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적자 보전’ 반대한 정부, 경로우대 개편은 ‘백지화’

입력 2021.10.02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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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19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회의. 65세 이상 노인 등의 무임승차로 생긴 지하철 적자를 정부 재정으로 보전해주는 내용을 담은 도시철도법 개정안이 논의됐다. 정부가 전국 각 지방자치단체의 지하철 공사에 1년에 8,200억 원 정도씩 지원을 해주는 내용이었다.

이 자리에서 당시 안일환 기획재정부 2차관은 7분여 동안 기재부의 입장을 설명했다. 핵심은 "적자를 보전해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기재부, '무임승차 보전' 적극 반대

안 차관은 "정부는 도시철도 건설 또 운영과 관련해서 건설은 정부가 지원하되 운영은 지자체 책임으로 한다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노인복지법 등에서는 어르신 무임승차 등을 제공할 수 있는 주체로 국가 또는 지자체를 규정하고 있다"며 "정부가 국가 시설인 일반 철도의 무임승차 비용을 부담하고 있듯이 지자체는 지자체별로 해당 시설물과 관련된 무임승차 비용 등 운영 경비를 부담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안 차관은 아울러 "무임 수송 등 도시철도 운영에 따른 손실은 지자체장이 운임 수준 등을 조정해서 대응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또, "상대적으로 재정 상황이 나은 서울 지역 중심으로 무임승차 등 운영 경비까지 지원하게 되면 상대적으로 지방으로 돌아가야 하는 SOC 투자 규모는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며 "수도권 집중 완화, 지역균형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울 지하철 적자, 지난해부터 1조 원 넘어

기재부의 이런 적극적인 반대에 법안은 국토위 문턱을 넘지 못했는데, 올해 들어 다시 문제가 불거졌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승객이 줄면서 서울교통공사가 지난해에는 1조 1,137억 원 적자를 냈고, 올해는 1조 7,000억 원의 적자가 예상됐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영향이 없었던 때에도 공사는 매년 5,000억 원 안팎의 적자를 냈다. 고령화로 무임승차 인원이 점점 늘어난 영향이다.

적자를 감당하기 어렵게 된 공사는 구조조정 뜻을 내비쳤고, 노조는 파업하겠다고 맞섰지만, 국회 등의 중재로 파업은 막았다.

하지만 적자까지 없어진 건 아니라 해결책이 필요한데, 가장 확실한 방법은 기재부가 주장하는 대로 요금을 올리는 것이다.

그런데 기재부는 최근 물가 불안 심리를 막겠다며, 올해 말까지 공공요금을 동결하는 걸 원칙으로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자체에 조정 권한이 있는 지방 공공요금도 행정안전부를 통해 최대한 동결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지하철 적자는 보전해줄 수 없으니 요금을 올려서 해결해야 한다면서, 정작 요금 인상은 막겠다고 하는 모순된 태도를 보인 셈이다.


■'경로우대 개편' 논의는 슬그머니 백지화

기재부는 요금 인상 방안과는 별도로 '경로우대 개편' 필요성도 국회에 설명했었다.

"근본적인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면서 "고령화 심화, 수명 연장, 과거에 비해 길어진 현직 연령, 늘어나는 도시철도 운영 적자 문제 등을 고려할 때 지금의 무임승차 연령을 유지할 필요가 있는지 20년 넘게 유지해 온 100% 감면이 적정한지 소득과 형편을 따지지 않고 모든 분에게 동일한 혜택을 드리는 것이 맞는지 여기에 대한 논의를 먼저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한 것이다.

기재부는 이러한 경로우대 개편을 별도 TF를 만들어 논의하겠다고 지난해 8월 밝혔다. 그러나 1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TF는 만들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기재부 담당자에게 TF를 만들었는지 물어봤더니 "'인구 TF' 2기 때 그런 얘기가 나오긴 했는데, 이번 '3기 TF'에서는 일단 다루지 않았다"며 "보건복지부의 과제라 복지부에서 자체적으로 내부 검토를 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복지부 담당자에게 내부 검토를 하고 있는지 물었다. 담당자는 "경로우대 개편은 진전되지 않고 있고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이 담당자는 "경로우대를 줄이는 것은 사회적 합의가 충분하게 더 돼야 할 부분"이라며 "지하철 무임승차 적자 문제는 기재부나 국토교통부 차원에서 논의가 이뤄지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쪽 얘기를 정리해보면, 기재부는 지하철 적자 문제를 경로우대 개편이라는 큰 틀에서 봐야 한다며 복지부에 미루고 있고, 복지부는 큰 틀의 논의는 사회적 합의가 덜 됐다며, 지하철 적자만 떼서 보전을 어떻게 해줄지 기재부와 국토부가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마디로 양쪽 모두 서로 떠넘기고 있을 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무임승차에 따른 지하철 적자 문제는 앞으로 더 심해질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1980년 노인의 지하철 무임승차가 도입될 당시 65세 이상 인구는 전체의 3.9%였다.

그러나 올해는 16.5%이고, 2025년에는 20.3%, 2060년에는 43.9%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와 적자 전부를 지원하든, 아니면 지자체와 나눠서 내든, 그것도 아니면 지하철 요금을 올리든 빨리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무임승차로 생긴 지하철 적자는 세금으로 보전해주기 보다는 사용자들이 요금으로 부담하는 게 적절하다"면서 "보전을 해준다면 정부가 다하지말고 지자체와 나눠서 해야한다"고 말했다.

이어 "수십 년 전에 도입된 경로우대 제도도 손 볼 필요가 있다"며 "전체를 다 손보는 게 아니라 적자가 나는 곳 위주로 경로우대 적용 연령을 65세 이상에서 예를 들어 70세 이상으로 높이는 등 바꿀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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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하철 적자 보전’ 반대한 정부, 경로우대 개편은 ‘백지화’
    • 입력 2021-10-02 07:01:01
    취재K

지난해 11월 19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회의. 65세 이상 노인 등의 무임승차로 생긴 지하철 적자를 정부 재정으로 보전해주는 내용을 담은 도시철도법 개정안이 논의됐다. 정부가 전국 각 지방자치단체의 지하철 공사에 1년에 8,200억 원 정도씩 지원을 해주는 내용이었다.

이 자리에서 당시 안일환 기획재정부 2차관은 7분여 동안 기재부의 입장을 설명했다. 핵심은 "적자를 보전해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기재부, '무임승차 보전' 적극 반대

안 차관은 "정부는 도시철도 건설 또 운영과 관련해서 건설은 정부가 지원하되 운영은 지자체 책임으로 한다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노인복지법 등에서는 어르신 무임승차 등을 제공할 수 있는 주체로 국가 또는 지자체를 규정하고 있다"며 "정부가 국가 시설인 일반 철도의 무임승차 비용을 부담하고 있듯이 지자체는 지자체별로 해당 시설물과 관련된 무임승차 비용 등 운영 경비를 부담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안 차관은 아울러 "무임 수송 등 도시철도 운영에 따른 손실은 지자체장이 운임 수준 등을 조정해서 대응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또, "상대적으로 재정 상황이 나은 서울 지역 중심으로 무임승차 등 운영 경비까지 지원하게 되면 상대적으로 지방으로 돌아가야 하는 SOC 투자 규모는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며 "수도권 집중 완화, 지역균형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울 지하철 적자, 지난해부터 1조 원 넘어

기재부의 이런 적극적인 반대에 법안은 국토위 문턱을 넘지 못했는데, 올해 들어 다시 문제가 불거졌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승객이 줄면서 서울교통공사가 지난해에는 1조 1,137억 원 적자를 냈고, 올해는 1조 7,000억 원의 적자가 예상됐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영향이 없었던 때에도 공사는 매년 5,000억 원 안팎의 적자를 냈다. 고령화로 무임승차 인원이 점점 늘어난 영향이다.

적자를 감당하기 어렵게 된 공사는 구조조정 뜻을 내비쳤고, 노조는 파업하겠다고 맞섰지만, 국회 등의 중재로 파업은 막았다.

하지만 적자까지 없어진 건 아니라 해결책이 필요한데, 가장 확실한 방법은 기재부가 주장하는 대로 요금을 올리는 것이다.

그런데 기재부는 최근 물가 불안 심리를 막겠다며, 올해 말까지 공공요금을 동결하는 걸 원칙으로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자체에 조정 권한이 있는 지방 공공요금도 행정안전부를 통해 최대한 동결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지하철 적자는 보전해줄 수 없으니 요금을 올려서 해결해야 한다면서, 정작 요금 인상은 막겠다고 하는 모순된 태도를 보인 셈이다.


■'경로우대 개편' 논의는 슬그머니 백지화

기재부는 요금 인상 방안과는 별도로 '경로우대 개편' 필요성도 국회에 설명했었다.

"근본적인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면서 "고령화 심화, 수명 연장, 과거에 비해 길어진 현직 연령, 늘어나는 도시철도 운영 적자 문제 등을 고려할 때 지금의 무임승차 연령을 유지할 필요가 있는지 20년 넘게 유지해 온 100% 감면이 적정한지 소득과 형편을 따지지 않고 모든 분에게 동일한 혜택을 드리는 것이 맞는지 여기에 대한 논의를 먼저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한 것이다.

기재부는 이러한 경로우대 개편을 별도 TF를 만들어 논의하겠다고 지난해 8월 밝혔다. 그러나 1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TF는 만들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기재부 담당자에게 TF를 만들었는지 물어봤더니 "'인구 TF' 2기 때 그런 얘기가 나오긴 했는데, 이번 '3기 TF'에서는 일단 다루지 않았다"며 "보건복지부의 과제라 복지부에서 자체적으로 내부 검토를 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복지부 담당자에게 내부 검토를 하고 있는지 물었다. 담당자는 "경로우대 개편은 진전되지 않고 있고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이 담당자는 "경로우대를 줄이는 것은 사회적 합의가 충분하게 더 돼야 할 부분"이라며 "지하철 무임승차 적자 문제는 기재부나 국토교통부 차원에서 논의가 이뤄지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쪽 얘기를 정리해보면, 기재부는 지하철 적자 문제를 경로우대 개편이라는 큰 틀에서 봐야 한다며 복지부에 미루고 있고, 복지부는 큰 틀의 논의는 사회적 합의가 덜 됐다며, 지하철 적자만 떼서 보전을 어떻게 해줄지 기재부와 국토부가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마디로 양쪽 모두 서로 떠넘기고 있을 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무임승차에 따른 지하철 적자 문제는 앞으로 더 심해질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1980년 노인의 지하철 무임승차가 도입될 당시 65세 이상 인구는 전체의 3.9%였다.

그러나 올해는 16.5%이고, 2025년에는 20.3%, 2060년에는 43.9%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와 적자 전부를 지원하든, 아니면 지자체와 나눠서 내든, 그것도 아니면 지하철 요금을 올리든 빨리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무임승차로 생긴 지하철 적자는 세금으로 보전해주기 보다는 사용자들이 요금으로 부담하는 게 적절하다"면서 "보전을 해준다면 정부가 다하지말고 지자체와 나눠서 해야한다"고 말했다.

이어 "수십 년 전에 도입된 경로우대 제도도 손 볼 필요가 있다"며 "전체를 다 손보는 게 아니라 적자가 나는 곳 위주로 경로우대 적용 연령을 65세 이상에서 예를 들어 70세 이상으로 높이는 등 바꿀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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