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베를린 지방선거 무효표가 13,000여 표…“표심 왜곡, 재투표해야”

입력 2021.10.01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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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6일 치러진 총선거 및 베를린 지방선거 당시 투표소에 길게 줄을 선 베를린 시민들.9월 26일 치러진 총선거 및 베를린 지방선거 당시 투표소에 길게 줄을 선 베를린 시민들.

독일 베를린이 선거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지방선거 투표 무효표가 무려 1만 3천여 표가 나왔는데, 문제는 유권자의 실수로 나온 게 아니라 베를린 선거관리위원회의 어처구니없는 선거 관리 때문에 발생했다는 점입니다. 베를린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표심이 왜곡됐다며 재투표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 다른 지역 의원 뽑는 투표 용지가...

베를린에서는 지난달 26일 총선과 함께 지방선거가 치러졌습니다. 베를린 시의원 선거와 12개 구 지방의회 의원을 뽑는 선거인데, 우리나라로 치면 광역의회 선거와 기초의회 선거입니다.

베를린 시의원 선거는 지역구 의원과 정당 투표가 각각 1회씩 이뤄지고, 12개 구 지방의회 의원 선거는 정당 투표 1회만 이뤄집니다. 구 의회 의원은 정당투표만 실시해 득표율에 따라 각 당에 의석을 배분합니다. 그런데 구의원을 뽑는 투표에서 현재까지 무효표 13,120장이 나온 겁니다.

베를린 구의회 의원 선출을 위한 투표용지. 투표용지 위에 지역이 표시돼 있는데도 잘못 배송돼 무효표 사태가 일어났다.베를린 구의회 의원 선출을 위한 투표용지. 투표용지 위에 지역이 표시돼 있는데도 잘못 배송돼 무효표 사태가 일어났다.

베를린시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무효표 대부분은 잘못된 투표 용지 때문인데, 각 구의 투표소에 다른 구의 투표용지가 배달됐다는 겁니다. 쉽게 말하면 서울 종로구 지방 의원을 뽑는 선거에 강남구 투표 용지가 공급됐다는 얘기입니다.

위 사진이 구의회 투표 용지입니다. 투표용지 상단 우측에 선거구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그 아래 해당 지역에 후보를 낸 각 정당과 후보자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도 투표 용지가 엉뚱한 곳에 배달되는 일어나기 힘든 실수가 일어난 겁니다. 이 같은 실수는 선거 전 실시된 우편 투표에서 먼저 일어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베를린 마라톤 때문에"…마감 시간 한참 지나서도 투표 강행

이뿐만 아닙니다. 베를린의 거의 모든 투표소에서 투표 마감 시간인 오후 6시가 넘어서 투표가 진행된 것도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일부 투표소에서는 오후 9시가 넘어서까지 투표가 진행됐습니다.

문제는 투표 공신 마감 시간인 오후 6시에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됐다는 겁니다. 당시 독일 공영방송 ARD는 사민당과 기민·기사 연합 두 당의 득표율이 25%로 같다는 출구조사 결과를 내놨고, 다른 공영방송 ZDF는 사민당 26%, 기민·기사 연합 24%로 박빙의 승부라는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결국, 오후 6시 이후에 투표자는 출구조사 결과를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고, 투표에도 이 결과가 반영됐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독일 전체 선거에 영향은 크지 않을 수도 있지만, 베를린시에는 영향이 있을 수 있습니다.

9월 26일 독일 총선일에 열린 베를린 마라톤.9월 26일 독일 총선일에 열린 베를린 마라톤.

그런데 이런 일이 일어난 원인도 다소 황당합니다. 바로 투표 당일 열린 베를린 마라톤 때문이라는데, 오후까지 진행된 마라톤 때문에 베를린 시내 곳곳의 교통이 통제됐고, 투표용지가 제때 투표소에 배달되지 못했다는 겁니다.

투표소를 방문했던 시민들은 투표 용지가 부족하니 나중에 오라는 황당한 설명을 들었다고 합니다. 투표 마감 시간이 지나서도 투표를 강행한 이유가 되기도 했습니다.

코로나19 때문에 2년 만에 열린 전 세계 마라톤인들의 축제가 선거에 논란을 제공한 셈입니다.

■재투표 요구 거세…"불법이자 위헌"

이 사태로 페트라 미하엘리스 베를린 선거관리위원장이 사퇴했습니다.

하지만 선관위원장의 사퇴만으로 끝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 황당한 투표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재투표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관위의 있을 수 없는 실수로 표심이 왜곡됐고, 결과도 실제 민심과는 달라졌다는 겁니다. 실제로 한 선거구에서는 불과 30표 차이로 당락이 갈린 곳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훔볼트대학 법대 크리스티안 발트호프 교수는 이번 사태를 두고 "전례가 없고 설명할 수도 없는 일"이라며 "(선관위의 실수는) '선택의 자유'라는 원칙을 훼손했다"고 밝혔습니다.

베를린 유력지인 '베를리너 차이퉁'은 이번 사태를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이번 사건은 불법이자 위헌이다. 세계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부유하며, 가장 선진국 중 하나인 나라의 수도가 붕괴한 것으로 당혹스러울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의 심각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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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베를린 지방선거 무효표가 13,000여 표…“표심 왜곡, 재투표해야”
    • 입력 2021-10-01 10:34:10
    특파원 리포트
9월 26일 치러진 총선거 및 베를린 지방선거 당시 투표소에 길게 줄을 선 베를린 시민들.
독일 베를린이 선거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지방선거 투표 무효표가 무려 1만 3천여 표가 나왔는데, 문제는 유권자의 실수로 나온 게 아니라 베를린 선거관리위원회의 어처구니없는 선거 관리 때문에 발생했다는 점입니다. 베를린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표심이 왜곡됐다며 재투표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 다른 지역 의원 뽑는 투표 용지가...

베를린에서는 지난달 26일 총선과 함께 지방선거가 치러졌습니다. 베를린 시의원 선거와 12개 구 지방의회 의원을 뽑는 선거인데, 우리나라로 치면 광역의회 선거와 기초의회 선거입니다.

베를린 시의원 선거는 지역구 의원과 정당 투표가 각각 1회씩 이뤄지고, 12개 구 지방의회 의원 선거는 정당 투표 1회만 이뤄집니다. 구 의회 의원은 정당투표만 실시해 득표율에 따라 각 당에 의석을 배분합니다. 그런데 구의원을 뽑는 투표에서 현재까지 무효표 13,120장이 나온 겁니다.

베를린 구의회 의원 선출을 위한 투표용지. 투표용지 위에 지역이 표시돼 있는데도 잘못 배송돼 무효표 사태가 일어났다.
베를린시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무효표 대부분은 잘못된 투표 용지 때문인데, 각 구의 투표소에 다른 구의 투표용지가 배달됐다는 겁니다. 쉽게 말하면 서울 종로구 지방 의원을 뽑는 선거에 강남구 투표 용지가 공급됐다는 얘기입니다.

위 사진이 구의회 투표 용지입니다. 투표용지 상단 우측에 선거구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그 아래 해당 지역에 후보를 낸 각 정당과 후보자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도 투표 용지가 엉뚱한 곳에 배달되는 일어나기 힘든 실수가 일어난 겁니다. 이 같은 실수는 선거 전 실시된 우편 투표에서 먼저 일어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베를린 마라톤 때문에"…마감 시간 한참 지나서도 투표 강행

이뿐만 아닙니다. 베를린의 거의 모든 투표소에서 투표 마감 시간인 오후 6시가 넘어서 투표가 진행된 것도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일부 투표소에서는 오후 9시가 넘어서까지 투표가 진행됐습니다.

문제는 투표 공신 마감 시간인 오후 6시에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됐다는 겁니다. 당시 독일 공영방송 ARD는 사민당과 기민·기사 연합 두 당의 득표율이 25%로 같다는 출구조사 결과를 내놨고, 다른 공영방송 ZDF는 사민당 26%, 기민·기사 연합 24%로 박빙의 승부라는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결국, 오후 6시 이후에 투표자는 출구조사 결과를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고, 투표에도 이 결과가 반영됐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독일 전체 선거에 영향은 크지 않을 수도 있지만, 베를린시에는 영향이 있을 수 있습니다.

9월 26일 독일 총선일에 열린 베를린 마라톤.
그런데 이런 일이 일어난 원인도 다소 황당합니다. 바로 투표 당일 열린 베를린 마라톤 때문이라는데, 오후까지 진행된 마라톤 때문에 베를린 시내 곳곳의 교통이 통제됐고, 투표용지가 제때 투표소에 배달되지 못했다는 겁니다.

투표소를 방문했던 시민들은 투표 용지가 부족하니 나중에 오라는 황당한 설명을 들었다고 합니다. 투표 마감 시간이 지나서도 투표를 강행한 이유가 되기도 했습니다.

코로나19 때문에 2년 만에 열린 전 세계 마라톤인들의 축제가 선거에 논란을 제공한 셈입니다.

■재투표 요구 거세…"불법이자 위헌"

이 사태로 페트라 미하엘리스 베를린 선거관리위원장이 사퇴했습니다.

하지만 선관위원장의 사퇴만으로 끝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 황당한 투표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재투표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관위의 있을 수 없는 실수로 표심이 왜곡됐고, 결과도 실제 민심과는 달라졌다는 겁니다. 실제로 한 선거구에서는 불과 30표 차이로 당락이 갈린 곳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훔볼트대학 법대 크리스티안 발트호프 교수는 이번 사태를 두고 "전례가 없고 설명할 수도 없는 일"이라며 "(선관위의 실수는) '선택의 자유'라는 원칙을 훼손했다"고 밝혔습니다.

베를린 유력지인 '베를리너 차이퉁'은 이번 사태를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이번 사건은 불법이자 위헌이다. 세계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부유하며, 가장 선진국 중 하나인 나라의 수도가 붕괴한 것으로 당혹스러울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의 심각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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