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아베 보은’에 묻힌 기시다 내각의 ‘찬밥 인사’

입력 2021.10.05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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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100대 총리, 기시다 후미오의 내각이 출범했습니다. 각료 20명 중 첫 입각자가 13명, 여성은 3명입니다. 개혁의 모양새를 갖추려고 했지만 아베 전 총리의 색깔을 지우지는 못했습니다.

얼굴만 기시다, 본질은 아베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

내각의 2인자인 관방장관은 마쓰노 히로카즈 전 문부과학상입니다. 마쓰노 장관은 지난 2012년 미국 신문에 실린 '위안부는 성노예가 아니다'라는 내용의 의견 광고에 아베 전 총리와 함께 이름을 올렸던 인물입니다.

또 아베가 지난 6월 한 월간지에 유력한 자민당 총재 후보 중 한 사람으로 거론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아베가 이끄는 호소다파의 사무총장입니다.

극우 인사 사쿠라이 요시코가 주도해 미국 지역신문에 실린 의견광고. ‘위안부는 성노예가 아니다’라는 주장이 담겼다.극우 인사 사쿠라이 요시코가 주도해 미국 지역신문에 실린 의견광고. ‘위안부는 성노예가 아니다’라는 주장이 담겼다.

아베의 친동생인 기시 방위상, 모테기 외무상은 유임돼 아베 색깔의 외교안보 라인이 이번에도 유지됩니다. 아베의 최측근으로 교과서 왜곡을 주도해 온 하기우다 전 문부과학상은 경제산업상으로 수평 이동했습니다.

최장수 재무상이었던 아소 다로가 자민당 부총재가 되면서 아소의 처남인 스즈키 슌이치가 재무상 자리를 이어받았습니다.

일본 ‘100대 총리’ 기시다 후미오 신임 내각 출범 기념촬영일본 ‘100대 총리’ 기시다 후미오 신임 내각 출범 기념촬영

이에 앞서 기시다는 아베의 정치적 맹우인 아소 다로에게 자민당 부총재를, 한국에 대한 경제 보복을 설계한 아마리 아키라에게는 자민당 간사장을 맡겼습니다.

'3A'로 불리는 아베(Abe)-아소(Aso)-아마리(Amari)가 사실상 자민당과 내각을 차지하면서 '손타쿠(忖度 상대방의 마음을 미루어 헤아림) 내각', '아베 부스터 내각'이라는 말까지 나옵니다.

자민당 총재 선거를 앞두고 당시 기시다 후보와 아마리 선거대책본부 고문이 함께 찍은 사진. 트위터 캡처자민당 총재 선거를 앞두고 당시 기시다 후보와 아마리 선거대책본부 고문이 함께 찍은 사진. 트위터 캡처

기시다는 총재 선출 후 공언했 듯, 자신과 경쟁했던 다른 후보들도 기용했습니다. 아베의 열정적인 지지를 받은 다카이치 사나에를 자민당 정무조사회장에, 노다 세이코를 저출산과 지방육성 대책 등을 담당하는 각료로 임명했습니다.

'보은 인사'만 있었던 건 아닙니다. 기시다 내각에서는 이른바 '찬밥 인사'도 눈에 띕니다.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투표하는 고노 다로 자민당 홍보본부장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투표하는 고노 다로 자민당 홍보본부장

기시다와 맞붙었던 고노 다로 전 행정개혁담당상에게는 자민당 '홍보본부장'이라는 역할이 맡겨졌습니다. 트위터에서만 240만 명 이상의 팔로워를 보유한 고노의 '뛰어난 발신력'을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만, 총재 선거 출마와 방위상, 외무상 등을 지낸 고노의 경력을 봤을 때 '격하 인사'라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고노는 찬밥 좀 먹어야 한다'는 게 아소의 말이었다고 합니다.

고노와 연대해 주목받았던 또 하나의 인물이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상입니다. 고이즈미와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 고노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을 딴 '고이시카와 연합(小石河連合)'이라는 말까지 생겨났고, 대중들로부터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이들 세 명의 연대에 '드림팀'이라며 기대도 컸습니다.

하지만 고노의 패배와 함께 고이즈미의 이름도 기시다 내각에서는 찾아볼 수 없게 됐습니다.

왼쪽부터 이시바 시게루, 고노 다로, 고이즈미 신지로왼쪽부터 이시바 시게루, 고노 다로, 고이즈미 신지로

정치적 입지가 가장 크게 흔들린 건 아베의 오랜 숙적 이시바입니다. 이시바는 총리에 가장 적합한 인물을 묻는 여론조사에서 항상 1,2위를 차지하면서도 당내 입지는 아베, 아소에 비해 크게 부족해 번번이 패배했습니다.

이번에도 "개혁에 대한 뜻이 일치한다"며 고노에게 후보 자리를 양보했습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당원 득표율조차도 최저 목표치를 밑돌았습니다. 선거 전후로 그가 이끌고 있는 이시바파에서는 탈퇴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시바는 선거 후 기자회견에서 파벌 해산이나 다른 파벌로의 합류 가능성에 대해 부정했습니다.

총재 재도전에 대해서도 또 한 번 여지를 남겼습니다만, 패배의 역사가 거듭되는 만큼 이시바를 총리로 만들기 위한 이시바파의 역할도 이제는 끝났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기시다 총리는 그런 분위기를 확인이라도 시켜주 듯 이시바파에서는 단 한 명도 기용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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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아베 보은’에 묻힌 기시다 내각의 ‘찬밥 인사’
    • 입력 2021-10-05 15:58:03
    특파원 리포트

일본 100대 총리, 기시다 후미오의 내각이 출범했습니다. 각료 20명 중 첫 입각자가 13명, 여성은 3명입니다. 개혁의 모양새를 갖추려고 했지만 아베 전 총리의 색깔을 지우지는 못했습니다.

얼굴만 기시다, 본질은 아베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
내각의 2인자인 관방장관은 마쓰노 히로카즈 전 문부과학상입니다. 마쓰노 장관은 지난 2012년 미국 신문에 실린 '위안부는 성노예가 아니다'라는 내용의 의견 광고에 아베 전 총리와 함께 이름을 올렸던 인물입니다.

또 아베가 지난 6월 한 월간지에 유력한 자민당 총재 후보 중 한 사람으로 거론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아베가 이끄는 호소다파의 사무총장입니다.

극우 인사 사쿠라이 요시코가 주도해 미국 지역신문에 실린 의견광고. ‘위안부는 성노예가 아니다’라는 주장이 담겼다.
아베의 친동생인 기시 방위상, 모테기 외무상은 유임돼 아베 색깔의 외교안보 라인이 이번에도 유지됩니다. 아베의 최측근으로 교과서 왜곡을 주도해 온 하기우다 전 문부과학상은 경제산업상으로 수평 이동했습니다.

최장수 재무상이었던 아소 다로가 자민당 부총재가 되면서 아소의 처남인 스즈키 슌이치가 재무상 자리를 이어받았습니다.

일본 ‘100대 총리’ 기시다 후미오 신임 내각 출범 기념촬영
이에 앞서 기시다는 아베의 정치적 맹우인 아소 다로에게 자민당 부총재를, 한국에 대한 경제 보복을 설계한 아마리 아키라에게는 자민당 간사장을 맡겼습니다.

'3A'로 불리는 아베(Abe)-아소(Aso)-아마리(Amari)가 사실상 자민당과 내각을 차지하면서 '손타쿠(忖度 상대방의 마음을 미루어 헤아림) 내각', '아베 부스터 내각'이라는 말까지 나옵니다.

자민당 총재 선거를 앞두고 당시 기시다 후보와 아마리 선거대책본부 고문이 함께 찍은 사진. 트위터 캡처
기시다는 총재 선출 후 공언했 듯, 자신과 경쟁했던 다른 후보들도 기용했습니다. 아베의 열정적인 지지를 받은 다카이치 사나에를 자민당 정무조사회장에, 노다 세이코를 저출산과 지방육성 대책 등을 담당하는 각료로 임명했습니다.

'보은 인사'만 있었던 건 아닙니다. 기시다 내각에서는 이른바 '찬밥 인사'도 눈에 띕니다.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투표하는 고노 다로 자민당 홍보본부장
기시다와 맞붙었던 고노 다로 전 행정개혁담당상에게는 자민당 '홍보본부장'이라는 역할이 맡겨졌습니다. 트위터에서만 240만 명 이상의 팔로워를 보유한 고노의 '뛰어난 발신력'을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만, 총재 선거 출마와 방위상, 외무상 등을 지낸 고노의 경력을 봤을 때 '격하 인사'라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고노는 찬밥 좀 먹어야 한다'는 게 아소의 말이었다고 합니다.

고노와 연대해 주목받았던 또 하나의 인물이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상입니다. 고이즈미와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 고노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을 딴 '고이시카와 연합(小石河連合)'이라는 말까지 생겨났고, 대중들로부터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이들 세 명의 연대에 '드림팀'이라며 기대도 컸습니다.

하지만 고노의 패배와 함께 고이즈미의 이름도 기시다 내각에서는 찾아볼 수 없게 됐습니다.

왼쪽부터 이시바 시게루, 고노 다로, 고이즈미 신지로
정치적 입지가 가장 크게 흔들린 건 아베의 오랜 숙적 이시바입니다. 이시바는 총리에 가장 적합한 인물을 묻는 여론조사에서 항상 1,2위를 차지하면서도 당내 입지는 아베, 아소에 비해 크게 부족해 번번이 패배했습니다.

이번에도 "개혁에 대한 뜻이 일치한다"며 고노에게 후보 자리를 양보했습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당원 득표율조차도 최저 목표치를 밑돌았습니다. 선거 전후로 그가 이끌고 있는 이시바파에서는 탈퇴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시바는 선거 후 기자회견에서 파벌 해산이나 다른 파벌로의 합류 가능성에 대해 부정했습니다.

총재 재도전에 대해서도 또 한 번 여지를 남겼습니다만, 패배의 역사가 거듭되는 만큼 이시바를 총리로 만들기 위한 이시바파의 역할도 이제는 끝났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기시다 총리는 그런 분위기를 확인이라도 시켜주 듯 이시바파에서는 단 한 명도 기용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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