의 속도는 낮췄지만 친환경차의 보급은 충분치 않고(심지어 일부 전기차들은 여전히 고속주행 능력을 과시하죠), 무인 자율 자동차 시대는 아직 멀어 보이고, 구시대의 탈 것과 새 시대의 탈 것(공유형 자전거와 전기 킥보드 같은)이 마구 섞여 돌아다니면서 사고 가능성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는 측면도 있으니까요.

파격처럼 보이는 이달고 시장의 정책은 성급했던 것처럼 보이지만 방향성이 틀렸다고 볼 수는 없을 거 같은데요. 한국에서도 차량 제한속도는 점차 낮아지고 있지만 자동차 산업은 아직도 속도 경쟁을 하고, 여기저기 도로는 새로 뚫리고 확장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죠.

새로운 교통혁명을 위해 하루 빨리 제반 규정을 정리하고 사회적 공감대를 이끌어 내야 하는 숙제가 파리와 서울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도시에 부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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