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윤상현 캠프, 총선 때 매크로 작업 의혹

입력 2021.10.0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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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는 지난해 7월 [뉴스 9]에서 이른바 '윤상현-함바왕 선거공작 의혹'을 연속 보도한 바 있다.

지난해 21대 총선 당시 윤상현 의원 측이 이른바 '함바왕'이라는 별칭이 있는 건설현장 식당업자 유상봉 씨 부자(父子)와 공모해 경쟁 후보를 비방하는 내용의 고소장 등을 쓰도록 하고, 이를 지역 언론을 통해 유포했다는 의혹이었다.

KBS 보도 이후 인천지검이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갔고, 결국 윤상현 의원과 보좌관 조 모 씨, 유상봉 씨 부자, 지역 언론인 등 모두 11명이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돼 현재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그런데 KBS 취재진은 최근 새로운 제보 내용을 추가로 입수해 다각도의 취재를 이어왔다.

선거운동 당시 윤상현 캠프에서 이른바 '매크로'를 동원한 불법적 홍보 활동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취재 결과를 토대로 하나하나 그 근거를 살펴본다.(※윤상현 의원은 지난해 총선 때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으로 인천 동구미추홀을에 출마했고, 전국에서 가장 적은 표차인 171표 차이로 당선돼 4선에 올랐다. 윤 의원은 2021년 8월 국민의힘으로 복당했다.)

■ "내가 매크로 작업했다"…녹취 파일 공개

취재진이 만난 제보자는 홍보대행업체 대표 이 모 씨다.

이 씨는 홍보 업무를 하는데, 정상적인 홍보가 아니라 불법적인 홍보 활동을 한다. 매크로 작업으로 해당 업체와 관련된 각종 기사나 카페·블로그 게시물 등이 포털사이트 상단에 배치되도록 하는 행위다.

포털업체 업무를 방해하는 범죄로 처벌 대상이다. 본인도 이것이 불법임을 인정하고 있다.( ※'매크로'는 웹사이트 서버나 PC, 스마트폰 등에서 자동으로 반복 작업을 하는 프로그램인데 조회수 등을 부풀리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이 씨는 취재진에게 30여 분짜리 녹음파일을 공개했다. 이 씨가 2020년 12월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녹음한 대화이다. 대화 상대는 지난해까지 윤상현 의원 측 특보로 활동했으며, 국회 출입기자들에게도 '정 특보'로 알려져 있던 정모 씨다.

대화 육성을 들어보면, 정 전 특보가 이 씨에게 줄기차게 휴대전화와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을 폐기할 것을 종용한다. 대화 중 일부는 아래와 같다. 두 사람의 성만 각각 표기했다.

이 : (검찰에서) 알기라도 하면...

정 : 그러니까 빨리 없애버려야지.


이 : 없애고서는 이제 증거인멸 했다 이런 거로...


정 : 아니, 내가 변호사 사줄게. 그거는 괜찮다니까.


(...)


정 : 증거인멸이라는 건 뭐냐면 검사 소환을 당했을 때. 지금 자유 아니야 지금? 이00 씨 지금 자유의 몸 아니야? 핸드폰 바꾸는데 그 사람들 허가 받아야 되나?


이 : 아니죠.


정 : 지금은 상관없다니까. 오히려 불렀을 때. 그래서 미리 빨리 바꾸라는 게 그 얘기지.


(...)


이 : 그러면 핸드폰만 없애고 하드는 안 없애도 되고요?


정 : 아니죠. 핸드폰도 없애고, 하드는 견적을 줘.

대화 사이 '윤 의원'도 언급된다.

이 :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거는 일단 첫 번째는,

정 : 핸드폰.


이 : 윤 의원님이 필요하신 거는 이제 핸드폰.


정 : 예. 두 번째, 핸드폰 교환이 되고 나서, 빨리 감정을 추슬러야 돼.


이 : 하드가 날아가는 것은 말씀드렸잖아요. 생계 때문에...


정 : 그 방법을 의논해 봐요, 전문가들한테. 나는 지금 전문가들하고 의논해 보니까 답은 나와 있어요. 하드 전체를 가는데 그것만 빼놓고 예를 들면 증거 있잖아, 그걸 어디다 백업만 받아놓고...이 하드를 다 바꿔버리자 전체로.


(...)


정 : 한 번 도와줘. 나를 도와줘.


이 : 그런데 제가 만약에 잘못됐을 때. 의원님도 어느 정도 저를 감싸고 가실, 도와주실...


정 : 그 기본은 내가 할게. 내가 할게. 나에 대해서 물어봐.


(...)


정 : 성동우체국. 거기 앞에서 9시에 만나자. 편안하게. 진짜 제가 이런 이유가 뭐, 우리 의원님은 살고 당신은 뭐, 이게 아니라니까.

두 사람의 당시 대화 시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20년 12월이다.

이미 두 달 전인 10월에 검찰이 윤 의원을 포함해 11명을 이른바 '함바왕 선거공작', 즉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상태에서 '매크로 작업'이라는 또 다른 혐의가 포착될 우려가 있었기에 이와 같은 증거 인멸을 종용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정 전 특보가 사용한 명함과, 국회 출입기자들에게 윤상현 의원의 의정활동을 홍보한 SNS 메시지정 전 특보가 사용한 명함과, 국회 출입기자들에게 윤상현 의원의 의정활동을 홍보한 SNS 메시지

■ 정 전 특보는 누구인가?

이 대화의 당사자이자 녹취 파일을 취재진에게 제공한 사람이 제보자 이 모 씨고, 대화 상대방 정 모 씨는 위에서 언급했듯 윤상현 의원의 이른바 '특보'로 활동했던 인물이다.

위 사진을 보면 그가 기자들에게 돌린 자신의 명함과, 윤상현 의원의 의정 활동을 카카오톡 메시지로 국회 출입기자들에게 홍보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정 전 특보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렇게 비교적 왕성한 활동을 했는데 지금은 활동하지 않고 있다.

정 씨는 '함바왕 선거공작'의 재판 과정에도 등장한다.

정 씨 본인은 기소되진 않았지만, 그가 '함바왕' 유상봉 씨의 아들을 선거공작의 대가 차원에서 롯데 관계자와 만나도록 중간에서 연결 역할을 했다고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윤상현 의원의 부인은 신경아 씨로 롯데가(家) 사람이다. 고 신격호 회장의 조카다.)

■ 윤 의원은 '매크로'를 알았나?

제보자 이 모 씨에 따르면, 그가 윤상현 당시 총선 후보의 지역 사무실을 방문하게 된 것은 시민단체 대표 마 모씨 요청 때문이었다. 이 씨와 마 씨는 수 년간 알고 지낸 사이였다고 한다. 마 씨는 '함바왕 선거공작'으로도 기소된 피고인이다. 윤 의원과 함께 재판을 받고 있다.


위 사진을 보면 윤 의원이 당시 무소속이었기에 기호 8번을 달고 있다. 윤 의원 오른쪽이 제보자 이 씨다. 왼쪽 상단 거울 속에 우연히 잡힌 남성이 바로 마 씨다. 파일 기록으로는 2020년 4월 11일 밤 9시 반쯤 찍혔다. 총선 투표일을 4일 앞둔 시점이다.

윤상현 의원은 이 사진을 자신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이 씨에게 전송해준다. 같은 날인 4월 11일 밤이다. 촬영 직후로 보인다.

그리고 이틀 뒤인 4월 13일, 이번에는 이 씨가 네이버 화면을 캡처한 것을 윤 의원에게 보낸다. 그 안에는 윤 의원을 홍보한 블로그 게시물이 나온다. 일종의 '매크로 작업 결과 보고'였다는 게 이 씨 설명이다. 아래 사진이다.


이 씨의 주장에 따르면, 투표일이 얼마 남지 않은 그 시점에 자신과 윤 의원, 마 총재, 이렇게 3명이 3차례 정도 사무실에서 만났었고, 매크로 홍보 작업을 집중적으로 논의했다고 한다.

윤상현 캠프에도 홍보 업무를 맡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워낙 초박빙 승부여서 비상 상황이었고, 자신이 매크로 홍보에 유능하다는 것을 마 씨가 평소 잘 알아서 윤 의원에게 자신을 소개해준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 씨는 이와 같은 매크로 작업으로 윤 의원 홍보글을 잘 보이도록 포털 상단에 올리고, 경쟁 후보를 흠집 내는 내용의 지역 언론 기사도 잘 노출되도록 작업했다고 취재진에게 털어놨다. 또 취재진 앞에서 매크로 작업을 간략하게 시연해 보이기도 했다.('뉴스 9'에서 해당 영상을 공개할 예정이다.)

이 씨는 윤 의원 말고도 '거울 속 남성' 마 씨에게도, '식당 대화 상대'였던 정 전 특보에게도 당시 작업한 결과를 캡처한 것을 각각 보냈다.

투표 이틀 전인 2020년 4월 13일 카카오톡을 보면, 마 씨는 이 씨에게 "안상수 비리 네이버 검색순위 들어가게 하렴. 그랬을 땐 이 단장팀들 최고 공로자야. 선거 끝나고 회식 멋지게 하자"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여기서 말하는 '안상수 비리'는 당시 윤 의원의 경쟁 상대였던 안상수 후보를 가리킨다.

11명이 기소돼 재판이 진행 중인 '함바왕 선거공작' 사건의 검찰 공소사실에 따르면, 윤상현 의원 측은 '함바왕' 유상봉 씨 부자, 지역 언론인들과 공모해 안상수 후보를 비방하는 내용의 기사를 작성하고 유포하도록 했다.

제보자 이 씨는 자신이 매크로 작업으로 이러한 '안상수 비방 기사'를 더 눈에 잘 띄도록 네이버 상단에 배치하는 역할을 했다고 폭로하고 있는 것이다.

제보자 이 씨가 취재진 앞에서 '매크로' 작업을 간략히 시연하고 있다.제보자 이 씨가 취재진 앞에서 '매크로' 작업을 간략히 시연하고 있다.

■ 왜 이제 와서 폭로하는가?

그렇다면 이 씨는 왜 이런 폭로를 이제 와서 하는 것인가.

자신이 매크로 작업을 해주면 그 대가로 '잘 챙겨주겠다'는 취지의 말을 윤 의원과 주변인으로부터 여러 차례 들었음에도 지금까지 약속이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고, 총선 뒤 연락조차 없다시피 하다가 정작 본인들이 '함바왕 선거공작'으로 위기에 처하니 그제야 자신을 찾아와 매크로 증거 인멸을 종용하니까 화가 많이 났다는 설명이다.

이 씨는 자신도 형사처벌을 감수하겠다고 말했다. 검찰에 즉시 출두해 수사에 협조할 것이라고 했다.

■ 정 전 특보 "이 씨는 모르는 사람"

제보자 이 씨와의 '식당 대화'에 등장하는 정 전 특보는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이 씨를 모른다"고 전면 부인했다. ▲대화가 녹음된 파일이 있고, ▲이 밖에도 두 사람 사이 전화통화 녹음 파일, ▲호텔 사우나 휴게실을 함께 이용한 사진 등 취재진이 입수한 자료가 많지만 "잘 모르겠다"고 계속 부인했다. 윤 의원 특보 업무는 지난해 그만두었다고 말했다.

'거울 속 남성' 마 씨는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자신이 이 씨를 윤상현 의원에게 소개해준 사실은 인정했지만 "이 씨가 불법 매크로 작업을 하는지 몰랐다"고 부인했다. 마 씨는 윤 의원이 당시 이 씨와 사진만 찍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안상수 비리 기사를 네이버 검색순위에 들어가게 하라'는 내용의 카카오톡 문자메시지를 이 씨에게 보낸 데 대해선 자신이 원래부터 안상수 후보를 비판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시민들이 안상수 후보의 '실체'를 잘 알게 하자는 차원의 부탁이었다는 취지로 답했다.

■ 윤상현 의원 "매크로 작업, 모르는 일"

취재진은 '함바왕 선거공작' 재판에 피고인으로 출석한 윤상현 의원을 9월 24일 인천지방법원에서 만나 매크로 의혹에 대해 물었다. 윤 의원은 "모른다"고 짧게만 답하고 취재진과의 문답을 사실상 거부했다.

취재진은 윤 의원의 국회 사무실에도 질의서를 보내 정식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거절됐다. 윤 의원실은 서면으로 답변을 보내왔다.

윤 의원이 총선 당시 이 씨·마 씨 등과 만난 부분에 대해선 "하루에도 수백 명의 사람이 드나들었기 때문에 일일이 기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전해왔다.

매크로 홍보를 의뢰했는지에 대해선 전면 부인하면서 "후보가 선거운동 현장에서 계속 활동했기 때문에 답변할 입장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또 정 전 특보나 마 씨 등은 "선거사무소에 출입한 많은 사람들 중 일부에 불과"하고, 정 전 특보는 "총선 이후 더 이상 특보로서 일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윤 의원실은, 수많은 사람들 모두를 '선거캠프 관계자'라고 단정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정작 문제의 정 전 특보가 선거 때까지 특보로 활동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인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정 전 특보는 위 카카오톡 사진에서 보듯, 선거 뒤인 2020년 5월에도 국회 출입기자들을 상대로 왕성한 홍보 활동을 했고, 올해 초에도 윤 의원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알리며 기자들을 상대로 홍보했다.(물론 특보 자리에서 물러난 뒤에도 자발적으로 홍보 활동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

제보자 이 씨가 형사처벌을 감수하고, 검찰 수사에도 적극 협조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수사는 불가피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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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 윤상현 캠프, 총선 때 매크로 작업 의혹
    • 입력 2021-10-06 09:00:32
    취재K

KBS는 지난해 7월 [뉴스 9]에서 이른바 '윤상현-함바왕 선거공작 의혹'을 연속 보도한 바 있다.

지난해 21대 총선 당시 윤상현 의원 측이 이른바 '함바왕'이라는 별칭이 있는 건설현장 식당업자 유상봉 씨 부자(父子)와 공모해 경쟁 후보를 비방하는 내용의 고소장 등을 쓰도록 하고, 이를 지역 언론을 통해 유포했다는 의혹이었다.

KBS 보도 이후 인천지검이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갔고, 결국 윤상현 의원과 보좌관 조 모 씨, 유상봉 씨 부자, 지역 언론인 등 모두 11명이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돼 현재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그런데 KBS 취재진은 최근 새로운 제보 내용을 추가로 입수해 다각도의 취재를 이어왔다.

선거운동 당시 윤상현 캠프에서 이른바 '매크로'를 동원한 불법적 홍보 활동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취재 결과를 토대로 하나하나 그 근거를 살펴본다.(※윤상현 의원은 지난해 총선 때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으로 인천 동구미추홀을에 출마했고, 전국에서 가장 적은 표차인 171표 차이로 당선돼 4선에 올랐다. 윤 의원은 2021년 8월 국민의힘으로 복당했다.)

■ "내가 매크로 작업했다"…녹취 파일 공개

취재진이 만난 제보자는 홍보대행업체 대표 이 모 씨다.

이 씨는 홍보 업무를 하는데, 정상적인 홍보가 아니라 불법적인 홍보 활동을 한다. 매크로 작업으로 해당 업체와 관련된 각종 기사나 카페·블로그 게시물 등이 포털사이트 상단에 배치되도록 하는 행위다.

포털업체 업무를 방해하는 범죄로 처벌 대상이다. 본인도 이것이 불법임을 인정하고 있다.( ※'매크로'는 웹사이트 서버나 PC, 스마트폰 등에서 자동으로 반복 작업을 하는 프로그램인데 조회수 등을 부풀리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이 씨는 취재진에게 30여 분짜리 녹음파일을 공개했다. 이 씨가 2020년 12월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녹음한 대화이다. 대화 상대는 지난해까지 윤상현 의원 측 특보로 활동했으며, 국회 출입기자들에게도 '정 특보'로 알려져 있던 정모 씨다.

대화 육성을 들어보면, 정 전 특보가 이 씨에게 줄기차게 휴대전화와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을 폐기할 것을 종용한다. 대화 중 일부는 아래와 같다. 두 사람의 성만 각각 표기했다.

이 : (검찰에서) 알기라도 하면...

정 : 그러니까 빨리 없애버려야지.


이 : 없애고서는 이제 증거인멸 했다 이런 거로...


정 : 아니, 내가 변호사 사줄게. 그거는 괜찮다니까.


(...)


정 : 증거인멸이라는 건 뭐냐면 검사 소환을 당했을 때. 지금 자유 아니야 지금? 이00 씨 지금 자유의 몸 아니야? 핸드폰 바꾸는데 그 사람들 허가 받아야 되나?


이 : 아니죠.


정 : 지금은 상관없다니까. 오히려 불렀을 때. 그래서 미리 빨리 바꾸라는 게 그 얘기지.


(...)


이 : 그러면 핸드폰만 없애고 하드는 안 없애도 되고요?


정 : 아니죠. 핸드폰도 없애고, 하드는 견적을 줘.

대화 사이 '윤 의원'도 언급된다.

이 :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거는 일단 첫 번째는,

정 : 핸드폰.


이 : 윤 의원님이 필요하신 거는 이제 핸드폰.


정 : 예. 두 번째, 핸드폰 교환이 되고 나서, 빨리 감정을 추슬러야 돼.


이 : 하드가 날아가는 것은 말씀드렸잖아요. 생계 때문에...


정 : 그 방법을 의논해 봐요, 전문가들한테. 나는 지금 전문가들하고 의논해 보니까 답은 나와 있어요. 하드 전체를 가는데 그것만 빼놓고 예를 들면 증거 있잖아, 그걸 어디다 백업만 받아놓고...이 하드를 다 바꿔버리자 전체로.


(...)


정 : 한 번 도와줘. 나를 도와줘.


이 : 그런데 제가 만약에 잘못됐을 때. 의원님도 어느 정도 저를 감싸고 가실, 도와주실...


정 : 그 기본은 내가 할게. 내가 할게. 나에 대해서 물어봐.


(...)


정 : 성동우체국. 거기 앞에서 9시에 만나자. 편안하게. 진짜 제가 이런 이유가 뭐, 우리 의원님은 살고 당신은 뭐, 이게 아니라니까.

두 사람의 당시 대화 시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20년 12월이다.

이미 두 달 전인 10월에 검찰이 윤 의원을 포함해 11명을 이른바 '함바왕 선거공작', 즉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상태에서 '매크로 작업'이라는 또 다른 혐의가 포착될 우려가 있었기에 이와 같은 증거 인멸을 종용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정 전 특보가 사용한 명함과, 국회 출입기자들에게 윤상현 의원의 의정활동을 홍보한 SNS 메시지
■ 정 전 특보는 누구인가?

이 대화의 당사자이자 녹취 파일을 취재진에게 제공한 사람이 제보자 이 모 씨고, 대화 상대방 정 모 씨는 위에서 언급했듯 윤상현 의원의 이른바 '특보'로 활동했던 인물이다.

위 사진을 보면 그가 기자들에게 돌린 자신의 명함과, 윤상현 의원의 의정 활동을 카카오톡 메시지로 국회 출입기자들에게 홍보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정 전 특보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렇게 비교적 왕성한 활동을 했는데 지금은 활동하지 않고 있다.

정 씨는 '함바왕 선거공작'의 재판 과정에도 등장한다.

정 씨 본인은 기소되진 않았지만, 그가 '함바왕' 유상봉 씨의 아들을 선거공작의 대가 차원에서 롯데 관계자와 만나도록 중간에서 연결 역할을 했다고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윤상현 의원의 부인은 신경아 씨로 롯데가(家) 사람이다. 고 신격호 회장의 조카다.)

■ 윤 의원은 '매크로'를 알았나?

제보자 이 모 씨에 따르면, 그가 윤상현 당시 총선 후보의 지역 사무실을 방문하게 된 것은 시민단체 대표 마 모씨 요청 때문이었다. 이 씨와 마 씨는 수 년간 알고 지낸 사이였다고 한다. 마 씨는 '함바왕 선거공작'으로도 기소된 피고인이다. 윤 의원과 함께 재판을 받고 있다.


위 사진을 보면 윤 의원이 당시 무소속이었기에 기호 8번을 달고 있다. 윤 의원 오른쪽이 제보자 이 씨다. 왼쪽 상단 거울 속에 우연히 잡힌 남성이 바로 마 씨다. 파일 기록으로는 2020년 4월 11일 밤 9시 반쯤 찍혔다. 총선 투표일을 4일 앞둔 시점이다.

윤상현 의원은 이 사진을 자신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이 씨에게 전송해준다. 같은 날인 4월 11일 밤이다. 촬영 직후로 보인다.

그리고 이틀 뒤인 4월 13일, 이번에는 이 씨가 네이버 화면을 캡처한 것을 윤 의원에게 보낸다. 그 안에는 윤 의원을 홍보한 블로그 게시물이 나온다. 일종의 '매크로 작업 결과 보고'였다는 게 이 씨 설명이다. 아래 사진이다.


이 씨의 주장에 따르면, 투표일이 얼마 남지 않은 그 시점에 자신과 윤 의원, 마 총재, 이렇게 3명이 3차례 정도 사무실에서 만났었고, 매크로 홍보 작업을 집중적으로 논의했다고 한다.

윤상현 캠프에도 홍보 업무를 맡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워낙 초박빙 승부여서 비상 상황이었고, 자신이 매크로 홍보에 유능하다는 것을 마 씨가 평소 잘 알아서 윤 의원에게 자신을 소개해준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 씨는 이와 같은 매크로 작업으로 윤 의원 홍보글을 잘 보이도록 포털 상단에 올리고, 경쟁 후보를 흠집 내는 내용의 지역 언론 기사도 잘 노출되도록 작업했다고 취재진에게 털어놨다. 또 취재진 앞에서 매크로 작업을 간략하게 시연해 보이기도 했다.('뉴스 9'에서 해당 영상을 공개할 예정이다.)

이 씨는 윤 의원 말고도 '거울 속 남성' 마 씨에게도, '식당 대화 상대'였던 정 전 특보에게도 당시 작업한 결과를 캡처한 것을 각각 보냈다.

투표 이틀 전인 2020년 4월 13일 카카오톡을 보면, 마 씨는 이 씨에게 "안상수 비리 네이버 검색순위 들어가게 하렴. 그랬을 땐 이 단장팀들 최고 공로자야. 선거 끝나고 회식 멋지게 하자"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여기서 말하는 '안상수 비리'는 당시 윤 의원의 경쟁 상대였던 안상수 후보를 가리킨다.

11명이 기소돼 재판이 진행 중인 '함바왕 선거공작' 사건의 검찰 공소사실에 따르면, 윤상현 의원 측은 '함바왕' 유상봉 씨 부자, 지역 언론인들과 공모해 안상수 후보를 비방하는 내용의 기사를 작성하고 유포하도록 했다.

제보자 이 씨는 자신이 매크로 작업으로 이러한 '안상수 비방 기사'를 더 눈에 잘 띄도록 네이버 상단에 배치하는 역할을 했다고 폭로하고 있는 것이다.

제보자 이 씨가 취재진 앞에서 '매크로' 작업을 간략히 시연하고 있다.
■ 왜 이제 와서 폭로하는가?

그렇다면 이 씨는 왜 이런 폭로를 이제 와서 하는 것인가.

자신이 매크로 작업을 해주면 그 대가로 '잘 챙겨주겠다'는 취지의 말을 윤 의원과 주변인으로부터 여러 차례 들었음에도 지금까지 약속이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고, 총선 뒤 연락조차 없다시피 하다가 정작 본인들이 '함바왕 선거공작'으로 위기에 처하니 그제야 자신을 찾아와 매크로 증거 인멸을 종용하니까 화가 많이 났다는 설명이다.

이 씨는 자신도 형사처벌을 감수하겠다고 말했다. 검찰에 즉시 출두해 수사에 협조할 것이라고 했다.

■ 정 전 특보 "이 씨는 모르는 사람"

제보자 이 씨와의 '식당 대화'에 등장하는 정 전 특보는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이 씨를 모른다"고 전면 부인했다. ▲대화가 녹음된 파일이 있고, ▲이 밖에도 두 사람 사이 전화통화 녹음 파일, ▲호텔 사우나 휴게실을 함께 이용한 사진 등 취재진이 입수한 자료가 많지만 "잘 모르겠다"고 계속 부인했다. 윤 의원 특보 업무는 지난해 그만두었다고 말했다.

'거울 속 남성' 마 씨는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자신이 이 씨를 윤상현 의원에게 소개해준 사실은 인정했지만 "이 씨가 불법 매크로 작업을 하는지 몰랐다"고 부인했다. 마 씨는 윤 의원이 당시 이 씨와 사진만 찍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안상수 비리 기사를 네이버 검색순위에 들어가게 하라'는 내용의 카카오톡 문자메시지를 이 씨에게 보낸 데 대해선 자신이 원래부터 안상수 후보를 비판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시민들이 안상수 후보의 '실체'를 잘 알게 하자는 차원의 부탁이었다는 취지로 답했다.

■ 윤상현 의원 "매크로 작업, 모르는 일"

취재진은 '함바왕 선거공작' 재판에 피고인으로 출석한 윤상현 의원을 9월 24일 인천지방법원에서 만나 매크로 의혹에 대해 물었다. 윤 의원은 "모른다"고 짧게만 답하고 취재진과의 문답을 사실상 거부했다.

취재진은 윤 의원의 국회 사무실에도 질의서를 보내 정식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거절됐다. 윤 의원실은 서면으로 답변을 보내왔다.

윤 의원이 총선 당시 이 씨·마 씨 등과 만난 부분에 대해선 "하루에도 수백 명의 사람이 드나들었기 때문에 일일이 기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전해왔다.

매크로 홍보를 의뢰했는지에 대해선 전면 부인하면서 "후보가 선거운동 현장에서 계속 활동했기 때문에 답변할 입장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또 정 전 특보나 마 씨 등은 "선거사무소에 출입한 많은 사람들 중 일부에 불과"하고, 정 전 특보는 "총선 이후 더 이상 특보로서 일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윤 의원실은, 수많은 사람들 모두를 '선거캠프 관계자'라고 단정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정작 문제의 정 전 특보가 선거 때까지 특보로 활동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인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정 전 특보는 위 카카오톡 사진에서 보듯, 선거 뒤인 2020년 5월에도 국회 출입기자들을 상대로 왕성한 홍보 활동을 했고, 올해 초에도 윤 의원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알리며 기자들을 상대로 홍보했다.(물론 특보 자리에서 물러난 뒤에도 자발적으로 홍보 활동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

제보자 이 씨가 형사처벌을 감수하고, 검찰 수사에도 적극 협조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수사는 불가피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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